[광복홍콩 시대혁명] 거리로 나온 배경엔, ‘송환법 너머’가 있다

혁명은 범죄인 인도 법안 막으려는 목적 하나만이 아니었다 지금의 홍콩을 지키지 않으면 미래도 없으리라 생각한 시민
2019년 11월 18일

홍콩민주화운동은 범죄인 인도 법안 너머를 봐야 흐름이 보인다.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한 이유엔 자유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시회에 입장해 순서를 설명 듣고 곧장 사진을 살필 수 있었다. 가로로 길게 뻗은 좁은 통로 사이에도 사진과 설명이 붙어 있었고 사진 옆에는 한국어와 중국어로 된 설명문이 빼곡했다. 검정 마스크와 검정색 옷을 입은 관계자는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말했다. 그래서 정말 무엇이든 물어봤다. 사복을 입은 경찰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곡괭이라 해도 믿을 만큼 그 끝이 가로로 길었다.

─이 사복 입은 남성이 끝내 경찰로 밝혀졌다. 시위자들이 입은 검정색 옷에 반대해 흰색 옷 입은 이들이 시위대를 공격하는 백색테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시위 초반(6월)엔 흰색 옷을 입고 시위에 나섰다. 그러다 홍콩의 사망을 알리는 검정색 옷으로 바꾸었는데. 중간에 정체 모를 이들이 흰색 옷을 입고 테러를 했다. 처음 흰색 옷 입다 검정색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시위대를 공격하는 이들은 검정색 옷을 입고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검정색이든 흰색이든 아무 의미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

주필의 “아무 의미 없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관계자가 한 숨을 쉬었다. 사진 너머로 두 남성에게 자세하게 설명하던 남성 관계자를 보았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진 속 남성 주위로 아무 이유 없이 수많은 남성이 모여들어 폭행했다”고 설명하자 눈살을 찌푸리며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성인 남성뿐만 아니었다. 어르신도 최루탄을 피해 방독면을 착용했다. 사진에는 이런 설명이 덧붙였다. ‘한 청년이 방독면을 벗어 길을 지나가고 있는 어르신한테 씌우고 현장을 뛰어나가는 걸 도와줬다.“ 그 위론 최루탄에 물을 붓는 청년도 보였다. 할머니 오른쪽에 붙인 사진을 보니 장소가 궁금해졌다.

전시회 관계자는 검정색 옷 입은 시위자를 향해 수백명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들어 폭행했다고 설명했다.

─여기가 어디인가?
“여기가 어디로 보이나? 주택가다. 일반 주택까지 밀고 들어와 시위자들을 잡아갔다.”

경찰은 주택가까지 밀려 들었다. 빅토리아 공원 주변에서만 벌어지는 줄 알았지만. 시위는 분산되어 이곳저곳에서 일어났다. 전시회 관계자는 “분산되어야 경찰도 분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시위는 빅토리아 공원 중심으로 크게 이뤄지지 않았나?
“시위 초반에는 시민들이 모여 큰 시위 현장을 이뤘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며 시민들이 분산되길 바라는 경찰에 대항해 우리들도 분산되어 여기저기에서 모였다. 우리들이 분산돼야 경찰도 밀집되지 못하고 분산되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들도 자신의 집을 나와 시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홍콩의 현실이다.”

사진을 제공한 진영문(陳先生) 씨는 최루탄 확산을 막기 위해 사용한 스테인리스 접시를 찍은 채 물었다. “이것은 원래 음식을 담는 스테인레스 접시인데 지금은 왜 최루탄을 꺼지는 도구로 되었을까?” 전시회 주최 측이 번역기로 번역한 모양이다.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도 그림과 활자로 전시됐다. “제가 항상 말했듯이 사람은 구박할수록 더욱 강해진다. 격한 압박감을 느끼면 못하는 게 없다. 이성 잃은 경찰들이 어떻게 (강하게 압박) 해야 시민들이 스테인리스 접시로 최루탄을 덮었을까? 평소엔 찜을 하거나 과일 담을 때 쓰던 접신데…….”

홍콩 문제는 청년에게 송환법을 넘어 살에 와 닿는 실존적 문제였다. 웡타이신 룽췽길 도로 격벽에 스프레이로 쓰인 글씨엔 “7000 홍콩 달러(우리 돈 104만원) 월세로 감방 같은 방만 구할 수 있는데 감방으로 잡혀가는 게 두렵겠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질문1: 사복 경찰과 백색테러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관계자
“검정·흰색 옷이든 피아식별
어렵지 않느냐” 질문에 한숨

질문2: 분산된 시위대
시위 초반엔 홍콩섬에 모이다
분산을 위해 이곳저곳서 모여
“일반 주택에서도 진압 이뤄져”

질문3: 빨래방에 모이는 청년들
신문으로 보도된 빨래방 묻자
“감방 같은 월세방 구해” 증언
칸막이로 나눠져도 비싼 집값

 

─우리 언론도 홍콩 청년들 일상을 보도한 바 있다. 비싼 집값에 소위 빨래방이라 부르는 곳에 모이곤 한다는데. 그런 삶이 일상화 돼 있나?
“그렇다. 7000 홍콩 달러로 감방 같은 방을 구할 수 있다는 낙서에서 보듯, 사실이다.”

한국경제 강동균 베이징 특파원은 지난 9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홍콩 주거 기획 기사에 주목했다. 소득세와 법인세가 맹 낮고, 상속세, 양도소득세, 보유세가 아예 없는 덕분에 자본가들이 홍콩에 몰려 세계적인 금융 중심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사회 인프라와 교육, 의료, 공공서비스 재원이 필요한 홍콩 정부는 공공토지를 경매로 매각해 재원을 충당했는데, 때문에 토지 가격은 급등했다. 기업은 막대한 토지를 보유해 지가 상승을 노렸고 택지 개발엔 소극적이었다.

프레시안은 지난 10월, 윤효원 글로벌 인더스트리 컨설턴트의 기사로 홍콩 주택 시장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비싸다고 지적했다. 미국 부동산업체 CBRE 자료를 분석한 기사를 인용해 홍콩 부동산 평균 가격이 960만 홍콩 달러로 14억 3천만 원임을 보도했다. 

홍콩의 1인당 평균 거주면적은 161피트. 14제곱미터(4.5평)밖에 되지 않았다. 전시회 관계자는 “문제는 이마저도 층층이 나눠져 있다”며 “방 한 칸이라 부르기 어려울 만큼 칸막이로 나눠져 좁은 공간에서 지낸다”고 설명했다. 미래조차 암담한 청년들이 송환법을 넘어 미래를 위해 거리에 나선 이유다. 

비로소 홍콩민주화운동 저변에 흐르는 문제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들은 자유와 미래, 나와 너, 우리를 위해 거리에 나섰다. 청년뿐만 아니다. 어린아이, 어르신 할 것 없이 100만 명 넘게 거리로 나온 홍콩에는 송환법 이면에 자리한 현실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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