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 Page 2

[팔짱만 껴도 좋은걸②] 펭-귄, 페—-ㅇ귄, 뽀뽀 —- 우

여자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한 애착인형을 데려왔다. 정확히 몇 월 며칠에 왔는지를 서로가 모르는 걸 보면 처음엔 별 감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에 저장된 걸 보면 애착인형의 첫 사진은 지난해 9월 20일이다. 9월 전후로 애착인형을 데려온 것이다. 인형을 산 건 10년도 더 됐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동생에게 부탁해 에버랜드에서 사 왔다는 것. 영혼 없는 눈망울, 무표정한 얼굴, 입을 여닫을 수 없는 부리. 여자친구는 애착인형더러 “킹 받는다”고 표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가 출근하고 집에 없는 동안, 장난끼가 발동했다. 여자친구가 벗어놓은 잠옷을 내가 애착인형에게 입혀 놓고 나간 것이다. 저녁, 여자친구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 나는 능청맞게 장난을 쳤다. “어? 오늘 출근 안했어요?” 여자친구가 맞장구를 쳤다. “뭐지. 그럼 난 뭐지.” 애착인형은 울 줄도 안다. “펭~귄” 여자친구 특유의 발음에 착안해 나는 “펭~귄”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도 재밌다고 따라한다. “펭~귄” 우리끼리만 맛있는 걸 먹으면 애착인형은 삐진다. “펭~~귄” 우리끼리만 재밌는 데 가도 애착인형은 삐진다. “페~~~~ㅇ귄” 그런 애착인형을 여자친구는 무척 아낀다. 내가 애착인형에게 뽀뽀를 하면 “펭귄OO 괴롭히지 마욧~!”이라며 걱정도 해준다. 그런 애착인형에게 새 친구가 생겼다. 올해 애착인형 2호를 데려온 것이다. 그것도 판교에서 온 녀석이다. 우리의 애착인형과

[커버스토리] 10년이 지나고 나에게 선물 받은 나의 방

10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자 재채기가 나왔다. 이 정도 먼지면 바깥에서 털었어야 했다. 중학생 시절에 만들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 과제를 꺼내 들자 허술하게 관리한 그간의 세월이 먼지만큼 보였다. 뇌리에 남은 미술 선생님 이미지는 두 가지다. 섬세함과 예민함을 갖춘 바람에 우리들에게까지도 엄격함을 요구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이기적인 인간상, 또 하나는 부처상 앞에서 백발배로 성찰하며 자신의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가다듬던 인간상. 그 짧은 반 오십 살면서 자신의 삶을 바꾸어간 사람들 셋을 보았는데 그 중 한 분이 미술 선생님이었다. 자신의 장점이자 단점이던 예민함과 섬세함을 극대화해 끝내 자신의 성격조차 조각하듯, 하나하나 새겨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런 어른이 가르쳐주셔서 고마웠다. 선생님은 신문지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라 하셨고, 좋아하는 간판을 그리라고 흰 종이를 내주셨고, 배달 음식으로 남은 나무젓가락으로 탑을 쌓아보라 하셨고. 마지막으론 내 방 만들기라는 거대한 과제를 내주셨다. 즐거웠다. 왜냐하면 나는 늘 내 방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집에서 놀 듯, 학교에서도 놀아보라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선지 학교 가기가 가벼웠고 하나 둘 만들어가는 교실 속 광경을 느끼자 내 세상 같았다. 고입선발고사를 위한 미술 공부는 재미없었다. 지금도 머리에 남는 교과서 속 인물은 독창적인 팝아트 거장 엔디 워홀(Andy Warhol)밖에 없다. 점 하나 찍고 돈 세탁이나 하는 줄만 알았던 작품의 세계를 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편견을 집어치우고 말았다. 즐겁게 제작하던 10년 전 작품을 다시 손에 들었다. 내 방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작품들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지면은 여행을 떠나고 채워야 했지만, 코로나 파동으로 인해 방 꾸미기 기사로 갈음한다.

[지금,여기] 나가호리바시 이에케이 라멘 「2박3일, 오사카여행②」

2025년 11월 01일
오사카 숙소 근처에서 라멘 집을 발견했다. ‘이에케이 라멘 이타다키야 나가호리바시(家系ラーメン 頂㐂家 長堀橋店)’. 면의 굵기와 맛 강도를 선택할 수 있고 다진마늘과 양념으로 기호에 맞게 먹으면 된다. 여자친구는 이에케이 라멘과 미소 라멘을 먹었다. 이에케이 라멘의 흰 돼지국물은 국물이 묵직해서 맛있지만 다소 느끼해서 물렸는데 미소 라멘은 얼큰해서 느끼함이 없었다고 한다. 보통 여행에서 식당은 한 번만 갈 텐데 이 집은 두 번을 갔을 정도로 맛집이다.

[지금,여기] 다채로운 빛깔 여기는 오사카 「2박3일, 오사카여행①」

2025년 11월 01일
❶신세카이·도톤보리 북적이는 젊은 도시의 활력 여행의 묘미 크루즈와 온천 절대로 아깝지 않은 가격과 언제나 간직하고 싶은 추억 오사카의 밤은 백색 노이즈 같았다. 손바닥으로 가려지지 않을 인산인해를 바라보며 이 도시의 화려함에 취했다. 독창적인 간판은 거대했고,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꽃처럼 타닥타닥 튀었다. 사람들의 북적임은 도시의 활기를 가리켰다. 우리는 도톤보리(道頓堀)와 신세카이(新世界)를 돌아다녔다. 알록달록 간판 사이에서 술 한 잔 기울이는 사람들, 붉은 조명에 비치는 관광객들. 걷는 것만으로도 기운찼다. 일본 도시 특유의 내음이 정겨웠다. 하마터면 우리는 도톤보리 리버 크루즈를 타지 못할 뻔했다. 걸어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을 굳이 2만원을 주고서라도 타야 하느냐는 의문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에 승선하고, 깨달았다. 부푼 마음을 느껴서야 착각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크루즈를 타지 않았더라면, 경험하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는 설렘을 우리는 교훈처럼 깨달았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과 가까운 소라니와 온천(空庭温泉)도 그랬다. 따뜻한 몸에 발을 담그고서야, 풀리는 피로를 경험하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토와 오사카, 4박 5일의 여행 전반이 그랬다. 여자친구와 리버 크루즈에서 글리코상을 뒤로 하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오사카의 명물. 이곳에서 사진을 찍지 않으면 오사카를 방문하지 않았다고까지 핀잔을 줄 만큼 유명한 곳. 일본다운, 오사카다운 풍경 앞에서 환희에 찼다. 솔직히 이 밤이 영원했으면 하지는 않았다. 스쳐가는 밤이자, 그저 가슴 속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날들 중 하나였다. 교토와 오사카의 여느 관광지들이 규모와 서비스 면에서 한국을 압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4박 5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일본에 대한 동경심은 한국살이에 대한 열의로 싹트기 시작했다. 따라서 지금의 여행이 끝나면, 또 다른 여행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오사카다움 속에서 전통과 역사를 다듬어나가는 삶의 방향을 발견한 것이다. 여행 유튜버가 부럽지 않았다. 우리에겐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일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마저 일상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싶었다. 이 오사카만의 풍경을, 교토만의 경험을 일상이라는 단어로 묶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자친구와 함께한 일본에서의 특별한 이 시간이 더욱 달콤했다. 돌아오지 않을 시간 말이다.

[지금,여기] 오전 7시, 아침을 여는 ‘코메다커피’ 「3박4일, 도쿄여행⑥」

2025년 09월 13일
⑦ 아카사카아침엔 학생 낮과 밤에는 관광객으로 한국 식당도 즐비한 동네 도쿄에서의 마지막 아침, 동이 텄다. 셋째 날까지 알차게 여행한 덕분에 단잠에 빠질 수 있었다. 오전 6시, 우리는 일찍 기상해 세탁에 나섰다. 세탁할 동안 우리는 코메다커피로 향했다.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숙소에서 가까운 카페는 코메다커피밖에 없었다. 여지없이 점원은 친절했다. 행동 하나하나에 섬세함이 깃들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브런치를 먹었다. 달달한 팥앙금을 바삭한 빵에 발라 한입 베어 물었다. 나는 중간 중간 커피에 우유를 섞어 마셨다. 뭔가 쓰면서도 달달한 끝맛이 믹스 커피와는 달랐다. 커피를 즐기면서 코메다커피만의 엔틱한 분위기가 뒤늦게 시야에 들어왔다. 구획을 나눈 단단한 나무 파티션, 빨간색 소파의 푹신함. 코메타커피의 상징 같았다. 미니 샐러드 300엔, 아이스커피 800엔, 블렌드 커피 800엔. 한국 돈 1만9000원으로 충분한 조식을 즐겼다. 우리는 카페를 나서면서 아카사카의 다른 면을 발견했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본 것이다. 아카사카는 도쿄에서도 관광지로 유명하다. 우리는 줄곧 낮과 밤에만 이곳 아카사카를 돌아다니느라 학생들을 보질 못했다. 한쪽은 관광객이 캐리어를 끌고 있었고, 한쪽에는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었다. 문득 이곳 아카사카가 궁금해졌다. 숙소로 걸어가다 발견한 TBS 본사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우리는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우리는 체크아웃을 앞두고 짐 정리에 나섰다. 3박 4일의 일정을 마치려는 순간, 여자친구가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다. 냉장고 전원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껏 OFF였다는 점에서 허탈해졌다.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돌아가는 길이 가벼워졌다.

[지금,여기] 섬세한 헌책방, 모네의 작품들… 일본, 마지막 저녁 「3박4일, 도쿄여행⑤」

2025년 09월 13일
오늘의 브런치를 우에노역에 있는 와이어드 카페(Wired Cafe Atre Ueno Store)에서 즐겼다. 우에노역으로 향하는 계단을 앞둔 창가 자리가 무척 인상적인 곳이다. 이른 아침부터 간다강을 거닐며 산책하다 근처 브런치가 가능한 카페를 발견하지 못해, 끝내 우에노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아침 9시임에도 꽤나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내일 타고 갈 스카이라이너를 예매했다. 근처에 있는 일본국립서양미술관에서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보러 갔다. 평소에도 여자친구는 모네의 작품을 보고 싶어 했다. 우리는 미술관 마당에서부터 유명한 작품을 마주했다.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본 것이다. 그 옆에 세워져 있는 ‘지옥의 문’도 인상적이었다. ⑤ 우에노 예술 작품과 철다리 술집 인상적 풍경 ⑥ 진보초 입 틀어막는 오랜 잡지들 거대 보관소 기억에 남은 모네의 작품은 ‘수련’이었다. 빛과 그림자를 섬세하게 표현한 그의 작품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덕분에 여자친구의 감상은 나보다 배로 길어졌다. 점심은 철다리 아래에 있는 토와(TOWA)에서 먹었다. 소바와 텐동, 시원한 물까지 부족한 게 없는 식탁이었다. 간간히 스쳐가는 도시철도의 진동이 더욱 생생한 감각으로 느껴졌다. 토와는 술집 같았다. 수많은 사케들로 가득했다. 후한 점심을 즐기고, 우리의 발걸음은 아키하바라와 진보초로 향했다. 전자상가로 가득한 아키하바라는 별 감흥이 없었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간다강과 빨간 벽돌의 마치(maach)에큐트가 인상적이었다. 진보초 서점은 다른 의미에서 놀라웠다. 평범한 책방도 있었지만 잡지를 모아둔 가게에서는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문자 그대로 놀랐기 때문이다. 무척 더운 여름이었다. 땀은 볼을 스쳐 흘러내렸고, 나의 숨소리조차 섬세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1980-1990년대 잡지가 가득했고 1970년대 자료로 보이는 잡지도 보였다. 앳된,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을 20대 여성의 박제된 인쇄물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숙소에서 쉬었다가 저녁, 선선해질 무렵에 도착한 도쿄역에서 져가는 노을을 보았다. 한 가지 후회를 했다면, 괜찮은 식당을 역사 근처에서 찾아 헤맸다는 점이다. 차라리 아카사카를 둘러보았으면 어땠을까. 일본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우리는 아카사카 숙소에서 마무리 했다. 편의점에서 구매한 과일을 먹으며 술 한 잔 기울인 것이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검정치마의 멜로디가 잔잔했다. 여행을 떠난다면 또 일본을 선택하고 말 거라는 진담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3박 4일의 짧은 일본에서의 여행을 되짚었다.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다음의 말로 매듭지었다. “한 순간도 버릴 시간이 없었던 우리들의 발걸음.” 숙소 바깥, 화려한 도쿄의 야경이 애틋해졌다. 하나 둘,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소중한 밤은 깊어갔다.

[지금,여기] 세키구치 대성당, 손수 계단 닦던 주임 사제의 낮은 자세 「3박4일, 도쿄여행④」

2025년 09월 13일
④ 세키구치그저 자리에 앉아 읊조린 짧은 기도 침묵, 하느님의 전 환대, 신자의 인사 미소, 사제의 겸허 사진을 촬영하면 안 된다고 한다. 명백한 팻말에 좌절하는 듯했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경배가 내게 힘이 되었다. 자리에 앉아 하느님에게 짧은 기도를 남겼다. 무교인 여자친구도 성당의 압도적인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곳 도쿄 주교좌 세키구치 대성당(東京カテドラル聖マリア大聖堂)에서 우리 커플은 경건한 파고 앞에 압도당했다. 아스라이 서로를 지탱하는 사람인(人) 지붕, 예수의 십자가를 비추는 빛, 아무말 없는 고독과 침전. 언제나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안아주심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한 신자분이 건물 안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외부인인 내게도 친절한 미소를 건네는 데에서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고개 숙여 인사 드렸다.   바깥에서는 코이케 료타(小池亮太) 주임 사제가 성당 바깥 계단을 솔로 문지르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세키구치 성당에 대해 조사하던 중 코이케 료타 씨가 주임 사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척 친근한 인상을 가진 신부님에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 와타시와, 칸코쿠진 데스.(私は、韓国人です。) 찬미 예수님.” 신부님은 인자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자친구에게도 소개해 드렸다. “이분은 성당의 주임 사제세요.” 우리는 마저 성당을 구경했다. 그런데 신부님은 마저 계단을 솔로 닦고 있었다. 여자친구도 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부님이 진짜 좋으시네요. 바닥을 닦고 계시다니.” 성당 자판기에 에비앙이 보였다. 여자친구는 비싼 물 좀 마셔보겠다고 작은 사치를 부렸다. 그 모습이 귀여웠다. 성당 앞으로 텍시 한 대가 도착했다. 서양 관광객 한 명이 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외국인은 성당을 구경하다 피로해졌는지, 퇴약볕 벤치에 앉아 있었다. 곧 떠날 우리가 그분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Thank you!”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간다강(神田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여기] 어스름한 저녁, 사람 사는 냄새… 고즈넉한 신사의 뒷골목 풍경 「3박4일, 도쿄여행③」

2025년 09월 13일
우리의 여정을 잠시 중단해야 했다. 무척 따가운 햇볕에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신주쿠에서 아카사카미쓰케역(赤坂見附駅)까지 이동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다시 숙소로 돌아간 것이다.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나는 잠시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10분이었을까. 내가 코를 골고 있다는 걸 느낀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그 짧은 시간의 수면이 내게 개운함을 안겼다. 여자친구는 릴스를 보면서 쉬고 있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시간이 4시 반쯤이었다. 이대로 저녁까지 아무 것도 안하며 쉬기만 하기엔 무척 아쉬웠다. 여자친구가 아사쿠사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③ 아사쿠사오코노미야키와 말차라테·붕어빵 든든한 저녁 밥상 뽑아본 한해 운세 “대길, 최고의 길운” 우리는 긴자라인(G) 다메이케산노역(溜池山王駅)에서 아사쿠사역(浅草駅)까지 단숨에 갔다. 도쿄 메트로에서 운영하는 일본 지하철은 한국과 달리 조금 작았다. 천장 곳곳에 매달린 인쇄물 광고를 보며 덕지덕지 붙은 기분과 동시에 아늑한 감정을 느꼈다. 오후 5시. 도시의 온기는 수그러들었다.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아사쿠사 신사 방면으로 걸어갔다. 그새 콘크리트 사이에 붉은 노을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도로의 차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길가의 사람들도 어깨를 스치지 않을 정도로 걷고 있었다. 아사쿠사 신사에는 무척 많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사실 뭘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사람들의 활발함에 넋을 놓고 말았다. 기도하는 사람들, 센소지에서 통을 흔들며 운세를 기다리는 손길들, 그늘에 뉘어서 쉬고 있는 관광객들. 우리는 아사쿠사를 벗어나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주한 고즈넉한 뒷골목 풍경에 또 한번 넋을 잃었다. 여자친구는 오코노미야키를 먹고 싶어했다. 나는 여자친구를 따라 오코노미야키·몬자 시라이와 아사쿠사점(お好み焼き・もんじゃ しらいわ 浅草店)에 들어갔다.

[지금,여기] 풋풋한 연인의 사랑, 달달한 덮밥의 진미 ‘도쿄의 일상’ 「3박4일, 도쿄여행②」

2025년 09월 13일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우리의 하루는 오전 7시부터 시작됐다. 어제 새벽 4시 반에 기상해 종일 걷고, 서두르거나 깨어 있었으니 피곤이 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밤 11시에 잠들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노곤해지는 게 여자친구의 뱃살을 만질 겨를이 없었다. 여자친구는 내가 엄청나게 코를 골았다고 한다. 느릿느릿 빨래를 하고, 편의점에서 산 과일음료를 마셨다. 냉장고에 넣었음에도 미지근한 온도였지만 맛은 최상이었다. 나와 여자친구는 그러려니 했다. 첫 일정은 시부야로 정했다. 사실 나와 여자친구는 여행 계획을 대강 잡아 두었다. 하루는 어디를 가고, 또 하루는 어디로 가는 식으로 말이다. 중간중간 괜찮은 데가 있으면 둘러보면서 즐기기로 한 것이다. 오후에는 오모테산도(表参道)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리의 계획은 그뿐이다. 모든 건 상황에, 마음에 맡기기로 했다. 하여 시부야와 신주쿠. 오늘 계획은 이곳이다. 압도하는 거대한 건물들 시부야, 인파 밀림 속에서 시부야역에서 내렸다. 쏟아지는 사람들이 흩어져서야 여자친구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역사 바깥에서는 공사 중인 곳이 있었다. 우리는 공사장과 거대한 교각을 지나쳐 하치코앞 광장에 도착했다. 각기 다른 방향의 교차로. 시선을 살짝 올렸더니 익숙한 로고 ‘스타벅스’가 보였다. 시부야에 온다면, 근방의 NHK본사보다 이곳 스타벅스 시부야 츠타야점에 와보고 싶었다. 여자친구는 스타벅스 굿즈를 둘러보는 동안 나는 시부야 교차로를 관찰했다. 한눈에 들어오는 시야에 압도당했다. 주말이라 그랬는지 더욱 사람들로 붐비는 이곳 시부야의 풍경을 마음에 간직했다. 초록빛의 스타벅스 역시 사람들로 북적였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목마른 사슴처럼 헤매고 헤맨 오모테산도의 골목길 우리는 조금 더 걸어야 했다. 점심을 예약한 시간까지 한 시간 반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오모테산도까지 걸으며 다채로운 일본 도시의 풍경을 감상했다. 날은 무척 더웠다. 양산이 없었다면 걸을 수 없었을지 모르겠다. 머지않아 우리는 주택가에 들어섰다. 서울 합정동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하나하나 개성이 담긴 건물들을 관찰했다. 그러다 골목길 어느 곳을 헤매다 흥미로운 건물을 하나 발견했다. 분명한 흰 건물, 뾰족한 첨탑. 누가 봐도 교회 같았다. 바깥에서 정장을 입은 여성이 접객하는 걸 보면 결혼식장으로 보였다. 이상한 걸 느꼈다. 다시 보니 교회는 아닌 것 같다. 십자가도 없고 건축 양식도 기독교와 달랐다. “기독교 느낌으로 예식을 원하는 일본인도 있다”는 여자친구의 말에 수긍이 갔다. 골목길을 돌아다녔음에도 점심시간까지 더 남았다. 조금 더 걷다가 우리는 애플스토어 오모테산도점을 발견했다. 한국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해졌다. 일단 매장은 시원했다.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는 분위기가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기기는 일본어로 작동했다. 지하에도 내려가 봤다. 몇몇 사람들은 상담을 받고 있었다. 우리는 한 스피커 앞에 다가섰다. 문득 검정치마의 노래가 떠올랐다. ‘Sunday Girl’을 틀었다. 순간 작은 무대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골목길 탐방을 마치고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가게로 향했다. ① 오모테산도 정겨운 골목 풍경 개성 담긴 건물들 연어 덮밥·미소국 달달한 맛의 조화 ② 신주쿠 수줍게 웃는

[지금,여기] 머지않아 비가 쏟아졌다… 긴자의 한 텐동집에서 「3박4일, 도쿄여행①」

2025년 09월 13일
긴자, 도시 내음이 진했다. 이토야 문구점을 나온 순간이었다. 특유의 냄새에 사로잡혔다. 여자친구 손을 잡고, 긴자 1초메(銀座一丁目)를 거닐었다. 바삐 걷는 사람들, 여유로운 우리의 발걸음, 그 사이 저물어가는 노을을 온몸으로 지각했다. 어디서 저녁을 먹으면 좋을지 우리는 고민했다. 지겨울 정도로 본 편의점 로손(Lawson)을 지나쳐 꽤 그럴듯한 식당을 발견했다. ‘텐동텐야 긴자점(天丼てんや 銀座店)’ ① 긴자이토야 문구점까지 종일 걷고 또 걷고 주린 배 쓰다듬다 발견한 한 텐동집 맛으로 대접하는 존귀한 서비스에 “고치소사마데시타” 상당히 목이 말랐다. “이랏샤이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 나이든 점원이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곧 시원한 물을 내오며 정중히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일본 점원들은 언제나 친절하다’는 뇌리에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덩달아 나까지 정중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친구는 미소를 머금고 메뉴를 골랐다. 종일 걸어야 했으므로 우리는 고달파졌다. 일단 물 한잔 들이켰다. 서서히 선명해지는 한국어 전자 메뉴판을 보면서 나 역시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친구는 튀김과 소바를, 나는 텐동과 소바를 주문했다. 오래 지나지 않았다. 음식을 내오며 정중하게 인사드리는 점원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여자친구와 나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지나가던 길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온 가게. 그것도 평범한 메뉴를 저녁으로 먹고 있는데 감동 받을 일은 단 하나였다. 맛. 정말 맛있었다. 적절한 간장의 짭짤함. 달달한 튀김옷이 적당하게 단단했다. 시원한 육수에 와사비를 모두 털어 먹었다. 단 한 가닥도 남기지 않았다. 서운하지 않은 맛에 또 한 번 대접 받은 기분이 들었다. 적당히 맛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노련함이 묻어난 그런 맛에 감격했다. 긴자 한복판에서 눈물 흘릴 수는 없었다. 여자친구와 일본, 그것도 도쿄 긴자에서 즐기는 첫 저녁에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 “고치소…고치소사마데시타!(ごちそうさまでした)” “아리가토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순간 발음을 절었다. 그 또한 감사히 받아주는 점원의 정중한 인사에 여자친구와 나도 정중히 인사드리고 가게를 나왔다.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국보다 일찍 컴컴해지는 하늘, 후덥지근했지만 따듯한 공기, 여자친구와 무작정 달리고 있는 이 모든 상황이 마냥 즐거웠다. 예상하지 못한 비, 일본 하늘이라 용납이 되는 이 우스운 광경. 우리는 근처 생활용품점에 들렀다. 자외선 차단제도 살 겸, 우산도 골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는 한국인이라 일본어를 전혀 읽을 줄 몰랐다는 점이다. 그저 웃음이 났다. chatGPT를 켰다. 번역을 부탁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했다. 편의점에서 산 야식을 먹었다. 창문으로 내다보는 도쿄의 야경은 압도적이었다. 고단한 하루. 여자친구를 끌어안고 잠을 잤다. 내일의 여행을 기대하며.

[인류의 마음 박물관④] “너에겐 상처밖에 줄 수 없는데… 내가 없으면 세상이 더 나아질까”

2025년 05월 20일
눈을 뜬다. 새벽 중 유일하게 보이는 건, 창문 너머 달의 뒷면. 다른 빛에 의지해 간신히 보이던 뒷모습은 어쩐지 하릴없이 처량해 보인다. 누가 달에게 돌을 던졌을까. 그의 등엔 온통 파란 멍들 뿐이다. 상처에 연고조차 발라본 적 없는 것처럼 우주의 침묵을 닮은 흉터들. 난 그 흉터에서 태어났다. 우주의 침묵을 먹고 피어난 아이. 누군가는 나를 눈물이라 부른다. 어떤 이는 내게 우울이란 병명을 붙이곤, 역겨운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그래도 난 그 시선조차 고마웠다. 드디어 내게도 이름이 생긴 걸까. “끔찍해. 다시는 ‘우울’에 발붙이고 싶지 않아.” 나를 향한 온갖 말들은 보이지 않아도 귀를 관통해 들어왔다. 처음엔 사람들이 주는 관심이 마냥 좋았다. 축복받지 못한 탄생, 난 모두가 외면한 존재였기에 무시와 조롱조차 나에 대한 애정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한 번은 누가 내게 그러더라. 넌 해만 끼치는 존재인데, 뭐가 그리 떳떳해서 지금까지 죽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있는 거냐고. 나도 살고 싶지 않았다. 단지 죽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 그때부터 죽음이 나의 탄생 이유라는 걸 깨달았다. 사실 태어나지도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나요?” 사람들은 내게 죽으라고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지만, 정작 그 방법을 알려주진 않았다. 하루하루 살아있음이 죄책감의 연속이었다.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지만, 정작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 나는 뻔뻔하게 살아있다. 그게 날 더 목메게 만들었다.  죽는 법을 안다는 도사를 찾기 위해 인적이 드문 외길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안녕? 여기 버스 기다리는 사람, 우리 둘뿐이네. 어디 가는 길이야?” 누구지…. 햇살이 물결로 번지듯, 그의 머리칼은 금빛으로 흩날렸고, 웃음은 그에 따라 일렁였다. “너 나 처음 보는 눈빛이다! 우리 구면인데, 너 우울이 맞지?” 그의 목소리가 퍼지자마자, 내 안에 존재하는 줄 몰랐던 심장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런 게 바로 첫눈에 반했다는 걸까. 그의 환한 온기 앞에서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으응 ….” 앗, 내 마음은 이런 게 아닌데…. 어영부영 말을 흐리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난 기쁨이라고 해.”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앞에서 나는 확신을 더 굳히게 됐다. 내가 살아있다면 기쁨이란 존재는 더 흐려질 거야. “말 걸지 말아 줄래. 머리 아파.” 그래서 더 차갑게 대꾸했다. “으응 …. 미안해.” 말의 잔은 비었고, 그 빈자리에 어둠이 자랐다. 보이지 않는 가시 하나가 내면을 더듬었다. 그의 뒤에 드리운 그림자도 한층 두터워진 듯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기쁨이가 내게 물든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공기를 채우는 어색한 침묵과 계속해서 귀를 관통하는 저주의 말들을 지겹도록 들을 때쯤, 우리 둘 사이로 버스의 헤드라이트가 비쳤다. 누구랄 것도 없이 조용히 발을 옮겼다. 별빛만이 어설프게 내려앉아, 상처 입은 그의 표정을 비췄다.
Today소랑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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