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해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입으로 굴리고 굴려낸 이름으로 네 감촉, 의미, 마음을 상상한다

이름으로 느낀 촉감과 의미 본연의 모습과 상황 통해서 생각지 못한 관심으로 연결 그리고 발견한 할아버지 댁
2022년 07월 26일

연결 기사
[단편소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최문혁.

이름을 입으로 말하고 또 말하는 게 습관인 나율이의 잠꼬대에 선배 문소혜와 최문정이 놀려댄다.(1단10줄) 언니들의 농담이 들리지 않는 데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무 상관없는 남자애, 최문혁을 만난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싸움에 휘말릴 뻔한 나율을 구한 남자애 이름은 최문혁. 남은 것은 문혁에 대한 기억, 그리고 명찰 뿐이었다.

나율의 습관은 옆자리 친구의 이름에서 자신을 구해준 문혁으로 바뀐다. 문혁의 이름을 부른다. 문혁의 이름을 자음 모음으로 해체해 되뇐다. 문혁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나율이 마주친 동네는 진성동 재개발 3구역이었다. 취재를 위해 새벽부터 신문을 배달하면서 마주친 우연은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펼쳐진다.(3,58) 문혁에 대해 알고 있는 할아버지를 알게 되면서 어떻게든 정보를 캐내려 하지만 할아버지는 곧잘 설명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나율은 할아버지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을 건넨다. “할아버지는 이름이 뭐예요?”(4,51)

호(號)가 익숙하지 않은 나율에게 할아버지의 호 ‘정연’은 수수께끼일 뿐이다. 어른들이 지어준 이름이 아닌, 자기 자신이 허울 없이 부르라고 만든 그 뜻을 고민한다. 나율에게 이름은 누군가의 존재를 상징한다. 비록 자기 자신이 지은 이름은 아니지만 자음과 모음을 분해해 분위기와 느낌, 혀의 움직임을 관찰해 본 모습과 비교해본다. 거친 이름이라 해서 거친 사람으로 본다기 보다 거친 모습도 있다는 방식으로 다층적 인간상(像)을 구축해 나간다. 따라서 할아버지에게 문혁은 그저 어른들에게도 인사 잘 하는 착한 학생을 의미하지만 나율에게 문혁은 겉은 거칠면서도 속은 따뜻해 보이는 저녁녘, 최무녁으로 재해석된다.

나율은 이름으로 성향과 느낌, 배경을 유추하는 습관처럼 전혀 접점을 가지지 않은 할아버지에게도 관심을 연결한다. 리어카는 할아버지의 배경이다. 시급 1000원도 되지 않은 고된 노동을 이어가지만 할아버지는 스스로를 고된 인생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정연’이 그렇다.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이며 그 이름을 말해주는 할아버지가 나율과 함께 퇴근한다. 도착한 할아버지 댁은 진성동 재개발 3구역. 얼마 남지 않은 폐가 속 유일한 할아버지 댁에서 나율은 할아버지의 이름을 발견한다. 훈장처럼 벽을 도배한 할아버지의 과거 지면신문은 호의 기원을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전쟁통으로 향하던 배 이름을 자신의 호로써 기억하는 할아버지가 숨을 내쉬며 쉬자 나율은 충격을 받는다. 곧 돌아온다던 손자가 문혁이었기 때문이다.(8,32)

문혁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위해 아침마다 박스가 쌓인 곳을 찾아 사진을 찍어 장소를 알려주었다. 생계를 위해 저녁에는 학교를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간다. 2022년 기준 한국 참전명예수당은 35만원으로 2000년 당시에는 6만 5천원이었다. 나라를 지키려 목숨을 바친 이들에 대한 대우, 고된 노동이라는 결과, 아무도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노인빈곤에 나율은 “인터넷 어디에도 없다던 글”을 발견한다. 그런 나율은 문혁이라는 이름의 뜻을 깨달았다. 밝은 빛 다시 말해 새벽을 새기라는 포부를 담은 이름인 것이다. 그러나 문혁에게 대하는 사회의 자세는 이제 져가는 노을일 뿐이다. 한 순간 빛나, 빛을 잃어버리면 그 자체로 버려지는 그런 존재로만 바라본다. 나율은 사회의 소모적 태도를 거부한다.

학보사로 들어오라는 말이 도와주려는 손짓일 뿐이지만 문혁은 거절한다. 이유를 알지 못한 나율이 속상함을 감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나율에게 진성동 재개발 3구역은 그저 사라져갈 동네에 불과하다. 선배 문정의 취재가 아니었으면 할아버지와 마주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율은 이미 문혁의 상황을 알고 있었고 회피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다시 문혁이 나율에게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메시지는 다시 삭제되었다.(11,10)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생각이 바뀌었는지 문혁 자신이 삭제한 것이다.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한 나율이 찾아간 진성동 재개발 3구역, 불규칙한 계단을 힘겹게 내려오는 문혁을 발견한다. 문혁의 등에는 할아버지가 실렸다. 낙후된 지역이 말해주는 건 ‘돈 많은 사람은 시간도 산다’는 이면.(11,24)

역설적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와 문혁의 상황을 글로 남기려던 나율은 고민한다. 문혁의 맨 얼굴을 그대로 보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허락을 받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지만 지워버린다. 그리고 벌컥 열린 학보사 사무실 미닫이문. 문혁이 학보사로 들어온 이유가 무엇일까.

자유의 새노래

자유의새노래

정론직필의 자유·시대성의 창달·주체자의 기록

답글 남기기

Previous Story

[단편소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Next Story

[마감하면서] 실은 돈이 없어서 사라진 것들 앞에

Latest from 나우

두쫀볼, 두쫀붕, 두쫀궁까지… 없어서 못 먹는 ‘두쫀쿠 열풍’

두바이 쫀득쿠키. 이름만 들어도 일단 두바이에서 만든 쿠키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두바이 초콜릿은 들어봤어도 쫀득쿠키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쿠키면 쿠키지 쫀득쿠키는 뭘까. 여자친구가 먹고 싶다던 두쫀쿠를 더현대서울에서도 판다기에 점심시간, 지하 1층 식당가를 헤집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품절 대란이 일어날 만큼 인기리에 판매 중이었기 때문이다. 절찬리 판매 중인 ‘존맛탱 쿠키’ 두쫀쿠는 ‘두바이 쫀득쿠키’의 줄임말로 중동식 얇은 면인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 크림을 속에 넣고 마시멜로 반죽으로 감싸 바삭하면서 쫀득한 식감을 내는 쿠키 형태다.

[지금,여기] 두 손 모아 경건함으로 “소원을 빕니다” 「2박3일, 교토여행③」

❹청수사·니넨자카·산넨자카·은각사 자연을 재편집하는 섬세한 손길과 애절함 관광지의 정수였다. 청수사 그러니까 기요미즈데라(清水寺)에 이르자 새빨간 사찰 건물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청수사는 매년 12월 12일 일본 ‘올해의 한자’를 발표하는 곳이다. 인왕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신비로운 눈빛으로 인왕문을 구경하거나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노송나무 껍질로 만든 본당 지붕은 나조차 익히 알고 있는 교토의 유명한 건물이다. 높은 지대를 감추고 있는 파릇파릇한 가을의 나뭇잎이 우드톤 본당의 지붕과 대조적이었다. 자연 속 사찰로 더욱 살아나는 분위기였다. 사찰로 향하는 길목에는 니넨자카와 산넨자카가 늘어섰다. 일관된 목조건물과 절제된 간판이 교토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무척 많은 관광객에 걸음을 멈춰야 했을 정도다. 전범기 앞에선 잔기침이 터졌다. 은각사에서 나는 동양 전통의 권력과 위계적 미학을 감지했다. 서양 전통은 압도적 규모와 기하학적 질서로 권위를 드러내지만 일본의 건축은 자연을 통제함으로써 힘을 보여주려 한 게 아닌가 싶었다. 목조 건물은 콘크리트와 달리 거대한 규모로 짓기 어려워 자연을 통제하거나 인위적으로 길들이는 방식으로 발전했다는 인상이다. 모래를 쌓아 만든 코게쓰다이(向月台)와 긴샤단(銀沙灘)은 동양적인 권력처럼 보였다. 이치조지로 향하기 전, 우리는 철학의 길을 걷고서 한 카페에 도착했다. ‘하나 긴카쿠(花ぎんかく)’. 우리는 이곳에서 커피와 멜론 소다를 마셨다. 빨간 벽지로 마감된 카페에는 일본인 가족으로 보이는 단란함이 엿보였다. 아버지와 딸이 손뼉치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흐뭇한 광경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으나, 아쉽게도 이 카페는 9월 30일을 끝으로 폐업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미소로 대해준 그곳 점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금,여기] 단정한 제복, 섬세한 인사… 이치조지에서 느낀 일본의 감각 「2박3일, 교토여행②」

카페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허탈했다. 하필 우리가 방문한 때가 ‘추분(秋分)의 날’이었다. 우리에게 추분은 평범한 날이지만, 일본에서는 공휴일인 모양이다. 오늘 낮에 방문했던 ‘도쿠라 교토 산조점(手づくりハンバーグの店 とくら 京都三条店)’에서 세트 메뉴 주문이 어쩐지 불가했다. 도쿠라 교토 산조점은 함박 스테이크를 파는 곳이다. 내가 먹은 명란 마요 함박 스테이크를 젓가락으로 자르자 쏟아져 나오는 육즙에 놀랐다. 40분을 바깥에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❺무시야시나이 카드 결제 물으니 한국어로 “아, 네!” 달콤 디저트 카페 ❻센나리 새침한 접객 태도 허나 풍성한 식탁 평범 일본 가정식 즉석 데코레이션 디저트 카페 ‘무시야시나이’, 푸짐한 일본 가정식 ‘센나리’ 다만 우리의 발걸음이 잠시 중단돼야 했다. 오래도록 걸었기 때문이다. 은각사와 철학의 길을 걷다가

[지금,여기] 뜨듯한 온천과 시원한 맥주 “캬, 이 맛이지” 끝없는 ‘오사카의 밤’ 「2박3일, 오사카여행③」

우드톤 단색의 고즈넉한 도시가 교토였다면, 오사카는 그저 화려하고 젊은 분위기의 도시였다. 우리는 나가호리바시를 기반으로 오사카의 도톤보리와 난바, 우메다, 나가자키초를 돌아다녔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큐카츠 토미타(牛かつ 冨田)다. 각자 구워 먹을 수 있는 큐카츠 전문점이다. 다행히 우리는 기다림 없이 바로 입장해서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와,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맛. 달달하고 고소하며 담백한 맛. 입 안에서 녹는 육즙이 끝내줬다. 현금만 받는 가게라 카드로 결제하지 못했다. 곧이어 낮에 예매해 둔 리버 크루즈를 타고 우리는 도톤보리 강을 누볐다. 베테랑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주변 관광객들이 선사하는 손인사에, 우리도 손을 흔들었다. 가까운 타지에서 느끼는 이색 풍경에 하나가 되는 감정을 느낀 것이다. 낮에는 여자친구를 따라 우메다 근처에서 쇼핑을 즐기기도 했다. 우리는 아식스 오사카 스토어에 방문했다. 스티브 잡스 같은 분위기의 직원이 우리를 맞았다. 여자친구가 둘러보는 동안, 나는 작은 소파에 앉아 쉬었다. 다소간의 긴 시간을 머무르는 바람에 여자친구와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며 나왔다. “失礼しました。(실례했습니다.)” 곧장, 직원이 90도로 숙이며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중한 인사에 깜짝 놀랐다. 작고 진심 어린 순간에서 문화적 감동이 남은 것이다. ❼오사카 아식스·마크 커피 ‘90도 인사’ 진심 어린 문화적 감동 카라멜마끼아또, 바리스타의 손맛 ❽큐카츠 토미타·리버 크루즈 직접 구워 먹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 도톤보리 강 유람하는 이색 ‘밤풍경’ ❾소라니와 온천·토리키조쿠 온천물에 담근 설익은 발, 피로가 싹 여자친구와 마신 달달한 맥주 한 잔 감동은 나가자키초(中崎町)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끝내 다다른 곳 ‘마크 커피 로스터스’에서 우리는 쉴 수 있었다. 나가자키초 카페 거리는 관광 친화적인 동네가 아니었다. 내부 사진 촬영이 어렵거나 현금 결제만 가능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크 커피에서 짧은 시간 지친 몸과 마음을 가누었다. 이따금 귀에 들려오는 일본 밴드 음악에 힐링이 되기도 했다. 카페에 머무는 동안, 오사카 시내에 짧은 가랑비가 내렸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우리는 고민했다. 예전부터 생각해온 곳을 예매했다. 벤텐초역(弁天町駅) 근처에 있는 소라니와 온천(空庭温泉)이 끌렸기 때문이다. 소라니와 온천은 다른 의미에서 놀라웠다. 이 가격에 이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여자친구는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도 “그날 숙소의 작은 욕조에 입욕제 넣어서 물 받아 넣고 몸을 담궜으면 평생 후회할 뻔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소라니와 온천은 일본 전통 의상인 유카타(浴衣)를 입고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5층에서 4층으로 내려가면 공중정원에서 족욕을 즐길 수 있는데, 발을 담그면 따뜻함에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온천의 다양한 공간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다시 우리 발걸음은 도톤보리로 향했다. 토리키조쿠 도톤보리점(鳥貴族 道頓堀店)에서 꼬치구이와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도톤보리에서 나가호리바시까지 향하는 길목에서 우리는 다채로운 얼굴의 오사카를 보았다. 확실히 교토에 비해 젊은이들의 도시라는 분위기가 강했다. 가출 청소년으로 보이는 아이들, 거리를 쏘다니는 폭주족까지 밝고 친절한 모습만이 아닌, 사회의 이면을 마지막 밤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짐을 정리해야 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편의점 로손(Law-son)을 들러 생크림이 담긴 빵을 먹었다. 오사카에서 먹는 세 번째 빵이었다. 어느덧 오사카의 밤이 스산해졌다. 그새 가을이 다가온 것이다. 우리의 여행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9월로 미뤄야 했다. 여자친구와 다행이라는 고백을 주고받았다. 이토록 흐드러진 날씨와 분위기, 꼭 지금이어야 할 여행의 묘미를 만끽했기 때문이다.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