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의 기록] ③결혼, 버뮤다 순복음교회에서 했어요!

지금도 가슴에 자리한 퍼피레드 최초의 결혼 미니파크 꽉 차도록 하객 속 축복 받은 커플
2021년 11월 20일
환하게 웃는 봉춘 버뮤다 순복음교회 교인 봉춘이 창휘와 함께 나를 찾아 결혼식을 요청했다. 주례를 봐 달라니. 부끄럽고 과찬(過讚)은 부탁이었다.

봉춘님 앞에선 자존심이건 뭐건 없었다. 일단 알겠다고 했다. 우리 교회에선 단 한 번도 결혼식을 열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다.

자존심이라고 말했다. 자존심 앞에서는 이성친구과 성형, (필)캐시도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이성친구 기능을 반대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필요없는 것들이라고 주장한 탓이다. 허나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룰 수 있겠냐던 여성 교인 한 분 앞에선 간단히 무너졌다. 활발하게 활동하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아. 내가 잘 아는 분이다. 마음이 착잡했다.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자존심을 꺾었다. 두 분 모두 잃고 싶지 않았다. 

마음 한 편엔 예배당을 꾸미고픈 욕망이 꿈틀거렸다. 상상력을 발동했다.

180석 대성전이 들썩였던 결혼 예배에서
가장 먼저 신랑과 신부가 입장하고 퇴장할 길을 마련했다. 웬만해선 교인석을 건들지 않았지만 이번 만큼은 예외였다. 레드카펫을 깔았다. 파란 물로 흥건한 예배당 중앙에 정열적인 사랑이 흐르는 것 같았다. 포스터를 제작해 홍보에 나섰다.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의지한 지금 보면 조악한 수준의 포스터다. 주례를 가장한 설교를 고민했다. 내용은 어땠을까. 아마 짧았을 것 같다. 보통의 설교라면 설교문을 작성한다. 지금까지 남은 결혼식 관련한 설교안이 없는 걸 보면 즉흥 주례를 이어가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부족함 투성이다. 결혼식이 무색하게 피로연도 없었고, 부모님도 모시지 못했다. 아버지의 손을 잡아야 할 신부는 홀로 예배당을 걸어 들어와야 했다. 하다못해 삼단케이크라도 준비해 놓을 걸. 부족한 것들은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채워졌다. 교인과 일반인 할 것 없이 파티&파티가 열리자 속속들이 거대한 예배당을 채웠다. 결혼식에 앞서 좌석에 앉은 참석자를 촬영했다. 미처 준비 못한 꽃들은 이들을 통해서 신부와 신랑의 손에 들렸다. 강대상 위 의자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티&파티를 열자마자 물밀 듯이 들어온 퍼피레드 회원들이 교인들과 섞여 환호성과 함께 했다. 평소 예배보다 북적였다. 어느 때보다 손가락이 딱딱하게 굳었다. 긴장됐다. 주일예배 때와는 전혀 다른 긴장감. 말 잘못하거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다면 두 사람의 간절한 바램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다르지 않는다. 잘해야 한다. 잘 해낼 거라 믿었다.

보통 퍼피레드 교회 예배는 찬송-기도-성경봉독-설교-기도-주기도문 순이다. 결혼식도 다르지 않았다. 개식사를 대체한 사회자의 찬송과 기도, 그리고 신랑과 신부의 입장. 혼인서약과 혼인이 이루어졌음을 선언하는 성혼(成婚)선언문을 낭독하고 이어진 주례사. 참석자 내빈들 앞에서 인사하고 교회 밖으로 행진하는 신랑과 신부. 처음이자 마지막, 퍼피레드 버뮤다 순복음교회에서의 결혼식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주례를 빙자한 설교 내용은 기록으로 남겨놓은 게 없어서 기억나지 않는다. 즉흥적인 설교를 좋아하던 탓이다. 다만 단 한 가지 기억하는 게 있다면 신부와 신랑에게 물은 질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하나님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느냐던 물음만은 생생하다.

결혼식을 마치고 모두가 대성전 앞자리에 모였다.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내빈들은 예배당 이곳저곳에서 포즈를 잡았다. 어느새 내 손에도 꽃이 들려 있었다. 오늘로써 교회지도부 일원이 된 ‘은석’ ‘다윗’도 사진을 남겼다. 늘 나에게 큰 힘이 되었던 ‘동훈’도 오늘의 신랑인 ‘창휘’와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다. 2009년 1월 1일 새해 맞아 성대하게 치러진 결혼식이 잊히지 않는다.

행진 이성친구 기능을 이용하면 남성과 여성 캐릭터가 팔짱을 낄 수 있었다. 창휘와 봉춘은 아직 이성친구를 맺지 않았는지, 아니면 꽃을 들고 있어선지 함께 퇴장하지 못했다. 어설프고 부족한 결혼식을 채운 건 하객들이었다. ©에트기억연구소

결혼식 전날 밤
예배당 중앙 빨간 카펫 깔고
즉흥 설교 위한 성경구절 펴
준비 마치자 둘러본 예배당

#결혼식 #성공적
부케도 케익도 없었지만도
참석자들이 준비한 꽃 선물
마음 뭉클한 축복과 환희
퍼피레드에서 연 첫 결혼식

기도하러 예배드리러 버뮤다 순복음교회로
특별한 행사가 아니어도 우리 교회는 늘 방문객을 맞이했다. 예배도 무수히 드렸다. 주일예배는 1부부터 5부예배까지 열렸다. 수요일은 임마누엘 기도회, 금요일은 다니엘 철야예배, 토요일은 베드로 기도회를 개최했다. 수능기도회, 송구영신예배, 새해 첫 주간 영적각성기도대성회, 이단세미나도 열었다. 감사는 또 얼마나 많던지. 생일감사예배, 건축감사예배, 일상감사예배, 시험 잘 봐서 감사예배, 컴퓨터 고치고 퍼피레드 잘 돼서 감사예배 받느라 하나님도 바쁘셨다. 컴퓨터라는 특성 때문인지 예배는 길지 않았다. 짧아야 15분 길어야 30분. 마음 다 잡으면 1시간 예배도 드렸다.

소리 없는 찬송가를 부르고서 기도 했고, 성경 본문 읽은 후 설교에 들어갔다. 원고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주로 즉흥적인 설교를 많이 했다. 보통 말빨이 아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 탓이다. 예배 도중 웅진코웨이 필터기 교환 일정이 잡혔다면 난처해진다. 설교나 기도를 중단하고 맞이하느라 벙어리가 된다. 뜨거운 여름은 곤욕이었다. 삼겹살도 구울 정도로 달구어진 본체에 부채질이라도 하지 않으면 재부팅이 되었다. “갑자기 사라지면 놀라지 말고 기다리세요. 다시 들어옵니다”라는 말을 괜히 한 게 아니다. 사정이 생기거나 집안 행사로 갑자기 비워야 할 때라면, 교인들은 방명록에 나를 찾는 메시지와 함께 기도하고 간다는 응답을 남기며 한 주를 시작한다.

수능 당일이면 반나절 기도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생방송 예배와 함께 수험생을 위해 마음 모았다. 불자도 참여했고 가톨릭 교인도 교회를 방문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종교가 달라도 이 날 만큼은 누구나 교회로 모여 기도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 해를 매듭지은 송구영신예배도 종교를 초월했다. 사랑하는 가족의 안위를 위해 방명록에 기도 제목 남기는 이들의 기록물을 읽는다면 누구에게든 열린 교회를 든든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이 모든 건 순진한 소꿉놀이
TV에서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2008.01.07) “오늘 오전 11시쯤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의 한 냉동 물류 센터에서 불이 났습니다.”(MBC) 속보에 그치지 않았고 중계방송으로 이어졌다. 이천 물류창고 참사를 접하자 기도회를 열었다. 기도 하나면 무엇이든 다 되는 줄로 알았다. 세상 물적 모르던 시절이다. 진정한 믿음을 강조한 이유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다. 10년이 지나 이 기획을 위해 검색하다 낯익은 사진을 발견했다.

‘고기가 없잖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웃으며 인용하던 그 사진이 실은 물류창고 화재에 분노한 유가족이었다. 무엇이 제사상을 뒤엎게 만들었을까. 사진의 사연을 읽고 어처구니없어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2008년 1월 7일 오전 10시 45분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769-5에 위치한 지상 2층 지하 1층 ‘코리아2000’ 물류창고에서 화재로 인해 근로자 57명 중 40명이 사망했다. 화재사고 50일이 지나 전신 3도 화상 입은 피해자가 증언했다. 보험금 지급에 난색을 표한 보험사와 허접하다 못해 비어버린 제사상에 어느 누가 분노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지금도 꿈에 불길이 어른거려 한 밤 중에 자다가도 벌떡 깨곤 해요.”

2020년 7월에 빌생한 용인 물류센터 화재는 지난 2020년 4월에 벌어진 사건과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4월 이천 물류센터 공사현장 화재는 12년 전 이천 물류센터 화재 사건과 같았다. 달라진 건 없었고. 달라지지 않은 사건을 세 차례나 목도하는 현재에 살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참사 이후 매듭 짓는 순간까지 관심 두지 못했다. 하루 지나 일상으로 돌아가 일상적 인재(人災)를 잊었다. 살아야 한다는 일상에 젖어, 누군가의 살아있음이란 고통을 쉽게 잊었다. 10년이 지난 오늘, 다시 마주한 사고에 기도회는 소꿉놀이에 불과했다. 순진한 소꿉놀이.

어른들 거대한 人災에
마음 모아 두 손을 모아
살려달라고만 기도했다
그러나 신은, 가만히만

시끌벅적 교회에서 들려오는 화목한 목소리
퍼피레드를 처음 플레이하며 맞닥뜨린 당혹감은 ‘안녕하세요’에서 시작했다. 문장 그대로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안녕하세/요’로 출력됐기 때문이다. 그림문자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초밥은 초밥. /가수는 가수로. /봄여름가을겨울도 있다. 심심하면 문자를 합성해 /방구/인디언을 만들어  깡패를 불러왔고 그럴 때마다 기도로 싸해진 분위기를 무마했다.

버뮤다 순복음교회에서는 ‘안녕하세요’ 대신 ‘여호와 닛시!’로 인사했다. 야훼(여호와)는 나의 깃발, 승리자라는 의미다. 교회는 건물만으로 서 있지 않았다. 건물 안 식구들이 늘 교회에 머물렀다. 누군가 찾아와도 “여호와 닛시!”로 시작해 “버뮤다 순복음교회입니다”로 끝마쳤다. 아무 응답 없이 나가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농담과 진담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가벼운 말장난부터 무거운 신앙 이야기까지 진솔한 대화가 이어졌다. 따라서 교회는 건물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예배가 없던 평일에는 교회에서 요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콩 하나 벌겠다고 캐릭터와 상체만한 삼단 케이크를 합쳐놓아 인형 입혀 놓은 모습에 박장대소했다. 갓난아기 변신한 회원이 내 무릎에 앉으면 숨겨 놓은 아이가 되었고, 맨바닥에 앉은 다윗님 앞에다가 아무 생각 없이 마주앉는 바람에 뽀뽀하는 기괴한 광경도 연출됐다. 캐릭터를 관통하던 화면에 여성 캐릭터가 나까무라로 보였고, 카메라 들던 회원을 선서하는 걸스카우트 단원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군 입대 보름 전 밤을 맞이했다, 교회를 찾아온 손님들 그냥 돌려보내기 뭐해서 손수 음식을 차려주었다. 코타츠(炬燵) 위에 차려놓은 음식들이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먹을 수도 있었다. 퍼피레드는 차려준 음식을 먹으면, 베풀어준 사람에게 콩을 주었다. 교회에 하나님, 예수님은 없었다. 그분들이 잠시 바깥사람들 돌보러 가는 동안에 우리들이 교회를 접수해 놀았다.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뛰기도 하고 사진 포즈를 취했다. 이렇듯 서버 종료가 임박한 시점에서 교회에 놀러온 식구들이 많았다. 가까워진 우리들의 마지막 시간에까지 교회가 생각나 방문해준 고마운 손님들은 지금쯤 어디에 흩어져 있을까.

아무도 없는 빈 예배당
상담을 요청한 한 여성
“절 위해 기도해주세요”
할 수 있는 건 이 기도 뿐

나라고 할 수 있는 한 가지
싸우던 소리도 이제는 들리질 않는다. 서버 종료까지 11일 남았다. 이런 적막감도 오랜 시간 견뎌냈다. 조용히 교회에서 글을 쓰던 이 시간이 행복했다.

적막감을 깨고 한 여성분이 찾아와 한 가지를 청했다. “지금도 상담 받으세요?” 교회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주일예배 등 공예배를 금지한 바람에 지금은 교회에서 상담만 받고 있었다. 상담 이래 봐야 해주시던 말씀을 듣는 것뿐이다.
“물론이죠. 언제든요.”

눈물을 적시는 듯한, 슬픔을 토설하듯 내뱉던 그의 언어에선 서운함과 울분이 가득했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멍청한 취급을 당하는 서글픔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걸 지켜보던 나도 당황할 만큼 살에 와 닿을 지경이다. 묵묵히 들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더욱 마음의 솔직한 것들을 푸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았다.

“절 위해 기도 한 번만 실제로 해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입니다.”

500자 기도를 마치고 미소를 머금은 그의 언어에선 이모티콘이 나왔다. 마음 쓸어내리고서 안도했다. 아직도 살아갈 힘이 있다는 사실에 야훼 하나님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참 미안합니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다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소초로 돌아가 밤샘 야간경계작전에 돌입할 때면 쉬는 시간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 당신을 찾았다. 힘겨운 하루를 또 다시 버텨야 할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도는 하나였다.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오늘의 고통당하는 저를 기억해주십시오.”

밤하늘은 시커멨다. 퍼피레드 하늘처럼. 열하루의 시간이 지나면 이 교회는 영원히 사라진다.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들 세계가. 퍼피레드 시대가 저물어 간다. 어두워진 그늘은 내 얼굴뿐 아니라, 예수의 죽음을 묵묵히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제자들 얼굴에도 머물렀다. 니고데모의 얼굴과 수제자 베드로의 얼굴. 그리고 예수를 배반한 가룟 유다 얼굴까지도 덮었다. 그 밤들을 견뎌야 한다. 그래야 예수는 부활한다. 퍼피레드의 부활처럼.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이 회원을 보고 계신지요.
지금은 원망이 되고 낙심이 되고 안타까운 마음이 크겠지만.
하나님 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이해가 안 됨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주시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많은 이들에게 미움을 받고 증오를 받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원망과 아픔을 잘 아시는 주님, 성부 하나님에게서 조차 버림을 받은 예수님.
부디 회원님의 아픔을 치유하여 주시고 위로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가는 곳마다 함께하심을 알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아픔을 통하여 회원님이 위로를 얻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원합니다.
항상 저보다 더 힘든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원망한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누구보다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 차 있을 ◯◯◯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자신의 부끄럽고 처량한 어리석은 죄된 모습을 알게 하시고 자신의 처지를 보게 하셔서 회원님 앞에서 저지른 잘못과 아픔들을 사과하고 관계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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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직필의 자유·시대성의 창달·주체자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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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허탈했다. 하필 우리가 방문한 때가 ‘추분(秋分)의 날’이었다. 우리에게 추분은 평범한 날이지만, 일본에서는 공휴일인 모양이다. 오늘 낮에 방문했던 ‘도쿠라 교토 산조점(手づくりハンバーグの店 とくら 京都三条店)’에서 세트 메뉴 주문이 어쩐지 불가했다. 도쿠라 교토 산조점은 함박 스테이크를 파는 곳이다. 내가 먹은 명란 마요 함박 스테이크를 젓가락으로 자르자 쏟아져 나오는 육즙에 놀랐다. 40분을 바깥에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❺무시야시나이 카드 결제 물으니 한국어로 “아, 네!” 달콤 디저트 카페 ❻센나리 새침한 접객 태도 허나 풍성한 식탁 평범 일본 가정식 즉석 데코레이션 디저트 카페 ‘무시야시나이’, 푸짐한 일본 가정식 ‘센나리’ 다만 우리의 발걸음이 잠시 중단돼야 했다. 오래도록 걸었기 때문이다. 은각사와 철학의 길을 걷다가

[지금,여기] 뜨듯한 온천과 시원한 맥주 “캬, 이 맛이지” 끝없는 ‘오사카의 밤’ 「2박3일, 오사카여행③」

우드톤 단색의 고즈넉한 도시가 교토였다면, 오사카는 그저 화려하고 젊은 분위기의 도시였다. 우리는 나가호리바시를 기반으로 오사카의 도톤보리와 난바, 우메다, 나가자키초를 돌아다녔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큐카츠 토미타(牛かつ 冨田)다. 각자 구워 먹을 수 있는 큐카츠 전문점이다. 다행히 우리는 기다림 없이 바로 입장해서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와,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맛. 달달하고 고소하며 담백한 맛. 입 안에서 녹는 육즙이 끝내줬다. 현금만 받는 가게라 카드로 결제하지 못했다. 곧이어 낮에 예매해 둔 리버 크루즈를 타고 우리는 도톤보리 강을 누볐다. 베테랑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주변 관광객들이 선사하는 손인사에, 우리도 손을 흔들었다. 가까운 타지에서 느끼는 이색 풍경에 하나가 되는 감정을 느낀 것이다. 낮에는 여자친구를 따라 우메다 근처에서 쇼핑을 즐기기도 했다. 우리는 아식스 오사카 스토어에 방문했다. 스티브 잡스 같은 분위기의 직원이 우리를 맞았다. 여자친구가 둘러보는 동안, 나는 작은 소파에 앉아 쉬었다. 다소간의 긴 시간을 머무르는 바람에 여자친구와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며 나왔다. “失礼しました。(실례했습니다.)” 곧장, 직원이 90도로 숙이며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중한 인사에 깜짝 놀랐다. 작고 진심 어린 순간에서 문화적 감동이 남은 것이다. ❼오사카 아식스·마크 커피 ‘90도 인사’ 진심 어린 문화적 감동 카라멜마끼아또, 바리스타의 손맛 ❽큐카츠 토미타·리버 크루즈 직접 구워 먹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 도톤보리 강 유람하는 이색 ‘밤풍경’ ❾소라니와 온천·토리키조쿠 온천물에 담근 설익은 발, 피로가 싹 여자친구와 마신 달달한 맥주 한 잔 감동은 나가자키초(中崎町)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끝내 다다른 곳 ‘마크 커피 로스터스’에서 우리는 쉴 수 있었다. 나가자키초 카페 거리는 관광 친화적인 동네가 아니었다. 내부 사진 촬영이 어렵거나 현금 결제만 가능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크 커피에서 짧은 시간 지친 몸과 마음을 가누었다. 이따금 귀에 들려오는 일본 밴드 음악에 힐링이 되기도 했다. 카페에 머무는 동안, 오사카 시내에 짧은 가랑비가 내렸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우리는 고민했다. 예전부터 생각해온 곳을 예매했다. 벤텐초역(弁天町駅) 근처에 있는 소라니와 온천(空庭温泉)이 끌렸기 때문이다. 소라니와 온천은 다른 의미에서 놀라웠다. 이 가격에 이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여자친구는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도 “그날 숙소의 작은 욕조에 입욕제 넣어서 물 받아 넣고 몸을 담궜으면 평생 후회할 뻔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소라니와 온천은 일본 전통 의상인 유카타(浴衣)를 입고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5층에서 4층으로 내려가면 공중정원에서 족욕을 즐길 수 있는데, 발을 담그면 따뜻함에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온천의 다양한 공간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다시 우리 발걸음은 도톤보리로 향했다. 토리키조쿠 도톤보리점(鳥貴族 道頓堀店)에서 꼬치구이와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도톤보리에서 나가호리바시까지 향하는 길목에서 우리는 다채로운 얼굴의 오사카를 보았다. 확실히 교토에 비해 젊은이들의 도시라는 분위기가 강했다. 가출 청소년으로 보이는 아이들, 거리를 쏘다니는 폭주족까지 밝고 친절한 모습만이 아닌, 사회의 이면을 마지막 밤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짐을 정리해야 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편의점 로손(Law-son)을 들러 생크림이 담긴 빵을 먹었다. 오사카에서 먹는 세 번째 빵이었다. 어느덧 오사카의 밤이 스산해졌다. 그새 가을이 다가온 것이다. 우리의 여행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9월로 미뤄야 했다. 여자친구와 다행이라는 고백을 주고받았다. 이토록 흐드러진 날씨와 분위기, 꼭 지금이어야 할 여행의 묘미를 만끽했기 때문이다.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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