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등]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2021년 02월 15일

엄마와 싸우고 나서도 냉기가 여전했다. 손바닥에 호호 불자 드라이아이스 연기처럼 퍼져갔다. 신호 바뀌었다고 생각할 찰나에 뛰어든 횡단보도 앞, 따가운 경적을 째려보자 기사 놈의 호통이 이어졌다. 싸가지? 싸가지 없는 건 너였다. 어른들의 모든 말들이 싫었다. “내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 씨발. 어른들 관심은 오로지 몸뿐이다. 고차원적 언어에서 말초적 신경에 이르기까지. 다 너 잘 되라는 말 사이에 숨은 웃기지 않을 문란한 문법이 미풍양속 네 글자로 집약된다. 교복 배지 아래 아크릴 명찰 뜯어 버렸다. 이것도 만들어진 이름이다.

‘해를품은달보호소’

질풍노도 딱지도 모자라 모든 걸 품어준다던 구라 섞인 역겨움이 어딜 가도 같았다. 어른들 언어의 이중성 말이다. 청소년은 미래가 아니다. 너 대신 일해 줄 노예다. 찾고픈 꿈 따위? 정해진 직업이 자유는 아니잖아. 하고 싶은 거? 집 나와 학교 담장 해머로 깨부수고 싶다. 어차피 책임과 자유란 틀 안에서 마음대로 하라고 지껄일 거면서. 정해진 자유가 무슨 자유야.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학교도 그래. 콘크리트 안에다가 처박아 둘 수많은 단어. 가좆 같은 분위기로 학생들을 줄사탕처럼 묶어놓아 하나로 던져놓곤. 알록달록 엮이다 못 견뎌서 삐져나온 학교 밖 밑도는 애들 이름 한 번이라도 기억하고 불러준 적 있어? 좋은 대학 좋은 회사 보내서 노예처럼 이 나라 발전소나 돌려놓고 연금으로 착취하려는 쓰레기들. 이런저런 중2병 따위로 조련하듯 미소 짓는 어른들 개지랄이 개빡돌게 만든다고.

냉기가 흐르는 밤중에 한숨
조련하기 바쁜 어른들 세계
하루하루 버텼어야 하거늘
복합적 감정이 아른거린다

하루만 버티는 이유
오늘 밤만 버틸 공간이 필요했다. 이번엔 하루라지만 다음은 일주일이다. 어쩌면 장기를 선택해 졸업하는 순간까지 미운 얼굴 안 보게 될지도 모른다. 엄마 말고, 달라붙은 껌딱지. 악마 같은 미소가 언제 바뀔지 모른다. 갇힌 틀, 학교란 틀, 새 아빠란 틀. 틀에서 벗어나 학교 바깥에서 살고 싶었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땡깡 부린들 달라지지 않았다. 오늘처럼 엄마한테 되도 않는 밀당으로 얻어낼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내 맘대로 담배필 수 있는 그날까지 버텨야 했다. 적당히 찡그리면서도 선을 지켜야 했던 이유. 엄마에겐 미안했다. 악마의 그림자가 내 안 가슴까지 슬며시 잠식하던 역겨움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다. 문법을 모르던 내 탓이다.

피곤에 절어 새까매진 얼굴의 선생과 싸우고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모든 게 보여주기 식이니까. 적당히 싸우다 나왔고 적당한 시기에 돌아갈 채비일 연극만 보여주면 되었다. 그렇게 적당히, 영원히 지워진 단어 아빠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루하루 견뎌내고 싶었다. 그게 내 전략이다.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누웠다. 그려둔 마음 속 칠판을 꺼냈다. 담탱이와 엄마, 악마라는 삼각 구도 안에서 전략적으로 살아남을 방법 중 벼랑 끝 전술 카드는 이미 사용했다. 악마에게 없을 무기, 그걸 꺼낼 차례였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른 여중생 감성으로 담탱이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고 담탱이를 내세워 엄마와 악마를 갈라서게 만들 무언가를 찾아내려 했다. 악마가 더러운 손길을 펼치는 그날까지 잠잠히 페르소나 가면 쓴 채로 기다리면 됐다 이 말이다.

궁금했다. 어디서부터 계획에 균열이 났는지. 누가 비밀을 유출한 건지. 한 페이지 빼곡 적힌 내 이름과 행동거지들이 원인과 분석으로 나눠져 앞으론 담탱이가 어떻게 나서야 한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담탱이 시선은 교내가 아니라 우리 집, 아니 악마의 공간에 머물러야 했는데. 고작 한 페이지가 각론부터 뒤틀어버렸다. 밤새 전략을 고쳐야했다. 다소 적당하게 분란을 일으켜 적당하게 사춘기로 버무린 용어 ‘질풍노도 여중생’쯤으로 보여야 했는데. 영어와의 싸움에 밀려서 이쪽으로 눈 돌리게 만든 새끼가 누구일지 궁금했다. 폰에 담은 필체를 외우고 외웠다. 반에서도 자기 입말 표출하지 않았던 낯선 말투. 누구일까.

 

신속히 전략을 변경해 실행에 옮긴다
바깥에선 시끄럽고 안으로는 잠잠하던 전략 폐기하고 안과 밖 숨 죽여 지내기로 했다. 일찍 도착해 자리에서 폰 보는 척 등교하는 년놈들 이름을 적었다. 1번부터 끝번까지 나만의 언어로 한 놈씩 지우는 방식의 소거법으로 이름을 줄여간다. 첫째 보이는 글에서 느껴진 것처럼 반 분위기 파벌 단위로 파악하는 새끼. 둘째 영어뿐만 아니라 국어 한문이랑 소통이 원활해 일러바친 글에다가 쉴드 칠 만큼 선생과 친한 새끼. 셋째 감정보다 발생한 사건과 분위기를 담담히 써 내려갈 새끼. 넷째 담탱이 책상에 상소할 정도로 친한 새끼. 원점으로 돌아가 가장 강력한 증거일 한 페이지 촘촘하게 적어 내린 필체를 일일이 대조하는 방법.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비교해서 지워나가 찾아낸다. 소거해서 줄여놓은 용의자와 필적감정으로 크로스 체크하면 가능하다.

하루 이틀 찾아낼 순 없었다. 일주일이 될지 모르는 바람 부는 갈대밭 서 있는 나 하나 뿐인 막막함.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공부 꽤나 하는 애들부터 하나 둘 빗금을 그었다. 걔네들은 선생과 적당히 거리 두며 상소할 시간에 공부한다. 경계선으로 부르는 먼 바깥에서 잠잠히 이 교실을 지켜보는 그 한 놈 찾아 헤맸다. 혹여나 영어가 괴롭힘 당하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안 웃지는 않을까. 필적감정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모든 애들 자리 비운 순간에 교과서를 열어젖혀 촬영했다. 저녁이라고 완벽하지 않았다. 비워진 서랍 잠긴 사물함, 그러다 떠오른 변수. 이 새끼가 남자일 가능성. 담탱이와 친하면서도 영어의 따돌림에도 한 번 웃지 않으며 졸기는 졸아도 시간과 사건들 드라이한 문체로 써 내려가 마치 교탁에서 갈대밭을 바라보는 듯한 자세로 이 반 분위기를 써내려갈 수 있는 외부인의 시선.

사회 구조와 개인 관계 차이를 분명히 구분해 철저히 개인에게 윤리적 책임을 물으며 사회 구조에 이바지하는 도덕관. 그러기 위해 교실 바깥 갈대들 사이에 몰래 숨어서 관찰하는 불쾌한 외부인의 시선. 나는 너와 다르다는 자존감일지, 괜한 오지랖 정의라고 착각하는 좆같음. 그렇다면 용의자는 단 한 사람, 한 새끼로 수렴한다.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이 기분. 필적감정만 남았다. 여성스러운 글씨체를 쓰면서도 건조한 문체. 그걸 찾아내야 했다.

대충 질풍노도 여중생으로
보였어야 했지만 틀어졌다
새로운 계획, 용의자 찾는다
한 새끼씩 소거하며 쫓는다

풀리지 않는 질문들
모르겠다. 왜 내 인생에 끼어든 건지. 잠자코 지켜만 보다가 졸업하면 그만일 이 시점에. 방학 한 주 남겨두고 용의자 선상에 남은 그 새끼 이름을 바라만 보았다.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아니 내가 직접 캐보자. 나야 말로 얼마나 알아낼 수 있을까. 갈대밭 사이에 숨어서 외부인처럼 관찰이나 하는 거 말야, 그거 너만 할 줄 아는 거 아니라고.

그 새끼는 쉬는 시간 스킨십 하느라 쉬지를 않는다. 사람을 좋아하나보다. 호불호가 강한 새끼였다. 친한 애들은 되게 친한데 미워하는 애들은 되게 미워하는 강렬한 색채 같았다. 유독 무시당하는 영어 앞에서는 살갑게 웃는 미소가 아부가 아니라도 좆같았다. 저 새끼만 유일하게 웃지 않는 걸 보면 누구 무시하고 사는 성격도 아니겠고. 하기야 입바른 글 따위나 쓸 생각이라면 사회 구조니 정의구현이니 역겨운 단어로 범벅이지 않았을까. 누구 좋으라고. 점심에는 방송실 박준형 만나러 들렀다가 같이 밥 먹고 헤어져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그늘진 곳에서 책 들여다보는 걸 좋아하는 걸까. 하지만 한 책을 오래 보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금세 바뀐 책들이 오늘 하루만 네 다섯 권. 찾는 걸까, 헤매는 걸까. 어쩌면 책 겉모습만 좋아하는 건 아닐지.

첫 만남부터 싸가지 없다고 생각했다. 방학 전 이 교실 의자 대충 옮겨 놨다고. 스스로 서 있다가 죄송한 표정 짓고서 홀로 가져다 놓는 걸 보면. 담탱이 아부 떠는 줄 알았다. 알고 보면 그냥 멍청한 애 아니었을까. 나름 정의라고 생각해서 신경 써 줬는데 남들은 오지랖으로 생각하는 껌딱지악마처럼. 그러기엔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글로 적었을 관찰력이라면 두런두런 친하게 지내도 좋았을 텐데. 어떤 생각하는지, 무슨 의도로 그 한 페이지 바쳤는지 알고 싶었다. 하나 남은 검증, 필적감정만 남겨 둔 상태였다. 하교 후에 쫓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뭐, 도서관이나 학원이라도 가지 않으면 허탕치는 거겠지만 말이다.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담탱이가 요청한 면담 때문이다. 끝까지 캐보고 싶었는데. 그 새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는데…….

경계선에서 우릴 쳐다보듯
갈대밭 펼쳐지던 지평에서
이 한 페이지 네 글씨체로
외부인, 널 찾는다 찾았다

갈대밭 지평, 이 한 페이지 들고서
저녁에 가까운 시간까지 남아야 했다. 지금 상황은 그 악마가 내 이름 부르는 게 싫어서 심통 부리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단지 인생에 끼어든 게 싫어서 땡깡 부리는 구도처럼 보였다. 말 한 마디 않으려 입 꾹 닫은 채 불쾌하지 않은 척했다. 교무실을 나서자 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습하고 불쾌함으로 덮었던 시간들. 팔 걷어붙인 외부인이 세제 물을 들이 붓고 있었다. 책상 밀어두고 홀로 남아 수세미로 바닥을 닦을 요량이다. 이 반에는 혼자 남아 청소하던 그런 벌 따위는 없었다. 멍청하게 홀로 남아 수세미에 걸레질까지 하고 있던 것이다. 두 개의 명찰, 박음질한 저 이름은 어른들이 그리 살라고 새겨준 자아일 테고, 아크릴 명찰은 담탱의 개가 되겠다는 또 하나의 자아로 보였다. 지금처럼 아이들 바깥에서 관찰하며 누군가의 명단을 만들어 상급자에게 보고하겠지.

“거기 왁스 발랐어. 조심해.”

“야, 적당히 하고 가.”

이제 와서 찾는다고 달라질 리 없는 외부인 앞에서 한숨만 지었다. 저녁 되어가는 와중에 박박 긁는 바닥에 짜증만 났다. 교탁에 기대어 구경했다. 쟨 무슨 생각으로 이 시간까지 아무도 모르게 수세미질일까.

졸업식 직전까지 협상은 진전되지 못하는 듯했지만 막판에서야 타결됐다. 기숙사로 들어가되 자퇴는 하지 않는 걸로. 지금은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척하지만 그 끝에는 몸을 원한다는 걸 잘 알았다. 대학 입시로 연결된 고등학교, 곧이어 직장으로 날줄처럼 연결된 인생 구슬. 죽지 않을 정도로만 던져준 월급으로 간신히 숨 붙여 살아가는 인생. 당신이 끼적이는 한 페이지에 내 목숨이 걸려 있기에 더 잘 고개 숙이라는 무언의 언어. 전화로 일거수일투족을 주고받으며 손 안에 있다는 자만심. 매화고등학교 박제된 한 페이지들도 그 연장선에 불과할 거라는 예감. 조련하려는 손길들. 미소 하나만으로 이해했다는 그들만의 문법. 어른들의 문법. 졸업장도 어른들의 문법으로 현란하게 구사된 한 페이지에 불과했다. 내가 알아서 하고 싶었고 내 맘대로 살고 싶었는데. 악마의 공간을 벗어나도 앞조차 보이지 않는 갈대밭 홀로 서 있는 외로움. 모두가 서로를 찾느라 헤매는 엇갈림.

많은 눈이 내린다. 졸업식이 끝나자 어른들이 갈대밭 헤매며 자기 아이 찾아 눈알을 굴린다. 지루했다. 한 페이지 돌려가며 완성한 롤링페이퍼 꺼내 읽었다. 이제 시작일 여정 속에서 헤매는 분위기를 읽는다. 비로소 벗어났지만 이제야 시작일 갈대밭 펼쳐진 지평. 외부인의 시선으로 어른들을 바라봐도 좆같음은 여전했다. 어른들의 문체를 흉내 내던 어리디 어린 문체 읽다가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 볼펜으로 휘갈겨 쓴 글자가 졸업장 경계 바깥까지 뚫을 기세였다.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래도 지루했다. 뒤에 앉은 용의자 문체에 다다를 무렵 먼저 인사를 꺼냈다.

“너도 졸업 축하해.”

“그래 이년아!”

인사를 가로챈 싸가지를 째려봤다. 어색한 대답은 주머니에 꺼낸 명찰로 돌려받았다.

“버려져 있더라. 유지민.”


 

솔직히 말할게
많이 기다려 왔어
너도 그랬을 거라 믿어
오늘이 오길
매일같이 달력을 보면서

솔직히 나에게도
지금 이 순간은
꿈만 같아 너와 함께라
오늘을 위해
꽤 많은 걸 준비해 봤어

All about you and I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Now come with me
Take my hand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내려 가자
너와의 추억들로
가득 채울래
(Come on!)

아무 걱정도 하지는 마
나에게 다 맡겨 봐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넘겨볼 수 있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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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할게
지금이 오기까지
마냥 순탄하진 않았지
오늘이 오길
나도 목 빠져라 기다렸어

솔직히 나보다도
네가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라고 믿어
오늘을 위해
그저 견뎌줘서 고마워

All about you and I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Now come with me
Take my hand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내려 가자
너와의 추억들로
가득 채울래
(Come on!)

아무 걱정도 하지는 마
나에게 다 맡겨 봐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넘겨볼 수 있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Want you to
Come on out and have fun
Want us to
Have the time of our life
Oh
너와의 추억들로
가득 채울래
(Come on!)

아무 걱정도 하지는 마
나에게 다 맡겨 봐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넘겨볼 수 있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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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6,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The Book of Us : Gravity,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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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허탈했다. 하필 우리가 방문한 때가 ‘추분(秋分)의 날’이었다. 우리에게 추분은 평범한 날이지만, 일본에서는 공휴일인 모양이다. 오늘 낮에 방문했던 ‘도쿠라 교토 산조점(手づくりハンバーグの店 とくら 京都三条店)’에서 세트 메뉴 주문이 어쩐지 불가했다. 도쿠라 교토 산조점은 함박 스테이크를 파는 곳이다. 내가 먹은 명란 마요 함박 스테이크를 젓가락으로 자르자 쏟아져 나오는 육즙에 놀랐다. 40분을 바깥에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❺무시야시나이 카드 결제 물으니 한국어로 “아, 네!” 달콤 디저트 카페 ❻센나리 새침한 접객 태도 허나 풍성한 식탁 평범 일본 가정식 즉석 데코레이션 디저트 카페 ‘무시야시나이’, 푸짐한 일본 가정식 ‘센나리’ 다만 우리의 발걸음이 잠시 중단돼야 했다. 오래도록 걸었기 때문이다. 은각사와 철학의 길을 걷다가

[지금,여기] 뜨듯한 온천과 시원한 맥주 “캬, 이 맛이지” 끝없는 ‘오사카의 밤’ 「2박3일, 오사카여행③」

우드톤 단색의 고즈넉한 도시가 교토였다면, 오사카는 그저 화려하고 젊은 분위기의 도시였다. 우리는 나가호리바시를 기반으로 오사카의 도톤보리와 난바, 우메다, 나가자키초를 돌아다녔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큐카츠 토미타(牛かつ 冨田)다. 각자 구워 먹을 수 있는 큐카츠 전문점이다. 다행히 우리는 기다림 없이 바로 입장해서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와,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맛. 달달하고 고소하며 담백한 맛. 입 안에서 녹는 육즙이 끝내줬다. 현금만 받는 가게라 카드로 결제하지 못했다. 곧이어 낮에 예매해 둔 리버 크루즈를 타고 우리는 도톤보리 강을 누볐다. 베테랑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주변 관광객들이 선사하는 손인사에, 우리도 손을 흔들었다. 가까운 타지에서 느끼는 이색 풍경에 하나가 되는 감정을 느낀 것이다. 낮에는 여자친구를 따라 우메다 근처에서 쇼핑을 즐기기도 했다. 우리는 아식스 오사카 스토어에 방문했다. 스티브 잡스 같은 분위기의 직원이 우리를 맞았다. 여자친구가 둘러보는 동안, 나는 작은 소파에 앉아 쉬었다. 다소간의 긴 시간을 머무르는 바람에 여자친구와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며 나왔다. “失礼しました。(실례했습니다.)” 곧장, 직원이 90도로 숙이며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중한 인사에 깜짝 놀랐다. 작고 진심 어린 순간에서 문화적 감동이 남은 것이다. ❼오사카 아식스·마크 커피 ‘90도 인사’ 진심 어린 문화적 감동 카라멜마끼아또, 바리스타의 손맛 ❽큐카츠 토미타·리버 크루즈 직접 구워 먹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 도톤보리 강 유람하는 이색 ‘밤풍경’ ❾소라니와 온천·토리키조쿠 온천물에 담근 설익은 발, 피로가 싹 여자친구와 마신 달달한 맥주 한 잔 감동은 나가자키초(中崎町)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끝내 다다른 곳 ‘마크 커피 로스터스’에서 우리는 쉴 수 있었다. 나가자키초 카페 거리는 관광 친화적인 동네가 아니었다. 내부 사진 촬영이 어렵거나 현금 결제만 가능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크 커피에서 짧은 시간 지친 몸과 마음을 가누었다. 이따금 귀에 들려오는 일본 밴드 음악에 힐링이 되기도 했다. 카페에 머무는 동안, 오사카 시내에 짧은 가랑비가 내렸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우리는 고민했다. 예전부터 생각해온 곳을 예매했다. 벤텐초역(弁天町駅) 근처에 있는 소라니와 온천(空庭温泉)이 끌렸기 때문이다. 소라니와 온천은 다른 의미에서 놀라웠다. 이 가격에 이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여자친구는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도 “그날 숙소의 작은 욕조에 입욕제 넣어서 물 받아 넣고 몸을 담궜으면 평생 후회할 뻔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소라니와 온천은 일본 전통 의상인 유카타(浴衣)를 입고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5층에서 4층으로 내려가면 공중정원에서 족욕을 즐길 수 있는데, 발을 담그면 따뜻함에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온천의 다양한 공간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다시 우리 발걸음은 도톤보리로 향했다. 토리키조쿠 도톤보리점(鳥貴族 道頓堀店)에서 꼬치구이와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도톤보리에서 나가호리바시까지 향하는 길목에서 우리는 다채로운 얼굴의 오사카를 보았다. 확실히 교토에 비해 젊은이들의 도시라는 분위기가 강했다. 가출 청소년으로 보이는 아이들, 거리를 쏘다니는 폭주족까지 밝고 친절한 모습만이 아닌, 사회의 이면을 마지막 밤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짐을 정리해야 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편의점 로손(Law-son)을 들러 생크림이 담긴 빵을 먹었다. 오사카에서 먹는 세 번째 빵이었다. 어느덧 오사카의 밤이 스산해졌다. 그새 가을이 다가온 것이다. 우리의 여행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9월로 미뤄야 했다. 여자친구와 다행이라는 고백을 주고받았다. 이토록 흐드러진 날씨와 분위기, 꼭 지금이어야 할 여행의 묘미를 만끽했기 때문이다.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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