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라 시론] 소녀의 이름으로

나는 이제껏 김용철의 새능력을 왜 더 빨리 탈퇴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좀 더 빨리 탈교(脫敎) 했다면, 조금 더 빨리 관계를 정리했더라면…. 소년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은 우연히 입수한 18년 전, 한 영상을 보면서 오롯이 해소되었다. 연세중앙교회 YBS 인터뷰에 담긴 소년은 짐짓 말할 수 없는 모든 죄를 짊어진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알고 지은 죄인데 왜 그걸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는가….” 도대체 중학교 2학년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카메라 앞에 서서 자책하며 스스로를 옥죈단 말인가. 새능력을 탈퇴하고서 나는 단 한 번도 김용철의 설교를 끝까지 들어본 일이 없다. 양심에 찔려서도 아니고 눈물이 감격으로 앞을 가렸기 때문도 아니다. 1시간 설교 모든 문장 옭아맨 감정 동원과 협박 구조, 의미 없는 아멘의 반복, 철학도 신학도 없는 감정만 휘젓는 수준의 처참한 호통은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누구나 깨닫게 된다. 그는 오로지 의식의 흐름에 의지한 채 청중을 감정적으로 끌고 다닐 뿐이다. 각 단락 사이의 논리적 연결은 찾아볼 수 없다. 자기도취에 빠진 간증을 서사로 가져다가 어떻게든 이어 붙이는 게 전부다. 모든 것 공허함의 파도밖에 보이지 않던 시절, 나는 죽을 용기를 가지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시절 스물 두 살의 나는 미지(未知)의 두려움을 견뎌야 했다. 이제는 지옥에 가는 건가 싶었다. 가족도, 연고도 없이 새능력에 붙잡혀 노동 착취를 당했어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탈출이 재생되었다. 때로는 방송실 귀퉁이에서 일을 하는 장면이 꿈으로 재생되었고, 어쩔 땐 빠져 나오는 꿈을 꾸기도 했다. 많으면 한 달, 뜸하면 서너 달에 한 번 연속된 꿈은 새능력으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을 가리키고 있었다. 과거의 나로부터 찾아오는 ‘시간의 죄책감’이 나를 오랜 시간 사로잡은 것이다. 몸은 난파선을 벗어났지만 아직도 나의 혼은 그곳에 갇혀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시간. 탈교는 무너진 영혼 속에서 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저 어른들이 주입한 죄책감은 남은 인생의 각도를 비틀었다. 어그러진 관념과 여성성에 대한 왜곡된 이해는 긴 시간의 교정이 아니었으면 영구히 손상되었을 것이다. 바로 그 소년이 자신의 입으로 토설한 ‘알고 지은 죄’는 이브가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은 상징이다. 왜곡된 여성 이해의 뿌리는 기독 담론 그 자체다. ‘성숙한 소녀’라는 어른들의 거짓말이 빚어 만든 망상이 소녀의 노동을 착취했고, 소년의 미래를 짓밟은 것이다. 탈교 이후 나는 차근차근 기독 담론을 해체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소녀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그 소녀는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천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악과를 먹은 후 야훼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침잠한 것처럼 나는 소녀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되어가는 과정을 순연(純然)하게 바라보듯 과거의 시간을 다시 배열하고 재건하는 소녀의 손길을 말없이 볼 뿐이었다. 소녀는 잃었던 재주, 놓쳤던 이름, 잊혔던 얼굴을 되찾았다. 에덴의 난민, 아담과 이브는 재건의 기회조차 잃었으나 소녀는 신의 질서를 거스르고 마침내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자리에 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녀의 일하는 광경 속에서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기억의 화해’가

고마워

받은 메시지에 희미하게 적힌 사진 속 이름을

[현실논단] 최문정, 널 마감하고서

2022년 03월 09일
학부 4학년 때 일이다. 뒤늦게 확인한 페이스북 메시지엔 “학보사 문제로 뵐 수 있을까요?” 묻는 선배의 한 마디만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선배라 지인 선배에게 이미 전달 받고 확인한 부탁이었다.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학보사는 생활관장과 정치적 싸움을 이어가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신문은 정치적인 매체이자 일상과 동떨어진 종이일 뿐이었다. 정치적인 싸움은 165호에서 출발한다. 침신대학보는 지면신문 뿐 아니라 홈페이지 ‘학보사’ 카테고리 속 PDF를 통해서도 학교 안 소식을 전달한다. 유독 165호가 올라오지 않았다. 보통 한 학기에 한 두 호 정도는 발행해 왔거늘. 편집국장에게 물었다. 홈페이지에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한글 파일을 건네 받았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영부영 완성된 느낌적 느낌이 싸했다. 학교에서 재정 지원은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지만 묻지 않았다. 복학하자 학보사를 둘러싼 소문을 접했다. 사람들은 ‘오탈자 하나 잡아 내지 못하는’ ‘예의없고 싸가지 없는’ ‘반성경적이면서 진보적인’ 집단으로 함축했다. 학보사에 들어가려던 내 결정도 접어야 했다. 사람들이 흘려 낸 정보들 때문이 아니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진학이 앞섰기 때문이다. 지인들은 “네가 학보사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야” “정치적으로 이용 당했을지도 몰라” 그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읽었다.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했지만서도 어떤 내용으로 만들었을지가 궁금했다. 종합 일간지는 정치적 의도와 목적으로 만든다. 학보도 그런 정치성이 보일지 궁금했다. 진보적인 신문은 아니었다. 당연히 박근혜는 탄핵되어야 했다. 기독교 인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예수의 가르침 대로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들도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과 무관하게 당연했다. 창조설에도 여러 이론이 있기 마련이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성서 구절로 창조설이 진리라던 문장을 보면 확실히 진보적인 신문은 아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를 위시해 음모론을 말하던 박성업에 관해서는 비판했다. 대법원 앞 거대하게 탑 쌓아가던 사랑의교회를 지적했다. 공동체 정신을 잃어가던 와중에 아나벱티스트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상화가 요원한 이 학교 총장 직무대행을 꼭두각시로 보이도록 곰돌이 인형을 만평으로 풍자했다. 총학생회장은 정기총회에서 공개적으로 교수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교수들 중 한 사람이 친인척을 학교 이사로 꽂은 상황이라 말을 꺼냈고 방학 기간 틈 타 징계 당할 뻔 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학교 문제에 말을 아꼈다. 대자보라도 내야 할 상황에도 침묵했다. 법원이 직무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자 비품을 아껴 쓰라는 말만 돌았다. 공론장 잃은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교수들 알력 다툼만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무엇이 문제인지 누가 잘못했는지 물어볼 질문은 많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정치적 일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런 학보의 인쇄 자금을 끊은 건 학교 당국이었다. 아래아 한글판 165호도 배곯던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학보사에서 일할 학우 구하는 일이 상당히 어렵다고 들었다. 나를 영입하려던 부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사를 쓴다는 건 취재하는 일이고 취재 지시를 받은 다음 일이다. 누군가는 지면 신문을 기획해야 한다. 누군가는 백지 위에 기사를 배치해야 한다. 누군가는 오탈자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픽은 또 누가 만드나. 한 두 사람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공동체 의식은 나라는 존재가 사회라는, 학교라는 토대 위에서 살아간다는 인식 속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누구도 학교 문제에 나서지 못했다. 용기가 없었을지 모른다. 문제가 어떻게 얽혔는지 풀어낼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 또래 정치 싸움 너머 어른들 다툼에 끼어드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른들이 공론장을 박살 내는 동안 젊은 것들은 무시 당했다. 그런데도 대학원에 들어가려 하다니. 내 아둔한 지각에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본지 문화섹션 나우에서 선보인 단편소설 ‘너에게 맞설 수 있는 치트키’에서 주인공 최문정은 아무도 없는 밤 기숙사에서 남자애와 키스한다. 문정은 잠 못 이루는 감정을 느꼈다. 키스를 그리는 장면에서 상상했다. 만일 선배의 부탁을 받아 들고 학보사에 들어갔다면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루라도 더 빨리 장신대 신학대학원 진학이란 허황된 꿈을 버리지 않았을까. 사람들과 부대끼며 현실의 벽을 조금 더 일찍 마주치지 않았을까. 지면신문 배치마저 인쇄소에 맡기던 “에휴, 자유의새노래 만도 못한 학보구나” 탄식 대신. 기획실장, 아니 편집국장과 싸우며 침신대학보라 쓰고 공론장으로 읽는 희망의 탑을 하나씩 쌓아가지 않았을까. 최문정을 이용해서라도 과거로 돌아가 세상을 바꾸고픈 열망이 샘솟는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20대 대선을 맞았다. 정치인을 아이돌로 추앙하던 20세기와

발바닥이 보일 만큼

2022년 03월 01일
거센 파도 앞에서 제법 몸 가누기 힘들었다. 하룻밤 사이 내린 폭설에 허리춤까지 쌓아둔 덕분이다. 파도 앞에 서기 위해 발 한걸음 조심스레 내딛지만 이내 발가락부터 젖고 만다. 푹 파이지는 않을까 바짓단에 묻는 건 아닐까 더 젖어버리진 않을까 순간 이어지는 왼발 오른발 박자에 맞추어 나도 몰래 종종걸음 뛰어간다. 파도 굉음 아랑곳 않은 채 총총걸음 빗기어 내 앞에 선 너. 가볍게 오르는 발바닥 보니 누구에게 맞서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수많은 갈림길 끝에서 오늘에 도달한 너도 이 파도가 무겁게 들리지 않았을 거야. 엇나간 줄 알았던 발바닥은 다시금 돌아와 내 앞에 서 기록으로 남긴다. 두 손 맞잡고 “언제나 어디서든 같이 있자” 이 한 마디 족적으로 남겨두고서 묻는다. 드넓은 대지로 남은 이 파도는 어디에서 온 걸까. 먼 이국땅에 도달할 줄 너도 몰랐겠지.

[신앙칼럼] 진짜 사과 들고 와서 사과하면 다 되는 줄 아는 목사

2022년 01월 21일
물리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다. 1초 만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동하지 못하고, 죽었다가 깨어나도 과거라는 시간으로 돌아가지 못하듯이 물리 법칙도 거스를 수 없다. 큰 폐를 끼치고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 생각날 무렵, 사과 한 마디로도 끝나지 않는다는 일종의 물리법칙을 깨닫곤 한다. 아무리 보상해도 보상으로 위로할 수 없고 잘못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사과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사과문에는 건조한 잘못을 저지른 사실 관계, 경위, 재발방지, 반성, 잘못하기 이전으로 최대한 복구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상심한 마음을 풀어주는 것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과에는 진정한 마음이 담겨야하기에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정해져 있지 않다. 따라서 ‘진짜’를 내걸 이유도 없으며 ‘미래’라는 명분을 가져다가 용서를 요구할 수도 없다. 사과하는 가해자가 어떻게 사과하는지, 이후 화해와 복구의 의지 여부에 따라 용서할 수도 있고, 용서하지 않을 수 있다. 사과와 용서를 지켜보는 사회 역시도 사과의 정황에 포함 돼 있다. 가해자를 어떻게 받아주어야 할지, 영구히 분리해야 할지. 그리고 잘못 이상의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의 일방적인 주장도 바로 잡기 마련이다. 이 과정을 통해 사과와 용서는 결코 ‘사과가 과거를 풀고 용서는 미래를 연다’ 따위의 구호들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작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과를 해본 적 없는 고개를 빳빳하게 드는 인간일수록 속 시원하게 사과하면 된다고 착각한다. 용서를 해본 적 없는 인간이기에 경제적 신앙적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 어제의 적군도 오늘의 아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게 사과이고 용서라고 말하는데, 참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만사 돈에 의해 돌아간다고 믿는 순진한 사고방식이다. 참여교회는 한 해를 마치기 전, ‘사과데이’라는 이름으로 이벤트를 내걸었다. 교회는 실제 사과를 건네며 사과하면 용서해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사과를 주고 싶은

[사설] 교회학교 교사들과 전도사를 쥐어짜 만들어낸 ‘41%’

2021년 10월 25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이후로 등장한 한국 대형교회 유튜브 채널은 전체 380채널 중 241채널에 달했다. 전체에서 63%가 코로나 이후 개설한 채널인 것이다. 일반인 브이로그(V-log)가 익숙해진 시대에 동영상 제작이 과거에 비해 문턱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동영상 제작은 버겁긴 마찬가지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스물여섯 대형교회 유튜브 채널을 연령별로 계산한 결과 2-30대 22%, 공통 채널이 37%, 교회학교 채널은 41%로 추산되었다. 그러나 통계청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자료에 의하면 인력 낭비를 명확히 볼 수 있다. 2016년 9월 발표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 개신교회 10대 인구는 불과 22%에 달하고 교회가 자체 조사한 통합 측 10대 인구는 단 12%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최소 12%에서 최대 22% 인구를 위해 41% 인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채널 수가 인력 그 자체를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물여섯 대형교회가 게시한 평균 영상 수를 보면 인력 낭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유명 유튜버도 통상 1200개 영상 수를 넘기지 않건만 스물여섯 대형교회 평균 영상 수는 5000개에 달한다. 찍어내듯 물 밀려든 영상들을 누가 게시했는가를 물으면 인력 낭비라는 단어가 프레임이 아닌 팩트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콘텐츠를 들여다보면 가슴 아픈 현상들을 마주한다. 적은 인구 보유한 교회학교를 위해 교회학교 교사들은 메타버스를 활용해 캐릭터로 변신하고서 주일예배를 송출한다. 예능과 교육, 토크쇼를 내세워 교회학교 학생들을 위한 자체 콘텐츠를 발굴해 제작한다. 이들은 방송국 직원이 아니었고 급여 받은 적도 없다. 단지 ‘교회학교 교사’라는 일념으로 방송국 수준의 기상천외한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전도사라고 다르지 않다. 혀에 대기도 힘겨운 불닭볶음면을 먹으며 ‘지옥의 맛, 천국의 맛’ 눈물겨운 영상을 만들었고 개인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즐기며 소통에 나섰다. 방학에는 담당 목사와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하며 아침을 깨웠고 또 다시 이들은 새벽 예배까지 투입되어 설교를 이어간다. 본지 취재 과정에서 유튜버 미망이는 충격적인 증언을 꺼냈다. 직접 조사하며 느낀 부실한 청년부 콘텐츠가 사실은 “이게 최선”이라는 일설이다. 유명 지상파 방송국 프로그램을 복제한 수준임에도 젊은 전도사들 피와 땀이 서리지 않은 작품 하나 없었다. 모두가 눈물과 서글픔 삭히며 고통스러운 코로나 파동을 한 차례, 두 차례 넘기고 있었다. 교회학교 교사들과 전도사들이 만들어 낸 콘텐츠를 보면 정말로 “이게 최선”이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새능력이란 공동체 이름의 참여교회를 포함한 담임목사들은 유유자적 뒷짐만 진 채 고고한 척 3분 메시지, 위클리 메시지 따위나 읊느라 일말의 감정이라도 느껴지지 않는가. 기획과 대안을 내놓아야 할 세대가 바로 당신들이다. 청년들도 대형교회 세습과 사회적 물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교회를 떠나지 않는 이유에 이 한 단어를 말한다. 양심을 느끼고, 미래를 생각한다면 대형교회 목사들과 한국의 개신교회 목사들은 말도 안 되는 유튜브 세계에 인력을 낭비하지 말고 사람 먼저 생각하라. 예수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게 아니”(마가 2,27)라고 말했다. 서글픈 마음에 입 밖 꺼내지 못한 이 한 단어, 파수꾼이 되어 마지막 기독교 시대 교회를 지키려는 이름에게 “잘했다”, “쉬어라” 이 두 마디만 말하라.

[에셀라 시론] 그 녀석, 여학생의 꿈이 박살난 순간

2021년 10월 18일
서울대를 동경하던 그 녀석 입에서 꿈에 그리던 순간들이 사라지자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세달 전이다. 녀석이 좋아하던 꿈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시간의 검증이면 충분하다고 봤다. 정말 사랑하면 오랜 시간 지나도 소중한 꿈으로 새겨갔을 테고, 사랑하지 않았다면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말 거라는 검증이다. 일년하고도 반 년 남은 시간 서울대에 합격하겠다던 만들어진 이야기를 보면서 하느님을 만났다는 듯, 삶은 달라져갈 것이고 새로운 나날만이 드리울 거라 믿었던 학부 때 모습이 겹쳐 보였다. 착각 속에서 신을 만난 줄 알았던 완전한 믿음을 검증할 방법 하나 없었고 오로지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은 거짓은 서글픈 감정을 가리켰다. 박살난 꿈 조각, 빛 잃은 별 되어 잊혀서야 눈물을 머금고 나약한 소녀가 에둘러 한 조각, 한 조각 줍던 뒤늦은 당혹감을 보았다. 이 지면에는 여학생 이름 담긴 글 하나가 실릴 예정이었다. 여고생 그 녀석을 끌어당기는 별. 세 번 첨삭 두 번 탈고 끝에 마무리한 글 한 문단만 바꾸고 ‘교회 바깥 나서면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글로 탈바꿈해 게재한 이유에는 사실로 드러나지 않은 시간의 검증이 자리했다. 꿈을 가지라, 희망을 새겨라 따위의 글은 아니다. 그저 모름의 바다를 유랑하는. 어쩌면 답이 아니면서도 답일지 모르는 탈합치(De-coincidence)만을 예고할 뿐이다. 이해는 했다. 남들 열심히 공부하고, 촘촘하게 쌓아가는 듯 보이는 희망의 탑 고공행진 보면서 누구라도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끼지 말라는 법이 어딨겠나. 고작 신학교 하나 믿고 알량한 믿음 따위 맹신했던 10년 전 나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철든 녀석 앞에서 탈합치니 유랑이니, 헤매는 모름의 바다 따위 단어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의 검증은 그 때의 칼럼을 게재하려던 순간에도 보이지 않던 사실을 일러주었다. 서울대라는 단단한 반석 앞에 모든 바라던 것들이 일순간 녹아버려 사라지는 환상이란 점에서 모든 바라던 것들이 진정 바라던 것들이 맞는지를 묻었다. ‘너 밖에 없다’던 말도 서울대 앞에서 스러져 녹아버렸고, ‘사랑하는 일이잖아’하던 습관들도 단단한 반석 앞에서 스스럼없이 사라지자 가나안에 도착하고 비로소 하느님과 줄다리기 벌이던 그 때의 공동체가 떠올랐다. 신학교만 도착하면, 도달하면! 다 될 줄 알았던 착각이 허무하게 녹아 사라져 버렸다. 시간은 반 년 만에 검증을 마쳤다. ‘네가 가지던 그 꿈이 진짜인 줄 알았냐’며 감사 보고서를 내던졌고,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틀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다’ 조용히 읊조리며 적막한 대강당서 어둠 속 눈물을 흘렸다. 지금이야 유랑으로 말하지만, 불안히 외줄 타던 시절엔 유랑 같은 단어 따위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공포 그 자체였다. 헛발이라도 딛는 순간 죽을 것만 같았다. 교재라도 있으면 했다. 교재대로 살아가면 ‘아, 이만하면 충분한 삶이구나’ 자위라도 하지 않았을까. 어찌어찌 살아가다보니 지금으로 흘러왔고 오늘에 이르렀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한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며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고 말한다. 나쁘지 않은 말들이다. 꽤 단순하다. 어렵지 않다. 그러나 기어이 어렵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훈수 두는 인간들. 지금의 삶도 버거운데, 이후의 삶도 설계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이들이 있다. 천국과 지옥, 썩은 내 나는 주술적 단어를 읊조리며 인생이란 이런 거라고 오만한 말들을 내뱉는다. 그들은 표준을 만드는 자들이다. 자기가 표준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른에는 취업할 것, 여자라면 서른다섯까진 결혼할 것, 네 살 차이는 만나지 말 것, 이런 사람 특징 네 가지를 나열하고 이래라저래라 지껄인다. 그 아래 동조하던 댓글들과 아멘들은 가관이다. 유유상종 따로 없다. 표준이란 단어는 매혹적이다. 모른다는 말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표준이 더 있어 보인다. 티키타카 못해도 괜찮은데. 밀당 못할 수도 있는데. 표준에 미달하면 스스로를 못난 사람 취급하는 행동과 정신이야 말로 표준에 달하는지. 싱어송라이터 박소은의 정규 앨범 ‘고강동’ 첫 번째 수록곡이 인상적이다. ‘인생이 박살나던 순간.’ 당혹스러움일까, 분노일까, 배신감일까. 처음 내뱉던 글줄부터 할 말을 잃는다. ‘아무것도 모르겠을 때/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네’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만들어준 표준이 맞는다고 생각하며 달려왔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하등 쓸모없는 현실 앞에서 이 노래가 떠올랐다. 시간의 검증은 이럴 때 유용하다. 시간의 검증은 가장 일차원적 방법이다. 이조차 견디질 못하고 사라져 녹아버린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맞는다. 서울대 앞에 녹아 사라져버린 그 녀석의 꿈처럼. 하지만 모른다. 애써 외면했던 그 녀석, 10년 후 그 소녀처럼 박살난 꿈 조각 하나하나 주우며 뒤늦게나마 제 로(路)로 걸어갈지. 뒤늦다는 말조차 틀렸음을 깨달을지. 박살나도 괜찮은데. 그래도 망가진 삶 아닌데. 끝까지 아껴주고 싶었는데. 힘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오늘도 이 칼럼, 미안하다는 말로 마치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해.

[에셀라 시론] 녹림청월 이후의 시대에서 보내는 편지

2021년 10월 14일
이제 두 달 후면 이 신문, 자유의새노래를 창간하게 될 겁니다. 아무도 없는 한글날, 복지관 건물에서 매니저 ‘그린냥’을 필두로 개설한 녹림청월을 보고도 놀라면 안 됩니다. 반대진영 무찌르기 위해서 여론조작 일삼고 가면까지 쓰고 친밀한 척 연기하던 자료 눈으로 확인해보면 기막힌 감정부터 느끼게 될 겁니다. 그 어처구니없는 사실들을 글줄로 담기 위해 신문 제작에 열 올리게 될 테구요. 황당하죠. 필명 대한제국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백 서른하나 계정을 이용해 댓글 공작 펼친 걸까 물을 겁니다. 허나 그리 물어서는 곤란합니다. 시선을 돌려서 녹림청월은 무엇을 얻으려고, 무엇을 위해서, 무엇 때문에 백 서른하나 계정으로 여론조작 했는지를 물어야 비로소 보입니다. 필명 대한제국을 둘러싼 이 사태의 진상은 그들 녹림청월 자신의 욕망. 이것뿐입니다. 어떤 욕망일까요. 더 취재하다보면 보일 겁니다. 초딩 디시인사이드라 불리는 원류(源流)에선 찾을 수 없습니다. 내면의 솔직한 감정을 마구잡이 드러내던 지류(支流), 녹림청월에서 명확해집니다. 녹림청월 말하려고 쓴 편지는 아닙니다. 오늘은 다른 시선으로 보려고 합니다. 어른들 얘기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에게 스태프 역할 던져주고, 일선에서 물러난 어른들요. 유명세를 이용하는 건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린 어른들에게 주요한 덕목이겠죠. 그 인간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리 하나 던져주고 부려 먹는 것도 모자라 책 한 권 던져주고 사인만 갈긴다고 끝날 일은 아니죠. 정상적이지 못한, 지극히 중2병다운, 사춘기 흑화된 소녀들을 상대로 관리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책 한 권으로 끝날 문제겠습니까. 그때의 어른들도 인력 보강 대신 무책임한 열정페이를 요구했습니다. 잘하고 있다, “대단해 대한건아!” 한 마디 던지던 과거의 말들이 지금이라고 무엇이 다를까요. 아이돌 포토 사진만도 못한, 방 한 편 버려져 이제는 읽지도 않아서 외면 받은 그 책을 볼 때마다 어른들 욕망이 되살아납니다. 그럼에도 한 때의 기억이고, 과거이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버리지 않기를 잘했습니다. 기억과 함께 보관하기로 마음먹은 그 때의 결정처럼요. 지금도 그 책 겉면을 보면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책임 없는 어른들을 증오합니다. 그러니 값비싼 노동으로 받아 낸 18권, 어른들에게 고마워 마십시오. 마땅히 일해서 받은 것뿐입니다. 대대공작 일삼던 자들이 녹림청월을 어둠 속 장막으로 감춘지도 5년이 지났습니다. 어째서 15년 전 녹림청월에 의한 대대공작(對大工作) 사건을 지금까지도 거론하느냐 물을 겁니다. 먼 미래에는 매듭진 거 아니냐고 하면서요. 원류조차 바싹 마른지 오래입니다. 이 신문 창간호엔 상단에 배치한 녹림청월 발(發) 대대공작 사건보도 뿐만 아니라 반 지성으로 얼룩진 신앙 세태 비판하는 글도 실렸습니다. 지금은 참여교회 담임목사를 대단하다 자부할 테지만 시간만 지나보십시오.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악질로 분류하고 말 겁니다. 그 인간의 수준을 알기까지 10년이 지나야 합니다. 인생 절반을 전체주의와 다르지 않은, 인간성을 상실한 집단에 몸담았다는 점에서 비극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이제껏 어떻게 살아왔는지보다 중요한 건, 현재에도 무책임한 어른들을 마주하느냐는 겁니다. 환경이란 담을 넘어보니, 과거의 삶에서 비극을 느낄 여력 하나 없더군요. 여전히 세상은 요지경입니다. 이제 곧 지류를 만들어 낸 원류를 벗어나 원류라고 생각했던 지류를 바라보며 두 가지 종류의 어른들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책임을 지느냐, 지지 못하느냐. 두 기준으로 보면 명확하게 그 어른을 따라갈지 말지를 알게 될 겁니다. 어른이라고 다 올바른 말들만 하지는 않습니다. 순진하고 착해서 그렇습니다. 좀체 남의 말 의심치 않고, 농담조차 먹히질 않으니. 고지식한 보수적 태도가 때로는 안정적인 삶으로 이어갈 동력일 테지만, 세상만사 일장일단(一長一短)일 뿐입니다. 그러니 어른들을 의심하십시오.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은 채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하는 원류적 어른들이 많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듯, 방치 된 스태프, 필명 대한제국은 허망하게 무너졌습니다. 당신의 시간에선 그 자체를 비극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원류를 벗어난, 지류로 보일 원류 앞에선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보일 따름입니다. 멍청하고 어처구니없는 공간은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게 당연한 겁니다. 그분도 지류로 보이는 원류 앞에서 공허감을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곧 당신이 지지하게 될 그분의 기일입니다. 왜 그 세계로 갔을지,

[사설] 보랏빛 저무는 순복음 시대

2021년 09월 14일
오중복음·삼중축복과 순복음 신앙을 세계에 알린 영산(靈山) 조용기 원로목사가 서거했다.(2021.09.14) 80만 교인 수를 상징하던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조 목사의 순복음 신앙으로 태동했다. 번영신학(繁榮神學)으로도 알려진 순복음 신학은 ▲중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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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랑 2026년 11월 5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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