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라 시론] 소녀의 이름으로

2026년 03월 18일
나는 이제껏 김용철의 새능력을 왜 더 빨리 탈퇴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좀 더 빨리 탈교(脫敎) 했다면, 조금 더 빨리 관계를 정리했더라면…. 소년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은 우연히 입수한 18년 전, 한 영상을 보면서 오롯이 해소되었다. 연세중앙교회 YBS 인터뷰에 담긴 소년은 짐짓 말할 수 없는 모든 죄를 짊어진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알고 지은 죄인데 왜 그걸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는가….” 도대체 중학교 2학년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카메라 앞에 서서 자책하며 스스로를 옥죈단 말인가. 새능력을 탈퇴하고서 나는 단 한 번도 김용철의 설교를 끝까지 들어본 일이 없다. 양심에 찔려서도 아니고 눈물이 감격으로 앞을 가렸기 때문도 아니다. 1시간 설교 모든 문장 옭아맨 감정 동원과 협박 구조, 의미 없는 아멘의 반복, 철학도 신학도 없는 감정만 휘젓는 수준의 처참한 호통은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누구나 깨닫게 된다. 그는 오로지 의식의 흐름에 의지한 채 청중을 감정적으로 끌고 다닐 뿐이다. 각 단락 사이의 논리적 연결은 찾아볼 수 없다. 자기도취에 빠진 간증을 서사로 가져다가 어떻게든 이어 붙이는 게 전부다.

[사설] 그저 ‘병사1’로만 생각하는 정신머리 이런 게 해병 없는 ‘해병 정신’

2023년 7월 19일 경상북도 예천군 내성천에서 13명의 해병대원과 폭우 실종자를 수색하는 작전에 투입된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지 2년 10개월 만에 법원은 1심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2026.05.08) 포병 대원이 구명조끼도 없이 허리 깊이까지 물에 들어가는 건 수색 작전이라 할 수 없다. 상급 지휘관의 성과 집착이 대원의 몸으로 지불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임 전 사단장은 수중 수색 사진을 보고받고도 멈추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구체적 위험을 인지한 상황에서 위험을 가중시키는 지시”라고 밝혔다. 과실이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죗값은 징역 3년이었다. 특검은 5년을 구형했음에도 대원의 생명을 담보로 작전 성과로 밀어붙인 지휘관에게 법원이 매긴 값이 고작 그뿐이었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선고 직후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군 복무로 나라를 바친 이들이면 먹먹해질 물음이다. “아들의 희생에 대한 책임이 이렇게 가볍다면 어느 부모가 안심하고 자식을 군에 보내겠느냐.” 임 전 사단장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수중 수색을 지시한 건 내가 아니”라는 장문의 이메일과 문자를 보냈다. 재판부는 “오랜 재판 경력에서 이런 피고인을 본 적이 없다”고 질타했다. 해병 정신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 해병의 죽음 앞에서 한 행동이 그것이다. 임 전 사단장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2023년 7월, 해병대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하려 했을 때, 누군가 그것을 가로 막았다. 대통령실 번호로 걸려온 통화 뒤 14초 후 이첩 보류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수사단장은 ‘집단항명의 수괴’로 입건됐다. 이첩을 막은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1심 법원이 임 전 사단장의 과실치사를 인정했다는 것은 그 이첩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말단 지휘관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군의 관행을 지적했다. 그 관행을 깨려 한 건 해병대수사단이었고 그것을 다시 덮으려 한 것이 침묵의 권력이었다. 해병 정신을 가르치던 이들이 누구보다 해병의 죽음을 덮으려 했다.

[현실논단] 지금, 여기를 꺾은 대가

한 번의 검색이 전부였다. ‘꽃봉오리를 꺾지 말라’. 현직 교수, 그것도 내일 제출해야 할 과제하다 말고 눈물 흘리며 써 내려갔을 글줄을 눈앞에 두니 아뜩했다. 망할 놈의 교회는 날 가르치던 교수의 학위를 조작이라 고발했다. 직접 웹사이트에 검색해보라며 디테일한 논문 검색 방법까지 담아놓은 글 안에는 총회장으로 보이는 아버지 같은 인간까지 찾아가 눈물 흘리며 호소했던 그 밤 서러움이 생생했다. 하다하다 조작된 학위조작설로 교수 임용 철회를 요구하던 10년 전, 모교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그곳 풍경 이야기다. 돈이면 다 되는 세계라 그렇다. 학부 3학년이 되어서도 새로운 세상은 도래하지 않았다. 우울증은 깊어져 갔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먹고 살지, 해놓은 공부는 있었는지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노래도 서점도 햄버거도, 아무 의미 잃어가다 도피할 무언가라도 있었으면 했다. 정확히 2주차부터 무기력했다. 교수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백지 B5 스마트폰 올려둔 채 졸기도 했다. 대놓고 커뮤니티 했고 여자 아이돌 사진을 정리하다 팬픽을 써내려갔다. 즐거웠다. 매일 교보문고를 찾아갔다.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여자 아이돌 시점에서 생각해 보았다. 아이돌의 작업실부터 화성학까지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공부라는 건 재미있었다. 문제는 밤 10시40분, 무거운 몸 이끌고 도착한 기숙사에서 도드라진다. 현실 세계로 돌아오니 나를 구해 줄 구원자 여자 아이돌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침 6시에 기상해 아침예배를 드리고 또 커피를 마시며 조선일보 읽어야하는 쳇바퀴 돌아가던 하루의 연속이 이어질 따름이다. 죽고 싶었다. 망할 놈의 신학을 전공해도 일할 만한 데가 마땅히 없었다. 목사의 바지가랑이 붙잡아서 속된 말로 똥구멍을 핥아도 시원찮을 판에 교회도 다니지 않았으니 말 다했다. 교수도 허무해졌다고 한다. 수업 열심히 준비했거늘 학생들이 잘 듣지 않으니 “무척 허무하다”고. 학부를 끝마치고 돌아가던 열차에서도 이렇다 할 방도는 없었다. 백수의, 빈 공간의 시간이 이어졌다. 제로로 돌아갔다. 다시 0으로 복귀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탐험했다. 과거로 여행을 떠났다. 10년의 우정이 무엇일지 되짚어보았다. 조선일보, 모루, 노은석, 박준형, 신앙, 기록. 사건이라 하기엔 다발적이고 혁명이라 하기엔 작은 불꽃을 발견했다. 소설을 집필해 책으로 엮는, 누가 봐도 즐겁지 않은 작업을 상상하는 동안 글 짓는 소년을 만났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고 물을 수 없었다. 분명히 외면한, 10년 전 네 앞에 미안한 마음으로 숙연하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아무 말도 않는 소년 앞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단출한 브리핑을 이어갔다. 소년은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10년 후 견디기 어려운 책임을 불러 올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계획이란 것을 열거한다. 제로교육은 실패할지 모른다. 촘촘히 엮어내지 못해 뜯어질 지도 모른다. 허나 장신대만 들어가면 인생길이 보일 거라 굳게 믿었던 어리석음에서 일찍 돌이켰다면. 허나 제 로(路)로 돌아간 3년 전 결정이 더 일렀더라면 인생 항로의 몇 도는 더 틀 수 있었을 것이다. 제로에서 밑바닥에서 잘할 수 있고 사랑하는 분야를 발굴하며 발견한 열다섯 소년은 지금이라도 죽기 전에 발견해줘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나를 사랑하는 일은 무엇일지 하나 둘 꺼내어본다. 기록의 힘. 활자의 가치, 텍스트만이 가능한 일을 흩어놓자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던 과거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미래라는 불완전한 시간이 해체되고 현재라는 시각이 보인다. 꽃봉오리 꺾지 말라던 교수가 중간·기말 대체로 과제 하나만 내주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코헬렛을 소개하는 기사, 2페이지 분량.’ 아예 내게 점수주고 싶다는 제스처로 읽혔을 지경이다. 재미있게 과제했다. 재밌어서 눈물 났다. 수업 한 번으로 A+ 받았다. 운과 사랑의 절묘한 조합. 열다섯 소년은 “그때 신학을 포기했어야 했다”고 삿대질 않는다. “발굴할 때까지 10년을 기다렸다”고. 지혜문학연구 만큼은 잘 들었어야 했다던 후회만큼, 글 짓는 소년이 집중하는 ‘지금, 여기’처럼 오늘의 시간에 주목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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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소랑 2026년 8월 5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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