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라 시론] 소녀의 이름으로

나는 이제껏 김용철의 새능력을 왜 더 빨리 탈퇴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좀 더 빨리 탈교(脫敎) 했다면, 조금 더 빨리 관계를 정리했더라면…. 소년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은 우연히 입수한 18년 전, 한 영상을 보면서 오롯이 해소되었다. 연세중앙교회 YBS 인터뷰에 담긴 소년은 짐짓 말할 수 없는 모든 죄를 짊어진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알고 지은 죄인데 왜 그걸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는가….” 도대체 중학교 2학년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카메라 앞에 서서 자책하며 스스로를 옥죈단 말인가. 새능력을 탈퇴하고서 나는 단 한 번도 김용철의 설교를 끝까지 들어본 일이 없다. 양심에 찔려서도 아니고 눈물이 감격으로 앞을 가렸기 때문도 아니다. 1시간 설교 모든 문장 옭아맨 감정 동원과 협박 구조, 의미 없는 아멘의 반복, 철학도 신학도 없는 감정만 휘젓는 수준의 처참한 호통은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누구나 깨닫게 된다. 그는 오로지 의식의 흐름에 의지한 채 청중을 감정적으로 끌고 다닐 뿐이다. 각 단락 사이의 논리적 연결은 찾아볼 수 없다. 자기도취에 빠진 간증을 서사로 가져다가 어떻게든 이어 붙이는 게 전부다. 모든 것 공허함의 파도밖에 보이지 않던 시절, 나는 죽을 용기를 가지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시절 스물 두 살의 나는 미지(未知)의 두려움을 견뎌야 했다. 이제는 지옥에 가는 건가 싶었다. 가족도, 연고도 없이 새능력에 붙잡혀 노동 착취를 당했어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탈출이 재생되었다. 때로는 방송실 귀퉁이에서 일을 하는 장면이 꿈으로 재생되었고, 어쩔 땐 빠져 나오는 꿈을 꾸기도 했다. 많으면 한 달, 뜸하면 서너 달에 한 번 연속된 꿈은 새능력으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을 가리키고 있었다. 과거의 나로부터 찾아오는 ‘시간의 죄책감’이 나를 오랜 시간 사로잡은 것이다. 몸은 난파선을 벗어났지만 아직도 나의 혼은 그곳에 갇혀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시간. 탈교는 무너진 영혼 속에서 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저 어른들이 주입한 죄책감은 남은 인생의 각도를 비틀었다. 어그러진 관념과 여성성에 대한 왜곡된 이해는 긴 시간의 교정이 아니었으면 영구히 손상되었을 것이다. 바로 그 소년이 자신의 입으로 토설한 ‘알고 지은 죄’는 이브가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은 상징이다. 왜곡된 여성 이해의 뿌리는 기독 담론 그 자체다. ‘성숙한 소녀’라는 어른들의 거짓말이 빚어 만든 망상이 소녀의 노동을 착취했고, 소년의 미래를 짓밟은 것이다. 탈교 이후 나는 차근차근 기독 담론을 해체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소녀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그 소녀는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천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악과를 먹은 후 야훼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침잠한 것처럼 나는 소녀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되어가는 과정을 순연(純然)하게 바라보듯 과거의 시간을 다시 배열하고 재건하는 소녀의 손길을 말없이 볼 뿐이었다. 소녀는 잃었던 재주, 놓쳤던 이름, 잊혔던 얼굴을 되찾았다. 에덴의 난민, 아담과 이브는 재건의 기회조차 잃었으나 소녀는 신의 질서를 거스르고 마침내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자리에 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녀의 일하는 광경 속에서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기억의 화해’가

[사설] 그저 ‘병사1’로만 생각하는 정신머리 이런 게 해병 없는 ‘해병 정신’

2023년 7월 19일 경상북도 예천군 내성천에서 13명의 해병대원과 폭우 실종자를 수색하는 작전에 투입된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지 2년 10개월 만에 법원은 1심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2026.05.08) 포병 대원이 구명조끼도 없이 허리 깊이까지 물에 들어가는 건 수색 작전이라 할 수 없다. 상급 지휘관의 성과 집착이 대원의 몸으로 지불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임 전 사단장은 수중 수색 사진을 보고받고도 멈추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구체적 위험을 인지한 상황에서 위험을 가중시키는 지시”라고 밝혔다. 과실이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죗값은 징역 3년이었다. 특검은 5년을 구형했음에도 대원의 생명을 담보로 작전 성과로 밀어붙인 지휘관에게 법원이 매긴 값이 고작 그뿐이었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선고 직후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군 복무로 나라를 바친 이들이면 먹먹해질 물음이다. “아들의 희생에 대한 책임이 이렇게 가볍다면 어느 부모가 안심하고 자식을 군에 보내겠느냐.” 임 전 사단장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수중 수색을 지시한 건 내가 아니”라는 장문의 이메일과 문자를 보냈다. 재판부는 “오랜 재판 경력에서 이런 피고인을 본 적이 없다”고 질타했다. 해병 정신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 해병의 죽음 앞에서 한 행동이 그것이다. 임 전 사단장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2023년 7월, 해병대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하려 했을 때, 누군가 그것을 가로 막았다. 대통령실 번호로 걸려온 통화 뒤 14초 후 이첩 보류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수사단장은 ‘집단항명의 수괴’로 입건됐다. 이첩을 막은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1심 법원이 임 전 사단장의 과실치사를 인정했다는 것은 그 이첩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말단 지휘관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군의 관행을 지적했다. 그 관행을 깨려 한 건 해병대수사단이었고 그것을 다시 덮으려 한 것이 침묵의 권력이었다. 해병 정신을 가르치던 이들이 누구보다 해병의 죽음을 덮으려 했다.

[현실논단] 태평로1가 61-28번지 조선일보에서

2021년 09월 01일
어느 날 토요일이었다. 조선일보 1면을 정독하다 하단의 기사를 보고 놀랐다. 1면 상단에나 어울릴 크기의 커다란 세 줄 제목에 띄었기 때문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겨냥한 기사 이후 4년 만에 정정보도문을 대문만한 크기로 게재했다. 박근혜와 조선일보 싸움은 송희영 주필을 몰아내고, 최순실이 터져서야 막을 내렸다. 둘 중 하나가 이긴 것이 아니다. JTBC 보도로 부랴부랴 토해낸 TV조선 기사에 국민들 시선이 잠시간 이동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렇다 할 특종을 보지 못했다. 저널리즘의 승리라고 말할지 모른다. 나비효과로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까지 이렇다 할 특종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국의 호(號)가 단독이 되었을 무렵 사람들은 조선일보에 주목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단독 기사에 조국 사태 네 글자만 뇌리에 남았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이 나라에 프레임을 섬세히 짜던 조선일보 손길보다 위선적인 조국의 엘리베이터 속 웃음을 기억한다. 대중 매체라곤 텔레비전과 신문, 라디오가 전부였던 시대가 지나갔다. 사회 담론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 다양하게 소비된다. 하나의 담론이 편중된 여론을 만드는 시대에 도달했다. 섬세한 손길이라 말했다. 신문의 예술적인 섬세한 손길이 이제는 헛발도 짚는 걸 보면서 ‘조선일보도 늙었구나’ 생각했다. 늙은 건 조선일보 그 신문뿐이 아니다. 원고지로 쓰는 맛을 느껴가던 고문(顧問) 자리에서 내려온 김대중 전(前) 주필에게서도 느꼈다. 조선닷컴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글에만 댓글 창을 막아버린 언론인. 할 말은 반드시 하기에 기자가 천직(天職)이라 자랑하던 조선일보 어른. 그가 쓴 칼럼을 읽으며 ‘당신도 늙었구나’ 생각했다. 안기부를 가리키며 남산에서 설렁탕 먹던 시절 험한 세상 살았다고 여겨오던 당신이 이젠 그게 아니라는 걸 안다고 인정해도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섬세한 손길로 지면신문 판짜듯 프레임 짜던 당신의 판단이 오늘의 조선일보를 만들었기에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란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인간을 전통적인 기독교의 의인(義人)과 죄인(罪人)을 딱 잘라 구분하기 어려운 것처럼 김대중 전 주필 말마따나 사실이 반드시 진실일 수는 없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건 사실이 아니다. 매일 조선일보 A2면에 실리는 ‘바로잡습니다’가 그렇다. 사실이 아닌 건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까지 조선일보가 눈 가리고 아웅이던 기사가 얼마나 될까. 디테일하게 예술적으로 교묘히 사실을 가려버린 수없는 바로잡지 않은 오보들을 조선일보가 더 잘 알 것이다. 단지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전시(展示)로써 끝나버려 죽어버린 오보 앞에 바로잡는다고 될 일인가. 선배 주필들 사진조차 쳐다볼 수 없어 글로써 사과한 지금의 주필만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조선일보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졌느냐고 묻는다면. 김대중 본인은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수많은 기자들 땀방울 서린 기사들이 늙은이 손가락에 의해 잘려나간 슬픔으로 세워진 신문이라면 무어라 대답할까. 책임지는 자리에서 사과 한 마디 없이 편집 기자 손길로 만들어진 [바로잡습니다] 한 꼭지면 충분하다 진심으로 믿는 건가. 노무현 시대에 이은 대통령 때리기 놀이가 오늘의 사랑제일교회를 만들었고 대한민국 담론장의 질(質)을 저하시킨 원인 앞에 김대중은 일말의 책임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나. 지난 해 신문 열독률은 10.2%다. 지면신문 영향력은 앞으로도 사라져 갈 것이다. 허나 신문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디지털 방식으로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화려했던 80년대, 지면신문에다 촘촘하게 수놓던 프레임 장인 조선일보를 보기는 힘들 것이다. 조선일보 구독을 해지한지 1년이 가까워진다. 신문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도 앞섰다. 걱정도 바보 같다. 신문이 없어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안다.

[지애문학] 그날 밤 연락하지 않은 건 자존심 따위를 지키려는 게 아니야

2021년 08월 15일
옛날 일들이 떠올랐다. 갑자기 떠오른 일들에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휴우증은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떠오르는 걸까. 아닌 것 같다. 그때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분명히 뺨을 때리고 말았을 거다. 불쾌감, 적의, 분노, 배신, 파괴, 한순간의 말들로 사랑했던 그 사람과의 모든 기억이 얼룩지고 말았다.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새로운 친구’ 목록에서 적의로 가득한 그 얼굴이 역겨웠다. 오늘은 그냥 두지 않았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였다. 프로필까지 차단. 이젠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으면 좋겠다. “누구랑 톡하는데 심각해?” “아냐, 오빠.” 볼 새라 폰을 끄고 배에 누워 만지작거리며 발을 흔들었다. 뚫어지게 바라보는 눈빛이 닿았다가, 미끌거리다 다시 닿으며 마주치고 떠나기를 반복했다. 또 시작이다 그런 표정. 귀여워. 관심 끌고 싶은 마음마저 귀엽게 봐주는 느낌이 귀여워 미치겠다. 힘들다는 듯 머리 위에 손을 대고 쓰다듬는 이 순간이 마냥 좋았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그런 기분. 사람으로 받은 상처 사람으로 해결하란 말이 떠올랐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후유증조차 경험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기억에서 사라지면 좋을 텐데. 오빠와의 데이트 중에도 아문 상처는 이따금 되살아난다. “삐질 때마다 달래주는 거 안 힘들어?” “웬일이야? 그런 걸 물어보고.” 아니……. 여기까지. 더는 잇지 않았다. 오빠는 아직도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하는 특유의 생각을 모른다. 그냥 내뱉은 말인 줄 안다고. 장난감처럼 만지작만지작, 그러다 상상에 빠진다. 힘들었을 그 때, 너한테 연락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딱 한 번 있었다. 추했다.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는데 금세 돌아서 엉엉 울고 말았으니. 그 모습 하나까지 남김없이 발라먹듯 이용해 먹었다. 그리고 더는 외로워도 슬퍼도 힘들어도 뒤돌아서지 않기로 했고 한 번도 뒤돌아서지 않았다. 며칠 전 그 밤만큼은 불안감에 휩싸인 마음을 달래느라 정말 많이 힘들었다. 힘겨운 그 밤을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오자 걸어온 발걸음을 되짚어봤다. 칭찬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우리 지애 많이 컸어. 연락하지 않기를 정말 잘했어. 만약에 말이야. 다시 그 새끼에게 돌아갔다면, 그 품에 안겼을 땐 괜찮을지는 몰라도 또 다른 차원의 후유증을 남겼을지도 모른다고. 때로는 외롭고 고달픈 순간을 정면으로 맞서야 할 때도 있는 거라고. 하나의 교훈을 깨달았다. 넘어서기 어려운 산을 지나가면 육체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감당 못할 기쁨이 찾아온다는 걸. 왜 삶의 맛 중에서도 쓴 맛이 진정한 맛이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잠시의 후유증도 또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이미 넘긴 건 아닐까.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오빠.” 그새 내 마음처럼 부풀어 올랐다. 게이지 충전 완료. 조금씩 올라가는 입술에 달아오른 기분이 후유증조차

[지애문학] 그러라고 있는 사람들

2021년 08월 08일
“하하하!” 정확히 세 번 하!하!하! 예, 아니오도 아니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란다. 누가 취재한 걸까. 그 소식통 줘 패야 돼. 또 나만 바보 됐어. 힝. “마지막 날 상고장 제출하면서 조마조마했어요. 또 마음 바뀌는 건 아닐까…. 간혹 인선 자료 떠돌아도 틀릴 때 많아요. 결국 오늘 1면에 제 이름만 안 실린 것처럼요. 데스크는 그러라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안도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착한 사람이 누가 누굴 이용해 먹어? 지금 당장은 김지수 공판 준비하느라 정신없을 뿐이고 대통령 당선하기 전부터 몇 번 만나본 사이일 뿐이라고. 국민의 악마를 변호하는 사람을 자기 대변인으로 뽑을 리 있겠냐던 말에서 황당해진 건 나였다. 당연히 그렇지. 신문사 들어가고 나서부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고 살아서 당연한 소리에도 훅 넘어가버렸다. “지수도 절 필요로 하는 사람이니까요. 변호사로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저도 너님이 필요해요.’ 라는 생각을 말로 내뱉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수임료도 받지 않았다는데 그럼 그 필요란 뭘까. 한때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던 그때의 감정을 독려해주는 유일한 사람? 모든 사람은 욕할지라도 악마까지도 변호해 줄 단 한 사람의 응원? “근데 왜 데스크 사람들이랑 밥 드신 거예요?” 라는 말을 생각 필터에 거치지 않고서 내뱉었다. 아, 음, 아. 그건……. 보기 드문 추임새. 변호사님도 감추는 게 있었을까. “돈 버는 사람들이니까요.” 변호사님 비유가 필터 없이 귀에 들어왔다. 제3막으로 구성한 한 사람의 인생 뮤지컬. 학생 때부터 꿈꾸어 온 미래를 향하여 정신없이 달려가는 소녀로서의 1막. 가장 아름답고 짜릿해야 했건만 현실의 벽 앞에 거칠게 쓰러지고 맞서 싸우는 현재로서의 2막. 덤덤하게 죽어가는 이들 앞에서 삶을 정리하고 주변을 지켜만 보아가는 과거로서의 3막. 빠르게 재편되어가는 사회, 바뀌어가는 직업, 쉴 새 없는 출근길, 변해가는 가족, 조금씩 삐걱대는 몸과 마음. 사람의 봄여름가을겨울 저무는 계절 속에서 고작 돈 때문에 죽어가는 광경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속삭임에 말을 잇지 못했다. “둘로 찢어진 상고장보다도 눈가에 고인 듯한 눈물이 저를 필요로 한다는 걸 말해줬어요. 말은 필요 없다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누군가를 무시하며 살아간다. 반대로 자존감이 필요 이상으로 높을 땐 자의식이 과잉되어 누군가를 숨 막히게 만든다. 학벌과 돈, 명예. 모든 것은 자신을 치장하는 액세사리에 불과하다. 자유의새노래, 라는 1등 신문사의 명예도 누군가를 무시하고 숨 막히게 만드는 매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변호사 배지에도 이 남자와 같이 있을 때면 느낀다. 숲처럼 정화되는 맑은 햇살. 높고 낮음도 없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해주는 밝고 맑은 자존감. 확실히, 확실히 ENFJ 같아. MBTI 같은 건 안 믿겠지? “정론직필의 자유란 사실 신문이 살아남기 위한 구호겠죠. 누군가 아버지의 밥벌이로 보일 때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거예요.” 하나도 안 부럽다. 멋들어지게 치장한 자기 자신이 대단하게 보일지는 모르겠다. 근데 내 눈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돈 벌기 위해 몸뚱아리 돈으로 쳐 바르기 위해 안달 난 사람들. 그러라고 있는 사람들이라기엔 비참했다. 1등 신문사 만들어 놓고도 순수했던 그때의 자신을 잃어버리는 기분이란 무엇일까. 그런 지수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죽음을 목전 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 남자와 만나면 왠지 어두워 보이는 그늘을 조금이나마 밝혀줄 수 있을까. 어렵게 취업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으, 말하고 싶어.

[에셀라 시론] 보이지 않는 나라를 꿈꾼다

2021년 08월 07일
박원순과 나경원이 맞붙던 시절의 이야기다. 종북(從北) 단체와 친밀하게 지낸다는 박원순 후보의 일설을 믿고 순진한 마음으로 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누나의 답변은 간단했다. 정치는 단순한 이념으로 보는 게 아니라고. 이념으로 사람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답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새로운 눈이 뜨이자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왜곡된 정치의 시각으로도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앙의 끝으로 달려가던 와중에 붙잡은 정치 이념이 보수적 깨시민으로 만든 후였다. 대학을 입학했다.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 나라’는 많았다. 기독교가 말하는 하느님 나라가 대표적이다.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 하느님 나라를 꿈꾼다. 보수적 성향의 시민도 보이지 않는 나라를 꿈꾼다. 대깨문이 박멸되는 나라. 진보적 성향의 시민도 다를 바 없다. 토착 왜구가 청산된 나라.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우는 사회와 다른, 현실 세계에 입문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나라를 경험한다. 사회생활 단어도 ‘보이지 않는 나라’를 설명하는 맥락에서 사용한다. 슬프게도 코로나 파동을 겪은 이 시점에서도. 눈물 흘리지 않고서는 맨 눈으로 보기 힘든 ‘보이지 않는 나라’가 스며든다. 죽음. 고독사가 휩쓸고 지나간 집에서 청소하던 일꾼을 마주했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대로 살겠구나’ 그리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보이지 않는 노동의 짐,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 좋소에서 또 좋소로 이직해야 하는 절망. 어른이 되고서야 자기 몸 하나 건재하기 힘겨운 대한민국이란 보이지 않는 나라를 보았다. 2020년에 발표한 통계청 사망원인통계는 20대 사망원인을 고의적 자해 51%를 꼽는다. 노인의 경우는 상상을 초월한다. 같은 자료에서 고의적 자해는 50대부터 급증한다. 미친 나라다. 보이지 않는 죽음의 나라를 선택한다. 도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 사람, 두 사람 떨어져 나가는 광경을 지켜만 보던 개개인이 무엇으로 바깥 경계로 내몰린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박원순과 나경원의 사투를 보면서 나경원이 이기는 것만이 이 나라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 믿었던 것처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를 운운하며 보이지 않는 나라를 꿈꾸는 이들도 그저 보이는 대로 손을 뻗는다. 언젠가 보이지 않은 세계가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울컥했다. 저 사람은 오늘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편안하게 쉴 수 있을까. 저 부장은 돌아가서 혼자 무슨 반찬을 해먹을지. 팀장은 한 시간도 넘는 퇴근길 버스 안에서 쪽잠이라도 잘 수 있을지. 보이지 않는 노동의 나라 저 끝자락을 상상할 때마다 눈물이 차오른다. 하지만 눈물은 어김없이 분노로 바뀐다. 퇴근하고 내내 욕을 내뱉었다. 속이 타오를 때까지 욕을 했다.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의 비명에 스피커까지 틀어가며 제 할 말만 떠드는 인간들을 때문이다. 비명이라 말했다. 정치는 나약한 이들을 위해서 작동해야 하건만. 대깨문과 토착왜구 사이에서 성실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비명이 양쪽 스피커에서 깨끗하게 사라진다. 계급으로 전락한 이들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나라’가 된다. 신학자 김진호는 저서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에서 ‘그 바깥’ 단어로 설명을 이어간다. 어느 누구도 그 바깥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나라로 향한다 하더라도. 왜곡된 정치관이 사라진 순간은 조선일보를 절독한 시점이 아니었다. 조선일보가 비로소 조선일보로 보일 때다. 보이지 않는 나라, 저 조선일보가 판을 짜고 프레임을 섬세하게 엮어내던 장인정신 깨닫고서 현실을 알아차렸다. 일찍이 보이지 않는 나라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듯했다. 그런 어른은 서로를 ‘친구’라고 부른다. 높고 낮음을 구분하지 않으며, 동등한 인간으로 대한다. 인생 경험 가르치는 인간들의 맥락과 결이 다르다. 더불어 살아가는, 보이지 않는 당신의 나라 속 친구는 서로가 서로를 끌어다주는 독특한 관계를 의미했다. 친구라 부르던 두 어른은 묵묵히 노동자로 하루를 살아간다. 서울대만으로도 이뤄질 수 없는 나라.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도 이뤄낼 수 없는 나라. 없는 셈 치더라도 숨길 수 없는 나라. 그저 파란나라 꿈꾸던 혜은이 목소리로 상상하던 나라. 정치인이, 종교인이 만들어 낸 허상의 보이지 않는 나라를 빗금으로 지우고. 나약한 자를 친구로 삼고 보이지 않는 나라를 살아가는 이들의 우정으로 다시 써 넣어 그려본다. 성실히 살아가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나라는 이념의 경도된 시각, 대깨문과 토착왜구라는 단어들 사이에서 이뤄질 수 없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을 외면하고

[시대성의 창] 자격 없는 것들

2021년 07월 12일
남성과 여성의 신음으로 이루어진 ‘게로게리게게게(ゲロゲリゲゲゲ)’ 두 번째 정규 앨범은 기미가요 전주와 히로히토 일왕의 근엄한 표지에서 황당함을 더한다. 이름부터 ゲロ(게로)=구토, ゲリ(게리)=설사를 뜻한다. 두 개 트랙으로 나눠진 이 곡 쇼와(昭和)는 18분59초, 19분8초 내내 신음소리와 오토바이나 숨소리, 여성에게 상태를 묻는 남성과 갈 것 같다는 여성의 목소리가 중간에 삽입되어 이질감을 표현한다. 그 외에 노래는 볼일 보는 소리, 소리 지르거나 치찰음을 섞어 노랜지 소음인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히로히토가 사망하고 발표한 앨범이니 만큼 전체주의에 대항해 설사와 구토로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목적인지는 모르지만 히로히토의 근엄함이 주는 실소만은 분명하다. 교회와 섹스라는 단어도 이질감을 넘어 황당한 실소를 던진다. 두세 달 사이 두 명의 목사가 성범죄 혐의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전과 삼척의 두 교회 목사 이야기다. 여성 교역자 신체를 만지고 뽀뽀까지 한 것도 모자라 성 접촉 상황을 보고하라 지시했다. 해명이 웃긴다. 남성에게도 차별 없이 대한다는 해명이다. 목양실에서 여 신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목사는 잘못과 해명도 없이 부활절 헌금과 함께 잠적했다. 두 사람 모두 교회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 계정을 감춰버렸다. 제왕적 목사 권력, 여성 향한 그루밍성범죄와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조건이다. 유튜브에는 이곳저곳 강사로 서서 내가 교회를 이렇게 세웠고 하나님의 일을 했다던 성장론만 남아 메아리로 증언한다. 교회만큼 섹스를 외면하는 공간이 또 있을까. 교회서만 볼 수 있는 이 황당한 실소는 성(聖)과 속(俗) 이분법으로 이질감을 안겨준다. 하고는 싶지만 하지는 말아야 할, 마음에는 들지만 외면해야 할. 사랑에는 국경과 나이도 없다지만 신과의 관계 속 터부(taboo)는 도덕과 윤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교회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의 섹스를 향해서 거룩과 경건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교회 내 성범죄는 히로히토와 신음소리 만큼 이질적인 수준이다. 교회 내 성범죄는 현재 진행형이다. 당장 포털 뉴스에 최신순으로 ‘목사 성범죄’를 검색해보시라. 하루 전 기사가 쏟아진다. 그리고 익숙한 단어가 보인다. ‘그루밍 성범죄’ 지난 2019년 JTBC 취재 결과 2005년부터 2018년까지 법원에서 유죄판결 받은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 목사만 79명으로 집계됐다. 면직만 5명. 목사직이 박탈되어야 함에도 당당하게 원로목사까지 된 사례도 3건이나 집계됐다. 앞에선 거룩한 척하고 뒤에선 음란한 목사들 바울은 그리 말하겠지 “가만두지 않겠다”고 기독교반성폭력센터 2018년 상담 통계에서 성별로 분류한 자료를 보면 황당함은 분노로 바뀐다. 미성년 여성 피해자만 21건으로 전체에서 25%를 차지한다. 네 명 중 한 명이 미성년 피해자다. 성범죄자 131명 중 목사만 79명인 자료도 황당한데 그 중 21명은 목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범죄를 저지른 자격 없는 목사들이 지금도 자신의 이름을 바꾸거나 교회를 옮겨 활동한다. 이 기관 조사에서 가해자 직분만 목회자 61%로 전체에서 55건에 달했다. 성서는 치리(治理)를 다룬다. 이단은 멀리하고 교회에 반하는 사람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목사 면직에 미온적 태도를 취한다. 목사직을 박탈한다 하더라도 피해자 치유에는 여러 박자가 늦는다. 교회 내 여성혐오 발언이 여전한데, 어떻게 피해자들을 보듬을 수 있을까. 여러 여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인천의 모 목사는 그게 사랑이었다고 말한다. 기가 막힌다. 교회는 교회법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들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허가 받은 교단에 불과하다. 정교분리 원칙을 말하기 전에 자격 없는 목사들부터 쳐라. 여기는 교회보다 헌법이 위인 대한민국이다. 성경대로 하겠다고? 바울은 부정과 음란, 방탕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향해 “그런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겠다”(2고린 13,2)고 말했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 내 성소수자들을 탄압하고 축복 기도한 이동환 목사를 가만두지 않았다. 임보라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한 황당한 교단도 있었다.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1인 가구로 변모하는 현대 사회에 혼전순결을 강조하는 것도 우습지만, 목사들부터 경건하지 않으면서 섹스하면 죄라고 가르치는 광경이 히로히토 일왕의 사진 앞에 신음소리를 변주한 게로게리게게게 앨범같이 황당한 웃음만 나온다. 청소년 단체가 자기 단체라고 지껄인 그 인간은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언론에 나온 성폭력은 합의된 관계였다며 또 강사 노릇 하겠지. 목사 면직 3년만 지나도 자동 복직 될 테니. 대단하다. K-교회!

[현실논단] 지금, 여기를 꺾은 대가

2021년 07월 12일
한 번의 검색이 전부였다. ‘꽃봉오리를 꺾지 말라’. 현직 교수, 그것도 내일 제출해야 할 과제하다 말고 눈물 흘리며 써 내려갔을 글줄을 눈앞에 두니 아뜩했다. 망할 놈의 교회는 날 가르치던 교수의 학위를 조작이라 고발했다. 직접 웹사이트에 검색해보라며 디테일한 논문 검색 방법까지 담아놓은 글 안에는 총회장으로 보이는 아버지 같은 인간까지 찾아가 눈물 흘리며 호소했던 그 밤 서러움이 생생했다. 하다하다 조작된 학위조작설로 교수 임용 철회를 요구하던 10년 전, 모교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그곳 풍경 이야기다. 돈이면 다 되는 세계라 그렇다. 학부 3학년이 되어서도 새로운 세상은 도래하지 않았다. 우울증은 깊어져 갔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먹고 살지, 해놓은 공부는 있었는지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노래도 서점도 햄버거도, 아무 의미 잃어가다 도피할 무언가라도 있었으면 했다. 정확히 2주차부터 무기력했다. 교수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백지 B5 스마트폰 올려둔 채 졸기도 했다. 대놓고 커뮤니티 했고 여자 아이돌 사진을 정리하다 팬픽을 써내려갔다. 즐거웠다. 매일 교보문고를 찾아갔다.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여자 아이돌 시점에서 생각해 보았다. 아이돌의 작업실부터 화성학까지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공부라는 건 재미있었다. 문제는 밤 10시40분, 무거운 몸 이끌고 도착한 기숙사에서 도드라진다. 현실 세계로 돌아오니 나를 구해 줄 구원자 여자 아이돌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침 6시에 기상해 아침예배를 드리고 또 커피를 마시며 조선일보 읽어야하는 쳇바퀴 돌아가던 하루의 연속이 이어질 따름이다. 죽고 싶었다. 망할 놈의 신학을 전공해도 일할 만한 데가 마땅히 없었다. 목사의 바지가랑이 붙잡아서 속된 말로 똥구멍을 핥아도 시원찮을 판에 교회도 다니지 않았으니 말 다했다. 교수도 허무해졌다고 한다. 수업 열심히 준비했거늘 학생들이 잘 듣지 않으니 “무척 허무하다”고. 학부를 끝마치고 돌아가던 열차에서도 이렇다 할 방도는 없었다. 백수의, 빈 공간의 시간이 이어졌다. 제로로 돌아갔다. 다시 0으로 복귀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탐험했다. 과거로 여행을 떠났다. 10년의 우정이 무엇일지 되짚어보았다. 조선일보, 모루, 노은석, 박준형, 신앙, 기록. 사건이라 하기엔 다발적이고 혁명이라 하기엔 작은 불꽃을 발견했다. 소설을 집필해 책으로 엮는, 누가 봐도 즐겁지 않은 작업을 상상하는 동안 글 짓는 소년을 만났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고 물을 수 없었다. 분명히 외면한, 10년 전 네 앞에 미안한 마음으로 숙연하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아무 말도 않는 소년 앞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단출한 브리핑을 이어갔다. 소년은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10년 후 견디기 어려운 책임을 불러 올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계획이란 것을 열거한다. 제로교육은 실패할지 모른다. 촘촘히 엮어내지 못해 뜯어질 지도 모른다. 허나 장신대만 들어가면 인생길이 보일 거라 굳게 믿었던 어리석음에서 일찍 돌이켰다면. 허나 제 로(路)로 돌아간 3년 전 결정이 더 일렀더라면 인생 항로의 몇 도는 더 틀 수 있었을 것이다. 제로에서 밑바닥에서 잘할 수 있고 사랑하는 분야를 발굴하며 발견한 열다섯 소년은 지금이라도 죽기 전에 발견해줘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나를 사랑하는 일은 무엇일지 하나 둘 꺼내어본다. 기록의 힘. 활자의 가치, 텍스트만이 가능한 일을 흩어놓자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던 과거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미래라는 불완전한 시간이 해체되고 현재라는 시각이 보인다. 꽃봉오리 꺾지 말라던 교수가 중간·기말 대체로 과제 하나만 내주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코헬렛을 소개하는 기사, 2페이지 분량.’ 아예 내게 점수주고 싶다는 제스처로 읽혔을 지경이다. 재미있게 과제했다. 재밌어서 눈물 났다. 수업 한 번으로 A+ 받았다. 운과 사랑의 절묘한 조합. 열다섯 소년은 “그때 신학을 포기했어야 했다”고 삿대질 않는다. “발굴할 때까지 10년을 기다렸다”고. 지혜문학연구 만큼은 잘 들었어야 했다던 후회만큼, 글 짓는 소년이 집중하는 ‘지금, 여기’처럼 오늘의 시간에 주목해야 한다고.

[에셀라 시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2021년 07월 12일
A를 물었으면 A에 대해 말하는 게 정상이다. 대학 이름을 묻지 않는 건 하등 필요없는 논점으로 이어지거나 대화의 핑퐁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대학 이름 대신 전공을 묻는 건 소통에서 실리적이다. 어떤 일을 하는지, 무슨 일이 가능한지 묻는 게 상대방의 관심사를 이해하는데에도 도움을 준다. 나아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살아온 배경을 묻게 되고 자연스레 대학 이름이 나오며 환경을 가늠한다. 하등 쓸데없는 소득 수준, 자가용은 가지고 있는지, 원룸에서 사는지 투룸에서 사는지를 묻지 않는다. 필요 없으므로 묻지 않을 뿐이다. 여럿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아도 단시간 안에 상대를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편리한 방법이 시간의 검증뿐이지 않을까.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시간의 검증만이 가능한 판단 말이다. 매번 시험으로 검증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떤 질문이 적합한지, 질문은 어떻게 준비할지. 대답하더라도 평가가 올바른지 가늠할 길이 없다. 사람의 능력과 성향, 특질을 이해하는 작업이 가능할지 모른다. 사람들을 줄로 세워두고 점수로 매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부모가 개입했는지의 여부, 하다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는지 같은 드러나지 않은 매개들을 합산해서 평가해야 할지, 순수한 개인의 가능성만을 판단해야 할지 기준을 정한다고 하더라도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 불가능에 가깝다. 표면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학력 수준이나 수능 점수가 판단 방법이 될지 모르나, 세상은 수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정치 분과가 그렇다. 정치는 누가 더 수능에서 고득점을 얻었는지에 따라 잘하고 못하고가 결정되지 않는다. 때로는 경험과 입담이 필요한 외교가 있고, 학자들의 고언이 절실한 경제가 있기 마련이다.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의 총합인 이 사회에서 권력의 분배를 위해 존재하는 정치 영역이란 서너 가지도 아닌, 수십만 가지의 문제들이 얽히고설켜있다. 대학 출신이란 정보도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 서면 누구든지 그리 묻는다. 대학 대신 전공을, 전공 대신 가능한 일을. 내뱉은 말이 현실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가다듬고 말 그대로 현실의 언어를 구사하는지 확인한다. 많은 정보를 읽어야 하고, 판단해야 하며, 대입해야 한다. 복합적이고 어려운 과정이다. 따라서 경험은 시간이란 물리 법칙이 작동하는 게 아닐까. 많은 사람들을 경험하여 실패라는 데이터를 축적해 미리 대비하는 것. 물론 경험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경험칙을 무시할 수는 없다. 경험이 무조건 옳은 게 아니라 경험에서 얻어지는 물리 법칙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현실 앞에 검증의 도구는 단단해진다. 공정한 룰은 이처럼 현실의 벽이라는 허상 앞에 한낱 무너질 모래성에 불과하다. 공정한 룰 자체가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번 시험을 치를 수 없다. 인기 투표와 능력주의는 하등 관계가 없다. 정치인으로 적격인지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시험 출제자는 신이라는 말인가. 애초에 인간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걸, 수치화로 평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건 근대적 해결책일 뿐이다. 전체주의도 불가능한 인간들의 욕망에서 싹 텄다. 사랑도 매번 시험할 수 없다. 상대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테스트하는 줄 안다면 얼마나 불쾌해 할까. 그래서 신도 인간을 시험하지 않는다(야고 1,13). 인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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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랑 2026년 9월 1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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