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라 시론] 소녀의 이름으로

나는 이제껏 김용철의 새능력을 왜 더 빨리 탈퇴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좀 더 빨리 탈교(脫敎) 했다면, 조금 더 빨리 관계를 정리했더라면…. 소년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은 우연히 입수한 18년 전, 한 영상을 보면서 오롯이 해소되었다. 연세중앙교회 YBS 인터뷰에 담긴 소년은 짐짓 말할 수 없는 모든 죄를 짊어진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알고 지은 죄인데 왜 그걸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는가….” 도대체 중학교 2학년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카메라 앞에 서서 자책하며 스스로를 옥죈단 말인가. 새능력을 탈퇴하고서 나는 단 한 번도 김용철의 설교를 끝까지 들어본 일이 없다. 양심에 찔려서도 아니고 눈물이 감격으로 앞을 가렸기 때문도 아니다. 1시간 설교 모든 문장 옭아맨 감정 동원과 협박 구조, 의미 없는 아멘의 반복, 철학도 신학도 없는 감정만 휘젓는 수준의 처참한 호통은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누구나 깨닫게 된다. 그는 오로지 의식의 흐름에 의지한 채 청중을 감정적으로 끌고 다닐 뿐이다. 각 단락 사이의 논리적 연결은 찾아볼 수 없다. 자기도취에 빠진 간증을 서사로 가져다가 어떻게든 이어 붙이는 게 전부다. 모든 것 공허함의 파도밖에 보이지 않던 시절, 나는 죽을 용기를 가지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시절 스물 두 살의 나는 미지(未知)의 두려움을 견뎌야 했다. 이제는 지옥에 가는 건가 싶었다. 가족도, 연고도 없이 새능력에 붙잡혀 노동 착취를 당했어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탈출이 재생되었다. 때로는 방송실 귀퉁이에서 일을 하는 장면이 꿈으로 재생되었고, 어쩔 땐 빠져 나오는 꿈을 꾸기도 했다. 많으면 한 달, 뜸하면 서너 달에 한 번 연속된 꿈은 새능력으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을 가리키고 있었다. 과거의 나로부터 찾아오는 ‘시간의 죄책감’이 나를 오랜 시간 사로잡은 것이다. 몸은 난파선을 벗어났지만 아직도 나의 혼은 그곳에 갇혀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시간. 탈교는 무너진 영혼 속에서 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저 어른들이 주입한 죄책감은 남은 인생의 각도를 비틀었다. 어그러진 관념과 여성성에 대한 왜곡된 이해는 긴 시간의 교정이 아니었으면 영구히 손상되었을 것이다. 바로 그 소년이 자신의 입으로 토설한 ‘알고 지은 죄’는 이브가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은 상징이다. 왜곡된 여성 이해의 뿌리는 기독 담론 그 자체다. ‘성숙한 소녀’라는 어른들의 거짓말이 빚어 만든 망상이 소녀의 노동을 착취했고, 소년의 미래를 짓밟은 것이다. 탈교 이후 나는 차근차근 기독 담론을 해체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소녀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그 소녀는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천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악과를 먹은 후 야훼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침잠한 것처럼 나는 소녀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되어가는 과정을 순연(純然)하게 바라보듯 과거의 시간을 다시 배열하고 재건하는 소녀의 손길을 말없이 볼 뿐이었다. 소녀는 잃었던 재주, 놓쳤던 이름, 잊혔던 얼굴을 되찾았다. 에덴의 난민, 아담과 이브는 재건의 기회조차 잃었으나 소녀는 신의 질서를 거스르고 마침내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자리에 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녀의 일하는 광경 속에서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기억의 화해’가

[사설] 그저 ‘병사1’로만 생각하는 정신머리 이런 게 해병 없는 ‘해병 정신’

2023년 7월 19일 경상북도 예천군 내성천에서 13명의 해병대원과 폭우 실종자를 수색하는 작전에 투입된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지 2년 10개월 만에 법원은 1심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2026.05.08) 포병 대원이 구명조끼도 없이 허리 깊이까지 물에 들어가는 건 수색 작전이라 할 수 없다. 상급 지휘관의 성과 집착이 대원의 몸으로 지불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임 전 사단장은 수중 수색 사진을 보고받고도 멈추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구체적 위험을 인지한 상황에서 위험을 가중시키는 지시”라고 밝혔다. 과실이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죗값은 징역 3년이었다. 특검은 5년을 구형했음에도 대원의 생명을 담보로 작전 성과로 밀어붙인 지휘관에게 법원이 매긴 값이 고작 그뿐이었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선고 직후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군 복무로 나라를 바친 이들이면 먹먹해질 물음이다. “아들의 희생에 대한 책임이 이렇게 가볍다면 어느 부모가 안심하고 자식을 군에 보내겠느냐.” 임 전 사단장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수중 수색을 지시한 건 내가 아니”라는 장문의 이메일과 문자를 보냈다. 재판부는 “오랜 재판 경력에서 이런 피고인을 본 적이 없다”고 질타했다. 해병 정신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 해병의 죽음 앞에서 한 행동이 그것이다. 임 전 사단장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2023년 7월, 해병대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하려 했을 때, 누군가 그것을 가로 막았다. 대통령실 번호로 걸려온 통화 뒤 14초 후 이첩 보류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수사단장은 ‘집단항명의 수괴’로 입건됐다. 이첩을 막은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1심 법원이 임 전 사단장의 과실치사를 인정했다는 것은 그 이첩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말단 지휘관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군의 관행을 지적했다. 그 관행을 깨려 한 건 해병대수사단이었고 그것을 다시 덮으려 한 것이 침묵의 권력이었다. 해병 정신을 가르치던 이들이 누구보다 해병의 죽음을 덮으려 했다.

[현실논단] 당신의 설교를 듣지 않는 이유

2021년 03월 31일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가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황당한 통계인용을 보았다(2021.02.18).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가 발표한 자료를 반박하며 균형 잡힌 보도를 요구한 것이다. 크리스천투데이는 손 씨의 행동을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며”라고 보도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중대본이 발표한 종교시설 감염자 비율 17%는 국내 코로나 전체 확진자 중 집단감염 45.5% 안에서 꼽은 데이터를 의미했다. 따라서 전체 확진자 중 종교시설 감염자는 8%에 불과하니 교회는 코로나 최대 감염 경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코로나는 사람을 통해서 사람으로 감염된다. 세 차례 코로나 파동(wave)을 겪으며 우리는 두 차례 집단감염을 목격했다. 두 차례나 종교집단 통해서 감염되었고, 그 종교집단은 개신교

[시대성의 창] 교회 바깥 나서면서 시작되는 것

2021년 03월 31일
채플하기 싫어서 대강당을 나가려던 차에 동급생과 눈이 맞았다. 점심을 먹자기에 식사했고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대학원 카페에서 2차를 보냈다. 세 시간 이어진 대화는 지난 번 이야기의 연장선이었다. 신학교에 입학해도 무얼 해야 할지 모른다며 한 숨 지었다. 기나긴 대화는 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을 이끌어 가셨는지 재차 확인하던 자리였다. 그러나 그 뒤에 찾아오는 빈 공간, 다음 인생사 이야기를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지를 모르는 막막함이 느껴졌다. 촉. 그 때의 촉은 빗나가질 않았다. 미소는 밝지 않았다. 일찍이 자퇴한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까지 보여주며 소개시켜 주겠다고 말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영적인 세계에 몰두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은 내 앞에 앉아서 곱상하게 웃기만 하던 이 자매는 인터콥 회원이다. 7년 전에도 인터콥이 어떤 단체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들 회원을 강하게 붙잡던 거대한 이야기 하나. 복음의 서진(西進)이 이스라엘에 이르면 예수가 다시금 재림할 거라는 강한 믿음체계 신봉하던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 단체 인터콥 창시자 최바울은 5년 전 목회자 국제선교 컨퍼런스에서 구속사적 신학으로 알려진 신약학자 헤르만 리델보스를 인용했다. “사도바울 관점은 구속 역사 그 자체의 사실이 중심이다. 그것은 ‘구원의 서정’이 아니라 ‘구속의 역사’다.” 구원에는 순서가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이끌어갈 보이지 않는 손에 주목한다. 백 투 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운동도 하나님이 만들어가는 마지막 시대, 종말의 때에 인터콥과 대한민국을 사용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한다는 믿음체계다. 따라서 통치자가 나타나 세계를 통합해 사람들을 노예로 만든다던 80년대 세대주의 종말론을 재인용한다. 우리 손으로 마지막 시대를 만들어가자는 거창한 구호쯤으로 보일 테지만. 거대한 하나님 나라 비전에 이끌려 기꺼이 헌신하는 착취 구조를 들여다보거든 눈에 띄는 ‘빈 공간’이 거대 담론으로 가득 차 있는 모순이 보인다. 인터콥서 벗어난 심정 누구보다 이해하니까 신앙에서 벗어나 함께 모름의 바다 유랑하자 따라서 하나님 나라 운동에 이끌림을 받았다는 선민사상과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던 우월감은 현상에 불과하다. 너는 꿈이 있니? 그런 시시한 세상의 꿈? 열강으로 가로 막힌 가련한 이 나라 대한민국 통하여 마지막 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헌신이 필요해 같은 꿈꾸는 자의 담대한 포부는 성경의 특정한 구절을 견지망월(見指忘月)하게 만든다. 압도하는 성령의 역사에 동참하면 지식쯤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기도와 복음 전파에 힘쓰자는 구호로 한 사람 한 사람 인터콥을 움직이는 부품으로 전락한다. 지금도 바벨탑 세우려던 ‘벽돌’에서 세상지식을 초등학문으로 비유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기술쯤으로 묘사한 최바울의 설교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인터콥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낯설지 않다. 40년 전 오정현이 상품으로 내다팔던 무브먼트였다. 프랑스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은 탈합치(De-coincidence) 개념을 꺼내들었다. 미완성 같은 피카소 작품에서 가장자리를 주목했다. 칠하지 않은 그림과 캔버스가 합치(coincidence)하지 않고 이탈한(de) 어긋남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학교에서 교회에서 무리에서 집단에서 제도권에서 이탈하면 지옥 간다고 겁박한다. 네 마음의 빈 공간을 내가 우리가 만든 별이 끌어당겨야 한다고 말한다. 선한 의도 안에 숨겨둔 악마의 미소로. 내 앞 자매의 미소를 관찰하자 곧바로 감성주의(感性主義)와 척을 두었다. 기독교 신앙을 벗어나기까지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지옥에도 갈 수 있다는 불안감 말이다. 사람을 물건처럼 부려먹는 허황된 별. 그 별 좇아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는 비정상 구조. 그 때의 촉은 지금도 발동한다. 누군가 신념에 차 별을 말하면 믿지를 않는다. 그 별은 머지않아 신념과 함께 빛바랜 청사진처럼 타버리기 때문이다. 모름의 바다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변해가고 모든 전통이 무너지는 시대라서 이해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수 있고, 불안할 수

[사설] 누구에게나 그리워했을 어린 봄에 주목한 신애의 유려한 글줄을 보며

2021년 03월 27일
떳떳이 과거 기억을 소환해 해명을 요구한 여자 아이돌 (여자)아이들 멤버 서수진의 질문에 배우 서신애가 입을 열었다.(2021.03.26) 서신애는 분명한 글줄로 “무리와 함께 불쾌한 욕설과 낄낄거리는 웃음”으로 ‘별로 예쁘지도 않은데 어떻게 연예인을 할까’ ‘어차피 쟤는 한물간 연예인’ ‘저러니 왕따 당하지’ ‘선생들은 대체 뭐가 좋다고 왜 특별 대우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며 공개적으로 서수진을 지목했다. 일반인 위치에서 서수진 행적(行跡)을 공개한 여덟 차례 증언과 다르지 않게 분명한 글줄로 피해 사실을 주장한 것이다. 학교폭력은 오래 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진실을 규명하기 어렵고, 규명하는 과정에서 사실로써 증명할 만한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여덟 차례 게시물은 서수진이 살아온 다층적·복합적 환경을 조명했고 해명을 요구했다. 앞으로 법의 판단으로 시시비비 가려낼 상황에서 우리는 몇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서수진의 잘못은 자기 잘못이 “있다면”을 전제로 자신의 행적을 직면하지 않은 채 사과와 해명을 소속사에 일임한 점이다. 첫 입장을 발표한 소속사는 통화 사실을 거론하며 학교 폭력 행동은 전혀 아닌 사실로 확인했다고 밝혔다.(2021.02.21) 법적 판단에 앞서 법률대리인과 조율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이어졌다. 피해자로 나선 이들을 가해자로 지목된 서수진이 직접 나서서 용서를 구하고 해명해야 함에도 대중에게 해명했을 뿐, 피해자를 만나지 않았고 이조차 법률대리인에게 일임했다. 지인에게 발생한 사건이고 서수진의 말마따나 한때 좋은 기억을 공유한 이들과의 문제에도 어떻게 자신이 나서지 않았는지. 정말 잘못하고 사과의 뜻이 있다면 대리인을 거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법적인 책임을 뒤로하고서라도 피해자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 대중 앞에 펼쳐낸 이유를 생각해보면 서수진이 직접 피해자와 만나야 했다. 아픈 기억이 아물지 않은 이들에게 어른들을 뒤로하고 자연인 서수진으로 나서서 오해라면 오해를 풀고 잘못한 일은 고개 숙여 사과하여 용서를 구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서수진은 서신애에 이르러서 관계를 명백하게 부정했다. 그리고 자신을 “떳떳”하다 표현한 서수진이 분명한 언어로 서신애에게 해명을 요구했다.(2021.03.19) 그동안 자신과 피해자들을 시린 겨울의 존재로 비유하며 사과하기를 기다렸던 서신애가 분명한 글줄로 서수진의 행위를 공개했다. 서수진은 저 유려한 글줄을 보면서 느껴지는 게 없는가. 글줄 사이에 아로새긴 서신애의 아픔에 선택적 기억을 나열할 자신이 있는가. 자기를 둘러싼 의혹과 시선에 무얼 말하려는가. 서신애의 수신인을 되짚어보면 서수진이 아니라 대중임을 알 수 있다. 피해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굳은 땅에 피어오를 어린 봄의 새싹에 주목했다. 서수진은 이 말의 의미를 아는가.

낯섦

2021년 03월 04일
갈대밭 서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에서 낯섦과 마주한다. 낯섦, 너라는 낯섦 앞에 서노라면. 나는 분노를 느낀다. 너를 대하지 못해서, 만지지 못해서 한탄한다. 낯섦이니까. 또 하나의

[시대성의 창] 가해자 文法

2021년 03월 01일
모든 사람을 두 부류로 분류할 수는 없다. 인간의 다양한 결을 관찰하다 마주치는 아름다움이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내 편과 네 편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은 비정상이고, 나는 정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문법을 발견했고, 이 문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하고 실장으로 자처한 녀석도 같았다. 나보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미모가 누가 봐도 호감을 주었고 선생님의 신임을 받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와 사이가 틀어졌다. 실장이란 녀석이 특정 과목 선생님을 왕따 시키려고 모의하질 않나, 철없는 친구들의 주먹 다툼에도 아랑곳 않으며 말리지도 않으니. 그 녀석의 인간적 평가를 저급하다고 평가한 마지막 이유는 다름 아닌 내 사랑하는 친구를 어렵고 힘든 지경에 밀어 넣은 사건들 때문이다. 하나의 날(日)도 아니라 오랜 시간 내 친구를 격투기 경기장으로 밀어 넣고서도 침묵으로 방조한 역겨움을 보고 가장 정상적인 인간이야 말로 가장 역겨울 수 있다는 교훈을 알아차렸다. 석식 다 먹을 시점에 또 다시 내 친구의 말꼬리를 잡으며 괴롭혀대기에 나서서 사실은 이게 아니고 저게 진실이라 말하기에 이르렀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네 녀석이 무엇이관대 끼어드느냐.’ 침묵으로 일관하자던 선동에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그 날 보충 1교시 수업에서 유일하게 대답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업에 성실히 참여하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 하나 때문에 친구들의 흥미로운 재밌거리가 사라졌다. 그 광경, 실장이 주도해 반 아이들이 싫어하던 영어 선생 왕따 시키려던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는 분위기가 느껴지자 웃음이 나왔다. 즐거웠다. 내 뒤에는 내가 믿는 신념, 야훼 하느님이 자리했다. 괴롭힘 당하던 친구와 학교 바깥에서 놀고, 공부했다. 그 친구를 제외하면 반 아이들과 딱히 소통하지 않았다. 성경 보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돌에 관심조차 없었던 시절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옳은 일은 옳다고 그른 일은 그르다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멋있는 거라고 철저한 외부인 자리에 서자, 누구와도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은 자유인의 해방감을 만끽했다. 외롭지 않았다. 늘 내 할 일에 최선을 다했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생각으로 매일매일 가슴이 설렜다. 바람이 부는 하늘 구름 바라보며 하느님의 손길에 감격했고, 성경 읽지 않은 날이라면 꽃과 나비를 보면서 사귀자고 고백도 했다. 그걸 지켜보던 문학 선생님은 당황하지 않았고, 순수 문학 청년이라며 외부인의 공원을 지나쳤다. 실장이란 놈은 학기가 끝나갈 무렵까지도 왕따 당하던 또 다른 친구 하나 보살피지 못했다. 탄핵도 이런 인간이 당해야 하지 않은가. 일 하나 못하는, 왕따 하나 대처 못해 기어이 친구의 사진속 얼굴이 압정으로 뚫리는 광경을 보고만 있는 무능한 정권. 담임은 실장이 아니라 나를 불렀다. 그 친구에 대해 아는 게 있느냐고. 언제부터 실장 녀석 괴롭힘은 사라졌다. 담임을 욕하며 미워하는 말들을 쏟아내자, 선생님께 말씀드린 직언이 잘 통했다고 생각했다. 그 녀석은 체육계와 연예계 폭력 논란이 벌어지는 작금의 상황에 무슨 감정을 느낄는지. 10년이 지나서도 스스로를 정상으로 상정하는 인간들의 문법을 접하거든 가장 비정상일 가능성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은 다양한 군상에 불과하다. 엄연한 사실 앞에 정상과 비정상의 분류가 무슨 소용인가. 멋들어지게 꾸며낸 아이돌을 예찬하고, 찬미하는 근거도 멋있기 때문이다. 순환논리가 만들어낸 아이돌의 허상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실장 아우라에 보이지 않았던 그간의 민낯. 담임의 충격도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1학년으로서 마지막 등교가 다가왔다. 평소라면 성경책을 읽었어야 했다. 그날은 읽기 싫었다. 복도 끝 같은 자리를 뒷짐 지고서 맴돌았다. 브로콜리너마저 ‘졸업’을 불렀다. 가사가 완전히 와 닿지는 않았다. 담임께서 나를 불렀다. 자신의 마음을 담은 파란색 봉투를 건넸다. 두 장 빼곡 담긴 선생님의 문체에서 마음과 마음이 통한 그간의 관계가 생각났다. 나는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에 맞설 힘을 갖춰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 힘은 옳은 일에 옳다고 말하며, 그른 일에 그르다고 말하는 사람과의 연결된 관계에서 갖출 수 있다. 옳은 일은 무엇인가. 코로나 파동에도 광화문에 떠들어 댈 자유? 예배당 문 열어 놓고 일천 명이 예배할 자유? 웃기지 마라. 정의란 인간마다 다르다는 정의로 우매한 인간 등쳐먹는 거짓말쟁이 참교육시켜주는 게 그게 옳은 일이다.

[에셀라 시론] 든든함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

2021년 02월 28일
자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이유가 단지 내 생일에 몸살감기 걸려 한 발자국 내딛지 못할 때 집까지 찾아와 부축해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네. 점심시간 방송실에 찾아갈 때마다 멋있게 일하던 성실함도, 그저 같이 있는 게 좋아서 자정까지 컨테이너 자네 방에서 대화한 그 밤도, 고입고사 한 시름 놓았다고 먼저 집에 돌아가 서운했던 이유도, 자고 있는 선욱 깨어나거든 친구들과 박수치며 당황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던 정겨운 풍경도. 느껴지던 든든함이 못내 겨워 잊을 수 없었기 때문만도 아니라네. 과거 모든 기억들이 실오라기 남김없이 사라지는 이 시대에 자네에게 느껴지는 든든함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네. 모든 전통적인 것들이 무너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무너지지

[지애문학] 잊어버려야 할 때

2021년 02월 24일
D+1100. 지울까 말까 고민만 수백 번. 달달해서 짜증났다. 어제의 네 미소가 오늘의 쓰디쓴 망상으로 이어질 줄은 정말로 몰랐다. 가끔은 폭발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연례행사라도 하듯 한 달에 한 번쯤 예민해지는 시기가 미웠다. 그래서 어제는 이해해주는 줄로만 알았다. 착각이었다. 만나자 해도 확인 하나 없었고 연락을 해도 받지를 않는다. 고작 네 글자, 그 한 마디 꺼내려 잘해줬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마지막 한 모금 마시고서 찌그러뜨리고 나서야 일어났다. 추웠다. 지애야, 패대기치고 나오는 순간만큼은 좀 이성적이면 안 될까. 하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목도리 하나 걸치지 않고 니트 한 조각만 입고서 나왔으니. 거지같았다. 떠는 몸 이고서 이곳저곳 배회할 존심만 남았다. 햇살에 몸을 쬐니 따뜻해지기는 한다. 정신 차려지는 것 같자 물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며칠쯤부터 적신호였을까. 스케줄을 뒤져봐도 아무리 뒤져도 모르겠다. 그을 수 없는 선 넘어 어리광부리던 순간과 패대기치려는 순간이 모호해졌다. 벤치를 지나서 한 발자국 내딛는 저 커플은 오늘로써 며칠 째일까. 저 홀로 외롭게 걷는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사람들이 바라보는 유지애 나란 인간에게 1100일 정확히 천백일 째 깨졌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쪽팔림과 부끄러운 모호한 경계에 서 허둥지둥 대는 멍청한 유지애 바보 같은 유지애 지껄여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시 카톡을 열었다. 지울까 말까 고민했다. 아직도 선언해선 안 되었다. 못 받아들이겠다는 거다. 아직도 1은 사라지지 않았다. 또 다시 전화를 거는 순간 말려드는 거다. 절대로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 유지애하고 매듭졌다. 이쯤하면 연락은 주겠거니 예측했다. 틀려먹었다. 바짝 고개라도 숙여야 할지, 정면돌파할지 두 가지 갈림길에 서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갑작스런 오늘의 날씨만큼이나 혼자서 홀로 서기에 돌입해야 할 유지애가 가련하고 불쌍했다. 그렇다고 널 만난 게 당당한 유지애를 바래서 만났던 건 아닌데. 어쩌다 네가 내 자리 한 가운데 서 있었을 뿐이고, 네가 있어 웃음꽃 피었을 뿐이고. 단지 너에게 패대기 한 번 쳤을 뿐인데 그 웃음꽃이 시들어 혼자서 겨울을 나야 한다는 게 슬펐을 뿐이고. 맞아, 후회해. 후회한다고. 그니까 제발 돌아오라고. 적당히 배회하다 돌아와 부장 눈빛 스캔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잘해 한 마디 던지는 눈빛이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라디오에선 잔잔한 음악이 끝나갈 채비를 마쳤고, 사연을 읽으며 소박한 하루를 지껄일 테지만 나아졌던 마음은 또 다시 상승 곡선을 그려 내려갈 준비를 끝낸 것 같았다. 헤어지자는 네 글자 한 마디 본 순간 올라갔다 내려갔다 끝 보이지 않을 롤러코스터 오르고 내리다 또 오르고 내린다. 두 시간 배회했으니 그 만큼 늦게 나가면 되는데 상관없다. 어차피 야근이었으니까. 짜증이 밀려온다. “유 과장님 대신해서 다 끝냈어요. 밀린 원고 오탈자 확인 했으니까 바로 편집 들어가면 되겠어요.” 대답하기 귀찮았다. 두 다리 쭉 뻗고 몸을 뉘었다. 퇴근할 시간이 되어서야 매듭지을 수 있었다. 좀 나아졌다는 걸 캐치했는지 나 아니었으면 유 과장님 큰일 났을 거라고 알랑방귀 뀌었다. “여자친구랑 싸웠다면서?” 대답도 하기 전에 이런 말들을 늘여놓았다. 미안. “맘대로 지껄여도 돼. 근데 처음이었다고만 말하지 마. 그거 추하니까.” 모니터에 올려둔 무슨 고교 학교신문 칼럼이 아른거렸다. ‘잊어버려야 할 때’ 최예림 학생의 이름으로 올라온

[지애문학] 퇴근 길

2021년 02월 24일
“저도 그 방면인데…. 타세요!” 괜시리 들킬까봐서 말 못하던 차 말할 때까지 기다린 꼴이었다. 바보 등신. 좀체 멀미가 낫지를 않으니 태워주는 아량도 무의미했다. 지금쯤 지하철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단어 외우고 있어야 할 시간. 몸은 편해져도 속 버리느냐 몸은 힘들어도 속 편하느냐. 하지만 이 남자 옆에서는 말짱했다. 이름 모를 적당한 향수. 운전대에 올려둔 손목의 시계. 힐끔 쳐다볼 때마다 반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턱선. 차체의 흔들림 하나 없는 고요한 분위기가 좋았다. 이 남자에게 풍기는 색다른 느낌이 만날 때마다 좋아하게 만들었다. “자유의새노래 제1라디오 7시 뉴습니다. 살인 및 사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지수 씨 공판에서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하자…….” 이 남자는 정신없이 일에 치이다 퇴근할 무렵 귀에 꼽은 이어폰에서 울리는 고요한 노래 같다. 자기 할 일에 열심히 살아가면 생기는 느낌일까. 하루 종일 졸지 않고 피곤함 없는, 오히려 퇴근길에서야 머리가 맑아지는 그런 느낌. 마스크 없이도 숨 쉴 수 있는 믿을만한 그런 사람. “제 어떤 부분이 좋으세요?” “… 네? 숲 같아서 좋아요.” 아, 그러시구나. 하하. 그렇죠.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아이니까요. 라고 말하는 순간 ‘제’가 실은 ‘쟤’였다는 걸 뒤늦게 알아먹었다. 이 바보. “진유 씨네 논설위원하고 밥 먹었어요. 겉으론 치고받는 것 같아 보여도 따로 만나거든 곧 친해요. 오늘 사설도 기막히던데요?” 기막혀서 할 말이 없다. 동시에 말한 사설 제목. 같은 소속사 멤버를 잔혹하게 살해하고도 죽일만해서 죽였다고 말하다니. 그런 악마를 변호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지 물은 논설위원의 글. 차장이 갑자기 빼고 넣으라는 이 사설 때문에 퇴근도 늦어졌다. 한때 좋아했던 가수인데, 하루아침에 악마가 되고 살인자가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매일 지하철 타고 걸어서 출퇴근하면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기야 하죠. 그치만 지하철에서 읽는 소설 무지 좋아해요. 버스는 흔들림이 커서 읽지도 못하는 걸요.” 숲 같다던 말, 사실 당신에게 어울리는 칭찬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모두에게 미움 받는 악마조차도 마음껏 숨 쉴 수 있게 만드는 숲. 언제든 찾아와 머물고 지나가도 불평 한 마디 않는 편안한 숲. 가끔 찾아와도 서운한 티 드러내지 않는 안아줄 숲. 소설과 논문, 단독 기사로 죽어버린 연애세포가 살아난다. “근데 찢어버렸어요. 지수가….” 잠시간 우리의 대화는 끊어졌다.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찢어진 상고장 앞에서 애써 웃으려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신호에 멈추자 노을을 바라본다. 들이 마신다. “어른들은 늘 만들어준 길대로 살아가면 편할 거라고들 하죠. 그 길 벗어나려던 피해자가 원망스러웠을 겁니다. 매일 꿈에 찾아와 망치를 들고서 가슴을 내리칠 때면 ‘미안해’ 한 마디에 멈추고서 사라지는 원혼. 정신과 진료로 밀고 들어가자고 해도 듣질 않아요. 이런 고민도 사치라고.” 플레이리스트에서 완전하게 사라진 김지수…. 아니 악마의 이름은 내게도 당연했다. 창 밖 바라보던 노을이 어쩌면 머잖은 마지막 하늘이란 생각에 먹먹했지만 상관없었다. 나와 먼 거리에서 숨 쉬고 있을 뿐이니까. 그런 악마에게도 안아줄 숲이란 게 대단해 보였다. 더는 악마 만날 기회조차 사라진 당신이 마지막 발갛게 물드는 노을을 바라보자 신호가 바뀌었다. 조용히 움직이는 차 안 라디오에선 단신이 끝나 있었고 노래 하나가 먹먹한 분위기를 전환할 뿐이었다.
1 11 12 13 14 15 25
소랑 2026년 9월 19일 토요일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