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운세 2025년 8월

I 네 굳건한 믿음 흔들리는 마음 건실한 성장통 E 불현듯 떠오른 사건과 장면들 직관을 믿으라 N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없어 S 돌다리 두드리듯 묻고 다시 묻는 고요 속의 대화 F 손에 잡히는 근심 놀라지는 마시라 그저 한여름일 뿐 T 그까짓 문제들 피해보겠다고 달리진 마시라 J 말보다 내게 힘이 되는 건 얼음 한 조각

좁은 사고방식의 그런 지구, 정복할 이유라도?:『우리 미나리 좀 챙겨 주세요』

2024년 11월 18일
우리 미나리 좀 챙겨 주세요듀나 지음 | 창비 | 80쪽 | 1만원 한 번 읽고는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웹사이트 이곳저곳을 뒤져야 했다. 간단한 도식을 보고 나서야 또 하나의 편견이 깨지고 말았다. 인간과 비(非)인간의 구분 말이다. 메카 공룡인 당근이를 괴롭히는 십 대 중반의 남자아이들과 따돌림을 당하는 기분의 진짜 공룡과 가짜 공룡의 구분은 차별적인 지구별의 행태를 폭로한다. 차별의 문제는 지구에서 사는 인간의 오랜 문제다. 언제나 차별은 존재했고 어디에서나 차별은 작동했다. 작가가 SF 장르를 통해 차별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좀 더 상상력을 가동해 보았다. 바로 메가 공룡과 생물학적 공룡의 차이를 구분하는 게 어리석은 일인 만큼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 또한 다르지 않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손바닥만 한 지구에서 우열을 가리는 일이란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인간의 공격성은 생존을 위해 진화했다. 차별이란 근거도 생존 본능의 한 증거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하는 차별이란 칼날의 끝은 언제나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작가는 공존을 택한 게 아닐까. 나는 이 지점에서 작은 별 퍼피레드가 생각났다. 끝내 공멸하고 만 또 하나의 세계, 그 세계를 돌이켜보면 멸망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향한 핀잔과 조롱, 절망이 뒤섞인 공간, ‘우리끼리’라는 차별과 남의 인생이나 어림잡는 편견이 난무하는. 끝끝내 돈이 없어 파괴되어 버린 마지막 자본주의적 결말까지도. 그런 사람들만 지구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현준 건축가의 말처럼 만일 인공지능이라면 이런 좁은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의 지구를 떠나 살지 않을까. 굳이 인간을 죽여가면서 지구를 가져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굳이 그런 인간들과 마주하며 퍼피레드 할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기후위기·인류의 끝’ 아티스트, 심규선의 경고

2024년 11월 03일
‘우린 어디에서 왔으며/이제 어디에로 가는가/한때는 집이라고 부르던/낙원에서 추방된 난민’ 아티스트는 누구보다 우리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지구를 위한다는 말은 결국 종의 생존이라는 미명(美名)일 뿐이라는 것. 우리 문명의 존속이라는 슬로건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작년 10월 9일 발매한 심규선의 정규 4집 ‘#HUMANKIND’(#휴먼카인드)의 타이틀곡 ‘Question’이 이목을 끌었다. 가사만 있는 영상을 보았을 땐 그저 물음을 던지는 아티스트의 노래쯤으로만 생각했다. 영상과 함께 울려 퍼지는 멜로디에 다른 차원의 감정을 느꼈다. 화면은 끝을 향해, 아니 죽음과 파멸을 향해 내달리는 인류의 서글픈 이면을 과감히 드러낸다. 얼굴을 갈아치우는 듯 바뀌는 인류의 동상과 킹을 처치하는 퀸의 체스 장면, 지구를 허물고 아파트를 세우는 그래픽에서 소름이 돋았다. 멜로디가 가리키는 문장의 의미를 단어 하나하나 영상으로 표현해내는 완벽한 편집이 인류의 끝을 덤덤한 마음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던지는 물음. ‘우리 사람의 본성은/과연 선한가 혹은 악한가’ 강렬한 메시지 심규선 정규 4집 타이틀곡 ‘Question’에 쏟아진 이목 지속 가능에 대한 반성과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들 인류의 위대한 지력과 업적은 미래의 세대를 편리하게 했지만 지금의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고통과 불안이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전쟁, 인공지능(AI)을 위협으로 생각하는 역설, 발전한 것 같으나 제자리걸음일 뿐인 인류의 현재에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는데 무슨 잔치냐”고 말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고백처럼. 이 음악의 메시지를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내뱉은 문장과 단어, 호흡까지 단 하나의 질문을 향해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느냐고. 그동안 심규선은 음반을 통해 생태와 기후, 인류에 대한 메시지를 냈던 아티스트는 아니었다. 그저 사랑과 로맨스를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쯤으로 생각했다. 전혀 다른 분위기에 심규선이 아닌 줄 알았다. 전혀 다른 사람인 듯한 아티스트가 던지는 질문에 무엇으로 응답해야 할까. 또 다른 질문이 마구 쏟아지는 것은 나뿐일까. ©헤아릴 규

이달의 운세 2024년 11월

2024년 10월 31일
I 끊임없는 용기 타오르는 불꽃 그럼에도 너는 E 아픔도 슬픔도 이젠 모두 안녕 잘 가라 과거여 N 네 숨결로 따뜻한 낙엽으로 익어갈 군고구마 굽는 밤 S 터벌터벌 걸으며 문뜩 뒤돌아보니 벌써 겨울이구나 F 뒷담에 험담하고 트집이나 잡으니 고약한 미운 심보 T 의지하지 않아도 가능성 있다고요 믿으세요 자신을 J 넘어지고 깨지고 되돌아가더라도 희망이라는 이름 P 사방이 가로막혀 절망적인 때라도 건져냄 받으리라 ★ 애매한 대답보다 선명하고 분명한 색채가 정답이다 ♥ 값비싼 약보다도 대자연의 풍광에 흠뻑 빠져 봄직도 1 너의 이름에 담긴 깊이와 능력, 의미 가능성을 믿는다 2 숨겨진 진실 주의 바람에 담긴 의미 한뜻만은 아닌데

세상이 미쳐 돌아가도 너에게 전해줄 마지막 멜로디: ‘그래도 돼’

2024년 10월 25일
정겨운 영화의 한 장면 [괴물] 앞에서 가수 조용필의 뛰어난 위력을 느꼈다. 영화의 변주를 그저 패러디쯤으로 여겼다. 아날로그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배우 이솜의 장면과 갑자기 등장한 영화 속 낯선 이솜에게서 한 가지 의아한 감정을 느낀다. ‘당신이 저기에 있어서는 안 되는데.’ 머지않아 이솜의 흔들리는 눈빛에서 알츠하이머라는 불편한 진실을 떠올리고 말았다. 장면의 변주는 [부산행]과 [응답하라 1997]을 떠올리게 했고 마냥 패러디처럼 보이던 파편화된 장면들은 곧 한 여인의 인생임을 깨닫는다. 전 인생을 아날로그 텔레비전으로 다시 보는 병실 속 이솜은 알츠하이머 환자인 것이다. 이름조차 없는 6·25전쟁과 어쩔 수 없는 아들의 군 입대, 여인은 말없이 미소를 가득 안은 채 사랑하는 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기억은 더 멀리 1991년 학예회로 돌아간다. 텔레비전에서 사진을 찍어주던 낯익은 얼굴을 본 여인의 미소는 곧 무표정으로 바뀌고 곧 간호사였음이 드러난다. 여인을 애초롭게 바라보는 배우 박근형의 낯빛은 더욱 장면을 슬프게 만든다. 아날로그 텔레비전에서는 여인의 기억이 끊임없이 재생된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괴물과 한국의 경제 성장 그리고 발전사, 딸의 수능, 아들의 군 입대, 학예회, 점차 기억은 어렸을 소녀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마주한 어머니. 가장 원초적인 고향이 속삭인다. “그래도 돼.” 무릎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강한 힘. 다시 그 힘이 다음의 시간을 살아가는 배우 전미도와 변요한에게 미소가 되어준다. 영화 [괴물]과 [부산행]까지는 그래도 괜찮은 서사였다고 생각한다. 살만한 시대의 살만한 메시지 말이다. 이후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 [더 글로리]에 이르러 현대 한국인은 더욱더 미래에 두려움을 느끼는 듯하다. 극단이 만든 자본주의의 숨겨진 웃음과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경쟁, 개인으로 파편화되어 철저히 ‘서울’만 남은 한강의 최후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철저히 노인의 죽음을 묵인하고 있다. 압도적인 노인자살률과 노인 빈곤율은 다음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욱 외면을 권고한다. 살아남기 위해 버려야 할 존재라는 것을. 여인 곁에 남은 박근형과 아날로그 텔레비전은 그나마 나은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그마저도 기억할 텔레비전조차 없는 이들은 끊임없는 기억의 변주 속에서 스스로의 세계가 사라져가는 공포를 매일 경험한다. 그동안 우리는 한국의 경제 성장과 발전사를 끝없이 찬사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트라우마를 단 한 번이라도 직면해 본 일이 있는지 묻고 싶다. 지금 여러분의 머리를 스쳐가는 수많은 잔혹한 사건들. 이름조차 없는 6·25전쟁까지도.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일단 1950년도 6·25전쟁을 겪으며 온 국민이 트라우마 환자예요. 그거 한 번도 제대로 치료한 적 없어요. 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식을 낳고 굉장히 집에서도 폭력적으로 자식들한테 했고, 사회구조도 그렇게 돌아갔고…. 제주 4·3 그렇게 민간인이 3만명이 학살당했는데, 그 트라우마 한 번도 치료한 적 없어요. 광주항쟁? 한 번도 치료한 적 없어요. 이런 것들이….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이 온 사회에 굉장히 넓게 퍼져있는데…. 그런 것들이 이렇게 누적이 되다 보면 타인에게 적절한 정도의 공감을 한다든지, 타인의 고통에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이 사회구조적으로 굉장히 어려워져요.”(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정혜신) 발전의 정점에 이르러 사람들이 미치고 좀비가 되어도 여인은 웃는다.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나무 도형을 맞추지 못해도 여인은 웃는다. 여인에게 남자는 슈트 입은 멋진 아들이고 여자는 마법 소녀로 변신한 딸로 보일뿐이다. 그럼에도 여인은 환하게 웃는다. 여인은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가왕 조용필 신보 11년 만전 국민 눈시울 붉힌 뮤비 외면하고 싶은 진실애틋한 눈빛의 노쇠한 남자한국 발전사와 소녀의 시간 그렇게 보이는 이유천만 영화의 서글픈 변주에마냥 패러디인 줄 알았는데 그리고 던지는 질문완벽한 알츠하이머 연기와‘자신을 믿어 믿어 보라’는조용필의 간절한 멜로디에한국의 트라우마를 묻는다 조용필은 이번 앨범을 두고 “이게 마지막일 것”임을 밝혔다. 그에게 마지막 멜로디는 패자에게 향해 있었다. “올봄 TV에서 스포츠 경기를 보는데 카메라가 패자는 전혀 비추지 않고 우승자만 비추더라. 그래서 ‘패자의 마음은 어떨까, 속상하고 섭섭하겠지만 나 같으면 다음엔 이길 거야, 힘을 가질 거야, 지금은 그래도 돼, 한 번 더’하는 생각을 했다.” 달에서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여인은 무엇을 의미할까.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은 이주형 감독은 “희망이란 단어가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을 응원하는 음성과 시선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여인은 기억을 안은 채 다음 시간을

가면 껴도 변함없이 우울하고 불안한 삶:『가면생활자』

2024년 10월 09일
가면생활자조규미 지음 | 자음과모음 | 240쪽 | 1만5000원 열여덟 소녀 진진은 우연히 아이마스크의 신제품 베타테스터에 선정되었다. 아이마스크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특수 물질 ‘판게아’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사용자의 얼굴에 맞게 변하는 물질이다. 가면은 외모를 바꿔주고 신분을 상승시켜주는 도구다. 잘 사는 사람들은 사교 공간인 정원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고 한다. 진진이 오랜 시간 가면을 흠모한 이유다. 작중에서는 가면을 반대하는 ‘안티마스키드’라는 단체가 등장한다. 이들은 묻는다. “왜 그들은 가면을 쓰는가? 누가 그들에게 가면을 쓰게 하는가? 가면은 있는

잘못 보낸 야한 사진에 여자애 가방셔틀 된 이야기:『열일곱, 최소한의 자존심』

2024년 10월 09일
열일곱, 최소한의 자존심정연철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8쪽 | 9800원 야한 사진을 잘못 보낸 태용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다섯 명의 이야기를 묶은 단편소설집. 야자를 빼먹는 수호 이야기가 이 책 제목의 내용이다. 가장 마음에 든 에피소드는 ‘너에 대한 소문’이었다. 실수로 보낸 야짤에 태용이 식겁한다. 같은 반 몬스터에게 비키니 사진을 보낸 것도 모자라 야한 말까지 덧붙였기 때문이다. “어때? 맘에 들어?” “꼴리지?” 눈을 비비고 다시 본 카톡방엔 건희 대신 여자애 몬스터가 있었다. 몬스터가 황당해할 만했다.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보란 듯이 아버지를 데려온 몬스터 앞에서도 실감나지 않았다. 담임은 잘못했다고 석고대죄라도 하라지만 몸은 움직이질 않는다. 건희는 ‘김태용’을 ‘변태용’으로 바꿔 부르며 놀려댄다. 몬스터의 이름은 박에스더. 에스더 몬스더 몬스터로 부르다 보니 달라붙은 별명이다. 몬스터는 별명답게 굴었다. 하루 신문을 먹어 치우는 데서부터 드림타워로 여행 간 사회 선생한테 쪽방촌 시위한 건 봤느냐고 바락바락 대들지 않나. 학생회장 후보로 나와 인권 침해가 될만한 파파라치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핏대 세운 녀석이다. 다른 후보들보다도 선심성 공약이 아니란데서 몬스터의 정직한 품성이 느껴졌다. 법과 원칙, 공정한 사회에 깐깐하고 예민한 그 애한테 이상한 걸 보냈으니 후회가 밀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아버지는 인권 변호사라는데. 몬스터에게 찾아가 사과했지만 돌아온 건 법의 처단뿐. 그러나 용서할 마음은 있는지 온종일 가방셔틀을 시킨다. 노예계약인 셈이다. 이틀 째 이어진 가방 셔틀에 아이들이 뭐라 씹고 다닐는지 자존심만 갈리는데. 약속한 시간 예정된 장소에 다다르자 담배 피우는 동생에게 훈계 중인 몬스터를 발견한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태용이 다가가지만 몬스터가 뺨 맞는 모습을 보기만 한다. 돌아오는 길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몬스터와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는다. 문뜩 태용의 눈에는 당찬 여자, 박에스더가 보였다. 구약성경 속 인물인 에스더는 페르시아어로 별을 의미한다. 아버지가 내놓은 자식에다 선생도 포기한 자신과 달리 살아가는 몬스터. 털털한 주인공 태용의 독백이 지루하지 않다.

[마음 속 그 사람] 같은 반에 발달장애라니, 반장으로서 얼마나 부담 되겠니:『괴물, 한쪽 눈을 뜨다』

2024년 10월 09일
괴물, 한쪽 눈을 뜨다 은이정 지음 | 문학동네 | 251쪽 | 1만2500원 네가 반장이 된 일만으로도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을 거야. 초등학생 때와는 달리 중학생 아이들의 입은 더욱 거칠고 과격하고 괴상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세상은 너의 처음 무관심한 태도처럼 영섭이의 왕따에도 침묵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해.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생각하겠지. ‘상처가 나도록 심하게 때린 것 또한 아니었다. 나는 담임한테 말할 만한 사건은 아니라는 결론을 재빠르게 내렸다.’(38쪽6문단) 맞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속이 편할지 몰라. 그렇지만 만일 영섭이가 초식동물이 아니라, 천성이 육식동물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아이가 강한 힘으로 아이들을 나쁘게 대했더라면 너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런 강한 영섭이가 적당히 거칠고, 적당히 과격한 왕따에도 가만히 있겠니. 그래서 태준이 너의 용기가 절실하다고 생각해. 넌 기절놀이로 쓰러진 영섭이를 보건실에 데려다주었어. 하태석 패거리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반장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어 놀랐어. 좀 더 우리 사회가 약한 자에게 관대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너무도 쉽게 그 참상이 알려지기도 전에 비극으로 숨지는 것 같아 서글퍼. 그럴 때마다 생각해. 세상은 특정 종(種)으로만 이루어진 건 아니라고. 사라지는 생명체에 제 발을 끊어버리는 어리석은 인간이 되지는 말자고. 관련 글 보기중학교 2학년 3반, 사바나에 사는 동물농장 이야기:『괴물, 한쪽 눈을 뜨다』

중학교 2학년 3반, 사바나에 사는 동물농장 이야기:『괴물, 한쪽 눈을 뜨다』

2024년 10월 09일
괴물, 한쪽 눈을 뜨다은이정 지음 | 문학동네 | 251쪽 | 1만2500원 발달장애를 가진 주인공 영섭은 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반장이 된 태준이는 이를 묵고하고 마는데. 교실의 문제에 누구보다 관심을 기울이는 담임교사, 이렇게 세 명의 시점으로 각각 전개하는 소설이다. ‘황라사마귀’ ‘아프리카맹꽁이’ ‘기린’ ‘사자’ ‘혹맷돼지’ ‘얼룩말’ ‘카멜레온’ ‘늑대부엉이’ ‘관모호저’ ‘숲개’ ‘시베리아호랑이’ ‘가시두더지’……. 이야기 내내 영섭이가 변신하는 동물들의 종류다. 왕따를 당하는 현실을 견디기 위해 영섭이는 갖가지 동물로 변신하기 바빴다. 영섭이네 2학년 3반은 초식동물과 육식동물로 나뉜다. 순하고 착한 아이들을 초식동물로 분류하고, 영빈이와 민우(204쪽)를 비롯한 패거리 애들은 육식동물로 말이다. 육식동물은 어김없이 영섭이처럼 순하고 착한 초식동물을 괴롭히기 바빴다. 돈 뺏기와 책·필통 훔치기는 기본이고, 책을 훼손하거나 학교를 무단 외출, 교실에 불을 지르는가 하면 담배를 피우고 심지어 기절놀이까지 저질렀다. 보통의 아이들이 저지른 일들은 반장 태준의 눈에 보기에는 적당히 나쁜 짓들이었다. 갑자기 시작된 일이 아니라 아이들 사이에서 조금씩 있었던 일.(43,9) 담임은 호되게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한마디로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괴롭히다가 나한테 걸리면 죽는다는 이야기다.”(47,3) 연습장에 적어서 여론 동향을 확인하기도 했고,(53,5) 때로는 가혹하게 책상 위에 꿇리기도 했다.(88,2) 몽둥이찜질도 강행했다.(158,1) 담임의 호된 훈육에도 아이들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상황은 악화됐다. 영섭이가 자신을 괴롭히는 하이에나 자리에 몰래 오줌을 놔버리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교실은 한순간에 패닉에 빠졌다. 모두가 대청소에 돌입했다. 영섭이에 대한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더해졌고, 심한 장난에 쓰러지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과연 2학년 3반은 1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마음속 끓어오르는 욕구를 괴물로 표현하는 태준이의 묘사가 흥미롭다. 결국 이 욕구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덤덤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사뭇 어른스럽다. “너는 참 괴상망측하게 생겼구나. 하지만 뭐, 옆에 두고 길들이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당분간 조금 거슬리기는 하겠지만, 괜찮아. 어떻게 생겼든 괜찮아.”(220,3) 관련 글 보기[마음 속 그 사람] 같은 반에 발달장애라니, 반장으로서 얼마나 부담 되겠니:『괴물, 한쪽 눈을 뜨다』

같은 고등학교 가자던 그 약속 이뤘을까:『귤의 맛』

2024년 10월 09일
귤의 맛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8쪽 | 1만2500원 다윤, 소란, 해란, 은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네 명의 소녀들은 다 같이 신영진고등학교에 입학하자고 대뜸 약속해버린다. 헤어지기 싫다는 이유에서 저지른 충동적인 선언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다양한 사건·사고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입학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 건 좋다. 각자의 이야기가 산발적으로 흩어지는 바람에 한 사람의 이야기를 쉽게 잊고 말았다. 너무도 많은 사건들 속에 잊히고 만 개개인의 사건들. 이 또한 저자의 의도였을까. 은연한 학교폭력, 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위장전입, 가부장적인 가정환경, 심지어 중년 남성 특유의 병신력까지 다 괜찮았다. 한 가지 모자란 게 있다면 늘 죽음의 무게를 진 여학생의 모습이었다. 어른들은 청소년을 바라보며 그 시절을 부러워하곤 한다. 그러나 삶의 무게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가혹하다. 어리다고해서 예외가 아니다. 작가는 인물이 처한 환경의 구체적인 정황이 아니라, 심리를 묘사했더라면 어땠을까. 좀 더 마음에 대고 “왜” “어땠을까” “괜찮니”를 물어봤다면 좋았을 텐데. 꼭 극단적인 상황을 끌고 와 지옥도를 펼쳐놓지 않더라도 충분히 죽음의 무게를 진 여학생을 묘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저자는 학교 축제에 학생들에게 1000원을 빌린 후 먹을 걸 사먹었다는 내용을

17살까지 키스를 못하면 헐크로 변해버린다고?:『지구를 안아줘』

2024년 10월 09일
지구를 안아줘김혜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76쪽 | 1만3000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집. 표지에서 눈치를 챘듯 무척 재미있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인간이면 누구든지 경험할 입시, 꿈, 인간관계, 갑자기 재난이 일어나는 상상 등 흥미로운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너무 가볍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다. 적당히 가벼우면서 무겁지도 않다. 애써 교훈을 담으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유쾌한 풍자에 어처구니없는 웃음도 났고, 씁쓸한 뒷맛도 진해졌다. 특히 키스 바이러스에 감염되고만 학생들이 작가 이상의 날개를 읽으며 헐크로 변해가는 장면에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웃음 뒤 기억에 남은 내용은 없었다. 다음은 두 개의 에피소드를 정리한 내용. #키스 바이러스: 윤아 ‘키스 바이러스’를 피하려 입 맞춰야만 하는 윤아가 한숨을 쉰다.(11쪽1문단) 키스하지 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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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랑 2026년 9월 1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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