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운세 2025년 8월

I 네 굳건한 믿음 흔들리는 마음 건실한 성장통 E 불현듯 떠오른 사건과 장면들 직관을 믿으라 N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없어 S 돌다리 두드리듯 묻고 다시 묻는 고요 속의 대화 F 손에 잡히는 근심 놀라지는 마시라 그저 한여름일 뿐 T 그까짓 문제들 피해보겠다고 달리진 마시라 J 말보다 내게 힘이 되는 건 얼음 한 조각

이달의 운세 2024년 5월

2024년 05월 26일
I 민달팽이 같은 숭고한 정신의 너 인생아 E 프리지아 떠오른 네 이름의 청춘 N 손 뻗으니 안도 고단함 속에서 완성되는 하루 S 서향이면 황혼도 덥기만 할 뿐이니 F 네 입술의 고백이 만드는 네 미래와 돌아보는 뒤안길 T 말보다 앞서도 이뤄 낼 일들뿐 걱정도 태산 J 옳고 그름이란 선택지보다도 감각이란 정답 P 짓밟힌 것 같으나 상처 하나 없으니 ★ 오죽 답답하면 그런 결정도 ♥ 합주는 아우름 연습 없인 이뤄질 수 없는 게임 1 필요한 줄 알았더니 착각이구나 2 물 없이도 커피 한 모금으로 풀렸을 갈증 3 협박보다 무서운 보이지 않는 교훈 4 어제 일은 어제 오늘 일은 오늘 5 겸손의 문법은 자학 아닌 자애 6 진심으로 바라면 이룰 일 왜 없겠나 7 노력만으론 해소되지 않을 복합적 총체 8 백 보 걸었으면 열 박자는 쉬어야 9 뜨거운 여름에도 시원한 빗줄기가 기다리나니 0 힘겨움도 담벼락 거슬러 오르는 담쟁이처럼 운세를 보시려면➊자신의 MBTI에 동그라미

오직, 죽은 자만 기리는 왜곡된 기억 방식의 한국사회:『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2024년 05월 13일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지음 | 난다 | 268쪽 | 1만5000원 위키피디아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은 다음처럼 설명된다. ‘천안함 피격 사건은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 772 천안이 조선 인민군 해군 잠수함의 어뢰에 의해서 격침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했으며 6명이 실종되었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읽으며 첫 단원에서부터 내가 알던 퍼즐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사실 관계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특정 정보만 기억하던 탓이다. ‘천안함 침몰 후 58명의 장병이 사건 현장에서 구조되었다.’ 저자 김승섭도 ‘천안함 생존장병 실태조사’ 전까지는 위키피디아 본문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나 역시 서울시청 거대한 꿈새김판에 마흔 여섯 명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쉰여덟, 58명은 생존되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생존장병의 PTSD 분포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천안함 생존장병의 아픔 천안함은 북한에서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했다.(천안함 피격 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26쪽5문단) 허나 천안함 생존장병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천안함 생존장병 실태조사는 피격 8년이나 지난 시점에 이뤄졌다. 사건 이후 한 번이라도 PTSD 진단을 받거나 치료 받은 적이 있는 이의 비율은 91.3%에 달했다. 베트남 참전 미군의 30%에 비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2017년 한 해 PTSD를 진단받거나 치료받은 천안함 생존장병 비율은 50%였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 참여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PTSD 진단을 받거나 치료받은 사람의 숫자는 전체의 13%였다. 천안함 생존장병을 힘겹게 만드는 것은 ‘패잔병’이란 단어로 돌아온 비수였다. “패잔병 호칭에는 전쟁에서 지고 온 군인이라는 무능함에 대한 비난뿐 아니라,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 함께하기 어려운 재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 묻어 있었습니다.”(90,1) 패잔병 낙인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군대였다. 사건이 발생하고 3개월이 지난 2010년 6월 30일 한민구 합참의장 인사청문회에서 “경계작전 실패는 확실하지만 전체 작전을 담당하는 합참의 작전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생존장병은 정훈장교 교육 시간에 “연평해전 1차전은 이겼고 연평 2차전과 천안함은 졌다. 너희들이 그런 정신 상태면 똑같은 일이 다시 발생한다”며 패전이라 표현했다고 증언했다. 생존장병들은 정말로 패잔병이었을까. ❶천안함은 1980년대 만들어졌으며 음파탐지기 소나는 북한의 유도어뢰 주파수를 인지할 수 없었다. ❷국방부와 합참은 사건 발생 며칠 전 징후를 인지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❸최원일 함장은 북한 어뢰로 인한 폭침을 의심해 통신장으로 대응 공격을 요청한다고 해군본부에 전달했으나 해군작전사령부는 어뢰 공격 보고를 상부 기관에 전달하지 않았다. 따라서 군 지휘부의 작전과 정보 실패, 무능한 대응을 힘없는 생존장병들에게 잘못을 돌려 책임을 전가했다. ◇양극화로 변질되어 피해자를 옥죄는 정치 논리 2018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한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한다. 태극기국민운동본부가 마련한 천안함 46용사 분향소 앞 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쌍용차 해고노동자에게 비난과 욕설을 던졌다. 저자는 물었다. ‘왜 우리는 천안함 사건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같이 애도하고 또 살아남은 자들을 함께 위로할 수 없는 것일까.’ 세월호와 천안함을 바라보는 양극화된 시선도 다르지 않다. 세월호와 천안함은 별개의 비극적 사건이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서해바다에서 발생한 국민의 상처다. 제2연평해전을 대하는 시선도 마찬가지다.(49,1) 저자는 재난 생존자를 대하는 한국의 역량을 언론에서 발견했다. “각 신문사는 친북-반북, 친정부-반정부, 보수-진보의 대립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었으며 이데올로기가 다른 타 언론보도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었다”(천안함 침몰 사건의 보도 경향과 이데올로기적 의미) 국민의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무자비한 취재를 자행한 행위도 세월호나 천안함이나 다르지 않았다. “어느 방송사에서 나를 엄청 부르길래, 나와 달라고 하길래 알았다고 하고 나갔다. 방청석에 앉아만 있고 발언은 안하는 걸로 하고. 근데 현장에 가보니까 내가 마이크 들고 질문을 받는 등 말을 하게 세팅이 되어 있었다.”(145,1) 두 사건을 대하는 시민들의 폭압적인 행동도 빼닮았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괴롭힌 루머는 배상금을 1인당 10억원을 받았다는 거짓 정보였다. 천안함 생존장병들을 향해선 천안함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서약서를 쓰고 국가로부터 보상 받았다는 주장이다. 두 주장 모두 거짓이다. 국가유공자와 상이연금 신청 과정은 오로지 생존장병의 몫이어야 했다. 생존장병들은 신청 대상자인 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소방공무원 PTSD 사례를 든다. “사고성 재해를 당한 집단 중에서도 공무상 요양 신청을 해서 승인을 받은 집단이 가장 우울증상이 낮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226,2) 일하다 다쳤을 때 조직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소방공무원의 우울증상 발생이 달라질 수 있었다.

정의할 수 없는 사과… “미안해” 외마디에 담긴 의미:『완벽한 사과는 없다』

2024년 03월 25일
완벽한 사과는 없다 김혜진 지음 | 뜨인돌출판사 | 168쪽 | 1만1100원 리하에게 진실을 말하기엔 늦어버렸다. 리하의 인생을 박살낸 신지호가 내 친구라는 사실을 말하기엔 너무도 늦어버린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지호가 사라졌다. 이름 모를 고등학생이 죽었다고 한다. 지호의 이유 모를 강제 전학이 연이어 벌어졌다. 주인공 지민은 지호와 어려서부터 친했다.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를 보면서 마치 지민은 지미니 크리켓, 지호는 피노키오가 된 것처럼 굴었다. 지미니 크리켓이 피노키오의 양심인 것처럼 지민이도 지호에게 그런 존재였다. “네가 내 양심이야.” 도대체 지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이스크림 하나, 맥스봉 만치 친절한 정다온 같은 학원을 다니는 다온이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다. 아이스크림 하나에 맥스봉 정도만 한 친절. 거절하기엔 애매하고 받기에는 머쓱한 미소를 들이밀고 보는 녀석이다. 지민에게도 그랬다. 가깝지는 않은데 아주 모르는 건 아닌 녀석이 불쑥 찾아온 것이다. 처음엔 지민이는 퉁명스럽게 대했다. 이내 경계심은 풀렸다. 편의점 사건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모르는 여자애들이 지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발끈한 지민이가 한 마디 거들었다. “틀린 말을 하고 있잖아. 강요하고 그런 일은 없었어. 그건 사고였다고.”(21,16) 그러니까 지호가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다 착한 고등학생 선배 엿 먹이려고 보드 한 번 타라 독촉했다가 죽게 만들었다는 얘기가 거짓말이라는 해명이었다. 이후로 다온이는 지민에게도 친절하게 대했다. 정다온 본인이 하고픈 말을 대신 해줘서 고맙다는 얘길 꺼냈다. 다온이도 지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온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특히 재희가 그랬다. 다온과 사귄 적 있는 재희가 자존심 부리기 시작했다. 다온이가 어장쳤다는 이유로 못 살게 군 것이다. 지민의 마음에서 양심이 발동했다. 학원을 나오지 않기 시작한 다온에게 프린트를 챙겨주기 시작한 것이다. 다온과 가까워졌다. 문득 다온이는 옹벽 위쪽 아파트 텃밭(53)을 가리켰다. ◇언덕 위의 세계 밖의 텃밭 안의 세계에 사는 우리하 다온이와 둘이서 도착한 텃밭엔 아무도 없었다. 밭주인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뜻밖의 인물을 만난다. 우리하. 지호가 가해자였던 그 사건에서, 피해자였던 그 아이.(57,8) 지민이는 혼란스러웠다. 편의점에서 변호를 한 건 지호였는데 다온이는 죽은 고등학교 선배를 말하고 있었다. 더구나 피해자로 알려진 우리하는 소문으로만 듣던 인물이었다. 리하 역시 소문에 못 이겨 전학을 갔고, 견디지 못해 죽음을 선택했다는 후문만이 무성했다. 리하는 아무렇지 않게 텃밭을 가꾸고 있었다. 다온이도 텃밭에 토템을 세워 만들고 있었다. 언덕 위의 세계 바깥에는 텃밭 안의 세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지민은 진실을 말해야 하지만 말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사실을 말하기엔 피해자 리하는 아무렇지 않게 사는 듯했고 덮어 놓고 지내기엔 양심에 거리끼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말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64,8)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기말고사 수행평가가 다가왔다. 지민의 마음에는 양심이라는 단어가 아른거렸다. 지민에게는 논리로 공격하고 방어하는 따위의 말장난이 아니었다. ‘실질적인 행동의 문제’(65,6)였다. 사회 선생은 궤변이나 늘어놓는 것 같았다. “답이 없으니까 매번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걸 알기 위해서 배우는 거지. 사람의 일이란 게, 기계적으로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니까.”(65,13)

[이야기 꿰매며] 누구에게나 못다 할 무언의 사연이 있어

2024년 03월 20일
여중생 은재가 까탈스레 행동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습니다.(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최영희) 말 못 할 사연 말이죠. 자식뻘 사우에게 한글 좀 알려 달라 말하기까지 속으로 끙끙 앓은 찔레꽃 아주머니의 사연도 그렇습니다.(서울 사는 외계인, 이상건)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연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연히 만난 리하가 알고 보니 내 가장 친한 친구의 피해자라는 사실 앞에 누구라도 할 말을 잃고 말 겁니다.(완벽한 사과는 없다, 김혜진) 진실을 마주하고 그저 도망갔더라면, 더는 이야기로, 우리 곁으로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진실을 말하지 않은 파렴치한 지민’ ‘그까짓 용서 않는 리하’라고 서로를 오해하고 말았을 겁니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목도해도(창밖의 아이들, 이선주) 견디기 어려운 폭력을 마주해도(싸우는 소년, 오문세) 다리가 벌벌 떨리는 건물 지붕 너머 밤방으로 기어간 호세처럼(안녕히 계세요, 아빠, 이경화) 용기를 내어 누군가의 사연을 물어봐야 할 때입니다. “이순정, 요즘 넌 어떠니…….”(열여덟 너의 존재감, 박수현)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마음 알기는 나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언제나 나 자신은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25시, 26시… 시간마저도 사들여 망가지는 사람들:『숲의 시간』

2024년 03월 18일
숲의 시간 김진나 지음 | 문학동네 | 192쪽 | 1만1000원 누군가의 아름다움을 흠모할 수는 있으나 그 아름다움을 훔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아름다움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다. 욕망은 할 수 있으나 훔칠 수 없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을 가질 만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태계는 돈이면 모든 아름다움을 살 수 있다고 속삭인다. 자유와 사랑, 우정과 시간까지 모조리…. 그래, 모든 걸 돈으로 사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또 얼마나 편리하게 썩어 버릴까. 모든 존재에는 유통기한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삶에도 정해진 시간이 있다. 정해진 시간을 무제한으로 만들려는 무모함이 돈의 존재와 인간의 욕구에서 출발한다. 이 책 ‘숲의 시간’에서 묘사된 도시 크룽을 보면 알 수 있다. 자본주의 생태계로 직조된 크룽은 그 어떠한 공간 중에서도 기술집약적(16,2)이다. 누구든지 가진 자들의 주거지인 바탕 구역에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빈민들의 공간(17,2)을 따로 분리한 눈속임 도시일 뿐이다. 대부분은 젊은이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며 늙은이를 불안하고 게으르게 만든다. 도시는 점점 해 아래 잠식하지만 그 어떤 어둠보다도 뜨겁고 늪처럼 질척거린다. 망가진 도시에서 고장 나지 않은 사랑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망가진 도시의 망가진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흠모하고 빼앗으려 안달 나 있다. 따라서 늙은이들은 아름다움을 가지기 위해 젊은이의 젊음을 착취한다. 젊은이는 먹고 살아야 하므로 자신의 젊음을 값싼 노동력으로 내어 판다. 이들이 망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아름다움을 욕망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생태계 때문이다. 이들은 분명히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조각품이나 사진, 노래, 공간에 의해 되살아나지 않는다. 오직 아름다움은 그 순간 빛을 발했다가 머지않아 사라질 뿐이다.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아름다움이 남길 바라는 욕망이 이들을 망가지게 만든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란 그리움이다. 다들 그때의 아름다움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말이다. 늙은이는 젊은이를 짓밟아서라도 그리워했고, 젊은이는 자신의 젊음을 허비해서라도 그리워했다.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밖에 사랑할 줄 몰랐다”(46,1) 애초에 크룽은 “동기와 욕구로 조직된 시스템”(55,9)이다.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자본주의로 직조된 세계다. 돈이 있는 자라도 그리움을 사들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해야 했고 누군가의 노동력을 착취해야 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내일을 꿈꾸지 않는다. 오로지 져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곧 늙을 나 자신을 한탄할 뿐이다. 늙음에는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내일이란 시간이 주어짐에도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빠듯한 시간 체계를 살고 있다. 1시간을 더 할 수 있다면, 아니 허비하는 시간을 박박 긁어 내다팔아서라도 아름다운 굿즈를 사 허기진 마음을 배불리 할 수 있다면. 시간 매매 기술을 개발한 회사 크로노스는 도시의 욕망을 정확히 읽어냈다. 도시는 첨예하게 발전하지만 인간의 능력과 존재는 점차 퇴화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거꾸로 시간을 팔아 돈을 벌었음에도 빈곤해질 뿐이다. 왜 과학과 기술은 발전해도 사람들은 빈곤해질까. 왜 아름다움은 사그러지는 것일까. 왜 그리움은 인간을 고독하고 외롭게 만드는 것일까. 왜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돈과 기술로도 무한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일까. 크룽의 시스템으로는 “왜“에 답하지 못한다. 도시는 빈곤하지만 자연은 충만하다. 가난하거나 부하다는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충만함이다. 들녘의 따뜻한 바람은 여유로움을 가져다준다. 가진 게 없는 우주의 삭풍은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씻어버린다. 도시는 끊임없이 비교 의식을 심어 줌으로써 도파민을 통해 쾌감을 선물하지만 자연은 속에서 솟아난 생수가 되어 스스로의 목을 축이게 한다.(요한4,14) 자연은 말 그대로 ‘그러함’ ‘스스로 있는’ 그 자체로의 답이다. 스포일러 주의 숲에서 만년을 걸어온 소년 주루는 크룽의 사람들과 달리 자연의 힘을 알고 있었다. 자연에서 불어오는 사랑의 힘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노동의 빈곤함에 허덕일 때 주루는 하나 뿐인 동생 주연을 위해 노동했다. 사라진 주루를 찾아 죽음까지도 불사한 하민이도 다르지 않았다. 죽어가는 빈곤한 자들을 향해선 “최악의 고통이 어떻게 강한 힘이 될지” “사사로운 감정에 매이지 말라”면서도 모든 시간을 사들여 자기 딸을 찾으러 미지의 세계로 과감히 몸을 내던진 하민의 어머니처럼. 아름다움을 빼앗으려는 크룽의 뻔뻔한 욕망이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실재 시간인 크로노스와 달리 체험 시간인 카이로스는 사람에 따라 느리게 흘러가기도 빠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누구나 사람은 시간을 허비하며 살기도 하고, 때론 충만하게 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젊은이의 노동력은 늙은이가 착취할 대상이 아니요 늙은이의 지혜도 젊은이가 빼앗아갈 대상이 아니다. 각 사람에겐 살아갈 시간이 주어진다.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살아온 족적에 따라 성장하는 이도 있고 퇴보하는 이도 있다. 살아 숨 쉬는 이 자리에서 제 역할에 충실할 때 각자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아름다움은 흉내 낼 수 없는, 유일한 아름다움이며 훔쳐갈 수 없다. 따라서 아름다움을 보더라도 흠모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훔쳐가는 뻔뻔함을 내보이지는 않는다. 애초에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빼앗은 순간 이미 아름다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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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랑 2026년 9월 1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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