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지지 않은 소녀의 시간, 초침은 지금도 움직인다: 「세계의 주인」

세계의 주인윤가은 감독 | 119분 | 12세+ | 2025 십여 분이었을까. 조금은 과장돼 보이는, 그래서 어색하고도 낯익은 주변 사람들의 웃음과 주인공의 미소. 아버지는 없지만 단란해 보이는 가족과 학교를 날아다니는 여고생 주인. 영화 초반, 오랜 시간 평범한 모습에 할애하던 감독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스포일러 주의 성범죄 폭력성 주의 담임 교사가 건넨 농익은 사과에 호흡이 곤란한 척 너스레를 떠는 장난까지는 우연인 줄 알았다. 성범죄자 퇴거를 주장하며 사실상 서명을 강요하던 동급생 장수호(배우 김정식) 앞에서 버럭 소리 지르는, 그러니까 “나도 성폭력 피해자야”라는 섬뜩한 장면에서 나는 ‘도무지 농담일 리 없다’고 판단했다.

쾌락으로는 알 수 없는 것:『안녕히 계세요, 아빠』

2022년 10월 27일
안녕히 계세요, 아빠이경화 지음 | 뜨인돌 | 168쪽 | 1만원 꼭 섹스를 해야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유독 몸의 쾌락에 집착하는 이들 일수록, 그 횟수에 소유욕을 투사한 만큼 퇴행적 자의식을 드러낸다. 걸레 딱지 붙이는 것도 우습다. 횟수도, 쾌락도 중요하지 않다. 어른이 되어가는 고통 속에서 꿈처럼 달달한 솜사탕 같을 뿐이다. 많이 넣어도 순식간에 녹아 사라져 버리는 맛. 또 입에 넣고 녹여도 다시 먹고 싶게 만드는 맛. 처음 연주에게 느낀 불편한 감정도 오해에서 비롯한다. 그 마음 깊숙한 곳에 숨은 소유욕을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몸은 어른이 되어가지만 생각은 퇴행하고 만다. 연주가 마마보이는 싫다며 호세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내가 먼저 어른이 되었다는 오만함이 아니다. 어른의 쓰디쓴 맛을 느끼기엔 아이의 달달한 맛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주인공 진호세는 같은 반 연주와 지내며 마음 속 소유욕을 발견한다. 그 소유욕은 엄마가 자신을 집착하는 욕구와 다르지 않은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엄마는 남편과 이혼하고 호세와 둘이서 산다. 호세의 아버지가 너무도 쉽게 아내를 놔준 덕분인지 그로 인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충격은 호세에 대한 집착으로 드러났다. 언제나 말 잘 듣는 진호세를 그리워하는데. 살아있는 호세가 아닌 엄마의 마음 속 착한 아들 진호세를 바란다는 점에서 호세를 옭아맨다. 사랑에도 적당한 애정이 있어야 하는 법. 착한 아들 호세를 기다리는 엄마에게 진절머리 난다. 여자애도 만나고 엄마의 품에서도 벗어나야 할 나이. 반항하듯 수업을 마치고 보고 전화도 없이 연주를 따라간다. 하릴없이 쫓아가는 동안 복잡한 골목을 지나 도착한 건물. 지난 번 둘만의 공간은 빨간머리 노랑머리 율희라는 이름의 선생이 방을 메우고 있었다. 호세의 생각을 스치는 이미지는 자극적이었다. ‘연주는 노랑머리와 무슨 사이일까? 둘은 어제 밤방에 같이 있었던 걸까? 노랑머리는 연주에게 팔베개를 해 주고 연주는 노랑머리의 허리를 끌어안고 둘이 간지럼이라도 태우며 키득거렸을까? 그러다가 키스라도 했을까? 혀도 집어넣었을까? 노랑머리는 연주의 겉옷 단추를 풀러 가슴을 열었을까?’(53,8) 그러나 연주에게 몰입하는 동안(이라 쓰고 회피라 읽는다) 연주는 계속해서 호세를 가차 없이 밀어낸다. 더는 마마보이가 아님을 증명하겠다고 다짐하는데. 밤방으로 향하듯 용기를 내어 아빠를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호세는 아빠를 만날 수 있을까? 지겨운 세상과 ‘밤을 여는 방’ 사이는 한 끗 차이다. 떨어질까 무서운 기분을 이겨내야 도착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의 짜릿함은 어른만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은 무서운 기분을 회피하는 대신 짜릿함을 몸의 쾌락으로 대체할 뿐이다. 따라서 섹스를 해야만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텔레비전에서 고대로 방영된 여자 가슴, 의도한 해적방송이었다:「채널 식스나인」

2022년 07월 13일
채널 식스나인 이정국 감독 104분 청소년관람불가 1996 과감히 드러난 여자 가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린 나이에도 뇌리에 강하게 남을 정도였다. 이정국 감독 ‘채널 식스나인’은 해직기자 PD 윤제하(신현준 분·扮)를 주축으로 해적방송을 개국하고 이를 통해 황기영 의원(박근형 분) 전직 세무계장 정치자금 사건을 폭로하는 내용이다. 90년대를 상징하는 홈페이지와, 특유의 멜로디, 지금은 단종된 기아 베스타(BESTA) 승합차, 두꺼운 CRT모니터에선 고주파음이 들려올 것만 같다. 웃음을 참지 못할 또 다른 이유는 얼굴 하나 바뀌지 않은 배우 신현준과 박근형, 홍경인의 연기로 영화를 보는 내내 쏠쏠하다. 해직기자 윤제하는 황 의원 정치자금 사건 폭로를 결심한다. 조민희(최선미 분)를 섭외해 천재 해커 구석기(홍경인 분)와 전문대 전기과를 졸업한 양종태, 서울대 음대 작곡과 4년 연속 낙방한 임상구를 데리고 해적방송국을 차린다. 구석기를 통해 은행에서만 20억 인출에 성공하고 본격적으로 승합차 안에다가 방송국을 차린다. 윤제하의 칼날은 항상 황기영을 향했다. 방송국 인터뷰 도중 전파를 납치해 채널 식스나인 프로그램을 송출에 성공한다. 황 의원이 ‘21세기 미래재단’ 설립 취지 인터뷰가 생방송으로 나가던 도중이었다. 첫 방송을 성공하자 다음엔 미래재단 현판식 뉴스가 나올 무렵 전파납치에 성공한다. 차량 안에 방송국을 마련해 추적이 어려웠고 추적하더라도 이동까지 가능해 수사당국을 피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건 전파납치 뿐만 아니다. 정치계와 언론·방송계를 향한 폭로 방식이다. 황 의원은 무용가 성주희(강미정 분)와 불륜 관계였다. 의원 사무실에서 벌인 긴밀한 관계를 우연한 기회로 녹화해 비디오로 보관 중이던 윤제하가 채널 식스 나인으로 고스란히 보도해 폭로한다. 미래라는 단어를 선점해 유력한 대권주자로 추앙받는 황 의원의 추악한 실체가 드러난다. 겉으론 미래와 청년, 가정을 생각하는 듬직한 국회의원이겠지만 사실은 성주희와 불륜을 저지르고 40억원 가량의 정치자금을 빼먹은 범죄자일 뿐이다. 채널 식스나인을 통해 다 벗고 나온 포르노 자키 조민희가 ‘초미니’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말한다. “여러분 우리 다함께 몽땅 벗고 씻어요. 더러운 것들은요. 말끔히 벗겨진다구요.” 잇따른 전파납치에 수사당국은 불순분자로 규정했고 방송사는 ‘조작된 화면’ ‘화면조작 특수촬영’으로 몰아갔다. 이 광경을 허탈하게 바라보는 윤제하의 표정에서 20년도 지난 지금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아내 들으라고 목소리 높이는 황 의원의 통화가 인상적이다. “반민주 불순세력들이 날 밀어내려고 공작을 부리는 걸지도 모르지.” 마지막 고별 방송은 황 의원의 ‘후원의 밤’ 행사에서 송출됐다. 윤제하가 과거 NBS 프로그램 ‘PD리포트’ 방영 당시 심의에서 잘린 영상을 내보낸 것이다. 무력하게 보좌관만 찾아 헤맨 황 의원은 크게 분노하고 이후 검찰로부터 소환 받는다. 이로써 채널 식스 나인 전파납치는 사라지고 제2해적방송이 등장했다는 보도로 영화는 끝이 난다. 전파납치 과정에서 불륜 사실이 드러나 앵커 자리에서 물러난 오수경(박효정 분)에게 말한 방송국 선배의 말이 한국의 상황을 드러낸다. “사람들 그때 사건 다 잊었어. 우리 국민들 건망증 심하다는 거 다 알잖아.”

[이야기 꿰매며] 퇴행적 자의식 속 어른에게 하는 말

2022년 07월 13일
여럿 읽어본 청소년 문학 소설에서 직접 키워드를 뽑아봤습니다. ‘가부장제’와 ‘재개발’. 빙판길 흔전동 골목 내달리는 학교 밖 달이(구달, 최영희)와 구지구(舊地區)에서 수지를 찾아 헤매는 이름 없는 소년.(편의점 가는 기분, 박영란) 아빠를 피해 편의점으로 가출한 이루다,(우리만의 편의점 레시피, 범유진) 그리고 2010년대 폭력적 학교 구조를 살아가던 여고생 이순정(열여덟 너의 존재감, 박수현)에 이르기까지. 읽어본 청소년 문학 소설이 가리킨 지점은 아이들에게 폭력적 구조를 강제하는 사회 풍토였습니다. 그건 무책임하고 미성숙한, 그래서 퇴행된 자의식 속에서 거리낌 없이 민낯을 드러낸 어른들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런 어른에게 “어른이 되거라”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바뀌지 않으니까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서 “착하게 사세요” 말하는 행동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어른보다 더 어른답게 수지를 향한 애틋한 마음으로 시랑한 이름 모를 소년과 훌륭한 할아버지 아래에서 편의점 바코드를 찍으며 아빠를 되새겨보는 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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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소랑 2026년 6월 22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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