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랑했을 뿐”… 썸머는 나쁜 년이었을까:「500일의 썸머」

아무도 없는 한여름 끝자락 새로운 계절 초입이었더라
2024년 03월 03일
ⓒ500일의 썸머

500일의 썸머
마크 웹 감독 | 95분 | 15세이상관람가 | 2009

그 애와 헤어지고부터 세상 모든 게 그 애로 보였다. 술 잘 쳐 먹으면서 못 마시는 척 내숭 떠는 리리코가 그랬고 음흉한 미소로 정치질이나 일삼는 직장 동료가 그리 보였으며 연애 사연에서 남친을 질질 끌고 가는 당찬 여자애가 그랬다. 애증의 감정이 깊어진 끝자락 실장님의 얼굴에서마저 그 애를 보았다.

이 영화도 그랬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애가 생각났다. ‘bitch’라는 단어까지도 모조리 닮은 모니터 앞에서 평행세계를 본 것 같았다. 톰이 썸머를 바라보는 콩깍지까지도.

“아름다운 미소, 긴 머리카락, 귀여운 무릎, 목에 있는 하트 모양 점, 섹시하게 입술을 핥는 모습까지, 귀여운 웃음소리, 침대에 잠든 모습까지도, 그녀를 생각하면서 듣는 노래도, 그녀가 주는 모든 느낌, 모든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한 마디로…. 세상 사는 맛이 나요.”(13:37)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썸머에게 톰은 화가 난 걸까.

“그녀를 증오해. 울퉁불퉁한 치아. 촌스러운 머리. 튀어나온 무릎. 징그러운 바퀴벌레 같은 점. 더럽게 입술을 핥아대고. 천박한 웃음도 싫어. 이 노래도 싫어!”(57:36)

ⓒ500일의 썸머

그럼에도 썸머와 닮은 여자라면 누구라도 끌린다. 허나 더는 발견할 수 없는 썸머에 좌절하는 톰. 서로 좋아하던 순간에 멈춰버린 시간, 톰은 홀로 서 있는다. 그래서 화가 난다. 혼자만 운명의 시간에 서 있다는 사실에.

주인공 톰의 찌질한 모습에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고 성장해가는 어텀과의 첫 만남 앞에선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이제 썸머를 증오하지 않는다. 그가 나쁜 년이든 아니든 간에 더는 내 운명과는 무관한 사람이니까. 그저 스쳐지나간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니까.

이 모든 아픔을 겪고 마주한 새로운 계절, 500일의 끝에는 새로운 1일이 다가오는 사실에 주목했다.

“추운 겨울 끝을 지나/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꽃 피울 때까지/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방탄소년단, 봄날, 2017) 

마침내 견디고 견디어내 만난 운명의 사람. 꺼지지 않을 새로운 계절에 안녕.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꽃 피울 때까지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머물러줘”
방탄소년단, “봄날”, YOU NEVER WALK ALONE, 2017.02.13

자유의 새노래

자유의새노래

정론직필의 자유·시대성의 창달·주체자의 기록

답글 남기기

Previous Story

그저 귀엽고 섹시한, 권정열 너란 남자… [10CM 2024 Encore Concert ‘=10’ 후기]

Next Story

[지애문학] 찝찝하고 불쾌하다 못해 쓸쓸하고 아득한 빗방울

Latest from 리뷰

같은 얼굴, 두 자아… 소녀의 가면과 ‘기믹’: 「갈증」「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극단적이고 거침없는 여고생 심미적 즐거움의 코마츠 나나 거침없는 캐릭터, 낯설지 않은 같은 얼굴. 허나 한쪽 이야기는 달달했고, 남은 이야기는 쓰디쓰다. 같은 얼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코마츠 나나(小松 菜奈)의 연기력에 흡인력을 느끼고 말았다. 갈증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청소년 관람불가2014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나가이 아키라 감독15세+2018 중년 남자를 대하는 여고생의 얼굴이 대조적이다. 갈증(2014)과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2018)은 욕망하는 여고생의 감각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아버지마저도 홀리는 딸 카나코를 추적하는 생물적인 욕망을 갈증이 표현했다면 사랑은에선 좌절된 꿈과 묵묵히 현실을 견디는 중년 가장에 대한 아키라의 동경심을 투영했다. 사랑은의 교훈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시간을 교훈에 담아 선사했다면, 갈증은 교훈 따윈 없다고 빅엿을 날리는 감독의 분명한 의도에 호불호가 갈릴지 모르겠다. 어쩌면 교훈이 없다는 의도조차 의도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런 사람도, 이런 감독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보는 사람의 에너지까지 빨아들여 결국 기진해지게 만드는 작품”(이동진, 2014)이

시각, 청각, 후각, 촉각, 환희… 헤이맨의 ‘블랙 스테이지’: 「STAGE 100」

가슴을 울리는 드럼, 전율을 부르는 일렉기타. 인디밴드 헤이맨(Heymen)의 무대에 가슴 뜨거운 환희가 불붙기 시작했다. 26일 저녁 7시, 헤이맨이 무대 위에 올라섰다. 무대 중앙에는 ‘STAGE 100’이 빛나고 있었다. STAGE 100은 아티스트와 관객이 함께 소통하는 NC문화재단의 예술 플랫폼으로, 청년 아티스트가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이다. 12월의 주제는 ‘환희’였다. 이날 헤이맨은 에너지 넘치고 강렬한 사운드를 선사했다. 앞선 인터뷰에서 헤이맨은 공연 주제로 ‘환희’를 선택한 까닭에 대해 “처음 밴드 공연을 봤을 때 우리가 느꼈던 감정이었다”며 “그 감정을 공유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날 [짝사랑], [행복의 나라로], [We know nothing], [Passion and Moving], [포토그래피], [Gatsby], [행운을 빌어요] 등 약 8곡을 선보였다.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와 함성으로 호응했고, 즐거운 리듬에 흠뻑 젖었다. 마지막에는 관객이 기립한 채 신곡을 듣는 장면도 연출됐다. 기타리스트 테리킴은 자신이 쓰는 일기에 관한 일상적인 이야기로 말문을 열며 꾸준함과 기억에 대해 전했고, 보컬 도영은 이번 콘서트의 주제를 설명했다.

아일랜드… 날 바꾼 건, 前남친도 前직장도 아니었어: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김경연 감독 | 7부 작 | 15세+ | 2024 애초에 이미나는 아일랜드에 관심이 없었다. 난생 처음 관심을 가진 아일랜드에 대한 환상은 모두 ‘전 남친’ 작품이었으므로. 아일랜드행 직항은 없다. 경유조차 쉽지 않은 길이다. 내가 원하는 걸 찾고, 내가 바라던 인생길처럼 그 나라에 가는 방법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작품은 웹드라마 ‘좋좋소’ 스핀오프로 이미나 대리의 연애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했다. 유구한 연애사의 기원은 어머니의 결핍에서 비롯한다. 맏언니에게 쏠린 지극한 어머니의 사랑은 밀도 높은 ‘주는 이’ 관계보다 ‘받는 이’의 관계를 낳았다. 첫 남친 연우(배우 임현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퍼주는 연애를, 흑맥주를 맛보여준 세준(고도하)과 사고뭉치 하준(이태형)은 미나에게 환상을, 수혁(문시온)과 재홍(박도규)은 현실을 일깨워줬다. 그럼에도 미나의 바람 잘 날 없는 일상에 변화를 준 건 ‘내 안의 결핍’이었다. 미나의 오랜 연애사를 톺아보며 아일랜드는 전 남친의 작품이면서도 인생의 토대라는 교훈을 마주하게 된다. 결코 지난날의 연애가 무의미하지 않다는, 자기 성찰의 시작점이 된다는 점에서 연대기적 톺아보기는 모두에게 유효하다. 무뚝뚝한 건 표정만이 아니었다. 딱히 끌리는 것도 없고 인생에 대한 열정조차 없는 그저 그런 미나의 삶도 표정과 빼닮았다. 누군가는 ‘그런 부류의 사람도 있지 않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꿈도, 미래도, 방향 대신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 같은 삶. 과연 미나는 자신의 인생 방향을 찾았을까. 아일랜드에서 돌아와 첫 남친 연우를 다시 만나며 주고 받은 이야기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막상 가보니까 알겠던데? 음, 나는 여기 오고 싶었던 게 아니었구나.” 결국 자기 자신의 인생 방향을 찾는 건 전 남친도, 전 직장도 아니었다. 고독을 씹으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냉엄한 시간, 0.1도씩 틀어가던 아일랜드에서.

망가지지 않은 소녀의 시간, 초침은 지금도 움직인다: 「세계의 주인」

세계의 주인윤가은 감독 | 119분 | 12세+ | 2025 십여 분이었을까. 조금은 과장돼 보이는, 그래서 어색하고도 낯익은 주변 사람들의 웃음과 주인공의 미소. 아버지는 없지만 단란해 보이는 가족과 학교를 날아다니는 여고생 주인. 영화 초반, 오랜 시간 평범한 모습에 할애하던 감독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스포일러 주의 성범죄 폭력성 주의 담임 교사가 건넨 농익은 사과에 호흡이 곤란한 척 너스레를 떠는 장난까지는 우연인 줄 알았다. 성범죄자 퇴거를 주장하며 사실상 서명을 강요하던 동급생 장수호(배우 김정식) 앞에서 버럭 소리 지르는, 그러니까 “나도 성폭력 피해자야”라는 섬뜩한 장면에서 나는 ‘도무지 농담일 리 없다’고 판단했다. 결정적인 장면은 두 컷이었다. 엄마에게 “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말하는 데에서 흠칫했고 남자친구 찬우(배우 김예창)와의 딥 키스에서 머문 진도는 앞으로 터질 긴장감을 미리 감지해야 했다. 주인이는 일반적인 연인 관계가 아니라 어쩌면 친족 간의 성범죄에 노출된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예감 말이다. 태권도와 릴스 좋아하고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활발한 여고생 이주인 멈춰버린 시간과 ‘살아 있음’말하기 전까진 몰랐다과거 소녀에게 벌어진입에 담기 어려운 사건 한국 사회의 축소판? 그러나망가지지 않은 주인공과범죄의 재현을 거부하며피해 이후의 삶을 드러낸우리 시선과 회복의 선언 ◇결코 망가지지 않은 이주인주인공 이주인은 태권도를 좋아한다. 되고 싶은 꿈은 없지만, 어머니가 없는 집안에서 남동생과 빨래, 청소를 분담할 줄 아는 성실한 딸이다. 학교에서는 엽기적인 릴스를 찍으며 친구들과 놀기도 한다. 산부인과 다녀온 이야기도 서슴없이 말했고, 큰 목소리로 탐폰과 생리통에 대해 떠들어 대기도 한다. 때론 야한 만화를 그리는 단짝 친구 공유라(배우 강채윤)와 성관계에 대한 농담도 주고받는다. 가끔은 장난치느라 두 번이나 지나가던 동급생을 치기도 했고, 그게 과해지면 남자 애한테 헤드록을 당하기도 하는 발랄한 여고생이다. 그런 주인이가 수호와 맞붙은 사건이 벌어졌다. 성범죄자 퇴거 서명

고추잠자리가 만든 작은 봄의 역습: 「MZ를 찾아서」

예약석은 비어 있었다. 그럼에도 공연의 포문을 열어야 했다. 수빈이가 떠난 후 시온은 오랜 시간 사라지고 없어졌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잊힐 찰나, 시온은 라이브 카페 우주정거장에 나타났다. 이 한 마디와 함께. “완성했어요. 가사.” 유튜버 뷰티풀너드의 세계관 속 스쿨밴드 고추잠자리가 새로운 곡을 발표한다. 발매일은 4월 6일. 유튜브 채널 뷰티풀너드의 ‘MZ를 찾아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매회 조회수는 약 100만회에서 130만회를 웃돌고 있다.  막장인 줄 알았는데 삶의 위로 건네주는 유튜버, 뷰티풀너드 성장과 치유를 담은 신곡 ‘작은 봄’ 발매 ◇폐급, 막장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여운의 ‘기승전결’ 초창기 MZ를 찾아서는 주인공 이시온의 막장 행보를 과감 없이 보여주는 게 콘텐츠의 묘미였다. 일부러 게임하느라 아르바이트에 늦게 도착하거나 야한 릴스를 보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과장된 행동으로 MZ세대를 풍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던 시온이가 전세사기를 당하면서 돈 한 푼 없이 몰락하자 옷 가게 사장인 썸녀 수아네 집에서 얹혀사는 내용이 주된 콘텐츠의 내용으로 발전했다. 그러다 첫사랑 이수빈이 등장하자 세계관이 확장하게 된다. 여자친구로 관계가 발전된 수아와의 관계, 첫사랑 수빈이와의 미묘한 대립각이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