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양연화 특별판
왕가위 감독 | 107분 | 15세+ | 2025
왕가위 감독이 25년 만에 화양연화를 다시 극장으로 돌려보냈다. 리마스터링된 본편에 9분짜리 미공개 단편이 더해진 특별판이 2025년 2월, 중국을 시작으로 홍콩과 미국, 영국을 거쳐 12월 31일 한국에서 개봉했다.
추가된 단편은 1990년대 후반 왕가위가 구상했던 옴니버스 프로젝트의 편의점 에피소드다. 2001년 칸 영화제에서 단 한 차례 상영되고 오랫동안 잃어버린 미디어로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영상이다. 화양연화가 1962년 홍콩의 이야기라면, 이 단편은 꽤나 현대적인 홍콩의 편의점에서 시작한다.
붉은 커튼과 슬로우모션 복도 대신, 24시간 편의점의 차가운 빛 아래 두 사람이 있다. 얼굴에 번지는 형광등 빛, 중경삼림의 흔적이 묻어난다. 절제와 봉인의 미학으로 가득했던 본편과 달리 두 사람의 움직임은 가볍고 즉흥적이다. 그러나 그 가벼움이 오히려 낯설다. 화양연화를 알고 있는 관객에게 이 편의점은 단순한 배경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1962년의 두 사람이 끝내 들어가지 못했던 공간, 그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왕가위는 이번 장면을 1962년 차우와 첸 부인의 ‘재회’가 아니라, 같은 배우가 등장하는 다른 시공간의 이야기로 위치 지었다. 그러나 화양연화를 본 관객은 그 얼굴을 알아보고, 그래서 의문이 생긴다. 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가.
왕가위식으로 읽으면 답은 이게 아닐까. 알아볼 수 없어서가 아니라, 알아볼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됐기 때문. 1962년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닿지 못했다. 도덕과 체면, 시대의 창살이 그들을 멈추었다. 2001년의 두 사람에게는 그 무게가 없다. 기억이 없어서 자유로운 게 아니라, 기억이 필요 없는 세계에 있어서 자유로운 것이다. 특별판이 해방의 상상이 아니라 망각의 상상에 가까운 이유다.
단편의 질감은 중경삼림을 닮았다. 왕가위가 1994년에 몸에 새긴 방식이 그대로 찍혀 있다. 닿을 수 있는 도시, 닿을 수 없는 사람. 그 시절 홍콩의 공기가 편의점 냉장고 빛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완전히 열리지는 않았다. 남자는 엎드린 여자에게 진한 키스를 남긴다. 본편에서 끝내 하지 못했던 것이 여기서 완성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1962년의 창살은 사라졌지만, 정면으로 보지 못하는 구조는 자세 속에 남아 있다. 형태는 달라졌고 시대도 달라졌지만, 왕가위의 두 사람은 여전히 완전하게 닿지 않는다.
왕가위는 25년 만에 봉인을 열었다. 중경삼림이 소멸을 예감했고, 화양연화가 선택하지 못한 감정을 봉인했다면, 특별판은 그 봉인 위에 다른 세계를 덧댄다. 같은 얼굴로, 다른 시간 속에서, 다른 사람으로. 왕가위가 꺼낸 것은 화양연화의 속편이 아니라, 화양연화가 되기 전의 세계였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도 사랑은 끝내 정면을 향하지 못했다. 이것이 위안인지 망각인지, 왕가위는 답하지 않는다. 관객이 화양연화를 알고 있는 한, 그 의문은 닫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