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경삼림
왕가위 감독 | 103분 | 15세+ | 1994
도시에 스며든 공감각 향수일까, 아련함일까
사람도 사랑도 도시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
습윤(濕潤)하게 번지는 불빛. 크리스토퍼 도일 특유의 핸드헬드와 밀어붙이기(step-printing) 기법으로 만들어진 빛번짐과 잔상, 형광등 불빛이 젖어드는 느낌. 그리움을 이미 안고 있는 현재의 시간을 화면에 담고 있음에도 이미 회상처럼 보이는 장면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홍콩을 대하는 왕가위(王家衛) 감독의 아련함일까.
영화는 두 편의 단편처럼 구성된다. 1부의 경찰223(금성무)은 실연의 상처를 유통기한이 임박한 파인애플 통조림으로 달랜다. 5월 1일 자신의 생일까지 사랑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매일 한 캔씩 산다. 유통기한은 사랑의 은유이기도 하고, 감각의 은유이기도 하다. 기한이 지나면 맛도, 감정도, 기억도 변질된다. 그는 안다. 그래도 삶을 영위한다.
2부의 경찰663(양조위)은 다르다. 스튜어디스 전 애인이 남긴 편지를 아직 열어보지 못한 채, 단골 음식점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페이(왕비)를 만난다. 페이는 663의 열쇠를 몰래 가져다 집을 청소하고 가구를 바꾼다. 집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에도 663은 전 애인이 다녀간 줄로 안다. 이 장면이 우울증의 영화적 표현인지, 아니면 사랑을 잃은 사람 특유의 희망 투사인지는 관객 몫으로 남긴다. 왕가위는 설명하지 않는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유통기한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영화는 정반대의 진실을 보여준다.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사랑도, 사람도, 도시도. 1994년 홍콩, 반환을 3년 앞둔 도시의 공기가 이 필름에 스며 있다. 번지고, 흘러내리고, 그러나 사라지지는 않는다. 회상처럼 보이는 현재란 그런 것이다. 이미 잃어버릴 것을 알면서 살아가는 시간.


화양연화
왕가위 감독 | 98분 | 15세+ | 2000
신에 담긴 의도된 창살 배신 낭패 미완의 감정
돌아오지 않는 시간과 말하지 못한 그의 얼굴
잊어버린 얼굴이란 무엇일까. 화양연화는 끝내 그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다. 1962년 홍콩, 같은 날 같은 건물로 이사 온 두 남녀 양조위와 장만옥은 각자의 배우자가 불륜 관계임을 눈치챈다. 그러나 영화는 배신의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 배신당한 두 사람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끝내 완성되지 않는 감정의 기록이다. 1962년은 그 둘에게 완성되지 못한 해다. 반환을 35년 앞둔 그 도시의 공기가 이 필름에 스며 있다. 앞으로 가지 않는, 돌아오지 않는.
왕가위는 이 감정을 직접 보이지 않는다. 대신 프레임으로 가둔다. 문틀, 창문, 방범창. 특히 방범창을 통해 바라본 장면들은 의도된 창살이다. 누가 강제로 가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의 정상성, 도덕, 자기검열이 그들을 멈추게 한다. 사랑은 죄가 아니었지만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붉은 커튼이 드리운 동방호텔 복도를 두 사람은 반복해서 오간다. 커튼은 열리지 않는다. 슬로모션으로 늘어진 그 복도는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면서 동시에 선택하지 못한 삶이다. 왕가위의 카메라는 고프레임으로 붙잡고 싶은 순간을 늘이고, 저프레임으로 끊긴 시간을 툭툭 잘라낸다. 아름답지만 숨 막히는 순간이다. 두 사람은 끝내 얼굴을 다시 마주하지 않는다. 화양연화의 사랑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잊히지 않는다.
영화의 끝에서 양조위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낡은 벽 앞에 선다. 그는 벽의 틈새에 입을 대고 무언가를 속삭인 뒤 손으로 막는다. 말하지 못한 것을 묻어두는 의식이다. 화양연화의 사랑은 고백되지 않았고, 완성되지 않았으며, 그래서 사라지지 않는다. 잊어버린 얼굴, 끝내 제대로 본 적 없는 얼굴. 왕가위는 그것을 유적의 돌벽 속에 봉인한다.

2046
왕가위 감독 | 129분 | 청소년 관람불가 | 2004
매 순간의 실패가 빚은 강박 같은 반복의 기록
앞으로 가지 않는 도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
잃어버린 시간에는 번지수가 있다. 2046.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이 약속한 연도의 직전 해다. 2047년까지 홍콩의 현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약속, 즉 자유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해. 왕가위는 그 숫자를 영화 제목으로 심었다.
소설 속 소설가 차우(양조위)는 2046행 미래 열차를 소설에 쓴다. 열차의 목적지는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 곳”이다. 승객들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탑승한다. 그러나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올 수 없어서가 아니다. 변하지 않는 과거에 머물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은 되찾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갇히는 것이다.
차우는 화양연화의 그 남자다. 끝내 고백하지 못한 사랑을 가슴에 묻고 홍콩으로 돌아온 그는, 이후 여러 여자를 만난다. 그러나 매번 실패한다. 사랑하려 하지만 닿지 않는다. 그는 화양연화에서 선택하지 못한 그 순간을 반복 강박처럼 재연하고 있다. 2046은 그 반복의 기록이다.
그 반복의 끝에 장만옥이 잠깐 나타난다. 화양연화에서 끝내 마주치지 못했던 얼굴. 그러나 차우는 그녀에게도 닿지 못한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지나갔다. 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만난다고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왕가위는 그 짧은 등장으로 말한다. 세 편의 영화는 처음부터 홍콩에 대한 것이었다. 앞으로 가지 않는, 돌아오지 않는 도시.
중경삼림이 소멸을 예감했고, 화양연화가 선택하지 못한 감정을 봉인했다면, 2046은 그 봉인된 것에서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그린다. 잃어버린 시간은 지나간 것이 아니다. 지금도 2046행 열차 안에 있다. 창밖은 여전히 흐르고, 목적지는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