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고등학교 가자던 그 약속 이뤘을까:『귤의 맛』

2024년 10월 09일

귤의 맛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8쪽 | 1만2500원

다윤, 소란, 해란, 은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네 명의 소녀들은 다 같이 신영진고등학교에 입학하자고 대뜸 약속해버린다. 헤어지기 싫다는 이유에서 저지른 충동적인 선언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다양한 사건·사고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입학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 건 좋다. 각자의 이야기가 산발적으로 흩어지는 바람에 한 사람의 이야기를 쉽게 잊고 말았다. 너무도 많은 사건들 속에 잊히고 만 개개인의 사건들. 이 또한 저자의 의도였을까.

은연한 학교폭력, 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위장전입, 가부장적인 가정환경, 심지어 중년 남성 특유의 병신력까지 다 괜찮았다. 한 가지 모자란 게 있다면 늘 죽음의 무게를 진 여학생의 모습이었다.

어른들은 청소년을 바라보며 그 시절을 부러워하곤 한다. 그러나 삶의 무게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가혹하다. 어리다고해서 예외가 아니다. 작가는 인물이 처한 환경의 구체적인 정황이 아니라, 심리를 묘사했더라면 어땠을까. 좀 더 마음에 대고 “왜” “어땠을까” “괜찮니”를 물어봤다면 좋았을 텐데. 꼭 극단적인 상황을 끌고 와 지옥도를 펼쳐놓지 않더라도 충분히 죽음의 무게를 진 여학생을 묘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저자는 학교 축제에 학생들에게 1000원을 빌린 후 먹을 걸 사먹었다는 내용을 묘사했다. 수많은 학교 축제를 묘사한 작품을 보았지만 이런 빌런은 처음이다. 내용 전개에 필요할지 의문이 드는 중년 남성의 병신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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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목 어때요?최은경 지음 | 루아크 | 232쪽 | 1만7000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만천하에 알려지고 다음 날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단 네 글자였다. ‘부끄럽다’ 조선일보와 박근혜를 분리하고 국민과 조선일보를 이입시키는 유체이탈 화법도 놀라웠지만, 내가 정말 놀란 건 단문이었다. 조선일보는 단 네 글자로 부끄러움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2012년 3월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현장 조사 차 방문한 일이 있었다. 공정위 조사관들이 신분을 밝히고 건물에 들어가려 했으나 출입을 50분 동안 가로막았다. 그새 삼성은 관련 자료를 통째로 폐기했고 책상과 서랍장을 바꿔 조사 대상 직원의 컴퓨터를 새것으로 바꿔치기한 게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다음 날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이랬다. ‘삼성 눈에는 이 나라 법은 법같이 보이지 않는가’ 가끔 조선일보 기사와 사설 제목을 보면 ‘심판자 조선일보’의 우스운 태도가 느껴진다. 조선일보의 제목은 언제나 강렬하지만 그 의도를 들여다보면 권력에 대한 적나라한 태도를 가늠할 수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음 날 신문은 제각각 1면 제목을 다채롭게 달았다. ‘”어찌 됐든 사과” 140분 맹탕 회견’ ‘고개만 숙였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맹탕, 고개만 숙였다고 비판했다. ‘’김건희 의혹’ 부인한 윤, 특검 거부’ 동아일보는 고집부리는 윤석열을 강조했다. ‘아내 처신 머리 숙이고 의혹 앞엔 고개 숙였다’ ‘윤 고개 숙였지만, 의혹엔 고개 저었다’ 국민일보와 한국일보는 대통령의 사과와 의혹에는 고개를 저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만 달랐다. ‘“저와 아내 처신 올바르지 못해 사과드린다”’ 마치 윤석열이 정중하게 국민 앞에 사과하는 내용으로 제목을 단 것이다. 도대체 의도가 무엇인가.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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