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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도 대안은 쓰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약을 본다: 『구약의 민주주의 풍경』

2017년 06월 20일
구약의 민주주의 풍경 기민석 지음 | 홍성사 | 192쪽 | 1만2000원 막연히 구약성서 시대를 생각하면 ‘고대’라는 단어를 사용해 온갖 언어적 술수로 당시 시대를 깎아내리는 습관을 가진다. 칼빈주의 5대 교리 중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인간 전적 타락’을 되뇌지만 총체적으로 인간의 인식은 진화하지 않으며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취하던 날부터 지금의 인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죄인일 뿐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인간 내면의 우월감은 타인을 존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정복 대상으로 착각하게 한다. 그게 여성을 향해, 사회적 약자로 향한다. 구약성서 본문을 이용해 야곱과 아브라함은 부자였다는 논리로 성서를 해석하고 모든 이들은 부자가 되어 하느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설파하기도 한다. 성서를 해석에는 상징적 해석, 원리적 해석도 있다지만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지금 시대에만 유효하다는 불트만의 비신화화를 엉망으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피해는 늘 사회적 약자에 향한다.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성서구절을 맥락에서 살펴보지 않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구약성서 시대에도 숙의(熟議)는 존재했다. 고의성이 없는 살인자가 도망하려 한 도피성의 예가 그렇다. 무작정 뒤덮인 감정으로 죽인다고 내게 폭행을 저지른 이에게 두 배로 복수한다고 그 복수가 온전한 복수일 수는 없다. 구약성서의 시대에도 지금의 시대에도 변함없이 숙의는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숙의는 개인적 차원에서 뿐 아니라 공동체라는 아름다운 집단을 통해 완성한다. 고대 이스라엘 시대 정치 이야기다. 저자는 여러 차례 현대 사회 정치 집단은 사법기관과 다르다고 밝히지만 충분히 고대라는 시간에서 생각했을 때 이스라엘의 제도는 고대라고 폄하해서는 곤란하다. 장로라는 어르신에서 회중이라는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무리들이 발생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도의적 책임을 지려 했다. ◇잊혀진 공동체 인식, 한계를 넘어서 본문에서의 공동체는 도의적 책임을 지는 존재로 묘사됐다. “이 기록들이 반영하는 고대 공동체의 종교, 사회적 윤리는 자명하다. 공동체 일원의 억울한 고통은 공동체 전체의 문제이고 책임인 것이다.”(33) 모두가 개인주의를 선언한 것처럼 사회 문제에는 일절 관심 없는 현상이 벌어진다. 오히려 타인에게 어떠한 피해를 일으키진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개인이란 이름으로 폭행 당하고 있을 땐 내 일 아니라는 생각에 누구도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오죽하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2016. 5. 28)를 두고 “비정규직은 혼자 와서 죽었고 정규직은 셋이 와서 포스트잇을 뗀다”고 했겠는가.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어르신들에게 달려 있다(76)”는 저자의 말은 역설(力說)적이기까지 하다. 모든 것은 전(前) 세대의 책임이기 때문에 “뇌가 썩어 투표권조차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오히려 전 세대를 끌어안고 진부하지만 과거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문제에서 대안을 찾고, 원인을 찾은 후 새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은 영역에서 들려온다. 과연 그런 것일까. 어쩌면 기본이라고 생각해 온 그 주장이, 진부한 교훈이 방법임에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주장으로 외면하려 애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장로나 회중이 가장 이상적 해결 방법이자 대안은 아니다. 야훼 하느님께 왕을 달라고 외쳐댄 이들은 백성들(1사무8,7)이었고, 블레셋과 전투에 패배하자 언약궤를 가지고 한 가운데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들은 장로(1사무4,3)였다. 그 때 빼앗긴 언약궤는 다윗 왕 때에 이르러 찾을 수 있었다. 정치와 생각하는 것에 무관심한 이들의 악순환이 이들 시대였고, 그 이름도 유명한 “실로에 행함같이(예레7,14)”가 되는 것이다.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체제나 방법에 회의를 느껴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이는 집단의 움직임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인의 개별적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며 마지막 인간을 만들어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고 논의했을 것이다(창세1,26). 그 숙의의 구체적 방법은 생각하고, 대화하는 일이다. 인간의 실존은 무엇인가 고민하는 것. 흔하디흔한 20대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게 얼마나 중요한가. 함께 군 입대 한 동생에게 이런 물음을 들었다. “모든 게 불안해요. 미래가 왜 이렇게 불확실한 거죠? 이런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걸까요?” 여러 말로 위로도 필요 없었다. 그게 당연한 거다. 어느 20대가 고민이 없을까.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적절한 것인지 논의하는 과정이 대화다. 그래서 20세기 정치이론가인 한나 아렌트는 대화를 정치의 기초로 보았다. 저자는 대화와 숙의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법이 곧 정의는 아니다”(99)라고 주장한다.   구약의 민주주의 풍경현대보다 고대는 덜 발전?편견과 달리 존재한 숙의이스라엘의 고대를 다루다 장로 중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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