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새노래 디지털판970 [주마등]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입력 : 2021. 02. 15 19:00 | B1-2 엄마와 싸우고 나서도 냉기가 여전했다. 손바닥에 호호 불자 드라이아이스 연기처럼 퍼져갔다. 신호 바뀌었다고 생각할 찰나에 뛰어든 횡단보도 앞, 따가운 경적을 째려보자 기사 놈의 호통이 이어졌다. 싸가지? 싸가지 없는 건 너였다. 어른들의 모든 말들이 싫었다. “내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 씨발. 어른들 관심은 오로지 몸뿐이다. 고차원적 언어에서 말초적 신경에 이르기까지. 다 너 잘 되라는 말 사이에 숨은 웃기지 않을 문란한 문법이 미풍양속 네 글자로 집약된다. 교복 배지 아래 아크릴 명찰 뜯어 버렸다. 이것도 만들어진 이름이다.‘해를품은달보호소’질풍노도 딱지도 모자라 모든 걸 품어준다던 구라 섞인 역겨움이 어딜 가도 같았다. 어른들 언어의 .. 2021. 2. 15. 19:00 [신앙칼럼] 역(逆)전도 전도법 입력 : 2021. 02. 12 22:20 | A27 학부 3학년, 전도실습 과목이 싫었다. 1학점 과목이라 한 시간만 채우면 그만이라 생각했거늘. 조별로 묶이고서 처음 대면한 후배들이 날치기로 조장부터 만들어 한 숨이 나왔다. 매주 기도문을 정갈하게 디자인한 문서로 배포하고 보고서까지 써야 할 운명을 직감으로 깨달았다. 교수를 원망했다.압권은 우리 조 최고로 연장자 목사 사모님 미소였다. 이미 웃으며 다가오는 교수와 짜고 쳤다는 걸 알았다. ‘아, 이분의 교회에서 무급 전도해야 하는구나.’ 문제는 전도하러 나갈 무렵부터 발생했다. 전도는 해야 한다. 전도실습이잖은가. 약속 시간을 정했다. 조금은 늦어도 모두가 도착해 출발했다. 이상했다. 카페에 도착했더란다. 점심 먹고 만나자기에 짧게 전도하고 돌아.. 2021. 2. 12. 22:20 [에셀라 시론] 너라는 관성에서 벗어난다 입력 : 2021. 02. 12 21:00 | 수정 : 2021. 02. 13 23:15 | A30 켜켜이 쌓인 십여 년 전 써 놓은 글을 읽다 보면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자신만의 언어로 작성한 딱딱한 문체에 주목하곤 한다. 학창시절, 사람들과 일상을 주제로 한 대화보다 꽃과 나뭇잎, 하늘 구름 바라보며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일들이 더 익숙했다. 일상 언어를 습득하지 못할 만큼 집단과 공동체, 학교라는 공간과 교회의 장소에서 벗어나 고독함을 즐겼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가 목격한 아이히만의 상투적 언어처럼 일상 언어와 자신의 언어로 나누어 사용하던 시대였다.유행어와 여자 아이돌에 관심조차 없어서 성경과 기도가 익숙해 떼려야 뗄 수 없었던 고등학교 1학년. 0교시 수업 전부터 정독한 .. 2021. 2. 12. 21:00 미소 짓는 폭력 비공개 기사입니다. 2021. 2. 11. 07:30 [지애문학] 지하철 역사(驛舍) 입력 : 2021. 02. 10 21:16 | A29 후회라는 단어에서 시작한 것 같다. 내뱉지 말았어야 했던 말, 하지 않아도 되었을 행동. 같은 장면이 같은 말과 같은 행동으로 반복되어 패치워크 모양으로 덧대어져 모였다. 한데 모아 눈앞에서 뒤통수까지 둥그런 모양으로 가로막아 내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야 하지 말아야 했을 생각으로 알아차렸다. 불현듯 나타난 패턴이 반복과 반복으로 모아졌듯 되돌아온 하지 말았어야 했다던 입말들이 하나로 모아 심장을 건드려 올라가는 박동 속에 걸음을 멈추었다.후회라는 단어가 곧 자책으로 연결되는 순간. 두 번째 국면을 맞는다. 뒤로부터 새까매진 그림자가 머리와 얼굴, 가슴에 이르러 덮었고 광장에 즐비한 간판이 내 앞으로 다가온다. 가루처럼 흩어지던 아스팔트 반사되던.. 2021. 2. 10. 21:16 [현실논단] 아아, 순진한. 이 순진함이여 입력 : 2021. 02. 05 23:10 | A30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마주해 보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거대한 벽처럼 서 있었다.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고, 가닿기 바래도 닿을 수 없는 현실 벽이 불가능과 무기력 사이에 냉소로 버티고 서 있었다. 비판과 대안이 방법으로 등장한 시대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할 수 있다’는 말이 농락의 단어로 전락했다. 당장에야 내세워 개인 문제로 환원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다. 그저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도리가 없다. 그 지점에서 슬픔이 밀려왔다. 모든 것을 놔 버리고 싶었던 냉소와 슬픔은 잠시간 탈 이집트 하려던 순간으로 데려갔다. 서운함과 분노의 중간에 서 있던 야훼의 호통이 생생하던 그 장면. 누구라도 같은 환경에 처해 있다면 더했으면 더.. 2021. 2. 5. 23:10 [교회 安 이야기] 장로가 잡은 멱살, 생명줄이라네 입력 : 2021. 01. 26 22:58 | 디지털판 반가워서 눈물을 흘릴 뻔 했다. 학부 시절, 수업에 함께했던 집사님을 2년 만에 만났다. 지난주에 교회에서 임직받자 입술의 호칭도 집사에서 장로로 옮겨갔다. 나와 장로님에게 대학교 4학년은 분노의 시간이다. 장로님은 믿었던 사람이 뒤통수 치고 기독교인 명목으로 2억 원을 빼돌렸다. 검사를 만나서 자초지종 설명하고 탄원서로 괴로운 감정을 토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형사사법포털도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를 알려드리려다 알게 됐다. ‘급살 맞아 뒤질 년’ 지금도 입에 담기 어려운 단어를 구사하고서 분노의 감정을 삭히지 못한 장로님이 걱정됐다.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 맞은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마지막까지도 조별 과제는 다 헤쳐 먹어야 했고, 목회실습 .. 2021. 1. 26. 22:58 [사진으로 보는 내일] 경계선에 서자 이제야 보이는 뒷모습 입력 : 2021. 01. 24 21:50 | A31 지루한 도시의 풍경에서 벗어나자 지나쳐왔던 파란 트럭에는 머루를 팔고 있었다. 그 머루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해도 막상 얻어먹은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경계에 아슬아슬 서 있을 때가 달콤한 법이다. 평생 동안 맛보지 않았을 그 트럭의 머루처럼 익숙하지 않은 경계선이 낯설 뿐, 조금만 손 뻗으면 닿을 그 곳에 서 있었다. 다 알던 공직자의 부끄러운 일들을 신랄하게 까면서도 짐짓 겸손함을 표했던 이유도 아슬아슬한 경계 때문, 인간의 나약함에 공감하자 울컥하고 말았다. 겸손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영원히 뒷모습으로 남을지도 모르는 당신의 뒷모습. 가까워지는 삶과 영원한 작별의 경계에 선 살 같은 시간들은 넘어설 수 없다는 슬픔과 한계에 경계 .. 2021. 1. 24. 21:50 [시대성의 창] 대안격 사랑의 죽음 입력 : 2021. 01. 23 23:51 | A29 갑자기 발생한 고열에 죽을 뻔 했다. 코로나는 아니었다. 올 겨울 한 번도 틀지 않은 전기장판 급하게 펴놓고 이틀 종일 앓아 누웠다. 내게 가장 어려운 일은 피아노 배우는 일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공부도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삶에서는 비로소 몸살에 걸려서야 주의를 기울인다. 피로가 누적된 만큼 생활 패턴이 올바르지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에 중독된 듯 ‘이 밤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감정이 거짓말 못하는 몸의 언어인 몸살로써 제동이 걸려서야 깨달을 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잘 못한다. 한병철이 아렌트의 ‘활동적 삶’을 지적한 것처럼 할 수 있음의 세계에서 타버리는 영혼은 사람을 망가뜨린다. 할 수 있.. 2021. 1. 23. 23:51 [ㅁㅅㅎ] 야훼의 눈물 입력 : 2021. 01. 17 23:35 | 디지털판 야훼의 눈물때로는 저 벽을 허물고 싶었는데 단단하게 서 있어 볼 수 없더구나 나의 마음이 가닿지를 않으니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지를 못 하는구나 나병으로 아파하는 내 백성이 쫓겨난다 바깥세상 낯선 공기 마셔야만 내 마음을 아는구나 여전히 나는 성벽 바깥에 서 있는다 신은 질투를 느낄까. 일단 인간 예수는 눈물도 흘리고 분노도 드러내듯 야훼도 그렇다. 노아의 홍수에서 후회를 말한다. 탈출기에서 배신당한 백성들을 쓸어버리고 싶은 서운함,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지를 선지자를 통해서 격렬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알아듣지 못한다. 신의 질투를 느끼지 못한다. 벽은 단절을 만든다. 그 벽을 절절하게 바라보는 신의 시선,.. 2021. 1. 17. 23:35 이전 1 ··· 48 49 50 51 52 53 54 ··· 9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