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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지애문학

동태 눈깔에게 이별 통보 받은 밤

굳은 입술의 동태 눈깔. 교회 일에 치여 완벽하게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만이 되어지는 눈빛.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한다던 가르침과 다르게 살아온 이중 잣대. 그리고 철저히 정직하게 살아낼 수 없어 월급으로만 사는 무능력한 직장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현실의 벽 앞에 선 자만의 눈망울. 며칠 전만 해도 입술과 입술을 맞대어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분위기와는 달랐다. 그 입술에 만큼은 생기가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헤어지자.”

 

안색 하나 변하는 것 없었다. 그럴 줄 알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조금씩 가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서울대 남자랑 만나니까 좋아?”

 

내 소식통. 두 달 전부터 서울대 출신 성악과 한 여자와 전임자가 만난다는 소문을 들었다. 나를 대하는 동료들의 민낯이 쎄하자 뒷조사에 나섰다. 같은 동문 같은 연배의 한 남자 청년을 만났다. 커피 두 어 잔에 친해졌고 원하는 정보를 요구했다. 되려 뭘 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돈도 없고 인맥도 없으니. 그 더러운 입에서 요구하는 게 결국 한 가지 였다는 걸 알아차렸을 땐 뒷조사를 포기하고 만 뒤 였다. 그 이후의 상황은 나도 알 수 없는 일들이다. 여기까지다.

 

“고작 너랑 이런 관계 원하려고 뼈빠지 게 살아남아 일한 줄 알아?”

 

“내 말 들어봐.”

 

닥치라는 말과 함께 긴 침묵이 이어졌다. 늘 이런 식이다. 큰 교회 목사님 아드님이 얼마나 대단한 자리라고. 사겨 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라는 우월감. 나보다 작은 키에 벌써부터 까인 이마, 조금씩 나오는 뱃살도 봐 줬는데. 참고 또 참았다는 자기만의 분위기 끝에 줄줄이 이어지는 말들은 늘 들어도 새로운 황당함을 선사한다. 이 교회에 오기 전부터 남자 전도사에겐 불문율이 존재한다고 들었다. 일종의 구별 짓기. 권력의 핵심에 가까운 부서로 배치될 수록 여자를 갈아치우는 횟수가 많아진다는 일설. 반대로 권력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구별 짓기 가능한 횟수와 속도는 줄어든다.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또 만나면서 하나님의 일에 충실할 동반자를 엄격하게 적격 심사해야 한다는 말이 내게는 남자들만의 욕망을 달리 말하는 것으로 들렸다. 나 다음엔 그 서울대 성악과 년을 만나는 걸까.

 

그년으로 갈아탈 줄은 알고 있었다. 허나 소식통이라고 믿었던 그 새끼가 내 몸을 원하는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인서울도 아닌 변변찮은 학교에 이름없는 교회, 게다가 목회자 딸도 아닌 평범하디 평범한 못 생긴 얼굴이라 생각하며 다가와 먹고 자게 해줄 거라고 속삭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거절의 대가는 참혹했다. 배신을 낳는 배신. 따라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출신성분. 그리고 썩은 동앗줄. 경쟁에서 밀린 비 신자와 다를 게 없는 오늘의 강신혜가 몇 번이나 울면서 교회를 떠나야 했을까. 짐을 싸고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며칠 새 버틸 수 있으면 버텨보라는 불편함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더는 전임자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나갈 수 있으면 하루라도 빨리 이 곳을 탈출해야 한다.

 

현 시간 부로 이 교회에 온전한 나의 편은 없다. 나와 등진 모든 이들을 놔두고 유황으로 불 타버리고 말 이 성을 벗어나야 한다. 뒤돌아서면 곤란하다. 소금 기둥 되어버려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