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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지애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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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냄새는 언제나 맡아도 낯설다. 남자친구 작은 원룸 나서던 순간까지도 홀아비 냄새가 익지를 못했다. 낯설다는 풍경이 내게 가져다준 불편함은 너에게 내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직감으로 깨닫게 만드는 감정이다. 어머니가 출근하고 빈 현호의 집에도 낯선 냄새가 가득했다. 순전히 현호의 냄새뿐이었다. 아기자기 알록달록 쿠션 위 가족사진과 식탁처럼 보이는 공간에 누가 봐도 현호가 만든 걸로 보이는 나무 모형이 옹기종기 항해할 요량을 갖추었다.


늦점심이 되어서야 베란다 앞으로 져가는 햇빛이 외로운 저녁으로 들어가는 현호의 마음을 그리는 것 같았다.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서 생각했다. 무어라 말해주어야 할지, 어떤 말로 놀라지 않게 다가갈지, 혹시나 싫어하지는 않을지. 무릎에 팔꿈치를 올려두고 손가락을 펴 마주친 상태로 고개 숙인지 5분이 채 되지 않은 찰나에 해는 완전히 지고 말았다. 인기척에도 나오질 않는 걸 보면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문 앞에 노크하고 조심히 들어가도 등진 채로 꿈쩍 않는 모습이 뒷방 늙은이 같았다. 바보.


“…….”


겨우 들릴 만하게 한숨을 쉬는 걸 들었다. 안 자고 있었어. 라고 말한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말 안할 줄 알고 물었다. 그냥 해본 말이다. 맛있는 거 먹어도, 게임을 해도, 샤워하고 뽀송해져도, 친구를 만나고, 키스를 해도, 나아지지 않는 무언의 벽이 섰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말을 해줘도 달라질 게 없으니 나에게조차 말없이 등진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대로 방 안이 컴컴해질 때까지 침대 발치에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삐걱 소리도 안 나게 앉았고 침 넘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교회학교 선생님은 현호가 입시에서 찾아오는 설움이 컸다고 언질을 주었다. 요새 오르락 내리는 기분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을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데서 찾아오는 안도감, 이내 찾아오는 할 수 없을 거라는 불확실감,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하는 실낱의 희망, 그렇지만 언제까지 얼만큼 노력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지 예측도 예상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함. 무기력의 근원은 항상 할 수 있는 희망에서 시작한다.


“좀 잘래? 이따가 깨워줄게.”


“갈래요.”


“저번에 거기?”


크게 숨을 들이키자 베개에 품었던 얼굴을 빼내어 일어나려는 모습을 힐긋 안 보는 척했다. 자리에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딱 키스하기 적당한 정도의 밝기. 오히려 주말 새벽에 일어난 설렘이 밀려왔다.


“불 켜지 마요. 안 씻었으니까.”


귀여워서 엉덩이를 토닥여주고 싶었다. 적당한 정도의 키, 적당히 불쾌한 남자애 냄새, 적당히 헝클어져서 대놓고 보게 만드는 걸 참느라 힘들었다. 소파에 앉아서 도도한 척했다. 그새 익숙해진 이 집 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 적당함.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적당한 너라서 좋다고. 적당하게 못 살도록 내버려 두는 이 세계가 나도 싫다고. 이렇게라도 말해주면 웃어줄까.


싸늘해질 때로 싸늘해진 전임자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바빠 두 글자만 보내고 잠수타려고 했다. 좋아하는 애 기운 북돋워주려는데 아무라도 방해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곧 비가 내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디든 가고 싶었다. 모처럼 웃는 현호의 얼굴을 떠올려보니 사람 마음 모르겠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에 가장 좋은 날씨에도 심연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현호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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