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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새노래 디지털판1036

[서신서] 짓뚜의 서신서 4,1~11 비공개 기사입니다. 2019. 9. 17. 09:35
[구약서] 미주서 49,13-21 비공개 기사입니다. 2019. 9. 17. 09:30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입력 : 2019. 09. 14 | 디지털판 일조차 중독이 되어버린 현대인에게 무언가를 하지 않는 불안함은 견디기 힘든 지금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카페라도 나서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할 뿐이다. 무엇을 하고 살아갈 것인가.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무엇은 무엇인가. 나이 들어 고물이 된 시계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걱정과 고민을 해대지만 달라지는 것 하나 없다. 불안함 속에 드라마 교사가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 불안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중요한 것은 그 때문에 자신감을 잃거나 아무런 근거 없는 소문에 휘말리거나 다른 사람을 상처를 입히지 않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바르게 살면 천국에 간다거나, 순리를 거스르면 지옥에 떨어진다.. 2019. 9. 14. 10:35
[내 맘대로 교회 탐방] 경동교회 주보는 이렇습니다 입력 : 2019. 09. 09 | 수정 : 2019. 09. 11 | B7   오르가니스트의 아름다운 연주로 시작하는 경동교회 주일예배는 독특할 어떠한 건 없었다. 예배는 오전 11시 30분 정각이 시작했고 찬송가 67장을 부르며 첫 순서 ‘모임’이 진행됐다. 예배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모임’과 ‘말씀’ ‘보냄’.예배 인도자인 목사와 교인이 복음서와 서신서를 교독하면 성가대가 송영(頌榮)을 부르고, 응답송을 교인이 부른다. 응답송의 경우 찬송가가 아닌 경동교회가 자체 집대성한 ‘경동찬송’을 부른다. 그 중엔 테제 찬송(찬양하여라)도 포함해 낯익은 풍경을 경험했다. 교인이 침묵의 기도로 한 주간의 죄를 고백하면 목사는 용서를 선언한다. 경동교회 예배 순서 두 번째 순서인 ‘말씀’에선 구약의 말씀.. 2019. 9. 12. 10:20
[내 맘대로 교회 탐방] 1945년 12월 2일, 이곳에 「경동교회」가 섰습니다② 입력 : 2019. 09. 08 | 수정 : 2019. 09. 11 | B7 11시 정각을 훨씬 넘은 시각. 붐비지도, 시끌벅적 않은 불편한 상황에 주보(週報)도 바삐 나눠주지 않았다. 이제 막 도착하자 조용히 건네받은 주보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부끄러울 만큼 고요했다. 한국의 진보적 교회로 유명한 경동교회는 해방 직후 일본 천리교(天理敎) 건물을 인수해 30여 명 어린이와 학생들이 첫 예배를 드리며 시작했다. 재밌게도 영락교회와 성남, 경동. 세 교회는 1945년 12월 2일 창립일이 동일하다. 적산불하(敵産拂下), 일본인 부동산이 교회로 넘어간 덕이다. 주일 2부 예배를 마치고 나서  은은하게 비추인 노출 콘크리트 벽면을 바라봤다.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동굴 같은 분위기였다.경동교회 .. 2019. 9. 12. 10:03
[내 맘대로 교회 탐방] 1945년 12월 2일, 이곳에 「경동교회」가 섰습니다① 입력 : 2019. 09.09  | 수정 : 2019. 09. 11 | B1   조영남이 교회 옥상에서 공연을 펼치자 한국교회는 발칵 뒤집혔다. 동아일보는 1970년 9월 16일자 기사에서 “인기 가수의 팝송을 곁들인 새로운 예배 형식을 시도하여 일반 교역자나 많은 청소년 신도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며 기존 교회의 저항과 젊은이들의 관심을 보도했다. ‘京東敎會 새 形式의 파문’. 경동교회는 파격적 교회였고 강원용 목사는 과감한 성직자였다. 따라서 틀에 매이지 않았다. 교회는 곧장 두 의견으로 갈라졌다. 박자도 느리고 재미없는 찬송가 대신 팝송을 도입하자는 입장과 과연 바꾼다고 될 문제인가 회의적 시각이 충돌했다. 50년이 지난 현재 드럼과 기타 없는 교회는 없다. 옥상교회 위 조영남파격적 교회 행보 보.. 2019. 9. 12. 10:00
[일과속기록] 박제의 시대 입력 : 2019. 09. 12 | A29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의혹을 보며 분명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말조차 기록으로 박제되는 시대 말이다. 조 장관이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는 큰 이유 중 하나도 그가 말과 행동이 달랐다는 점이다.우리는 박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말하든 커뮤니티 댓글에서 카카오톡 채팅창, 심지어 발화한 말조차 녹음으로 디지털화된다. 논쟁하다 댓글을 수정하면 곤란해진다. 그새 캡처해 “왜 말을 바꾸냐”고 따지기 때문이다. 글 삭제도 불가능하다. 아카이브 사이트에 주소 채 박제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카이빙이 무서운 이유다.약학을 전공하겠다고 말한 그가 신학을 끝까지 밀고 간 행동도 마찬가지다. 그는 분명히 약학으로 전공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그가 한 부분 발언은 일과속기록.. 2019. 9. 12. 07:30
오늘의 빗방울이 말한다 입력 : 2019. 09. 07 | 디지털판  비오는 토요일 오늘도 사무실 한편에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2013. 9. 22). 한바탕 시끌벅적 모임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는 교회 한쪽 구석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끝나버린 뉴스를 들었고 라디오를 청취하며 밤 12시로 향했다. 홀로 남은, 조용해진 건물은 아무 말도 없이 스스로의 존재가 지닌 역할을 다했는데. 오늘이야 말로 그 역할을 진하게 느끼는 밤이었다. 비가 지면 아래 녹아내려 버리는 광경을 지켜보며 지붕 아래 인간이 홀로 살아감에 경이를 느꼈다. 또 다시 살았으며 살아있고, 살아갈 것임을 다짐하듯 조용히 지면을 적셔 가는 물의 흐름을 반갑게 맞이했다. 언젠가 오늘의 밤이 끝나고 말 테지만, 매일 내일의 불확실함에 온 몸을 맡길 순 없기.. 2019. 9. 7. 00:44
[망원동으로] 센치함은 사라지고 비공개 기사입니다. 2019. 8. 24. 07:00
[현실논단] 광복: 이 어처구니없음을 끝내고 입력 : 2019. 08. 15 | 수정 : 2019. 08. 23 | A28존엄 파괴한 전체주의 光復, 전체주의 종결 교회 내 여전한 私益은 東奔西走하게 만들 것 “탈영한 아들의 시체 앞에서 느끼는 욕된 감정과 전사자로서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아들의 영령 앞에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기억전쟁, 73)제 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1995년 일본 ‘아사히신문’이 게재한 권터 그라스(Gunter Grass)와 오에 겐자부로(大江 健三郎)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사학자 임지현은 전쟁이 한창일 때 일본군 헌병대가 처형된 탈영병 시신을 짓밟는 모습에서 이를 지켜만 보던 어느 부모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처형된 자신의 아들을 치욕스럽게 여기며 “천황제로 대변되는 전체주의.. 2019. 8. 23.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