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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새노래 디지털판970

[주마등] 너에게만큼은 찐따로 보이지 않길 바랬는데 “진성아, 나 좋아하지 말아줘.”이게 무슨 말이지. 싶어 쭉 읽어 내려간 글은 320자 분량. 꺼림칙한 기분으로 속독했다. 대충 내용은 이랬다. “네가쓰는ㅋㅋㅋㅋㅎㅎㅎㅎ과도한자음들말야날남들보다좋아하는느낌이란생각이들어나는너한테관심없고좋아하는것도아니야난너와친하다고생각했지좋아하는그런사이로생각해본적없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 호감. 호감 정돈 가진 건 맞다. 하지만 좋아했다는 건 억울한 오해다. 고백한 것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디펜스하는 게 어딨나. 불쾌한 답장에 기분이 꽁했다.의자에 기대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그 애랑 둘이서 채플에 빠지던 날이 떠올랐다.교통사고는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치기에 교통사고겠지우리 학교는 매주 화요일, 목요일 점심이면 채플에 참석해야 한다. 채플은 기독교.. 2024. 10. 22. 16:00
[돌아보는 사건] 겨울의 언어와 한강의 위로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1>신문 1면을 도배한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영예는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많은 신문들은 키워드를 ‘한국 첫’ ‘최초’ 그리고 ‘한강의 기적’으로 잡았더군요. 윤 대통령과 이시바 일본 총리가 만난 사건, 김건희 여사의 기소는 둘째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제목은 매일경제 1면이었습니다. ‘심장 속, 불꽃이 타는 곳 그게 내 소설이다’ 하필 매일경제는 한 작가와 여러 차례 인터뷰를 주고받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단독 인터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한 작가는 ‘채식주의자’로 2016년 맨부커상을 받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 제주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썼습니다.2>애석하게도 국가 권력은 한 작.. 2024. 10. 12. 09:14
상품으로 포장한 가구의 편리함… 그곳에 여성은 없었다:「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展」 파격적이었다. 전시를 보고 나서도 여성에 대한 오명(汚名)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여성성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굳게 믿어 왔다. 한 뼘도 진일보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들었다.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5, 6 전시실에서 내년 3월 3일까지 열린다. 신체성의 관점에서 1960년대 이후 아시아 여성 미술의 동시대적 의미를 새롭게 살피고자 아시아 11개 나라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 130여 점을 모았다. 근대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작품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시를 통해 ‘내 밖의 존재와의 접속을 이끄는 예술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고 한다. 관람료는 5000원.  가사노.. 2024. 10. 12. 07:30
[사진으로 보는 내일] 노을이 스미는 여자친구의 집에서 기나긴 여름이 지나갔다. 금세 추워진 아침 공기에 낯선 감정을 느낀다. 가을 공기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한 해가 지나 다시 경험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견딜 수 있게 도와준 여자친구 덕분이었다. 다시 낯선 감정을 느낀다 해도 괴롭지 않은 이유다. 올해 여름은 역동적이었고 진취적이었다. 수십 만보를 걸으며 여자친구와 닿은 여행지만 수십 곳에 달한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지나치지 않았을, 오히려 당신이어서 당신 덕분에 닿을 수 있었던 공간들. 이곳 여자친구가 사는 곳도 여자친구가 아니었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동네다. 여자친구 네에서 해 먹은 요리만 수십 가지. 집에서는 도무지 해 먹을 수 없는 기똥찬 메뉴들은 맛집을 넘나드는 그런 맛을 내었다. 부추전을 해 먹는 어느 날이었다. 노을이 져가는 여자친구.. 2024. 10. 11. 18:00
[밑줄 긋고] Fly, daddy, Fly 外 비공개 기사입니다. 2024. 10. 10. 07:25
가면 껴도 변함없이 우울하고 불안한 삶:『가면생활자』 가면생활자조규미 지음 | 자음과모음 | 240쪽 | 1만5000원 열여덟 소녀 진진은 우연히 아이마스크의 신제품 베타테스터에 선정되었다. 아이마스크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특수 물질 ‘판게아’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사용자의 얼굴에 맞게 변하는 물질이다. 가면은 외모를 바꿔주고 신분을 상승시켜주는 도구다. 잘 사는 사람들은 사교 공간인 정원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고 한다. 진진이 오랜 시간 가면을 흠모한 이유다. 작중에서는 가면을 반대하는 ‘안티마스키드’라는 단체가 등장한다. 이들은 묻는다. “왜 그들은 가면을 쓰는가? 누가 그들에게 가면을 쓰게 하는가? 가면은 있는 자와 없는 자, 보호받는 자와 보호받지 못하는 자, 행복한 자와 불행한 자로 가른다.”(45쪽2문단) 과연 가면은 정말로 윤리적이지 못한 도구.. 2024. 10. 10. 07:25
잘못 보낸 야한 사진에 여자애 가방셔틀 된 이야기:『열일곱, 최소한의 자존심』 열일곱, 최소한의 자존심정연철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8쪽 | 9800원 야한 사진을 잘못 보낸 태용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다섯 명의 이야기를 묶은 단편소설집. 야자를 빼먹는 수호 이야기가 이 책 제목의 내용이다. 가장 마음에 든 에피소드는 ‘너에 대한 소문’이었다. 실수로 보낸 야짤에 태용이 식겁한다. 같은 반 몬스터에게 비키니 사진을 보낸 것도 모자라 야한 말까지 덧붙였기 때문이다. “어때? 맘에 들어?” “꼴리지?” 눈을 비비고 다시 본 카톡방엔 건희 대신 여자애 몬스터가 있었다. 몬스터가 황당해할 만했다.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보란 듯이 아버지를 데려온 몬스터 앞에서도 실감나지 않았다. 담임은 잘못했다고 석고대죄라도 하라지만 몸은 움직이질 않는다. 건희는 ‘김태용’을 ‘변.. 2024. 10. 10. 07:25
[마음 속 그 사람] 같은 반에 발달장애라니, 반장으로서 얼마나 부담 되겠니:『괴물, 한쪽 눈을 뜨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 은이정 지음 | 문학동네 | 251쪽 | 1만2500원 네가 반장이 된 일만으로도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을 거야. 초등학생 때와는 달리 중학생 아이들의 입은 더욱 거칠고 과격하고 괴상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세상은 너의 처음 무관심한 태도처럼 영섭이의 왕따에도 침묵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해.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생각하겠지. ‘상처가 나도록 심하게 때린 것 또한 아니었다. 나는 담임한테 말할 만한 사건은 아니라는 결론을 재빠르게 내렸다.’(38쪽6문단) 맞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속이 편할지 몰라. 그렇지만 만일 영섭이가 초식동물이 아니라, 천성이 육식동물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아이가 강한 힘으로 아이들을 나쁘게 대했더라면 너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런 강한 영섭이가 적당히 거칠고,.. 2024. 10. 10. 07:25
중학교 2학년 3반, 사바나에 사는 동물농장 이야기:『괴물, 한쪽 눈을 뜨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은이정 지음 | 문학동네 | 251쪽 | 1만2500원 발달장애를 가진 주인공 영섭은 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반장이 된 태준이는 이를 묵고하고 마는데. 교실의 문제에 누구보다 관심을 기울이는 담임교사, 이렇게 세 명의 시점으로 각각 전개하는 소설이다. ‘황라사마귀’ ‘아프리카맹꽁이’ ‘기린’ ‘사자’ ‘혹맷돼지’ ‘얼룩말’ ‘카멜레온’ ‘늑대부엉이’ ‘관모호저’ ‘숲개’ ‘시베리아호랑이’ ‘가시두더지’……. 이야기 내내 영섭이가 변신하는 동물들의 종류다. 왕따를 당하는 현실을 견디기 위해 영섭이는 갖가지 동물로 변신하기 바빴다. 영섭이네 2학년 3반은 초식동물과 육식동물로 나뉜다. 순하고 착한 아이들을 초식동물로 분류하고, 영빈이와 민우(204쪽)를 비롯한 패.. 2024. 10. 10. 07:25
같은 고등학교 가자던 그 약속 이뤘을까:『귤의 맛』 귤의 맛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8쪽 | 1만2500원 다윤, 소란, 해란, 은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네 명의 소녀들은 다 같이 신영진고등학교에 입학하자고 대뜸 약속해버린다. 헤어지기 싫다는 이유에서 저지른 충동적인 선언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다양한 사건·사고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입학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 건 좋다. 각자의 이야기가 산발적으로 흩어지는 바람에 한 사람의 이야기를 쉽게 잊고 말았다. 너무도 많은 사건들 속에 잊히고 만 개개인의 사건들. 이 또한 저자의 의도였을까. 은연한 학교폭력, 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위장전입, 가부장적인 가정환경, 심지어 중년 남성 특유의 병신력까지 다 괜찮았다. 한 가지 모자란 게 있다면 늘 죽음의 무게를 진 여학.. 2024. 10. 10. 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