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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이의 신학 서재] “호오, 의외네요.” 非전공자가 쓴 성경 통독서라니…

“호오, 의외네요.” 만화 드래곤볼에서 악당 프리더는 예상 못할 만큼 강해진 주인공 일행에 놀란다. “호오 전투력이 상승하는군요.” 한 페이지 펼치자 엇비슷한 입버릇이 나왔다. 저자가 신학이나 종교학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공자 아닌 사람이 성경 가르치는 책을 쓰다니. 그렇다고 전공자만 써야 한다는 편견에서 느낀 당혹감은 아니었다. 전공자도 어려워하는 성서에 관한 글쓰기를 일반 신자가 감당했다는 사실에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의외는 이어졌다. 본문 초반부터 다른 성경통독 서적에서 다루지 않는 성서 번역의 역사를 다룬다. 보통 신학을 모르는 일반 신자들은 성경에 과도한 신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신의 가르침과 의미를 성경이라는 문자로 가두어 또 다른 우상을 만드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 책은 다르다. “우리는 ‘신이 메시지를 준 대상이 고대인이었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 읽을 때는 현대 뉴턴적 세계관으로 해석하고 분석하는데 정력을 소비하는 것보다 고대인들이 어떤 역사적 경험을 했으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32쪽) 기독교인 다수가 가진 성경에 대한 생각에 도전장 내밀며 포문을 연 것이다. 신학교에선 저자의 주장은 너무도 당연하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저자가 집필했다니. 흥미롭고 재미있다.

[미망이의 신학 서재] 종교 다원주의: 기독교가 기독교이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

2021년 06월 15일
미망이의 평점가독성│★★★내용│★★☆소장가치│★☆☆보너스점수│☆☆☆총점│6점 평점 기준가독성① 한 번에 읽기 쉬움 3점② 두 번 읽어야 이해가 됨 2점③ 세 번 읽어야 이해할 수 있을 경우 1점④ 세 번 읽어도 어려운 경우 0점 내용① 독서 후 다른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함 3점 (다른 곳에 적용 가능성)② 단순한 새로운 정보의 습득 2점 (다른 곳에 적용 가능성이 없음)③ 새로운 정보 없이 기존 정보를 재편집 했을 경우 1점④ 텍스트 오류 발견 시 0점 소장가치① 평생을 두고 함께 갈 텍스트 3점② ①의 경우에는 해당 되지 않지만 지인에게 한번은 추천할 텍스트 2점③ 도서관에서 빌려볼 만한 책 1점④ 안 봐도 그만인 텍스트 0점 보너스 점수저자에 대한 호의감이나 감동 외에 기타 점수 1점 다원주의와 종교철학을 크게 생각해 본 일은 없었다. 내가 속한 기독교에 대한 이해도 부족할뿐더러 다른 세계 종교의 이해도 부족해 스스로 종교철학 본문을 읽으려던 마음이 없었던 탓이다. 피할 수 없는 전공필수 과목, 피할 수 없는 과제는 어쩔 수 없이 본문을 열고서 저자가 인도하는 종교 다원주의 세계로 향하게 만들었다. 본문의 1부는 학자 별 종교 다원주의를 유형에 따라 분류한다. 아쉽다면 저자가 소개하는 대부분 학자들이 기독교적 배경에서 이야기를 하는 점 하나. 만일 ‘기독교 다원주의’라는 제목으로 구성했다면 문제없을 테지만 이 책의 이름은 분명히 ‘종교 다원주의 유형’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학자들 대부분 기독교, 혹은 영미권 학자들로(파니카 한 분 빼고) 종교 다원주의를 말하려면 다른 종교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슬람, 불교, 힌두교, 도교, 유교 학자들 목소리는 전무했다. 언어란 사고에 대한 표현이며 사용에 따라 권위가 부여되기도, 부여되지 않기도 한다. 종교 다원주의는 분명히 종교라는 상위 개념을 말한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종교 다원주의가 기독교 하나님의 배경, 혹은 영미권 학자들 사이에서만 이야기가 이어진다면 기독교 상위 개념인 종교라는 위치에서 말하는 게 아닌 기독교 그 자체 안에서만 이야기함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본문의 종교 다원주의는 언어가 가진 개념을 완전히 표현하지 못하며 나아가 힉의 지적처럼 기독교 제국주의적 성격이 가능한 게 아닐까. ◇기독교이기를 포기한 기독교 다원주의? 본문을 읽으며 고민된 지점은 기독교 다원주의에 대한 내 입장이다. 저자는 기독교 다원주의를 오늘날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묘사하며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과 근거를 싣는다. 역사적 예수 연구 세미나 결과로 예수의 배타적 발언은 케리그마(κῆρυγμα) 선포일 뿐 역사적 예수의 발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288) 다시 말해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는 케리그마 예수와 케리그마 붓다가 만나는 게 아니라 역사적 예수와 역사적 붓다가 만나야지, 케리그마 간의 만남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기독교가 가진 배타성은 케리그마라는 선포에 불과하다. 타종교와 만나 차이를 인정하는 자세를 넘어 상호간 변혁해야 할 필요성은 저자가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근거다.(292) 저자가 정의한 신학은 틸리히(Paul J. Tillich)처럼 “기독교 메시지를 새로운 상황과 상호 관련시키는 작업”(297-8)이기는 하지만 종교 간 계속되는 대화와 상호변혁은 우리가 흔히 ‘이단’이라 부르는 집단에 대한 인정을 넘어 그들을 통해 ‘상호 변혁’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기독교가 이단으로 명명한 집단과 연합이 가능한 셈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무엇일까. 사전의 정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로 믿는 종교’(지식백과)라고 말한다. 기독교는 니케아-칼케돈 신조를 가지고 천 오백년 간 이를 부정하는 이들과 싸워온 종교다. 기독교 분파에서 기독교 기본 원리는 오직 성경이고 이를 이룩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피 흘릴 만큼 중요한 전통이자 규범이다. 문영옥 연구자는 논문(니케아, 칼케돈 신조로 본 종교다원주의 신관의 문제연구)에서 종교 다원주의를 공통 합의인 니케아-칼케돈 신조를 근거로 비판한다. “유대인들의 배척이나 로마의 박해, 희랍의 철학이나 논리 앞에서도 결코 굽히지 않는 신앙을 보임으로써 진리를 수호하였는 바 이렇게 바른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정리되어 공표된 것이 바로 니케아 신조와 칼케돈 신조다.”(60) 케리그마(Kerygma) 신약성서에서 선포라는 단어로 사용했으며 설교를 의미한다.(마태 3,1; 누가 4,18-19; 로마 10,14; 1고린 2,4) 설교자가 세상을 향해 좋은 소식,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전파하는 일이 케리그마다. (장동진, 2010) 진보 정당이 진보적이고, 보수 정당이 보수적일 때 당원들은 자신의 정당을 지지한다. 현실 정치에서 보듯 정당은 정당이 가진 강령과 색채를 잃을 때 몰매의 대상이 된다. 유권자가 각 정당의 강령을 보고 정당을 선택하듯 모든 사람은 종교의 자유와 선택의 권리를 가질 뿐, 하나로의 통합, 교리가 가진 정통과 역사를 부정하면서까지 변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의 종교는 하나의 집단 체제이자 개인화된 종교로 전락했다. 피터버거(Berger)는 “오늘의 종교는 사회적 기능보다 개인적 기능에 머물렀다”고 지적했고, 루크만(Luckmann)도 “종교가 다원화 됐기에 종교는 사적인 일만을 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이원규, 종교사회학의 이해, 1997) 오늘의 종교가 자유로운 하나의 소비재가 되었고 집단성보다 개인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도구로 머물렀다. 종교가 굳이 자신이 가진 구호를 깨고 타종교와 대화를 넘어 변화를 추구하는 자세가 종교를 선택한(혹은 구매한) 이들에 대한 배신일 수 있고 그동안 지켜온 전통과 합의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 다원주의에 대한 내 입장은 종교 간 상호 존중, 배려, 대화는 가능하지만 종교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엔 의문을 던진다고 봐야 한다. 변화를 통해 종교는 종교가 가진 고유한 정체성을 잃을 수 있기에 대화와 만남에서 소극적일 수 있다는 점이 내 생각이다.

만화성경이 재미없는 이유

2019년 12월 21일
학창시절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와 ‘만화 삼국지’는 재밌게 읽었지만 만화 성경은 기억에 남질 않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만화 성경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에요. 출판 중인 모든 만화 성경을 미망이가 읽어본 건 아니에요. 기껏해야 여덟 권을 읽었지만 이 여덟 권은 인기 없는 책이 아니라 포털 사이트 기준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을 꼽아서 읽어 봤어요.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하나였어요. ‘핵─노─잼’ ◇그림체가 나빠도 스토리가 있어야 재미있다 그림체가 시대에 뒤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망이는 ‘원피스’와 ‘나루토’를 즐겨봤는데요. 동시에 등장한 교육 만화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였죠. 집에서는 ‘맹꽁이 서당’을, 책방에선 ‘떴다! 럭키맨’을 보며 살았어요. 그림체가 나빠도 만화를 이끄는 스토리가 몰입감을 가져다주면 독자는 읽는다고 생각해요. 성인이 되고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보는 이유가 뭘까요? 그림이 유치해도 책 내용 때문 아닐까요? 하지만 만화 성경은 스토리에 집중하기 어려워요. 성경이란 방대한 이야기를 한두 권으로 압축하려다보니 자연스레 이어가기가 쉽지 않은 거죠. 노아의 홍수에서 노아에게 집중하다보면 노아 이야기가 끝나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모습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구나!’ 깨닫는 순간 끝나버리죠. 마치 24부작 드라마를 1화부터 24화까지 보지 않고 24개 드라마를 1화씩만 보고 만 듯한 느낌이에요. 따라서 성경은 한두 권으로 요약하기 어려운 책이에요. ◇아무도 읽지 않는 만화 성경? 그렇다면 왜 대부분 만화 성경은 한두 권으로 구성할까요? 만화 성경을 연구하고 싶은 미망이도 2~3만원은 구매해도 10만원 만화 성경책은 구매하지 못해요. 만화 성경 소비자는 누구일까요? 어린이가 용돈을 모아 구매할까요? 아니겠죠. 교회 다니는 집사님과 권사님이 어린 자녀를 위해 구매하지 않을까요. 어린이도 학부모도 잘 읽지 않으니 서평이나 비평이 나오기 어렵죠. 이렇게 구매한 책들이 훗날 중고시장으로 나온다는 게 가슴 아픈 일이에요. 희한한 건 만화 성경이 계속해서 팔려요. 오래된 책은 절판이 아니라 계속 인쇄 중이고, 10년이 지나 개정판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출판사마다 새로운 책을 내기도 하죠. 이상하지 않나요? 아무도 읽지 않는데 책이 팔리다니. ◇문서선교의 꿈을 가졌다면 그림체도 그림체지만 미망이는 여덟 권의 만화 성경을 읽다보니 번역서에서 표절(트레이스)한 책을 발견했어요. 어떤 만화 성경책은 상상력을 가미한 책도 있었고요. 무지개 색깔 배경을 넣기도 했고 글자가 틀에서 벗어난 경우도 있었어요. 만화 제목도 참신한 제목보다 ‘한눈에 보는’ ‘하루 만에 꿰뚫는’ ‘재미있는’ ‘재밌는’처럼 진부했죠. ‘○○ 만화 성경’처럼요. 교회 집사님과 권사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읽고 만화 성경을 선물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출판업 직원들에게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회사가 이윤을 창출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순리죠. 여러분이 먹고 살기 위한 업이 아니라 문서선교라면 어린이 책만큼은 이윤추구가 아닌 미래에 대한 가치투자로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만화 성경은 어린이에게 성경을 바라보는 낯선 감정이 아니라 훗날 친구들이

[미망이의 신학 서재] JEDP를 완벽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2019년 12월 07일
미망이의 평점가독성│★★★ 내용│★☆☆ 소장가치│☆☆☆ 보너스점수│☆☆☆ 총점│4점 평점 기준 가독성 ① 한 번에 읽기 쉬움 3점 ② 두 번 읽어야 이해가 됨 2점 ③ 세 번 읽어야 이해할 수 있을 경우 1점 ④ 세 번 읽어도 어려운 경우 0점 내용 ① 독서 후 다른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함 3점 (다른 곳에 적용 가능성) ② 단순한 새로운 정보의 습득 2점 (다른 곳에 적용 가능성이 없음) ③ 새로운 정보 없이 기존 정보를 재편집 했을 경우 1점 ④ 텍스트 오류 발견 시 0점 소장가치 ① 평생을 두고 함께 갈 텍스트 3점 ② ①의 경우에는 해당 되지 않지만 지인에게 한번은 추천할 텍스트 2점 ③ 도서관에서 빌려볼 만한 책 1점 ④ 안 봐도 그만인 텍스트 0점 보너스 점수 저자에 대한 호의감이나 감동 외에 기타 점수 1점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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