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Page 4

[사설] 그저 ‘병사1’로만 생각하는 정신머리 이런 게 해병 없는 ‘해병 정신’

2026년 05월 09일
2023년 7월 19일 경상북도 예천군 내성천에서 13명의 해병대원과 폭우 실종자를 수색하는 작전에 투입된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지 2년 10개월 만에 법원은 1심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2026.05.08) 포병 대원이 구명조끼도 없이 허리 깊이까지 물에 들어가는 건 수색 작전이라 할 수 없다. 상급 지휘관의 성과 집착이 대원의 몸으로 지불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임 전 사단장은 수중 수색 사진을 보고받고도 멈추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구체적 위험을 인지한 상황에서 위험을 가중시키는 지시”라고 밝혔다. 과실이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말이다.

[사설] 지금도 綠林靑月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2019년 12월 01일
유튜브 알고리즘이라 불리는 시간 여행을 떠나다 보면 미처 생각지 못한 세계에 발을 딛곤 한다. 9년 전 ‘감옥살이 기도원’ 이름으로 방영한 지상파 프로그램에 지금에까지 격노하는 이유엔 현재도 한국교회 안에 만연한 범죄를 뉴스로 마주하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 오 모 씨는 고독하게 숨진 채 발견됐고 시체조차 거두지 못해 무연고 사망자 처리되고 말았다. 경찰이 들이닥친 기도원 풍경도 속 시원했지만. 더욱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 장면은 “나가고 싶으세요?” 질문에 조금도 망설임 없이 앞치마를 버리고 점퍼 하나 챙겨들고서 그곳 파주 소망기도원을 빠져나올 때다. 피해자 할아버지는 긴 복도를 지나는 동안 단 한번 뒤 돌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끊임없이 교인을 죄인으로 만들고 집단에 복속하게 만든다. 자신들 주장이 옳다고 입증하는 방식이 기가 막힌다. 성경이 옳으므로 성경대로 사는 삶이 옳다고 믿는 순환논리다. 집단 논리가 더해지면 강력해진다고 믿는다. 동성애도 교회세습도 배제의 정치도 아직도 지구 중심으로 태양이 돈다고 믿는 꼴이다. 자신은 용서받은 죄인으로 만들고 타자를 죄인으로 만들어 교회란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교회를 나오자 연락 끊고 관계를 끊었다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청년들이 한 둘이 아니다. 삶을 바치듯 충성한 이들에게 돌아온 결과는 배제였다. 녹림청월(綠林靑月)도 타인을 악마화하기 바빴다. 자신들이 아끼던 만화 캐릭터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작가를 상대로 인격 모독으로 소송 걸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정작 자신과 상관없는 타 캐릭터를 좋아하던 회원들을 바보 취급했다. 필명 대한제국이 카페 공간을 벗어나기 한 달 전부터 여론조작을 준비했다. 댓글공작계획이다. 주력 1과 2로 나눠 총 여섯 단계로 정리한 계획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입증하기 위한 방법으로 댓글 조작을 준비했음을 알게 한다. 2011년 이들 행적을 지적하자 글 삭제와 사과를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조차지지 않은 것이다. 안부게시판에 작성한 한 명의 사과는 이내 사라졌다. 고소를 무서워하다 아무 일도 없자 은근슬쩍 지우고 만 것이다. 그러나 녹림청월을 상대로 항복한 13년 전 필명 대한제국은 어리석은 공간을 빠져 나오며 해방을 맞이했다. 패배의 역설적 해방인 것이다. 교회를 빠져 나오면 지옥에 간다고 협박한다. 그러나 사회는 그런 기독교인 만의 천국에 간다면 지옥에 갈 거라고 농담한다. 그런 천국보다 지옥이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담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론은 한 가지에 도달한다. 비정상 구조 자체를 나올 용기다. 시민들은 한국교회가 멸망의 가도를 걷는 이유에 사탄의

[사설] 우리는 모두 신 죽음의 時代에 살고 있다

2019년 09월 27일
제 104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총회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2019. 9. 26). 명성교회수습전권위원회가 발표한 명성교회 수습안은 교단 헌법과 재판국을 뛰어넘는 초법적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헌법 제 28조 6항은 은퇴하는 위임(담임) 목사의 배우자와 직계비속,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는 위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재판국은 명성교회가 교단 헌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김하나 목사 청빙 결의를 무효로 판단하기까지 했다(2019. 8. 5). 명성교회수습전권위원회는 수습안을 통해 명성교회 위임목사 청빙을 2021년으로 미룸으로써 김하나 목사를 위임목사로 청빙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 헌법에선 분명히 직계비속을 위임목사로 청빙할 수

[사설] ‘졸린 꿈’이 깨자 일상으로 돌아가는 靑春들

2019년 08월 04일
2017년 11월 14일 발표한 이 곡 ‘졸린 꿈’은 사회의 모든 가치와 존재가 파편화되고 갈라지는 시대에 태어났다. 양성 갈등, 세대 분열, 각자도생, 이데올로기, 포퓰리즘, 갇힌 사회, 폐쇄 집단, 공동체 부족화(化), 취업전선(戰線), 과거회귀, 무엇이든 양분되고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현대를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우리가 디딘 이 땅 사회와 내면의 세계, 심지어 시간조차 일상과 특별한 시간(카이로스)으로 갈라져 첨예하게 파편화되고 갈라진 틈 사이에 시대의 권력과 자본, 의욕과 희망을 잃은 채 우리 청춘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청년 멘토로 등장한 이들은 인생이란 이런 것이며 꿈을 위해 직장을 포기하고,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무엇이든 버리라고 가르치지만 정작 남의 꿈을 먹은 또 하나의 괴물과 다르지 않았다. 파편화 된 청춘을 위한 정책 수립이 쉽지 않은 듯 운동권 세력과 386세대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 아등바등한다. 늙어버린 국회 정상화는 시급한 과제로 떠올라 84일 만에 자유한국당이 복귀해도 김대중 정권 이후 최장기 멈춰선 국회에 어느 청춘도 기대를 걸지 않는다. 교회라고 다르지 않다. 청춘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 꾸준히 외우고 읊은 구절이 우습게 보이듯, 지금 대한민국 청춘은 창조주 위에 건물주가 날아다닌다는 자명한 농담을 가리킨다. 청춘을 가져다 바쳐도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보상도, 성취도 아무 남는 것 없이 교회는 천국으로 기만한다. 유튜버로, 아이돌로, 공무원으로, 힐링(healing)과 번 아웃(Burnout Syndrome)이 조류로 등장한 지도 오래다. 대한민국 청춘은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얼룩져 있는 것이다. 시간이 멈추고 이 꿈이 깨이지 말아 달라 소원을 빌자 그 뒤로 별똥별이 스러지듯 지면 아래 떨어졌다. 연인의 어깨에 기댄 채 동화책을 읽어주듯, 청춘을 일군 옛날 옛적 추억의 동화를 무대에서 낭송하자 팬덤은 손뼉 치며 응원봉을 흔들었다. 이곳저곳 나눠진 망원동 연습실서 살아온 이들이 느낀 슬픔도 같을까,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면 나쁜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 소감을 밝힌 케이의 눈동자가 팬덤에게 잊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새겨졌다. 조각으로 나눠진 시대의 아픔과 애환으로 얼룩진 소녀들은 조각조각 갈라지고 만 각자도생 대한민국 청춘을 향해 “이 노래를 바친다.” 꿈속 어딘가 노래 접한 이들은 갈라진 인터넷 어딘가에 고맙다는 글을 남긴다. 연예인이 되어 평생을 웃게 해줄거란 고백에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었다며 고마운 존재로서 러블리즈를 호명한다. 이제 막 꿈에서 깬 청춘들은 자신의 삶을 지킬 힘을 이들에게 얻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이돌이 청춘에게 위로를 건네는 시대라니. 언제든 깨어야 할 꿈이란 걸 잘 알듯, 언제든 자기에게 기대라고 말한다. 소녀로 보이는 이들이 무슨 힘을 가지고 있겠나. 언제든 힘없이 스러질 소녀란 걸 잘 알 듯, 고마운 기억은 감정에 멈추지 않은 채 또 다시 주체적 힘으로 살아갈 새 힘으로 나타나 오늘의 졸린 꿈을 잊지 않겠다고 말한다. 언젠가 청춘이란 이름으로 흩어진다 할지라도, 이름 모를 청년으로 호명된다 하더라도, 청춘의 시대가 접어들어 어디로 갈는지 몰라도, 겁먹지 않겠다는 고백과 함께 지금의 어처구니없는 시대를 졸린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답을 알 수 없고 보편적 진리는 없는 것 같아도 정의롭지 않은 일에 정의롭지 않다고 외치며 사랑하는 일에 사랑한다 외치는 용기를 안으며 작금(昨今)의 시대를 잊지 않은 채 러블리즈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들과 2019년 8월 4일을 살아가고 있다.

[사설] 정작 당사자가 없는 한국교회

2019년 07월 28일
삶의 최후의 보후로 여긴 여성이 향한 곳은 교회였다. KBS 사시기획 창을 통해 폭로된 교회 성폭력은 너무도 익숙한 일상으로 비쳤다. 인천 모 교회 목사가 저지른 그루밍 성폭력을 바라본 그 교회 교인은 “나이 차이 나는 연인이었다”는 기가 막힌 변호를 이어갔다. 목사가 스물여섯 명 여학생과 성관계를 해도 그저 “나이 차이 나는 연인이었다”고 말하는 종교가 된 것이다. 언제부터 교회가 성에 이토록 관대했나. 문대식은 여대생을 바라보며 내심 걱정했다. “여자 청년 다섯 명 중 두 명은 결혼 전에 섹스를 했다니까.” 교회는 마치 가까운 언니와 누나가 순결을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 딸을, 나의 누나를 지켜야 한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기독교 발(發) 공포팔이는 이 뿐만 아니다. 청와대 앞 천막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은 ‘문재인은 하야하라’ 현수막을 뒤로하고 단식했다. 이유 중 하나는 동성애 반대였다. 이애실 씨가 출간한 『만화 어? 성경이 읽어지네!』엔 인상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인도 카주라호 사원 미투나 상인지 벽화인지 모를 그림을 그려놓고 “포르노”라며 “성화(性畵)가 그들의 성화(聖畵)”라는 웃지 못할 해석을 담아놨다. 요가 상(狀)은 “마약을 피우며 앉아 있는데 이들이 마약중독 남자 성창(性娼)”으로 묘사하는데 고대 힌두교가 쾌락과 타락의 온상이란 주장에서 역사적 고증도 맞지 않고 해석도 틀렸다. 이런 수준 떨어지는 책이 겨냥한 독자층은 청소년이다. 청년 사역자로 등장한 이들도 다르지 않다. 음란물은 끊어야하고 성은 억제해야 할 죄로 가르치는 수준이다. 여신 숭배 사상조차 접하지 못한 이들은 시대착오적 상상을 넘어 인간이 어떻게 성을 주체적으로 이해했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죄’라는 단어로 공포를 유발한다. 이들은 10년 전 반기독교시민연합이 주도한 ‘바이블 19금(禁) 제정 운동’을 잊어버렸나보다. 오난(창세 38,10)과 월경을 다룬 조항(레위 15,26), 성폭행 당한 레위인 첩 이야기(사사 20,6)도 문자적으로 실행해야 할 거룩한 성(聖)스러운 구절인가? 문대식도 청소년을 겨냥해 자신의 책을 팔았다. 여성은 자동차 가진 남자를 조심해야하고 24살까지 연애해선 안 되며,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 피해자의 음란함도 분명히 죄라고 주장하니. 한국교회 성 인지 수준은 이 모양 이 꼴이다. 성폭력이 드러난 이유는 악마가 교회를 공격했기 때문이 아니다. 목사가 여성을 성적 해소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목사들의 성 인지부터 챙겨야 할 상황에 애먼 여학생 순결을 걱정하는 꼴이니 목사들부터 미신(迷信)에서 자유하길 바란다. 니체가 귀족도덕과 노예도덕을 왜 나눴겠는가. 10년 전부터 주일학교에 주일학생이 없고, 청년부에 청년이 없으며 한국교회엔 교인이 없다. 그래도 목사들은 “난 야훼로 즐거워하리”(하박 3,18) 노래를 부르고 있다.
소랑 2026년 9월 19일 토요일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