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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객관적상관물85

유부 선생님의 따귀 입력 : 2020. 05. 15 | 디지털판 선생님 옆을 보좌하며 출석부든 내 모습은 누가 봐도 비서처럼 보였을 것이다. 비서답게 6년이란 시간 속에서 두 번. 두 번 선생님 입에서 나오던 한 숨을 들어봤다. 하루는 무더운 여름 애써 수업 중에 선생님이 격노하던 때였다. 얼마나 시끄럽던지 스스로가 자제하질 못할 수준으로 노이즈가 번지자 아이들을 향해서 끝내 윽박지르고 말았다. 선생님은 장정 한 시간 동안 설교를 이어갔고 다른 수업에도 자제하질 못하면 되겠느냐 혼냈다. 사실 아이들도 짓궂었다. 자기들 싫어하는 선생, 수업시간에 대답하지 말아보자 단합했지만 나 같은 반항심 있는 놈 때문에 무산되곤 했으니 말이다. 한 번은 연로한 담임에게 대들다 따귀 맞은 광경을 목도도 해봤다. 대놓고 교육청에 신고하겠다고 .. 2020. 5. 15. 23:11
“착한 사진은 버려라” 입력 : 2020. 05. 01 | 디지털판  두 사진의 차이를 물으면 케이크와 꽃.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학년을 지내며 담임선생님 생일을 맞아 찍었다. 아홉 시간이 지나 카메라에 담은 꽃 사진이 케이크를 찍은 사진보다 더 의미 있다고 느꼈다. 예쁘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 담아 놓은 케이크 사진보다 의미와 포커스를 두고 찍은 꽃과 하늘, 나비 사진이 더 기억에 남으리라 생각했지만. 여러 해가 지나 생각은 생각에 지나고 말았다. 동창과 함께 다시 본 그 시절 사진은 분명히 포커스도 맞지 않고, 흔들림도 보정하지 않아 상업용으로 남길 가치도 없는 사진이라 생각했지만. 우리라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그 때의 감정이 사진 그 자체에 오롯이 남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당장 .. 2020. 5. 1. 22:54
그것을 만나는 시간에 입력 : 2020. 03. 19 | 디지털판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을 인식할 때마다 늘 그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늘 어둠 속에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말해주었고 색채를 잃은 것 같으나 잃지 않은 특정한 색깔로 다가올 때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그것을 불편함이 창궐하는 자리에서 만났다. 그것 속에 존재할 때 흥미로움을 깨닫는다. 그것 속에는 짜릿함이 없다. 그것 속에는 소음이 없다. 그것 속에는 뜨거움도 없다. 그것 속에는 박수 소리도 없고. 그것에는 동질감이 없다. 그것에는 강박도 없으며. 그것에는 행위도 없다. 때로 그것은 타자이기도 하고, 그것은 침묵이기도 하고. 그것은 대화이기도 하고. 그것은 슬픔이기도 하다. 그것과 만남을 가질 때 비로소 인간으로 .. 2020. 3. 19. 21:41
봄의 햇살이 그리워 미치겠다 입력 : 2020. 03. 14 | 디지털판  토요일 아침 9시, 머잖아 개방한 도서관 끄트머리 자리에 앉아 대판으로 만들어진 신문을 펴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려 가다보면 한 시간 반. Books엔 어떤 기사가 실려 있을지, 사진 한 번 훑고 거대한 제목에 끌리는 기사부터 정독했다. 드립 커피도 있다지만 꼭 300원 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셔왔다. 그게 룰이고, 10년 간 이어온 습관이다. 유일하게 10년의 시간이 단절된 한 차례의 2년을 제외하곤 그 습관이 단 한 번도 끊어진 적 없었다. 전염병이 평범하고 행복한 나의 일상을 빼앗아 갈 줄은 꿈에도 몰랐고 정리를 위해 열어둔 파일 속 햇살에 비친 어제의 신문을 보노라니 그 일상이 몹시도 그리웠다. 언제면 일상으로 돌아갈까, 언제쯤 그곳으로 돌아갈까. .. 2020. 3. 14. 05:47
“나는 괜찮지 않다” 입력 : 2020. 02. 07 | 디지털판  집단으로 모여야 한다는 강박은 두려움을 잊게 한다. 마음속 무자비하게 만들어지는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잊고자 집단으로 모여든다. 나와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고, 공감할 감정을 가졌는지 묻고, 다시금 재확인한다. ‘나는 괜찮다’를 느끼는 순간이다. 그런 같은 성(性) 테두리 안에서 이질감을 느낀 이유도,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불쾌감을 느낀 이유도, 좌파와 우파라는 테두리 안에서 지루함을 느낀 이유도 한 번도 집단은 나의 괜찮음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언제든지 사람들의 비웃음이 될 것임을 상기하며 살아왔다. 지금도 종교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다. 사나이로 살지 않아도 불편한 것 하나 없이 지낸.. 2020. 2. 7. 22:47
만들어진 것에 우리는 주목한다 입력 : 2020. 01. 20 | 수정 : 2020. 01. 20 | 디지털판  미아쟈키 하야오(宮崎駿)는 『미래소년 코난』에서 만들어진 것에 주목한다. 몬스키란 여성이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다시금 인간의 순연함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19화에서 만들어진 것의 실체를 깨달은 몬스키의 충격을 그려낸다. 하야오가 담아놓은 인간의 조건엔 아무래도 순연함이 존재하지 않을까. 순연함은 진정성과 궤를 달리 한다. 진정성도 만들어진 것에서 비롯할 수 있기에 만들어지지 않은, 존재 그 자체의 것을 순연함이라 말할 수 있다. ‘만들어진 이념’ ‘만들어진 기억’ ‘만들어진 계급’ 하야오가 지적한 2008년을 훌쩍 넘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우리는 기억 전쟁으로 만들어진 것을 위해 살.. 2020. 1. 20. 22:27
10년 전의 편지 입력 : 2020. 01. 01 | 수정 : 2020. 01. 02 | 디지털판 그 때도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다. 아래아 한글에서 지원하는 기본 클립아트를 이용해 하나하나 붙였을 모습을 생각하니, 그 노고를 상상하며 그 때도 웃었던 것 같다. 벌리지 않은 자간이 노랫말을 줄글로 만들었고 반복되는 어구에 큰 글꼴로 넣어 촌스러움이 더욱 묻어났다. 머잖아 이과로 옮겨 간다고 일반사회란 과목을 지나가는. 그런 것쯤으로 생각했겠지만. 담임을 무서워한 아이들은 자신들이 들어본 적 없는 이 노래를 앞으로도 들어볼 의향이 없다며 시험 범위를 받아 적거나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돼지와 하마를 적당이 섞어 부른 아이들은 저 클립아트가 아래아 한글에서 제공하는 기본 아트라는 사실도 모른 채 살피지도 않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2020. 1. 2. 00:30
너의 시대는 저물어 가는구나 입력 : 2019. 11. 27 | 디지털판  본사에 올라와 저물어가는, 저녁놀을 바라봤다. 청명한 가을은 온데간데없고. 보이는 건 나의 한 숨 너머 퍼져가는 공기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곧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팍팍해진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지만. 그렇지만, 인지부조화로 가득한 우리네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부조리함을 느낀 첫 순간, 어두워져가는 오늘의 하늘처럼. 마치 바라보길 바라던 마음 안고 네거리로 모여든, ‘당신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 그때처럼. 지금의 시대도 오래지 않을 거라 예단하고 말았다. 유감이란 표현과 감정적 술어를 곁들어 아무 문제없을 거라 자신했던.. 2019. 11. 27. 00:39
돌아가는 길 입력 : 2019. 10. 18 | 디지털판  무엇이든 처음이면 두렵고 떨리기 마련이다. 처음 발을 디딘 이곳 세계를 가늠하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무겁게 내리 깔은 눈동자는 10시 30분을 가리켰고 이 좆같은 심정은, 버스 안에 탄 우군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유를 빼앗긴 시절을 지내온 지금이 더 낫지 않느냐고 묻곤 한다. 그 때 그 시절을 되뇌며 그리워하는 새끼치곤 잘 사는 놈 없다며. 왁자지껄 “지금이 낫지” 말해대는 자유를 박탈당한 한 가운데서 지그문트 바우만 유작 ‘레트로토피아’의 새로운 장을 넘겨댔다. 그 두렵고 떨린 마음도 이젠 몸이 기억한다는 이유로 사라지고 없어졌다. 남은 것은 귀찮음과 불편함뿐이다. 쾌쾌한 냄새로 얼룩진 방탄모와 탄띠는 몸이 기억하는대로 맞춰놓고 .. 2019. 10. 18. 21:31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입력 : 2019. 09. 14 | 디지털판 일조차 중독이 되어버린 현대인에게 무언가를 하지 않는 불안함은 견디기 힘든 지금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카페라도 나서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할 뿐이다. 무엇을 하고 살아갈 것인가.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무엇은 무엇인가. 나이 들어 고물이 된 시계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걱정과 고민을 해대지만 달라지는 것 하나 없다. 불안함 속에 드라마 교사가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 불안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중요한 것은 그 때문에 자신감을 잃거나 아무런 근거 없는 소문에 휘말리거나 다른 사람을 상처를 입히지 않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바르게 살면 천국에 간다거나, 순리를 거스르면 지옥에 떨어진다.. 2019. 9. 14. 1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