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 01. 20 | 수정 : 2020. 01. 20 | 디지털판
미아쟈키 하야오(宮崎駿)는 『미래소년 코난』에서 만들어진 것에 주목한다. 몬스키란 여성이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다시금 인간의 순연함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19화에서 만들어진 것의 실체를 깨달은 몬스키의 충격을 그려낸다.
하야오가 담아놓은 인간의 조건엔 아무래도 순연함이 존재하지 않을까. 순연함은 진정성과 궤를 달리 한다. 진정성도 만들어진 것에서 비롯할 수 있기에 만들어지지 않은, 존재 그 자체의 것을 순연함이라 말할 수 있다. ‘만들어진 이념’ ‘만들어진 기억’ ‘만들어진 계급’ 하야오가 지적한 2008년을 훌쩍 넘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우리는 기억 전쟁으로 만들어진 것을 위해 살아간다. 만들어진 조국, 만들어진 대한민국, 만들어진 자유, 순연한 것이 아닌 진정성의 논리로 상품을 팔고 이게 진짜라 설파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구분하기 힘든 대중은 만들어진 것 중에서 진짜를 찾아 헤맨다.
만들어진 세계 속에 몬스키는 만들어가야 했다. 인더스트리아 위에 솟은 삼각탑이란 이념을 세워야 했고 지하에 숨겨 놓은 비행정을 위해 세계 정복으로 사람들을 개조해야 했다. 만들어진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느라 그는 인간성을 잃고 만다. 인간성을 잃는다는 것은 기억을 잃는 것이고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는 죽음 그 자체로 향한다. 그러나 인간성이란 순연함 그 자체를 유지하던 코난이 등장했다. 그를 보며 “대단한 아이”라 말했지만. 대단한 이유는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순연함을 지키며 자신의 생명을 오늘에까지 유지했기 때문이다. 지구가 멸망해도 홍차는 살아남았고, 전자파로 인해 모두가 죽은 듯했지만 발발이가 살아 있음은 순연함이 가져다 준 생명력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근무 중에 진짜 홍차를 마시며 20년 만이라는 기억을 되찾는다. 죽은 발발이를 부르며 20년 전 그 발발이를 되찾는다. 몬스키에겐 ‘인터스트리아 행정국 차장’ 직함 역시 만들어진 그의 위치다. 만들어가는 이념과 만들어가는 세계 속에 몬스키조차 만들어진 여성이자 1등 시민이란 존재임이 과거의 기억을 잃게 만들었다. 다가오는 해일 앞에 넋 놓으며 나의 직감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걸까. 하이하바 벤치에 앉아 강아지를 보며 소녀였던 자신의 낭만을 기억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났을 것이다. 마을 아주머니 덕분에 되찾은 여성이었을 당시에 입었던 그 옷으로 과거를 되찾아갔을 것이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건 단순히 기억의 재생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고장 난 테이프가 되감는 것처럼 같은 부분만을 반복하며 피해 서사를 만드는데 기억 인지의 초점을 맞추었더라면. 우리는 새로운 관계, 새로운 정책을 되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기억, 만들어진 내러티브, 성숙 내러티브와는 결을 달리한다. 성숙조차 만들 수 있고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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