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 11. 27 | 디지털판
본사에 올라와 저물어가는, 저녁놀을 바라봤다. 청명한 가을은 온데간데없고. 보이는 건 나의 한 숨 너머 퍼져가는 공기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곧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팍팍해진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지만. 그렇지만, 인지부조화로 가득한 우리네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부조리함을 느낀 첫 순간, 어두워져가는 오늘의 하늘처럼. 마치 바라보길 바라던 마음 안고 네거리로 모여든, ‘당신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 그때처럼. 지금의 시대도 오래지 않을 거라 예단하고 말았다. 유감이란 표현과 감정적 술어를 곁들어 아무 문제없을 거라 자신했던 당신들의 시대가 머잖았음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만 순간이다.
그러나 나는, 새벽 라디오를 들으며 박사의 말에 웃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희망이라 부름직한 짜릿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이제 너라는 족쇄에서 벗어났다. 너를 완전히 놔버림으로써, 너를 박제된 존재로 바라보았듯. 너를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받아들인 것처럼. 마음의 순연함이 피어올랐다. 이제 너는 내 삶의 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나는 나다.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나다.
비로소 한차례 자유를 맛보는 기분이다. 본사에 올라와 하늘을 바라보는 보랏빛 속에, 너가 속삭이듯. 너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의 시대가 지나가는구나”
안녕, 너의 시대.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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