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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객관적상관물

돌아가는 길

입력 : 2019. 10. 18 | 디지털판

 

무엇이든 처음이면 두렵고 떨리기 마련이다. 처음 발을 디딘 이곳 세계를 가늠하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무겁게 내리 깔은 눈동자는 10시 30분을 가리켰고 이 좆같은 심정은, 버스 안에 탄 우군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유를 빼앗긴 시절을 지내온 지금이 더 낫지 않느냐고 묻곤 한다. 그 때 그 시절을 되뇌며 그리워하는 새끼치곤 잘 사는 놈 없다며. 왁자지껄 “지금이 낫지” 말해대는 자유를 박탈당한 한 가운데서 지그문트 바우만 유작 ‘레트로토피아’의 새로운 장을 넘겨댔다.

그 두렵고 떨린 마음도 이젠 몸이 기억한다는 이유로 사라지고 없어졌다. 남은 것은 귀찮음과 불편함뿐이다. 쾌쾌한 냄새로 얼룩진 방탄모와 탄띠는 몸이 기억하는대로 맞춰놓고 나오라는 시간까지 누운 채 기다려주는 소품에 불과하다. 주적의 개념도 모호해진 2019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짜 적은 그들이란 농담이 살에 와 닿지 않듯, 전염병과 국가 대 테러, 자연재해를 새로운 적으로 삼고 말았다. 전시를 대비한단 명목으로 총알받이가 될지도 모르는 한복판에 던져 놓고, 다시금 새로운 적을 마주하고 마는데. 그렇게 대의를 위해, 정의와 안녕을 위해. 우리의 시간은 타오르듯, 사라져갔다.

전쟁은 내가 벌이는 것도 아닌데. 수고했다고 인사해준 그들이 일으킨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대의와 지킨단 말인가.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브로콜리너마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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