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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일과속기록

[일과속기록] “서른즈음에”

입력 : 2017. 10. 26 | 지면 : 2018. 10. 02 | A26


지난 주일, 서울을 다녀왔다. 나에게 중요한 기념할 만한 일들이 벌어진 날이기도 했고,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랑의교회 갱신위원회-명동성당을 오가며 저녁, 이화여대로 향했다. 이 날 여행의 꽃은 꽃케이가 첫 뮤지컬을 선보인 ‘서른즈음에’였다. 뮤지컬을 위해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케이도 나도, 뮤지컬은 처음이었다. 대기업 차장인 주인공 이현식이 고단한 헬조선에서 힘겹게 살아내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어느 날 한강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우연한 기회로 과거, 가장 아름다웠던 청춘 스물아홉 때로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전개 된다.


‘그 땐 그렇게 하는 거였는데’라는 푸념으로 시작해서 ‘이렇게 살아야지’라는 결심으로, 주인공은 자신이 마음에 품고 있던 그녀에게 고백하여 교제하게 됐고 어머니로부터 음악을 인정받는 쾌거를 이루지만 음악에 몰두한 나머지, 차이고 어머니가 운영하던 반찬가게는 불명의 화재로 전소된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지만 한 순간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가당찮다고 하면서도 “그땐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설상가상, IMF가 터졌다. 모두가 공동의 십자가를 져야했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시위에도 참여했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대로 차에 치여 죽을 이현식으로 살아야 할 판이다.


도대체 케이는 언제 등장하는 걸까 “현식 선배!”라며 “옥희? 오키~!”하던 저 평범한 여자 분이 케이였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옥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현식을 도왔고, 챙겨줬다. 숙취 때문이라며 박카스를 건네 준 장면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왜 감독은 옥희를 넣었을까. 옥희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쉬는 시간 15분 동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옥희를 잊지 말자’고. 도대체 그 옥희는 뭘까 고민하다 공연은 시작됐고, 드디어 옥희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차렸다. 바로 ‘현실’이자 ‘일상’이었다. 외면하고 싶은 고통스러운 일상을 도외시하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했던 거였다. 일상은 우리와 떨어질 수 없었고, 떨어지지 않았다.


공강 시간, 벤치에 누워있을 때도. 작사 작곡 중에도, 가게가 전소 돼 잿더미가 됐을 때도, 마지막 옥희가 휴학 결정을 내린 술자리에서도. 옥희는 현식을 사랑했다. 모르는 있던 건 현식뿐이었다.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런 옥희 마저 현식을 떠나고자 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영영 옥희를 붙잡지 못하는 건가 싶은 찰나에 고백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현식의 가슴팍을 때리는 옥희 뒤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옥희라는 빛이 마음에서 반짝였다.


현식은 결정했다. 자기를 다시 2017년으로 데려달라고. 눈이 뜨인 곳은 병실이다. 아들이 몰래 기타를 사도, 직장에서 책상이 화장실 앞으로 옮겨가고, 이혼하자며 소리치는 아내가 있어도,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랬다. 남편이 깨어나길 기도하며 울고 있던 아내에게 오랜만에 이름을 불렀다. “옥희야 사랑해” 그러자 “나도, 현식 선배”라고 답하는 장면에서 막이 내린다.


사실, 자신 없다. 그렇게 대차게 까대던 11년 전으로 돌아간다 한들, 용기 있게 살 수 있을지. 또 다른 선택에서 벌어질 새로운 선택에 용기 있게 살아낼 힘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어제 일을 연대별로 정리하고 분석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행동 방식에서 돌아설 수 있게 됐다. 그 전환점이 작년 10월 22일이다. 드디어 제도권 교회를 나와 제 3자의 시각으로 교회를 보게 되면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든 그 책임에, 용기 없이 신적 개입을 남용하는 자세가 있음을 깨달았다.


과거는 그렇게 비참하지 만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는 거다. 젊은 현식과 중년 현식이 현재를 노래하는 장면에서 소망을 잃지 않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