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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신학; 신앙

[신앙칼럼] 내일학자의 가면

입력 : 2018. 10. 23 | 지면 : 2018. 12. 18 | A21


그다지 교회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던 외삼촌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교회는 헌금 많이 내면 전도사되고, 장로 되는 줄 알았지. 아니었나?” 종교라는 신성을 생각해보면 화딱지를 내며 “그렇지 않다” “오해다” 변명했을지 모른다.


이론과 실재는 다른 법. 학교에서 같이 신학을 공부하던 집사님과 대화를 나누다 집사님네 목사님을 만났다. 누구보다 공손하고 깍듯한 모습에 깜짝 놀라 생각했다. ‘하긴, 영지자연자유주의 신학하는 흙수저 교인을 어느 목사가 좋다고 잘해주겠나.’


인사를 하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가면 쓰고 돈 많은 집사에게 깍듯해지는 목사만큼 가면 쓰고 박사인 척 책을 내는 자칭 학자들도 문제다. 유독 서점에 가면 기독교 카테고리는 읽을 책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팀 켈러, 하용조, 유기성. 그나마 한국 교회에서 팔린다던 자칭 내일학자 글은 도무지 눈 뜨고는 봐줄 수 없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중간에 읽다가 소리치고 말았다. “나무야 미안해!”


정확한 걸 요구한 건 아니다. 누구든 할 수 있는, 지금의 현상을 잘 목도만 하면 진단 가능한 이야기를 내일 벌어질 일이라 예측해대고 있으니. 그것도 시장으로 형성된 한국교회에 책을 내놓고 팔아대고 있으니. 믿을만하다며 덩달아 너도 나도 구매하는 기독교인 통찰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으니.


경제학이나 정치학, 하다못해 역사학을 전공하지 못한 신학 전공자로서 학문으로 비판하기란 쉽지 않았다. 왠 쓸데없는 어려운 말로 도배를 해놨는지. 우스울 따름이었다. 과연 그 수많은 기독교인 중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분이 단 한 사람도 없단 말인가. 아니면 학자이자 기독교인이기에 이런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