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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

경계선에 선 ‘미츠하’와 ‘타키’

입력 : 2017. 02. 05 | 지면 : 2017. 03. 28 | A24

 

시작부터 가슴을 만지면서 시작할 줄은 몰랐다. 잠옷을 벗고 거울을 잡으면서 “헤엣!”하는 장면은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느낌이라 더욱 낯 뜨거웠다.

 

   지난 해 8월, 일본에서 먼저 개봉한 ‘너의 이름은.’(여기서 .을 빼먹으면 안 된다!)은 국내에서만 15일 기준 240만 명, 일본에선 지난 12월 25일 기준 1,640만 명이 관람한 영화다. 역대 일본 흥행수입에서 4위를 차지할 만큼 대박 난 영화다.

 

   여 주인공의 가슴을 마구 만져대고, 타액을 술로 담는 장면이라든지 지나친 운명론에 의지한 내용은 비판적인 요소이지만, 이를 제쳐두고 눈물을 참으며 떨리는 감정을 겨우 절제한 것엔 섬세함이 있었다.

 

거울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미츠하. ⓒ도호

 

 

◇ 애니메이션 곳곳에 눈여겨 볼 섬세함

   영화의 이름은 ‘너의 이름은(君の名は)’이 아니다. ‘너의 이름은.(君の名は。)’이다. 점이 있기 때문에 다음에 무언가를 말할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관람객으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아닐까.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요요기 빌딩’과 ‘히다후루카와역’, ‘케타와카미야 신사’ 등 실제 장소와 똑같이 그리는 섬세함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해가 져 가고 있는 도쿄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저게 애니메이션이라고?’라며 놀라기 바빴다. 때문에 처음 본 영화엔 기술에 감탄하느라 시작 부분의 OST 전개 내용을 놓쳐버렸다.

 

   배경엔 또 다른 요소가 숨겨져 있다. 황혼기에 여 주인공인 미츠하와 타키가 만나기 전, 배경은 2013년과 2016년을 담고 있다. 타키의 몸엔 2016년을, 미츠하의 몸엔 2013년을. 때문에 배경을 주의 깊게 보지 못하면 ‘저거 채널(서버)가 달라서 못 만나는 거 아냐?’하는 우스갯소리를 할지 모르겠다.

 

◇ 혜성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혜성은 재앙이었다

   혜성이 떨어지는 모습은 포스터에서처럼 아름다웠다. 반짝 반짝 빛나는 혜성은 숨죽이며 볼 수 있는 요소다. 하지만 아름다워 보이는 그 혜성이 재앙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2013년의 미츠하와 2016년의 타키가 황혼기에 만났을 때, 몸이 바들바들 떨릴 만큼 감격했다. 동그란 눈을 뜨고 타키를 붙잡으며 부둥켜안을 만치 반가워하는 모습에서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가족과 연인을 잃은 이들을 볼 수 있었다. 보고 싶지만, 고단한 인생 속에 희생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장면에서 인간의 나약함이 묻어났다.

 

   꿈을 꾸고 꿈의 내용을 잊어가는 비극은 평범함을 그렸다. 평범함에 묻혀 희생자를 떠올리지 못하는 건 충격이 컸기 때문일까? 작 중엔 꿈으로 인해 ‘잊혀져가는 무언가’로 설명하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았으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또 하나의 아픔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두고 ‘신의 뜻’을 함부로 말하거나 언급하는 건 실례를 넘어서 신의 이름을 망령(妄靈)되게 일컫는 행동이 될 것이다.

 

떨어지고 있는 혜성을 바라보는 2013년의 타키. ⓒ도호

 

 

◇ 13년과 16년의 경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간 전개가 급하게 흘러가며 ‘차라리 일본인이었으면’할 정도로 자막이 지나갔다. 이는 일본 고유의 농담에서 비롯했다. 스쳐지나가는 장면이겠지만 타키의 몸을 입은 미츠하가 친구들에게 “私(わたし·와타시·여성어)” “私(わたくし·와탁시·정중하게 쓰는 말)” “僕(ぼく·보쿠·남성어)” “俺(おれ·오레·남학생)”하는 장면에서 신속하게 웃었다.

 

   노골적으로 여성인 미츠하의 가슴을 만지는 장면은 부끄러웠지만 남성과 여성이 바뀌었을 때 궁금할 부분을 해소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장면을 가족과 함께 보는 것은 무리이지 않을까.

 

   지나친 운명론, 급 전개, 성적 묘사는 아쉬웠다. 일본의 전통이야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자의 몫이라고 생각하지만 ‘우연히’라는 요소가 많아 처음 보았을 때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막을 띄웠으면 작품을 훼손했을까? 2013년과 2016년의 경계선을 알지 못해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혜성이 떨어지는 아름다운 광경은 2013년과 2016년의 경계선(황혼기)에서 마침내 2013년으로 돌아가 재앙을 막아내는 기적을 만들었다. 미츠하가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했으며 마을 주민들이 짧은 시간 안에 대피하는 과정이 생략 돼 있는 것보다 기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단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영화 곳곳에 나타난 섬세함

‘요요기 빌딩’, ‘히다후루카와역’ 등 실제 장소와 똑같이 그려냄

영화의 기술, OST도 하나의 전개 과정이다

 

재앙을 아름답게 그려내다

재앙을 의미하는 혜성, 재앙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미츠하와 타키가 만났을 때, 동일본대지진 당시 가족과 인연을 잃은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려운 작품

시간 전개가 급하게 흘러가 자막으로 이해하기 어려워

가슴을 만지는 등 성적인 요소는 가족과 함께 보기 무리

 

영화 상영을 방해하는 혼모노

일본어로 ‘진짜’라는 뜻의 혼모노, 영화 상영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어

‘오타쿠’로 알려진 이들 실제 등장해 ‘혼모노’에 놀라

 

 

◇ 상영 중 불편을 끼치는 행위를 일삼는 ‘혼모노’ 논란이 일기도

   모 커뮤니티 사이트에 여럿 올라온 글이 있다. 영화 상영 중 불편을 끼치는 이들로 알려진 ‘혼모노(本物)’들이다.

 

   일본어로 ‘진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혼모노들이 비판을 받는 것엔 이유가 있다. 미츠하와 타키가 만나 펜을 떨어뜨리는 장면에서 “띠용?”하는 소리를 내는가 하면 영화관 아르바이트생임을 밝힌 유저가 “영화관 상영이 끝난 후 문을 개방하면 타 영화와 다르게 씻지 않은 냄새가 진동했다”고 증언하는 사례, 스마트폰 알람을 평소 일어나는 시간인 오후 대에 맞춰 놔 영화 상영 중 알람이 울리는 사례, 신카이 마코토 감독 내한 기념 무대인사에서 일부러 일본어를 사용해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은 사례 등 많았다.

 

   흔히 오타쿠(オタク)로 알려진 음지 내의 극성팬들보다 ‘혼모노’로 쓰인 것에는 실제로 극성팬들이 존재했느냐는 놀라움 때문이다. 특히 ‘너의이름은.’이 흥행하면서 ‘혼모노’라는 이름이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로 퍼지면서 알려졌다.

 

◇ “갈라지는 것들의 파괴력과 이어지는 것들의 치유력” 극찬

   김혜리 평론가는 “시공을 초월한 대화에 대한 신카이 마코토의 천착이 피워낸 하나비”라는 평을 내렸고, 박평식 평론가는 “신카이 마코토, 일본 애니의 축복!”이라는 호평과 “아련하고 신비롭게, 상실과 재난을 기억하려는 안간힘(황진미)”, “결국 기억해야 하는 건 아이의 이름이다(이용철)” 등 평가를 했다.

 

   이동진 평론가는 “갈라지는 것들의 파괴력과 이어지는 것들의 치유력,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의 태반은 끝내 연결하려는 안간힘에서 온다”며 BBC는 지난 해 12월, 2016년 한해 최고의 영화 10위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