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 08. 11 | 수정 : 2020. 08. 13 | A29
라스트 세션
마크 세인트 저메인 극본, 오경택 연출 | 90분 | 2020
독일을 상대로 영국과 프랑스가 선전포고한 1939년 9월 3일 프로이트가 루이스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기독교 변증가로 알려진 문학가 C. S. 루이스가 펼치는 90분의 대화. 문학을 꿴 신앙─고통─성(性)─죽음─삶 그리고 신(神)을 논한다.
세계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번쯤 물어봤을 신의 존재 앞에서 하고 싶었을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다. 신이 살아 있다면 왜 인간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는가. 예수는 신이 아닌 정신병자 아닌가. 그럼에도 보편적 도덕률은 존재하지 않는가. 들키면 그만일 예수의 죽음이 조작일 근거가 있는가….
두 사람의 대화는 관객들을 두 의견 중 하나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게 만든다. 기독교vs과학의 측면이기에 충분히 그렇다. 하지만 이제부터 뻔한 기독교vs과학이란 프레임을 벗어나 루이스를 낭만주의, 프로이트를 현실주의로 대입해보면 단순해 보였던 신의 존재 유무와 확연히 다른 결들이 보일 것이다.
드라마는 시청자들 마음을 사로잡는다. 좋아하는 배우, 극의 서사를 넘어 굿즈(goods)라는 시장과 유튜브와 블로그 리뷰, 파생되는 밈처럼 새로운 현상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기저에 흐르는 내러티브(narrative)는 이야기를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적잖은 역할로 기여한다. 성서에 흐르는 고전적 메시지가 동물원으로 향하던 루이스의 삶을 바꾼 ‘사건’처럼. 이야기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듯이.
기독교적 가치가 흩뿌렸던
전체주의 시대를 바라보며
생각해본 내러티브의 가치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함께
앉아 힘껏 호흡한 것처럼,
‘공동의 공간’ 발견하기를
그렇다고 드라마가 모든 것을 좌우하지 않는다. 드라마로 교훈을 얻고, 삶의 가치를 더욱 사랑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가 정치의 역할을 대체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한계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개인의 구원, 성장을 강조했던 복음주의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매머드급 교회 성장을 이뤘지만. 새로운 시대와 함께 새로운 물결이 등장하면서 더는 기독교의 내러티브가 전 세계를 구원하지 못하는 역설에 직면했다. 반 지성주의를 배격하는데 기독교 신앙이 거론되고 “소설 쓰지 말라”가 농담처럼 튀어 오르듯 내러티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내러티브는 기독교에만 등장하지 않는다. 아리아 민족의 위대함을 설파했던 민족성, 영토를 수복한다는 명목으로 등장하는 희생자 의식, 조국과 박근혜를 통해서 읽을 수 있는 공동체 내러티브는 사람을 격동하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 파국(破局)을 만든다. 곧이어 내러티브는 힘을 잃는다. 현실을 거론하며 내러티브의 허황됨을 폭로한 프로이트의 냉철한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던 이유다.
하지만 내러티브는 죄가 없다. 여전히 드라마는 아름답고,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삶을 생기발랄하게 만드는 하나의 힘이기 때문이다. 이미 엄격한 아버지 아래서 지냈던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하루 한 날을 내러티브로 보여준 오늘의 연극처럼. 방독면을 쓰려던 루이스를 보면서 전쟁을 앞둔 나약한 인간의 슬픔을 보듯, “선생님을 놔두고 가지 않으리라”는 고함 속에 너만은 살라고 손사래 치는 프로이트. 그리고 구강암의 사투에서 고생 끝에 빼내버린 교정기를 놔두고 친구처럼 지쳐 쓰러지자 들려오던 서로의 호흡들.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공연하던 내러티브 속에서 서로가 마주한 공동의 공간을 발견했다. 현실과 낭만의 사이에서 끊임없는 물음과 대화를 이어가야 할 이유도 공동의 공간을 발견한 덕분이다. 한사코 듣지 않겠다던 음악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을 들으며, 루이스의 말을 곱씹던 프로이트의 뒷모습에서 침묵이란 여운을 느꼈다.
예스24스테이지 3관, 9월 13일까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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