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 08. 13 | 수정 : 2020. 12. 12 | A29
가장 전두환적인 시대의
암울함을 미소로 풍자한
名作 영화, 미운오리새끼
미운오리새끼
곽경태 | 96분 | 15세+ | 2012
부담 없는 군대 영화. 군대 영화하면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창’을 떠올리며 불쾌한 감정부터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우연히 봤고, 재밌어서 웃었다. 끝까지 보게 된다.
이 흡입력은 어디에서 시작하는 걸까. 아무리 봐도 군대의 진풍경을 이렇게 묘사할 수 있는 영화가 전무후무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축 정명채 대장님’ 쓰인 케이크 앞에서 촛불을 끄고. 어디서 난 건지 알 수 없는 칼날을 꺼낼 때의 카메라 구도는 감탄을 자아낸다. 철저히 구조적인 문제, 개인이 몸부림을 쳐도 해결 할 수 없는. 지극히 전두환적이고, 한국적인 측면에서 영화의 풍자는 완벽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방위병으로 출퇴근하는 주인공 낙만은 사진병, 이발병, 바둑병, 잡다한 보직을 섭렵하며 잡초를 뽑고 대대장과 바둑도 두고 정화조도 청소한다. 그리고 만난 행자. 조작된 영창이란 점에서 행자의 순연한 모습을 발견하고 인간성을 느꼈지만 강간죄 혐의로 뒤집어 씐 행자를 오해하고 폭행을 가하기도 하는 괴란한 줄거리다.
하루아침에 방위병이 영창 수감자들을 폭행했다가 영창도 다녀오는 줄거리가 당혹스럽지만 복합적인 구조 사이에 낀 인간은 언제나 오해할 수 있고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존재임을 가르쳐준다. 국가 권력은 그 오해를 만들어냈고 개인을 무자비하게 폭행한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행자와 낙만을 불러다가 서로의 뺨을 갈리라는 중대장 명령에도 빗물 속에서 서로만을 응시하던 그 풍경. 끝내 중대장의 명령을 어기고 오히려 중대장을 죽일 듯이 멱살 잡던 행자에게 그만 두라고 울부짖는 낙만의 절규 속에. 살생유택(殺生有擇).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행자의 고통스런 비명 끝에 내뱉은 고백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집주인 여자가 어떤 남자와 옷을 벗고 있는 걸 봤습니다. 저랑 눈이 마주친 남자가 도망을 쳤고, 저도 엉결결에 그 집을 나오다가 돌아오던 차에서 마주쳤지만 절대로 와보지도 않았고 그냥 뛰어서 도망갔습니다. 그 여자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곧이어 기절한 중대장을 보면서 “이 사람 진짜 엄살이 심한 사람입니다” 대사에서 웃음이 터졌다. 울고 웃게 만든 이 영화는 하염없이 흩날리던 빗방울 장면에서 주제를 명확히 보인다. 다음 날, 카메라를 들고서 자신의 아들 이름 석 자를 힘없이 외치던 아버지의 병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일까. 미국 생활하던 어머니의 요청에도 꿋꿋이 한국에 남겠다던 낙만의 바램을 지켜보니, 헬조선이 무상하다. 지금도 조용히 하루를 견대 내는 미운오리새끼의 힘없던 눈빛이, 가장 정확하다는 시선을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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