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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서

이 책을 보고 활자를 배웠습니다: 『보기에도, 읽기에도 좋은 도서본문을 설정하는 32가지 방법』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글자와 글자 사이의 간격들

 

어느 정도 책 만들고 신문 제작하다 보면 아래아 한글과 인디자인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글에선 자간만 줄여주면 되잖으냐 생각할지 모른다. 어절(語節) 사이 띄어쓰기만 조절하고 싶어 질 무렵 깨달음이 찾아온다. ‘인디자인에는 엄청난 기능이 있었구나!’ 균등배치나 그랩(grep)이 그렇다. 이 서평 이 책을 읽고 나면 문장과 문장, 형태소와 형태소 사이 미세한 간격에도 반응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세세하고 체계적인 인디자인 기능을 소개한 사이트가 그리 많지 않다. 어도비 설명서가 있다지만 딱딱한 문체가 눈앞을 가리고, 복합적 문제 앞에 원론적 이야기로만 보인다. 저서는 책 만들어 본, 만들어 볼 이에게 효율적으로 활자 다루는 방법을 가르친다. 책 제작 과정 ▲인디자인 초기 설정 가독성: 자간과 커닝, 그랩 금칙 섞어짜기처럼 존재는 있지만 익숙지 않던 기능을 자세히 다룬다.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표현해 봤다. 실제 커닝과 자간을 저렇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다 알지만 한 번 말해보고 싶었다.

 

◇담백하게 담아 가르쳐서 쉽다
어렵지 않다. 사흘이면 읽을 수 있다. 직관적 설명은 그래픽으로 표현해서 가르친다. 천천히 정독하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군더더기 하나 동어 반복도 없다. 깔끔한 문체 덕분에 실습까지 어렵지 않아서 일주일 내내 공부할 수 있었다. 동영상 강의 덕분에 지면으로 설명하기 곤란한 부분까지 보충했다. 그럼에도 3만 원도 채 안 된다. 더 받아야 할 정보를 알뜰하고 담백하게 담아놓았다.


처음 책을 제작해보면 안다. 글줄 간격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적당한 글꼴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공식까지 알려준다. 책 내지 여백에도 공식이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꼭 공식대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 늘 그래왔던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이어질 저술도 읽고 싶을 정도로 한 권에 담긴 저자의 능력과 신뢰가 가득하다.


세세한 정보 이를 테면 오픈타입(OTF) 글꼴을 써야 하는 몇 가지 이유, 날개셋 프로그램 활용한 스페이스 입력 문제, 전각상자와 기준선처럼 검색해도 좀체 나오지 않는 정보를 모아 놨다. 익숙한 용어지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모르던 개념을 구체적이고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오래 읽어도 불편함 없는 가독성
본문은 오래 보아야 하므로 가독성이 좋아야 한다.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본문은 오래 보아도 불편하지 않다. 한겨레는 보통 신문 글꼴과 달라서 하나의 단(段·column)에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일보는 자간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글자와 글자가 엇물려 가독성이 떨어진다. 자간(字間)과 커닝(kerning)은 다른 개념이다. 자간은 글자 간격을 글자 모양과 상관없이 고정된 값으로 조정하지만 커닝은 글자 모양에 따라 달리 조정한다. 베어링(bearing)이라는 값만을 조정한 덕분이다.

 

경향신문 글꼴도 무료로 배포했어봐라, 바로 갈아탄다.
한국일보: 들쭉날쭉 글꼴 간격이 일정하지 않아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한겨레: 차라리 두 컬럼(단)으로 제작하면 어떨까. 아름다운 글꼴이지만 신문처럼 판독성이 편해야 할 네모 글꼴이 아니라 신문용으로 적합하지 못하다. 자간이나 커닝이 넓으면 좋겠지만 신문 특성상 커닝을 많이 주어야 할 영역에선 들쭉날쭉해 보인다.
경향신문: 반면 형태소마다 간격이 일정해 가독성이 좋고 판독성이 편해 흝기에도 적합하다. 마치 금속활자로 일일이 수놓은 듯 깔끔한 배열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글은 초성(初聲)·중성(重星)·종성(終聲) 여부에 따라 글꼴 사이 간격이 다르다. 자간은 각각 다른 글꼴 간격을 기계적으로 조절해 준다면 커닝은 글꼴 간격 여백을 시각적으로 조절한다. 따라서 자간은 엇물림 현상이 발생해 오히려 가독성에 나쁜 영향을 준다. 커닝은 엇물림을 방지하면서도 글꼴 간격을 줄여줄 수 있다. 미세한 차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오랜 시간 본문을 봐야 한다면 미세한 조정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제 당신은 숨 쉬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 것처럼, 글꼴 간격 여백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활자를 다루며 하는 농담이 있다. 인간의 생각을 디지털 방식으로 담아낼 기계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지면은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도 인간에게 망각이 없다면 글로써 남기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사람은 기억을 기록하려는 욕망을 가진다. 글로 써 내려간 기억을 다시금 되짚는다. 그래서 이 신문을 만들었다. 망해가는 사업이고 변해가는 디지털 세계를 따라잡지 못하겠지만 활자를 사랑한다.


디자이너 윤고선은 하리꼬미나 세네카 같은 일본어 관습으로 좀체 다가가기 어려운 인쇄와 활자 세계를 쉽게 풀어 설명해준다. 더 간편하게 인디자인 다루는 기술을 가르치며 기록의 욕구를 가진 이들을 위해 문턱을 낮춰 준다. 따라서 가독성과 판독성을 배우고 싶다면 이 책을 구매하시라. 이 서평보다 대단한 세계를 발견할 것이다. 3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 3만 원보다 값진 기록의 세계로 저자가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