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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서

[마음 속 그 사람] 도진희, 너는 나에게 ‘아픈 손가락’이다:『첫사랑 라이브』

 

첫사랑 라이브
조규미 지음 | 창비 | 188쪽 | 1만2천원

 

다섯 주인공보다 혹독했을

어른으로 자라가던 도진희

견뎌내는 진희 네가 좋아

 

진희라면 어떻게, 진희라면 무엇으로, 진희라면 누구와. 이 난국을 타파할지 궁금했다. 기대와 달리 일들이 술술 풀려서 아쉬웠지만. 이제 1학년일 여고생에게 많은 걸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애 모르게 마음 한 자리 차지한 지평이를 대하던 서툰 감정에 머물렀다.

 

언제부터 그 애가 내 마음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그 애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 애한테 다가온 여자애는 어떤 사이일까. 그 애 마음에 내가 없으면 나라도 멀어져야 하는 걸까. 다 아는 것 같아도 모르는 문제 앞에서 쩔쩔매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손에 쥔 것 같아도 펼쳐 보면 아무 것 가지잖은 초라함도 그렇다. 후배 서영에 비해 조금은 성숙한 것 같지만 제자리걸음 같다.

 

 스포일러 주의   진희는 다섯 주인공보다 혹독한 겨울을 맞이한 걸지도 모른다. 어느새 스며든 박지평을 눈앞에 두고 놓쳐야 하는, 가까이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진희는 그 애를 사랑하기에, 나보다 네 결정을 존중해 떠나 보내줘야 하는 성숙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애다. 고등학교 졸업할 미래의 너 자신 도진희보다 먼저 발 디뎌야 할 어쩔 수 없는 성숙함이 누구보다 혹독하게 보인 이유다. 이 난국을 회피하기엔 진희 스스로가 쥔 능력과 명예, 이루어야 할 계획이 중요하고 거대했다. 학생회장은 도진희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다. 부학생회장 후보로 박지평을 러닝메이트로 삼은 결정도 그렇다. 그래서 피할 수 없다.

 

지평이가 진희의 진취적인 성격에 가벼운 호감을 가졌을 뿐이라도. 나는 진희가 머잖아 떠나갈 사람의 아픔도 견뎌낼 거라고 생각한다. 진희는 누구보다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 지평이 네가 있어서 나는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여기까지 왔구나, 싶었어. 내가 정말 사람 보는 눈은 있지? 너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였어.”(161,6) 또 다시 홀로 남는다 해도, 진희라면 공허감에 자기 몸을 내던져 망가지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손 맞잡고 새로운 꿈, 희망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진희답게 걸어갈 것이다.

 

저자 조규미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쓸, 이 두 줄을 미리 준비했다고 한다.

 

‘그 애를 사랑하는 일이 끝나도

나를 사랑하는 일은 끝나지 않는다’(188,1)

 

선후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애를 사랑하는 건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기에. 그 애를 먼저 사랑할지, 나를 먼저 사랑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랑을 안다면서 사랑할 줄 모르는 건 거짓말쟁이다.(1요한 2,4)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집착하고서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따라서 사랑은 온몸으로 해야 한다. 충효와 서영이 관계가 갑작스레 냉각된다 하더라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고. 서로 속이는 사이여도 오해를 풀기 위해 눈물도 흘려야 하는 고통스러운 순간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처럼. 지평이 마음에 진희가 없는 것 같아도, 진희 자신이 지평이를 사랑하기로 했다면 우직하게 아껴주는 자세가 사랑이 아닐까.

 

내 몸과 마음에 정직한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가지고 싶어도, 내게 와주기를 기다리는 어른다운 진희. 설령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너는 꼭 밤길에 빛나는 하얀 돌멩이 같았”(161,4)다고 고백하는 강인한 진희. 그래서 지평이가 고백하게 만드는(163,1) 성숙한 도진희.

 

나는 그런 진희가 너무 좋다.

 


 

이 서평은 여러 차례 다시 쓰며 완성했다. 다음은 이전에 지웠던 원고를 그대로 붙여놓았다. 소설을 읽기 전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1. 그때의 나였다면 커플축제에 학을 뗐을 게 분명하다.
  2. 가슴에서 꿈틀대는 그 애 향한 마음 들키기라도 하듯 애써 부정했을 거란 말이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처럼 한 번 쯤은 상상만 해보던. 그 남자 그 여자애 불꽃 튀는 사랑을 커플축제라는 명목으로 소환한 게 소재로써 괜찮았다. 학생회는 정치적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인공들은 커플축제에 어떻게 참여할지. 사귄다면 간지러워서 미칠 것 같은 꿈틀거리는 마음을 어떻게 묘사할지 기대됐다.
  3. 때로는 책날개에 작가 사진이나 나이, 수상작이 없었으면 했다. 괜히 생년월일 6이나 7로 시작하면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몸이 받질 않으니 프로필 사진 없는 책, 괜찮은 첫 문단만 읽어보고 골랐다. 무슨 상을 수상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슨 글을 썼는지가 궁금했다.
  4. 첫 문단 읽어보니 세련된 문체라 젊은 작가를 상상했다. 한 줄, 한 문단 읽으며 노련한 작가의 문체가 흥미진진했다. 조규미 작가 문체는 생각보다 말랑말랑하다. 말랑말랑하다 못해 달달하기까지 하다. 조금만 음미해 보아도, 계속 마시고 싶게 만드는 즐거운 달달함이 처음부터 마지막 덮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대단한 문체다.
  5. 여섯 명 중학생 이야기다. 남학생 충효, 승호, 지평과 여학생 서영, 다진, 진희가 번갈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충효-서영, 다진-승호, 지평-진희로 이어지는 세 커플의 관계가 전개를 기대하게 만든다. 기대해도 괜찮을 정도로 재미있다. 드라마를 읽는 기분이다.
  6. 이 소설은 결코 무겁거나 진지한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고 스낵처럼 가벼운 글도 아니다. 나처럼 진지하게 읽어도 재미있고, 가볍게 읽어도 재밌는 책이다. 정말 재미있다. 재미 요소 사이에 교훈을 끼어놓아, 아무도 모르게 뒤통수를 갈긴다. 웃다가도 ‘아!’하고 깨닫는다.
  7. 기존에 엎었던 서평은 여기서 끝난다. 여섯 명 짝 지어 쓸 생각이었지만, 미리 설명해주기보다 반드시 책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지 않기로 한다. 무엇보다 나는 진희를 좋아해서 진희만 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