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마음으로
박영란 지음 | 서유재 | 220쪽 | 1만1000원
슬픔을 말하지 않고도 슬픔을 묘사할 수 있을까.
읽는 동안 두 번이나 그만 읽고 싶었다. 재미가 없는 건 그렇다 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수능 볼 나이의 여고생이 산에 올라간다는 소재만으로도 신박했지만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산에 힘겹게 오르기까지의 과정도 아니다. 금세 산에 오르고 내려가는 내용이 전부다.
하나도 궁금하지 않고 재미도 없는 대화와 독백이 이어지다 끝자락에선 졸음마저 몰려왔다. 그 무렵 주인공 다정이가 왜 산에 오르는지 드러난다. 드러나는 방식이 명백해서 어색함마저 느껴진다.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말하려는 건 알겠다. 그러나 소설로 말할 수 있는 문법인지 의문이 들었다. 가공한 결과가 지루함과 무의미한 반복으로 보일 바에야 수필이면 어땠을까. 지루함도 느낄 새 없이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 글로 생각하고 읽었을 텐데.
십자가를 말하지 않고도 사랑을 말할 수 있다. 신조차도 사랑을 독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자기만의 사랑으로 말하는 사람들처럼 누군가의 죽음을 ‘그들의 죽음’으로만 치부하는 이들이 있다. 이데올로기 마냥 갈라진 담론에서는 새로운 생각과 마음이 나올 수 없다. 그저 어른들의 부끄러운 추태와 ‘아, 나는 착한 어른이 되어 아이들에겐 다정하게 대해야겠다’는 말들만 생각났다.
우리는 언제쯤 이 지긋지긋한 근대(近代)라는 이름의 무의미한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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