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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서

아람이 같은 애가 싫다, 정말 싫다:『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쪽 | 1만1500원

 

모든 사람이 독고솜일 순 없다. 은연한 학교폭력 “멈춰!” 따위로 막아낼 수도 없다. 은연한 학교폭력이라 말했다. 대놓고 얼굴에 착한 사람 써 붙인 주인공은 드라마에서나 나온다. 따라서 힘없는 아이에게 세상만사 다 아는 척 ‘꼬마야 고독을 배워야 해 낯선 칼자루 쥐어주고 이겨내라 한들 아이는 두리번거릴 뿐이다.

이 소설은 학교 동료를 대하며 불편한 감정을 맞닥뜨린 여중생 김다현의 일상을 다룬다. 반 배정이 “죽을만한 일”(7)인지 “하루가 백년 같”(34,1)은 “우울한 날들”(36,1)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중생 다현에겐 “과민성대장증후군”(18,3)을 유발할 만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러시아·중국·일본·북한에 둘러싸인 한반도처럼 친구들 간 역학관계를 고려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의 문제의식을 발견했다.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에서 내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스포일러 주의  다현이는 있는 그대로의 나와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를 분리한다. ‘다섯손가락’ 실세 아람이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람이가 싫어하던 은유 때문에 하교 후 수행평가 모임에도 불참했다. 담임이 원망스러웠다. 학교 밉상 목록에 오른 은유를 앞으로도 짝으로 마주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수행평가로 제작할 마을신문 모둠 역시 담임이 정해 놨다. 은유·시후·해강 그리고 다현.

세 번째 목차를 읽을 무렵 분위기를 파악하고 한 가지를 예측했다. 앞으로 다현이는 다섯 열강들 속에서 은따를 당할 테고 고독을 마주하게 될 것. 빗나가지 않았다.(149,2) 다 알고 보는 드라마였다. 그래도 끝까지 읽었다. 고독을 마주한 다현이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했다. 비굴하게 아람이의 바짓가랑이를 잡지 않았다. 스스로 고독으로 걸어갔다. 김다현의 위치와 역할을 직접 재설정했다. 새 외교 정책을 구상했다.

시작은 외교장관 대리로 나서던 설아를 경질하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더 이상 설아는 다현이의 대변인이 아니다. 마음에서 아람·병희·미소·설아 대사관을 정리했다. 단체 카톡 핫라인을 끊었다. 대신 마을신문 주축으로 시후·해강·은유와 관계를 형성해 동맹을 구축했다. 그렇다고 새 동맹으로 다섯손가락을 무찌르는, 그런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정책을 구사하지 않았다.

◇미래 향한 항로 바꿀 다현의 결단
고독으로 걸어 들어간 다현이가 마주한 첫 번째 벽은 불필요한 감정이다. 그동안 남들이 바라보는 김다현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김다현이 바라보는 세계를 향한 시선으로 돌이켜 김다현 자신이 사랑하는 장면에 주목했다. 떡을 찌는 방앗간의 정겨운 냄새와 골목을 가로질러 지나치는 길고양이 풍경에서 김다현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다. 담임이 강제로 맺어준 마을신문 말이다. 

불필요한 감정이라 말했다. 포지션조차 없이 그저 그런 아이로 기억된 다섯손가락 속 다현이가 정책을 수정하면서부터 자기 자신을 되찾기 시작했다. 남들 눈치나 보면서 살아갈 시절엔 자기가 좋아하는 것조차 숨겨야 했다. 체리새우 블로그가 그렇다. 블로그로 좋아하는 한 가지 한 가지를 오픈하며 대중적 글쓰기에 몰입했다. 마을신문으로 마주친 새 친구들과는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를 나누었다.

현실에 급급했던 정책에서 미래까지 내다보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미래를 꿈꾸며 항해할 항로 몇 도만 틀었을 뿐이다. 오늘의 새로운 정책 수립은 내일, 모레, 10년 후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시선
남이 날 바라보던 시선
내가 날 바라보는 시선
시선 변화가 이끈 관계

사랑하는 일
고독을 회피하지 않고
사랑하는 일이 뭔지를
물으면서 발견한 미래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우연 아닌 필연
정신승리라고? 사랑하는 일을 발견하면 사랑하는 대상에만 집중하게 된다. 사랑하면 바빠진다. 바빠진 만큼 중요한 일, 중요하지 않은 일 구분할 눈을 갖추게 된다. 다섯손가락 멤버였을 땐 아람이 시선이 중요했다. 하지만 신문을 사랑하고 기자로서 달리는 김다현을 사랑하면서부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청사진에 주목한다. 노력이 아니다. 그렇게 된 것이다. 사랑이 그렇다.

사랑하면 시선도 넓어지는 걸까. 이제껏 속 터놓고 말해본 일 없는 부모 여읜 과거사를 새 친구 은유와 공유한다. 은유도 엄마를 잃었다. 공감을 넘어 공동의 공간을 발견했다. 누군가 빈자리가 경험되어 질 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켜켜이 쌓인 그리움”(82,2) 그 감정의 공유가 현재에서 미래로 연결했고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졌다. 20세기 미국 버클리 자유언론운동의 발견은 어쩌다 마주한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분열의 발단은 아람이로부터다. 그래서 아람이 같은 애를 싫어한다. 자기 주제도 모르고 자기만 예쁜 줄 알고 까분다. 세상에는 아람이보다 예쁘고 머리 좋고 착한 애들 많다. 지 모습부터 보고 돌아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