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 02. 28 10:20 | A20
독고솜에게 반하면
허진희 지음 | 문학동네 | 232쪽 | 1만1500원
탐정 서율무가 추적한 여왕
독고솜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주인공 서율무가 탐정으로 나서게 한 계기였다. 고솜이의 교과서가 사라지고 사진에 구멍이 뚫리자 단태희가 벌였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수사하며 알아낸 정보들은 단 한 사람 단태희만 가리키지 않았고, 단태희 뒤에 서 있는 어른들을 지목한다.
마녀라는 별명을 가진 고솜이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자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낀 여왕 단태희가 견제하는 내용으로 구성한 소설. 평범한 학교 폭력을 다루면서 아이들 세계라는 폭력 사이의 착시를 탐정인 서율무가 발견한다. 단태희는 서율무의 탐정 수사가 놀이라며 유치하다고 눈짓하지만 율무에게 탐정 활동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보고 지켜주고 싶은 열망이었다. 그 열망은 고솜이와 눈빛을 마주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꺼지지도 꺼트리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걸 수집한다. 아니 수집이 된다. 그렇게 되어서 오해받곤 한다. 고솜이도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명탐정이 부르자 함께 병원을 찾는다. 창백한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던 고솜이의 눈빛을 분위기를 서율무가 목격한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상흔이 드러나던 순간을 발견한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단태희도 권력을 추종하던 경계선 속 아이들이 아니었다. 저자는 선 바깥 경계인이 고독하게 연대하며 바라본 시선을 그려낸다.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저서는 상당히 예의를 갖춘다. 친절하게 상대 마음을 이해하는 자세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일러스트 속 독고솜이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악역으로 등장한 단태희마저 사랑스럽다. 책이 예뻐서 계속 보게 되고, 저자의 따뜻한 마음이 계속해서 종이를 만지작거리게 만든다. 게다가 고양이가 나오는 장면에선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기억에 남아 강조하고 싶은 장면.
영미의 등 뒤 창문을 통해 열감 없는 가을 햇살이 밀려들어 왔다.
빛무리가 내려앉은 영미의 옆얼굴이
파도가 부서지듯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순간,
솜이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솜이의 손이 영미의 손에 부드럽게 가닿았다.
쏟아지는 햇살에도 끄떡없는,
그 빛에 조금도 묻히지 않는 솜이의 새까만 눈동자가 영미에게 향했다.
그 순간 그 눈 안에는 영미밖에 없었다.
흔들림 없는 솜이의 검은 눈동자가 빛 속으로 사라져 가던
영미의 먼지 같은 얼굴을 붙잡았다.(110쪽 4문단)
영미의 눈 및과 턱 밑, 도톰하게 올라온 살이 파르르 떨렸다.
그날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영미가 자기감정을 드러낸 순간이었다.(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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