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가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황당한 통계인용을 보았다(2021.02.18).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가 발표한 자료를 반박하며 균형 잡힌 보도를 요구한 것이다. 크리스천투데이는 손 씨의 행동을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며”라고 보도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중대본이 발표한 종교시설 감염자 비율 17%는 국내 코로나 전체 확진자 중 집단감염 45.5% 안에서 꼽은 데이터를 의미했다. 따라서 전체 확진자 중 종교시설 감염자는 8%에 불과하니 교회는 코로나 최대 감염 경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코로나는 사람을 통해서 사람으로 감염된다. 세 차례 코로나 파동(wave)을 겪으며 우리는 두 차례 집단감염을 목격했다. 두 차례나 종교집단 통해서 감염되었고, 그 종교집단은 개신교 내 주류에서 벗어났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손현보 씨는 “IM선교단체는 교회가 아닌 학교”라 말했고 “신천지가 이단”이라 표현하며 개신교회와 무관하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지난 달 토론에 참석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기획위원은 대면예배 강행에 초점 맞춘 목회자를 향해서 비판했다. 가톨릭평론 2021년 봄호에 집필한 “언택트 시대 한국개신교” 서론에서 개신교 주류에서 밀려난 신천지·인터콥·소형교회 현상 앞에 퇴행적 종교성을 끄집어 내 지적했다.
어째서 코로나를 맞이한 시점에 대형교회, 그것도 웰빙보수주의 현상에 주목했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서론과 토론 장면을 지켜보니 단번에 이해했다. 한국교회 주류로 밀려난 신천지는 강한 부족적 결속력을 가졌고 공동생활 특성상 감염에 취약했다. 세대주의 인터콥도 부족과 이념 성향이 강하고 젊은 층이 많다. 소형교회는 신자 감소로 인해 재정 압박이 크고 협소하며 환기도 되지 않은 폐쇄적 공간이란 점에서 코로나에 취약한 종교 집단들이다. 신학자 김진호의 시선은 90년대 중후반에 가닿았다. 개신교 성장이 둔화하고 저성장하던 시절, 담임목사 카리스마로 성장했던 선발대형교회인 영락·여의도 순복음교회와 다르게 탈권위적 후발대형교회인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는 교인의 수평이동 현상에 주목했다.
설교를 못할 수도 있다
終末 강조하며 화내고
마귀의 탓으로 돌리는
그따위 설교만은 말라
대형교회와 중소형교회라는 양극화도 심각한 문제지만, 개교회가 교단적 특성을 보이지 못한 채 단일한 오순절 예배 스타일을 보인다는 점에서 개신교회는 상품으로 전락했다. 김 신학자는 교통수단이 발달한 사회에서 상품처럼 전시된 교회에 자기 입맛에 맞는 교인들이 수평이동하는 현상을 목도한 것이다. 손현보 씨의 세계로교회만해도 그렇다. 한국적 특수한 개신교회 환경 속에서 대면예배라는 오순절 스타일의 열광적인 예배를 고수하는 이유 역시 김 신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노아의 방주를 자처한 작금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연속 기사 쓰려고 몸 담았던 참여교회 목사의 설교를 시청했다. 네 편이나 청취하다 당신의 설교가 달리 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어도 교회 안에 붙어살았을 땐 들을만했던 변하지 않은 논조가, 이제는 천박해서 들을 가치도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침 튀기며 신앙에서 벗어난 이들을 또 다시 교회 바깥으로 몰아낸다. 교회 나오지 않는 행동을 마귀의 꾀임으로 해석하며 담임목사 당신의 퇴행적 신앙을 반성하지 않는다. 성서 중심으로 주해하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훈을 말하여도 모자란데, 제의와 행위 중심으로 집착하다 못해 제의에서 벗어나면 마귀에게 꼬인다는, 샤머니즘과 다르지 않은 설교를 겨우 청취했다.
언젠가 당신은 “네가 신앙생활 그렇게 하면 너를 놔 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역량에 한계를 느끼자 내뱉은 나름의 충언이다. 고깝게 듣지 않았다. 그게 당신의 수준인걸. 코로나는 백신 맞지 않는 이상, 사람 간 접촉을 줄이는 것만이 답이다. 적어도 교회는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여할 수 있다. 대면예배 강요하지 마라. 예수도 자기 이름으로 모인 곳에 있는다고 말했다.(마태18,20) 특정 행위를 하지 않으면 신앙이 유지되지 않는 퇴행적 신앙이야 말로 문제다. 당신의 설교가 마귀사탄과의 전쟁이라는 샤머니즘과 다를 바 없고 당신 자신의 신앙을 강요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마귀 탓이나 하는데 누가 당신의 교회를 가고, 그 설교 온라인으로 듣겠나. “한 번에 훅 빠진” 한때 당신의 교인 중 한 사람이던 나의 충언을 고깝게 듣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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