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현실논단

[현실논단] 지금, 여기를 꺾은 대가

한 번의 검색이 전부였다. ‘꽃봉오리를 꺾지 말라’. 현직 교수, 그것도 내일 제출해야 할 과제하다 말고 눈물 흘리며 써 내려갔을 글줄을 눈앞에 두니 아뜩했다. 망할 놈의 교회는 날 가르치던 교수의 학위를 조작이라 고발했다. 직접 웹사이트에 검색해보라며 디테일한 논문 검색 방법까지 담아놓은 글 안에는 총회장으로 보이는 아버지 같은 인간까지 찾아가 눈물 흘리며 호소했던 그 밤 서러움이 생생했다. 하다하다 조작된 학위조작설로 교수 임용 철회를 요구하던 10년 전, 모교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그곳 풍경 이야기다. 돈이면 다 되는 세계라 그렇다.

학부 3학년이 되어서도 새로운 세상은 도래하지 않았다. 우울증은 깊어져 갔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먹고 살지, 해놓은 공부는 있었는지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노래도 서점도 햄버거도, 아무 의미 잃어가다 도피할 무언가라도 있었으면 했다. 정확히 2주차부터 무기력했다. 교수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백지 B5 스마트폰 올려둔 채 졸기도 했다. 대놓고 커뮤니티 했고 여자 아이돌 사진을 정리하다 팬픽을 써내려갔다. 즐거웠다. 매일 교보문고를 찾아갔다.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여자 아이돌 시점에서 생각해 보았다. 아이돌의 작업실부터 화성학까지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공부라는 건 재미있었다.

문제는 밤 10시40분, 무거운 몸 이끌고 도착한 기숙사에서 도드라진다. 현실 세계로 돌아오니 나를 구해 줄 구원자 여자 아이돌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침 6시에 기상해 아침예배를 드리고 또 커피를 마시며 조선일보 읽어야하는 쳇바퀴 돌아가던 하루의 연속이 이어질 따름이다. 죽고 싶었다. 망할 놈의 신학을 전공해도 일할 만한 데가 마땅히 없었다. 목사의 바지가랑이 붙잡아서 속된 말로 똥구멍을 핥아도 시원찮을 판에 교회도 다니지 않았으니 말 다했다. 교수도 허무해졌다고 한다. 수업 열심히 준비했거늘 학생들이 잘 듣지 않으니 “무척 허무하다”고. 학부를 끝마치고 돌아가던 열차에서도 이렇다 할 방도는 없었다. 백수의, 빈 공간의 시간이 이어졌다.


보이지 않는 앞날들과
돌아갈 수 없는 과거,
10년 전 소년을 헤매다
발견하고서 나는 운다


제로로 돌아갔다. 다시 0으로 복귀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탐험했다. 과거로 여행을 떠났다. 10년의 우정이 무엇일지 되짚어보았다. 조선일보, 모루, 노은석, 박준형, 신앙, 기록. 사건이라 하기엔 다발적이고 혁명이라 하기엔 작은 불꽃을 발견했다. 소설을 집필해 책으로 엮는, 누가 봐도 즐겁지 않은 작업을 상상하는 동안 글 짓는 소년을 만났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고 물을 수 없었다. 분명히 외면한, 10년 전 네 앞에 미안한 마음으로 숙연하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아무 말도 않는 소년 앞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단출한 브리핑을 이어갔다. 소년은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10년 후 견디기 어려운 책임을 불러 올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계획이란 것을 열거한다.

제로교육은 실패할지 모른다. 촘촘히 엮어내지 못해 뜯어질 지도 모른다. 허나 장신대만 들어가면 인생길이 보일 거라 굳게 믿었던 어리석음에서 일찍 돌이켰다면. 허나 제 로(路)로 돌아간 3년 전 결정이 더 일렀더라면 인생 항로의 몇 도는 더 틀 수 있었을 것이다. 제로에서 밑바닥에서 잘할 수 있고 사랑하는 분야를 발굴하며 발견한 열다섯 소년은 지금이라도 죽기 전에 발견해줘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나를 사랑하는 일은 무엇일지 하나 둘 꺼내어본다. 기록의 힘. 활자의 가치, 텍스트만이 가능한 일을 흩어놓자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던 과거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미래라는 불완전한 시간이 해체되고 현재라는 시각이 보인다.

꽃봉오리 꺾지 말라던 교수가 중간·기말 대체로 과제 하나만 내주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코헬렛을 소개하는 기사, 2페이지 분량.’ 아예 내게 점수주고 싶다는 제스처로 읽혔을 지경이다. 재미있게 과제했다. 재밌어서 눈물 났다. 수업 한 번으로 A+ 받았다. 운과 사랑의 절묘한 조합. 열다섯 소년은 “그때 신학을 포기했어야 했다”고 삿대질 않는다. “발굴할 때까지 10년을 기다렸다”고. 지혜문학연구 만큼은 잘 들었어야 했다던 후회만큼, 글 짓는 소년이 집중하는 ‘지금, 여기’처럼 오늘의 시간에 주목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