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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신학; 신앙

[건조한 기억모음②] [2] 내가 왜 QT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자유의새노래 2021. 2. 28. 22:25

입력 : 2021. 02. 28  22:25 | A22

 

재미도 없는 감성팔이 큐티
비평할 가치도 없는 설교들
무가치한 시간 보낼 바에야
대중 강연 들었어야 했는데

 

학생회 예배를 마치면 어색해지는 순간이 있다. 의자도 아니고 방 안에 모여서 양반 다리로 성경 한 구절을 읽으며 해석하는 일이다. QT(Quiet Time)라고 부르는 그 시간만큼 귀찮고 쓸데없는 시간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불편한 시간은 기독교 청소년 커뮤니티에서도 이어졌다. 신학생이 아니었던 고등학교 1학년 때조차 자고로 큐티는 인물과 사건 순서대로 본문을 이해하고 인물과 사건의 기록물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전후맥락 파악에 나서는 작업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나보다 나이 많은 형들의 우스꽝스러운 해석, 이를 테면 예배 생활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천관웅 목사의 찬양팀 면접에서 ‘제일 은혜 받은 때가 언제였느냐’는 말에 ‘어제의 주일예배였다’는 식의 감성팔이 해석은 들어주기 어려웠다. 돌아가며 오늘의 구절에 대한 은혜 받은 점을 나누기로 한 순서에서 유일하게 말이 길어지는 건 나뿐이었다.

솔로몬 행각에서 설교하고도 붙잡혀간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목숨까지 불사하며 부활의 복음을 전파한 이들 모습(사도 3,11)을 조명했다. 그래봐야 상투적 신앙 간증일 뿐이고 고작 남들이 생각지 않은 시각일 뿐인데 내 뒤로 떠오른 아우라가 친근하게 다가오지 못하게 만드는 무언의 경계선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누나를 좋아한 이유
고등학교 입학하고 맞닥뜨린 불안과 우울의 두 괴물은 휴일과 평일을 가리지 않았다. 교회에서 진리처럼 가르치던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던 구호와 달리 교회는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기 역부족이었다. 대인관계가 모자라다고 생각해 발 디딘 기독교 청소년 커뮤니티에서도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웠다. 늘 고민했다. 교회 안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누나를 좋아한 모양이다. 누나도 진리를 알지는 못했지만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했고, 모르기 때문에 공부하려는 열의를 가졌다. 단지 모임에서 기타치고 드럼 내리치는 사람들과 부대끼던 분위기가 좋아서 모였던 형, 누나, 동생들과 다르게 진리를 찾고 싶은 열의를 읽을 수 있었다. 교회 아이들은 싱거웠다. 길어지는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세도 없었고, 지겹고 재미없는 QT 시간이 끝나기를 바랬다. 누나와 계속해서 이어지는 끈끈한 영적 대화는 때로 말줄임표 늘어지는 침묵이 이어져도 즐거웠다.

 

 

QT와 예배에 관한 저서/학부 2학년까지만 해도 신학과 신앙을 구별하지 못해 다양한 저서를 읽으며 헤매야 했다.



◇교회 식구가 아니라 누나와 교제한 이유
애석하게도 참여교회는 이야기가 길어져야 마땅한 성도의 교제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칫 친목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최근 입수한 10년 전 라디오 기독교 방송국 음성 파일에서 알게 된 정보다. 지역교회 찾아가서 담임목사 소개하고 자기네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소개하는 단편 코너. 나도 참여해 집사님과 함께 담임목사를 칭찬했다. 다른 교회 파일을 찾아서 들어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유독 그 교회는 담임목사 대신 교인들만 나와서 교회를 안내하는 것이었다. 목사가 어떤 스타일이고 성향인지 익히 알고 있어 촉을 느꼈다. ‘이 인간 패싱(passing) 당했구만.’

현재 사역 중인 전도사 형님에게 연락해 물었다. 놀랄만한 답변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스승의 주일에 목사가 선물 하나 못 받았다고. 교인들은 설교 듣기 위해 교회 오는 게 아니라 친목하기 위해 그 관계가 재밌어서 온다는 사실을 알아맞히자 10년 전 내가 했던 칭찬이 떠올랐다. “목사님 아래에서 성도 분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일 때는 모이고 흩어질 때는 잘 흩어지는, 연대가 강하고 예수님 안에서 성도와의 교제 부분이 강하고 좋아요.”(2012. 12. 20)

교회를 나오기 전, 분석한 담임목사 설교 자료를 보이면서 신앙과 맞지 않으니 떠나겠다고 말하려고 계획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평가할 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과는 무관한 자기 얘기, 교회 얘기일 뿐이다. 교회의 모든 교직자가 자기 얘기하느라 바쁘다. 교회를 떠난 지금은 ‘왜 저 설교 들으러 교회를 가지?’ 생각만 들 뿐이다. 저럴 시간에 대중 강연을 보든지 인문학 강좌를 듣는 편이 더 나을 텐데. 성의 없고 지루하며 무가치한 QT 할 시간에 커피 마시며 신문을 보는 편이 더 행복한데 말이다. 교회보다 도서관을 좋아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