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 01. 26 22:58 | 디지털판
반가워서 눈물을 흘릴 뻔 했다. 학부 시절, 수업에 함께했던 집사님을 2년 만에 만났다. 지난주에 교회에서 임직받자 입술의 호칭도 집사에서 장로로 옮겨갔다. 나와 장로님에게 대학교 4학년은 분노의 시간이다. 장로님은 믿었던 사람이 뒤통수 치고 기독교인 명목으로 2억 원을 빼돌렸다. 검사를 만나서 자초지종 설명하고 탄원서로 괴로운 감정을 토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형사사법포털도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를 알려드리려다 알게 됐다. ‘급살 맞아 뒤질 년’ 지금도 입에 담기 어려운 단어를 구사하고서 분노의 감정을 삭히지 못한 장로님이 걱정됐다.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 맞은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마지막까지도 조별 과제는 다 헤쳐 먹어야 했고, 목회실습 과목답게 찾아갔던 도마동의 모 교회는 장로 한 사람과 싸우느라 풍비박산 난 상태였다. 마지막 4학년 2학기를 보내던 신학도로서 그마저도 잃지 않으려던 기독교인에 대한 예의는, 이 시국에 찾아온 귀빈에게 선물까지 준 담임목사의 미소에서 완전히 어그러졌다. 거기에 나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목사님 아들은 최후의 비수였다. 1학년 땐 목사님이고, 2학년 땐 전도사고, 3학년 땐 집사에다 4학년 땐 무신론자로 졸업한다던 속설과 다르지 않게 나는 지금 명목상 유신론자(라 말하고 불가지론자로 읽는다)로 살아가고 있다.
장로들과 담임목사 사이의 권력 다툼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장로 한 사람이 교회 하나 말아 먹었다는 이야기를 초등생 시절부터 전해 들었고 그게 익숙했다. 담임목사 권력을 강하게 키우기 위한 정치적 목적일 테지만, 실제 장로들의 권력 싸움은 이루 말하기 어렵다. 교회의 전권을 이미 쥔 장로의 정치적 만행이 고스란히 드러난 주원규의 소설 ‘나쁜 하나님’에서 룸싸롱은 낯설지 않은 과장법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정치적 문법은 담임목사 파워가 더 센가, 당회의 전권이 더 센가 이 둘 뿐이다. 그 사이에 교인들은 담임목사 파워에 기대느냐, 장로의 돈줄에 기대느냐 이 뿐이다. 그런 어른들의 싸움을 본 적도, 당해본 적도 없었던 참여교회도 담임목사의 영적 파워가 워낙 셌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장로님을 앞에 두고 농담 섞어 말씀드렸다. “장로 한 사람에 의해 무너지는 교회 정말 많았는데, 집사님께서 장로님이 되셨으니 그렇지만 않다는 게 드러나겠습니다.” 이어지는 장로님이 말씀하셨다. “실은 안 받으려 그랬어.” 되 물었더니, 장로로서 위세 부리고 싶지 않았다며 8월부터 임직을 한사코 거부했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제야 희끗해진 머리, 아니 그보다 어눌해진 당신의 말투가 비로소 귀에 익기 시작했다. 분명 2년 전의 모습과는 달라진 확연한 모습에 눈물을 흘릴 뻔했다. 돈도 많고, 인복도 많은 이 분이 동아리 방에서 부끄러운 마음을 토로하던 때가 떠올랐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날 보며 믿음 없다고 말해서 더 봉사하고 하나님 일에 충실하고 싶었다고. 마음으로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이제껏 본 장로님의 모습에서 믿음 없다는 걸 거짓말로 느꼈다고.
가진 자의 여유를 모르지 않는다. 굳이 전 법무장관 거들먹거리지 않아도 말이다. 그러나 하루하루 노쇠해져가는 자신을 보면서 절망하지 않으며,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자신을 견제하고 경건하게 근로소득하며 건실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궁리하는 장로님이, 신학교에서 만났던 모든 어른들 중에서 가장 존경스러웠다. 연배 차이만 3-40년 나거늘,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서평을 요구한 집사님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런 분이었다. 당신의 희끗한 머리카락, 어눌해진 말투. 답답해서 풀어헤친 넥타이에서 마음은 더욱 먹먹해져갔다. 지금의 교회는 자기 주먹 자랑하러 오는 수많은 멍청한 존재들로 득실거린다. 그런 장로님이 뭐가 아쉬워서 장로 임직을 반년이나 만류했을까. 그 분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사역, 공동체 설립에 헌신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학부 때부터 땅 알아보느라 이곳저곳 돌아다닌 사실을 잘 알았다. 장로 임직도 그 목표 중 하나일지 모른다. 유독 긴장도, 짜증도 아닌, 장로라는 훈장엔 관심 하나 없다는 사진 속 표정이 장로님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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