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 02. 24 | 수정 : 2020. 02. 25 | 디지털판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였던 이정희 닮은 여성이 찾아와 그림이 어떻냐고 물었다.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그 그림이 어떤 느낌인지 설명했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아마 두 달 정도 이어진 것 같다. 정확히 언제까지 이어졌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첫 만남은 또렷하다. 8년 지난 지금에서 복기해 보면 그가 신천지 신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처음 도서관에서 접촉한 그 사람은 자신을 ‘꿈을 그리는 사람’이라 설명했다. 그래도 그를 쉽게 호칭하기 위해 이정희라는 별명을 붙였다. 강경한 친북(親北) 노선 걷던 이정희 소리를 듣고도 불쾌해하거나 거부하지 않아 호감을 가졌다. 어머니뻘이던 그 분 주위엔 두 명의 여대생도 있었다. 함께 꿈을 찾아 그림을 그리던 소모임이었다. 반년 간 교회를 다니지 않으며 방황하다 신학교를 입학하기 위해 다시 교회로 돌아간 시절, 교회에선 신천지를 조심하라 경고했다. 하지만 자신을 신천지라 소개하지 않는 이상, 신천지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단지 성경공부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굳이 밖에서 성경공부할 필요도 없었다. 직접 성경을 읽으며 주해했기 때문이다. 자신들 존재를 숨기긴 했으나, 오늘의 만남을 누구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믿었고, 꿈을 그리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은 즐거웠다. 커피를 마시며 신앙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독창적 신앙 체계인 ‘십자가의 본질’을 설파하기도 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니 고마웠다. 다니던 교회는 어떠한 교제도 없었고 예배가 마쳐지면 집에 돌아가기 바빴기에 신앙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고마운 존재였다. 대학생 누나들은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서로의 상처를 말하며 치유를 하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8년 前 ‘꿈을 그리는 사람들’, 신천지 아니었을까 추측도
교회와 갈등 빚던 내게 유일한 신앙 이야기를 듣던 존재
그렇다고 불사영생 믿는 그 집단이 정상이라 할 수 있나
아마 몇 주가 지난 무렵이다.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써온 글을 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흔쾌히 허락했다. 일주일이 지나 본문을 건넸다. 그리고 두 주가 지나 다시 만났다. 꽤 비장한 표정이다. 누나들 사이에 나를 따로 불렀다. “학생이 쓴 글을 보고 사실 나는 충격을 받았다”며 자신의 감정을 꺼내기 시작했다. “사람을 실제로 수십 차례 찔러 죽일 화” 당시 글에서 풍긴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렇다. 다니던 교회에 분노를 서슴없이 글에다 담아내던 시절이다. 이대로 신학교 입학하면 인생이 망가지기에 입학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8년이 지나 선배들과 대화하며 “그 때 신학교에 안 왔으면 먹고는 살 수 있었다”고 농담하곤 한다. 물론 나는 그가 신천지인이라 생각한다. 그 도서관에 꾸준히 천지일보가 강제로 놓였고, 글마루가 정식 잡지로 채택되자 불쾌해서 여러 차례 민원도 넣었던 시절. 신천지 신도만 참여할 수 있다는 하늘문화예술체전 초대권도 공개적으로 받기도 해 담임목사가 놀라기도 했다. 아마 기독교인이기를 때려 친 지금은 본부에 내 이름이 지워졌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금도 허술한 신천지 논리에 쩔쩔맨다. 신천지OUT이 담긴 카드를 출입구에 붙이기 바쁘다. 바깥에서 성경공부 말라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만, 비웃기라도 하듯 매년 신천지 신도는 증가한다. 24만 이란 숫자는 분명 허수일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회 교인 수가 줄어드는 사이, 신천지 신도 숫자가 증가하는 현상을 보노라면 한국교회가 그만큼 성서 해석에 취약함을 알게 한다. 오직 성서를 외치는 이들은 문자적 해석, 칼빈주의에 벗어나지 못하는 중세적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4만 4천을 채워야 이 땅에서 불사영생 이룬다던 그들 논리는 어처구니없지만 알레고리 해석으로 한국교회를 파고들었다. 파수꾼 전략도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기가 막힌 한국교회 논리는 종말론에 이르러 완성된다. 마귀 탓도 종말론의 맥락에서 등장한다. 남 탓하느라 자신이 성경도 모르는 무늬만 기독교인이란 현실을 보지 못한 채 아직도 신천지 복음방에서 교리 공부 중인 신도 탓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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