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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신앙

유대교를 바라보는 또 한 가지 편견

입력 : 2020. 02. 09 | 디지털판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유대교의 안식일 규정 향해서
‘신앙은 삶’이라는 교훈으로 ‘율법주의’ 올가미서 벗어나야

 

 

거룩을 신비한 현상으로 보는 오순절 교회에서 유대인의 안식일을 율법적인 시각으로 보곤 한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으니, 엿샛날에는 내가 너희에게 양식 이틀치를 준다. 그러니 이렛날에는 아무도 집을 떠나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이것을 명심하여야 한다.”(탈출16,29)

 

엿새 동안은 일을 하고, 이렛날은 나 주에게 바친 거룩한 날이므로, 완전히 쉬어야 한다.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탈출31,15)

 

유대교 안식일은 기독교와 달리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금요일 해 지는 시간부터 토요일 해 진 시간까지 말이다. 복음서에 등장한 바리새인 모습을 보면 율법만 고수하고 하느님 은총을 구하기보다 위선적인 사람으로 인식하기 쉽다(마태3,7; 9,11; 마가8,11; 누가11,42; 요한9,16). 그리고 현대 유대인들도 율법에 메여 그들이 안식일 지키는 행위도 은혜 바깥 행위일 거라고 예단한다.

 

에드 패리시 샌더스(E. P. Sanders)는 반 유대주의(반셈주의·anti-semitism)적 견해에 반대했다. 1세기 유대교를 율법주의로 규정한 입장에 반대한 샌더스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를 내민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는 신앙이 아니라 언약 공동체에 머물기 위해, 언약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율법이 필요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종교개혁시기 로마 가톨릭을 1세기 유대교와 일치시켜 율법주의라고 비판해야 했다. 샌더스는 그 비판이 지금까지 이르렀다고 봤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과의 단절을 요구해야 했다. 율법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율법을 어긴다고 해서 구원의 길에서 떨어져 나가는 건 아니다. 제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율법은 죄에서의 회복을 다루기에 율법을 구원 보상 체계로 봐서는 곤란한 것이다.

 

반대 목소리도 존재한다. 새 관점을 연구한 장성민 연구자는 새 관점의 율법이해에 대한 비평적 연구(2010)에서 유대교의 다양성으로 비판했다. 율법주의 혹은 언약적 율법주의만으로 보는 입장조차 편협한 시각에서 한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샌더스가 제2성전 시대 초기 랍비 문헌과 사해 문서, 가경, 위경 등 여러 문헌을 참고해 율법주의 사상을 발견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유대 문헌에서 발견한 유대교 모습은 생각보다 다양한 신앙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루터교 신학자 루돌프 오토(R. Otto)는 라틴어 누멘(Numen)을 통해 거룩을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신적인 것으로도 정의한다. 마치 야훼 앞에 신을 벗은 모세처럼(탈출 3,5). 그러나 거룩을 어떠한 초월적 힘, 압도성, 저항할 수 없는 느낌이 일어나는 현상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야훼는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창세6,6; 1사무15,11; 탈출15,7; 2열왕20,5). 신명기법전(22-25)과 성결법전의 이웃 사랑(레위19)이란 율법은 예수의 대강령(마태22,37-40) 앞에 메시지가 뚜렷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