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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신앙

[신앙칼럼] 인스턴트 신앙

입력 : 2020. 02. 09 | 디지털판

 

영락교회 조형물에 쓰인 '쉬지 말고 기도하라'(1데살5,17)

 

신학교에서 기도 배틀을 한 적이 있었다. 누가 기도빨이 잘 먹히나 내기였다. 상대는 수십 년을 오순절 신앙으로 무장한 동기, 한 놈은 걸그룹 믿는 이단아.


서로가 서로를 겨냥한 채 너의 기도가 응답되면 오늘부로 신앙 그만두겠다고 삿대질 했다. 이렇게 된 까닭엔 신앙으로 병 고쳐야 하지 않겠냐고 싸워댄 탓이다. 오순절 신앙을 고수한다잖은가. 안아키(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 수준은 아니나, 유사 안아키(?)라 생각한 배경에는 영분별과 치유의 은사를 운운한 단언 때문이라.


한국교회에는 다양한 기도 방법이 존재한다. 금식기도, 대적기도, 선포기도, 부르짖는기도, 관상기도, 땅밟기기도, 호흡기도, 방언기도, 중보기도, 주여삼창. 대게 ○○기도 호칭하는 분일수록 영적인 세계를 강하게 믿는다. 아예 대화할 때 “영적인 세계 믿지?” 전제를 깔고 대화하는 사람도 봤다. 무엇이든 영과 육으로 나눈 후 육이 볼 수 없는 세계를 정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금식이야 성경에 나온 대표적인 신앙 행위지만 중보기도를 제외하면 그 놈의 ‘영적’으로 해석해야 이해 가능한 기도들이다. 대적기도와 선포기도가 그렇다. 마귀, 사탄, 귀신을 상대로 대적할 때 효능이 생기는 기도인데 거기에 이름을 붙이면 힘이 세진다. 우울의 영, 게임의 영, 독감의 영, 죽음의 영, 아이돌의 영. 하여튼 그 영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할 때 떠나간다 믿는 것이 골자다. 꼭 주여삼창해야 마음이 시원해진다거나, 귀신 떠나가라 선포할 때 아멘해야 신통하다든지. ‘신통(神通)’이란 말만 안 썼을 뿐이지 분위기는 영적도해와 다를 바 없다.


기도에 효능이 없다거나 성경대로, 문자대로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신을 필요로 할 때 찾고, 필요 없을 때 안 찾는다고 조롱할 목적도 없다. 기도를 자기만의 정의(定義)로 삼는 게 문제다. 신학교 선배는 이걸 ‘인스턴트 신앙’이라 평했다. 우울증이 발생한 원인을 내부에서 찾지 않고 외부, 마귀, 귀신, 사탄에게 찾는다고. 아무리 선포기도 한들 없던 귀신이 곱게 떠나겠나. 지옥 같은 삶은 여전할 테지.


때론 이분화 된 시각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세상만사 이분화 프레임에 가둬서도 안 된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도 그렇다. 인간의 한계를 표현한 바울 사도이 “랄랄라따따따” “예쑤~!” “떠나가라!”는 기도 소리에 무슨 생각을 할까. 아, 기도 배틀 어떻게 됐냐고? 중년의 전도사 찾아가서 안수기도 받았다. 나는 아니고 동기가. 감기 걸려 골골대던 그에게 기도를 읊어주던 전도사와 함께 나도 손을 얹고 눈감았다.


“사랑하는 ○○ 형제가 아픕니다. 병 고쳐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하오니 응답해주시옵소서.”


당연히 나았을까. 여전히 골골대며 돌아오는 길, “좀 나은 것 같은데?” 한마디 외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낫기를 바라는 열망과 이미 골골대던 상황을 인지하고 기도해준 손길마저 매도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여튼 동기 녀석 신념보다 러블리즈 지수가 더 센가보다. 서지수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