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어른도 성장은 합디다

2020년 02월 11일

‘진짜’라는 말 백 번 천 번 할 필요 없다. 직접 해봤다고 말하면 된다. 기억과 행동 대충 섞어도 괜찮다. 남들은 해보지 않았을 일이니까. 그래도 괜찮다. 사람들은 내 행동엔 관심 없고, 오로지 그 시점에 무엇을 느꼈는지만을 궁금해 할 테니까. 일상의 행복처럼 누구든 공감하되 세계 평화처럼 동떨어진 언어여선 안 된다. 대충 가능성 있는 성장 서사 눙쳐놓고 해봤다는 추진력 스까 놓으면 인생 선배로서 조언이 탄생한다. 독자 여러분은 ‘성장 서사’ 이 단어를 기억해 두시라.

성장 서사를 마케팅 요소로 사용한 이들은 유독 ‘진짜’라는 뉘앙스를 즐긴다. 말 그대로 자기 말이 진짜라는 말이다. ‘진짜’라는 단어를 한병철은 판매 논리(타자의 추방, 35)라고 지적했다. 판매논리는 남과 비교하는데서 시작한다. 말빨을 왜 키워야 하지? 계발을 왜 해야 하지? 성공을 왜 해야 하지? 공부를 왜 해야 하지? 독서를 왜 해야 하지? 존버를 왜 해야 하지? 왜를 묻기도 전에 말빨계발성공공부독서존버를 나열하고 나처럼 살고 싶으면 먼저 성공한 내 얘기를 들어보라 권한다. 진짜를 말하지 않아도 설명할 방법은 무궁무진한데도 말이다. 직접 보여주면 된다. 판매 논리를 숨기려 직접 보여주기를 실행한다. 사람들은 감쪽같이 속는다. 직접 해봤으니 당사자가 더 잘 알거라고 비호까지 한다.

비호한 이유 한 가지 더, 헬조선 자체에 ‘희망’과 ‘의지’를 불어 넣었으니 이만하면 됐다는 논리다. 그러니 내 사람 그만 까고 문해력 딸리는 너희들은 책이나 읽으시라. 자존감 낮은 인간들은 남 잘 되는 꼴을 못 보는구나. 쓰레기들의 끝은 어디일까? 대화 불가. 아이코, 이를 어쩌나. 좋은 일 한다고 했거늘 공정위 아저씨가 다가와 자꾸만 뭘 빼라고 말한다. 성장 운운하던 그 사람 이마에 괴팍한 단어 하나가 보였고 이 광경에서 데자뷔를 느꼈다.

자기 착취를 배경에 둔 인간들 행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배제의 정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더욱더 남들과 비교해댈 어휘력을 길러놓고 너희들과 다르다고 차별한다. 공간과 시간을 분리해 너의 시간은 발 디딘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혓바닥에 나오는 모든 말을 적으시라 가르친다. 스스로가 고립되고 그사세가 돼버려도 상관없다.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니 너희들은 우리에게 배우시라. 진짜 성장, 진짜 인간은 이렇듯 집단 사이 숨어버려 쨉만 날려댄다.

누군가 불편한 이야기를 꺼낸다. 자기 착취적인 너희들은 무엇이 다르냐고.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 직접 해봤다는 말 한 마디 충분하듯 밤새도록 되새김질 한다. ‘나는 ○○이 아니다!’ ‘나는 ○○과 다르다!’ ‘나는 진정한 ○○이다!’ 온갖 동네 뒤엎을 심령대부흥성회는 남들도 모르는 우리끼리 부흥성회로 비칠 뿐이다. 이쯤 되면 성장서사가 더 이상 성장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성장을 위한 성장, 배제를 위한 성장은 자가당착(自家撞着), 자기만족,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가 무너진 배경엔 인간을 죄인으로 보지 않는 새로운 시각 덕분이다. 카리스마 탑재해서 경영하던 아저씨들 꼬부랑 할배 되어 이빨 빠진 호랑이 되고부터 교인 수는 급감했다. 새로운 콘텐츠, 보여줄 아이템도 없으니 비판에 문해력 타령. 자기와 목소리가 다르면 배신당했다고 아우성. 그러니 다 큰 어른이 ‘성장 서사’를 상품으로 내건다. “라떼는 말이야 선택이 중요했어, 알어? 내 것으로 삼으려 노력했다고. 진짜 인생에 최고의 선택을 하니까 이쯤 보니 성장했더라고. 그러니 좋아요 구독 좀 눌러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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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의 전도지, 외면 못한 이유

광주에 쏟아진 빗방울 412㎜는 말 그대로 극한 호우였다. 내가 타던 KTX는 16분이나 지연되고 말았다. 마지막 역도 목포역에서 광주송정역으로 바뀌었다. 나야 거기서 내리면 됐지만 김제나 목포로 향하던 이들은 안내 방송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한창 칼럼을 마감하던 길이었다. 한 시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어떤 문장을 구성할지에 잠기고 말았다. 마지막 역이 바뀌었다는 갑작스러운 안내 방송에 옆자리 할아버지가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몹시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는 한참을 스마트폰 화면을 노려다 보았다.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는 화가 풀렸는지 모니터를 향해 손짓하더니 한 말씀을 건넸다. “글씨가 이렇게 작은 데 보여요?” 눈앞 마감보다는 할아버지의 화를 풀어드리고 싶어졌다. “그럼요. 잘 보이고 말고요.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말문을 터뜨렸다. 무려 한 시간이나 대화를 나눈 것이다.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내가 바라던 주제가 아니었다. 나라 걱정과 애국, 온통 가짜 뉴스로 가득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앞뒤 좌석에 아무도 없었기에 가능한 대화였다. 나는 때론 맞장구를 치기도 했고, 할아버지를 치켜세워드리기도 했다. 이 또한 과거에 나 역시 애국 보수였기 때문에 가능한 대답이었다. 그가 자신만의 애국 세계를 말할 때마다 나는 조심스레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무엇을 하러 호남 지역으로 내려가는지를 물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들이 캐나다에서 잘 살고 있다는 얘기를 꺼낼 때마다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쓸쓸하고 외로운 단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야기에 이르러서야 나는 당신의 우국충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마지막 우리는 세 차례나 악수를 했다. 나는 그에게 축복해 마지않았다. 건강하시라고 말이다. 며칠 전 아시아문화전당으로 향하던 길목이었다. 칠순에 가까워 보이는 할머니, 여호와의증인이 내게 전도지를 건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신앙 세계를 말했고, 나는 조심스레 맞장구를 치다 이번 폭우 잘 견디셨는지를 물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었다고 한다. 주저리 이어지는 신앙 이야기에 나는 근처 다리 이름의 유래를 물었다. 물음을 통해 이 지역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나 역시 과거에 독실한 신앙인이었기에 가능한 대화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어디 가시는지, 어느 버스를 기다리는지, 이곳 근처에 사시는지를 물었다. 그는 중간중간 여호와를 믿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증언했지만, 그의 대답을 들으면 들을수록 인심 좋은 할머니가 내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두 손을 맞잡았고 서로를 축복했다. 애국 보수와 독실한 신앙, 사람은 겪어 본 세계만을 이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계를 온몸으로 겪을 때에야, 지금 여기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교회 방송실의 추억

10년 전 이맘때는 밤을 새는 일이 잦았습니다. 교회 일 때문이었는데요. 11월 마지막 주 추수감사 절기를 보내고 곧바로 대림 절기를 맞아 업무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방송실 근무가 만만치 않더군요. 예배 때 사용할 PPTX 자막을 만드는 일부터 동영상 제작까지, 교회학교와 학생부, 청년부에서 떠넘긴 자료가 한 아름이었습니다. 저를 바쁘게 만든 부서들이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교회학교 교사직까지 감당해야 했으니 열 몸이라도 모자란 상황은 중학생 때부터 매년 반복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방송 일을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생 2학년과 일병 달 때까지 일하다가 교회 다니기를 관뒀으니, 7년쯤이겠네요. 10년 전 이맘때는 군 입대를 앞두고 슬슬 교회 일을 인수인계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언제나 일들로 가득한 방송실에 발 디디겠다던 학생과 청년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물려줄 수 없는 위기의 상황에서 당당히 두 손 들고 들어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재현쌤이 불쌍해 보여서 방송실에 들어왔다”던 저의 동지 안중현 형제였습니다. 그때의 고마움과 설렘은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방송실 근무에 신바람이 났습니다. 오랜 시간 혼자 근무하던 방송실에 생기가 불기 시작한 것이죠. 방송 일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요. 오히려 피드백을 받기도 하면서 변화를 느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구나’를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문학의 밤을 준비한다며 중현 형제가 대본을 가져온 일이 있었습니다. 내용은 처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런 걸 연극이라고 하기에 스토리도 없었고 교훈도 없었습니다. 재미도 없었고요. 편집으로 커버 쳐야 할 생각에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연극에 필요한 배경을 손으로 만들기엔 인력이 들 테니 빔 프로젝터로 우리가 그래픽을 활용해 배경을 만들자고 말입니다. 마이크를 들고 일일이 대사를 읊기엔 학생들도 힘을 테니 저는 아예 미리 녹음하자고 조언했습니다. OST와 효과음도 마련했습니다. 영상으로 만들어 연극할 땐 재생만 하면 된다는 신박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중현 형제는 옆에서 영상 편집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곁에 누군가 있어준다는 사실 자체에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람에 대한 한줄기 빛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제가 교회를 탈퇴해도, 유일하게 연락하고 안부 인사를 건네주는 유일한 사람이 중현 형제입니다. 그 고마운 인연,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게 왠지 모르게 고맙네요. 티스토리 오블완 챌린지도 오늘로 끝입니다. 그러나 이 지면의 칼럼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입니다. 이 마지막 칼럼을 고마운 중현 형제의 이야기로 끝맺고 싶습니다.

모든 기록이 멈춘 순간

초등학생 2학년, 선생님이 쓰라던 날에만 꾸준히 쓰던 일기를 8년 전부터는 매일 컴퓨터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일기를 달리 부르고 있습니다. 바로 ‘감회록’으로요. 일기의 확장판인데 감회가

운전면허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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