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의 기록] ①두 달의 서버 마비가 끝나고, 퍼피레드에 복귀하다

2020년 02월 15일
퍼피레드 홈페이지를 몸이 기억한다.

퍼피레드 운영진이 복귀하자 이곳의
시차도 시스템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망한다 망한다 하더니 진짜로 망할 줄 꿈에도 몰랐다. 2012년 무렵부터 적적해진 분위기에 망했다고 느꼈건만 서버 종료라는 마지막에 도달할 줄은 전혀 상상조차 못했다. 무언가 망하는 광경을 목격한 적 없어서 신기했다.

2016년은 세 차례를 제외하고 닫힌 서버 탓에 더는 그 세계에 접속하지 못했다. 2016년 8월 5일도 그랬다. ‘이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습니다’가 뜨겠거니 생각하고 접속한 퍼피레드의 마지막 풍경은 어딘가 낯설었다. 퍼피레드는 2015년 12월 6일 게시글을 끝으로 공지사항조차 업로드하지 않았다. ‘한게임퍼피레드 환불 일정 공지’가 박제된 상태로 몇 년간 유지됐다. 오죽하면 공지사항 네 개 글이 텍스트 상자처럼 눈과 몸에 각인됐으니. 일종의 믿음일까? 퍼피레드만큼은 ‘이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습니다’에서 완전히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언제든 문 열어 당신들의 마지막을 장식하지 않을까하고. 게임 업데이트는 고사하고 회사의 사정까지 상세히 밝히지 못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운영진은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마지막 약속을 건넸다.

‘퍼피레드 서비스 종료 안내’

어느새 돌아온 2시간 반 서버 시차는 원상 복귀 됐고 몸이 기억하는 공지사항 사각형 상자에 짤막한 새 글을 느끼자 올 것이 왔다고 느꼈다. 더는 업로드 없었던 첫 글 ‘퍼피레드 서비스 종료 안내’가 가슴 철렁했고 신속하게 마지막을 준비하게 만들었다. 이럴 줄 알고 몇 해 전부터 텍스트 자료로 백업해 왔건만. 이제 정말 남은 시간은 보름 남짓. 황망할 틈도 없었다. 우리 모두 퍼피레드 마지막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아담하던 서재가 사라진다, 퍼피레드가 사라진다
밤 10시가 훌쩍 넘어 미니파크는 고요했다. 두 달 전 꺼둔 조명 하나 둘 켜자 노랑 빨강 얼룩진 거대한 예배당 자태가 하얗게 드러났다. 이곳은 군 입대하던 새벽까지도 함께해준 나의 공간이다. 버뮤다 순복음교회, 대형예배당 한 구석 아래아 한글과 함께 집필 활동을 이어간 거대 서재인 셈이다. 당장 ‘파티&파티’를 열어 나처럼 충격과 당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예배 때 빼고 파티를 연지도 5년만이다. 사람들은 웬일로 하나 둘, 우리 교회로 접속했다. 그리고선 한결같이 황망함을 토로했다. 믿을 수 없다고. 나도 그랬다. 감출 수 없는 예언된 이별의 준비를 준비하러 아래아 한글을 열었다.

퍼피레드 서버 종료, 현실로 다가오다
그 동안 문 닫을 것이라는 예측과 주장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 여러 추측이 있었지만 실제 운영자가 퍼피레드라는 본 서버를 종료하겠다고 나선 것은 처음이기에 모두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볼 수 있었던 버뮤다 순복음교회와 퍼피레드에서 함께한 여러 인식들은 이제 만날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렸고, 기억에서 흐릿해 질 짧은 만남이자 긴 이별이 된 어쩌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가 돼버렸다.

퍼피레드 서버 종료, 이젠 받아들여야 한다
퍼피레드의 종료는 아쉬운 일이지만, 현실 세계의 인식을 소중히 해야하는 현재 우리의 모습에서는 퍼피레드의 추억은 잊혀지지 않을 잡힐 것만 같은 모습으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셀 수 없는 대화, 무수히 많았던 기억들은 한 순간 8월 19일, 서버 종료라는 이름으로 영구히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중략)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려 하지만 그 기억은 영구하지 않으며, 내일을 위해서 우리는 과거만을 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잊으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가상에서의 만남이 중요하듯, 우리의 인생을 살아갈 현실의 인식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11년의 기나긴 시간에도 퍼피레드는 마치 세상엔 영원함이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어진 언제부턴가 이 세계의 그늘진 그림자 속에서 슬픈 감정을 읽을 때처럼. 언젠가 문 닫고 말 거라는 슬픈 감정. 세상에는 영원한 것 없다는 진부한 교훈. 망각도 인간이면 누구든 경험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기억하면 좋으련만 왜 인간은 하나 둘, 잊어가는 걸까. 누구는 망각을 사라짐의 슬픔으로 해석했다. 퍼피레드의 망각, 퍼피레드의 사라짐. 사람들이 슬퍼한다. 2016년 8월 5일 접속하고 새 글을 마주한 사람들의 황망함 속에서 사라짐의 슬픔을 느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광경을 유일하게 경험한 이 세대도 어쩔 수 없는 사라짐의 슬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솔직히 지금도 느끼는 감정을 잘 모르겠다. 굉장히 슬프진 않은데, 그렇다고 언젠가 발생할 사건이란 점에서 속 시원하거나 매듭진 기분도 아니다. 나만 겪는 이별도 아니고. 공허하진 않았다. 꼬박 11년을 퍼피레드에 투자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아깝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가슴 어딘가 아린 구석을 발견했다. 적막감 때문이겠거니 싶었다. 항상 교회에 접속하면 모든 조명을 켜둔 후, 1층을 제외한 모든 조명은 꺼둔다. 나름의 적막감이 꽤 운치 있었기 때문이다. 형형색색 빛깔 나는 노란조명 빨간조명 아래에서 쓸쓸함은 더해간다.

“아, 슬프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그렇게 붐비더니, 이제는 이 도성이 어찌 이리 적막한가!” (예레미야애가 1,1)

파티 기능을 끝내자 하나 둘, 자러 간 회원들 옆에서 급하게 써 내려간 기록관 논평을 첨삭했다. 받아들일 운명처럼 집필은 했지만 실은 가장 못 받아들일 사람은 나였다. 진득하니 거대한 예배당 한 구석에 자리 깔고 집필할 때만큼 즐거운 시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11년을 함께한 이곳, 버뮤다 순복음교회와도 영원한 안녕을 맞이해야했다. 곧 사라질 나의 서재에 앉아 당장 이 밤 어간부터 가능한 백업을 시작했고, 하나 둘 기억을 정리했다. 내일부터 본격 백업 체제에 돌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요리는 할까 말까. 뭐, 이제는 수십만 콩 더 모을 필요도 없으니 하지는 말자. 에어컨 버튼을 누르자 바람이 불었다. 사라질 공포에 새파랗게 질려버린 ‘지금은 백업 중입니다’ 끼적인 이젤을 옆에다 세워 놓았다.

◇퍼피레드라는 기억을 꺼내는 이유
이 세계가 사라질 무렵에 떠오른 만화가 있었다. 초등학생 때 재밌게 봤던 ‘꼬마공주 유시’(ぷちぷり*ユーシィ). 주인공 유시는 밝은 미소만 보이지만 그 속의 어두운 먹먹함을 느꼈다. 고등학교 2학년일 열일곱 소녀가 세상을 지켜야만 한다는 필연에서 묻어난 가혹함? 17년이 지난 지금도 마지막 화는 마치 퍼피레드의 마지막 새벽을 그려놓은 듯하다. 저 만치 갈라져 다시금 에우지 못할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어 새벽녘 수채화 여명을 바라 볼 수 없다는 우울감을, 중간 중간 버그처럼 무너져 내린 한 때 사람들로 북적인 마을과, 밝게 웃은 주인공 유시를 설정하고는 잿빛 깨어진 하늘 아래 천 년간 버려진 마법계 배경으로 마지막 화를 전개해 나간다. 이렇게 세계가 망하기 전에, 플라티나 프린세스가 되어 세상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 것이다.

ⓒNHK

천 년 만에 다섯 명의 프린세스 후보를 마주한 마가제렌트도 천 년 전 프린세스 후보였다. 막강한 힘을 가진 왕관 ‘이터널 티아라’를 얻기 위해 그도 후보로 섰던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후보들은 탈락과 동시에 존재조차 소멸된다. 어떻게 경쟁 상대이자 친구였던 이들을 잃을 수 있을까. 마가제렌트는 후보직을 포기하지만 후보생 친구들은 소멸됐고 마법계 역시 잿더미가 되어 멸망하고 만다. 그렇게 천 년이 흘렀다. 천 년 후의 유시의 결정도 같았다. 친구들을 구할 테니 프린세스를 포기하겠다니 기가 막힌 마가제렌트는 며칠 간 폐허가 된 마법계에서 친구들과 생각해 보라고 유배를 보냈다. 유시에겐 프린세스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가 좋아하던 왕자 아르크의 저주를 풀어야 했다. 아르크가 죽기를 놔둬야 할지, 친구들의 존재를 소멸시켜야 할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자 유시는 친구들을 선택한 것이다. 후보생 친구들은 유시에게 자신들의 기억을 잊게 하고 프린세스 최종 후보가 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기억을 잃고 자신이 살던 인간계로 돌아가 아르크를 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친구들과 함께한 장소들을 지나칠 때마다 잊힌 기억이 희미하게 되살아났다. 친구들과 마지막 발표회를 보낸 노천극장에 다다르고 한 가지를 기억해내자 비가 눈물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뭔가 잃어버려선 안 될 소중한 것. 그걸 잃어버렸어…….”

용사로 맹위를 떨쳤던 아버지 건버드의 힘으로 마법계로의 포탈을 열고 유시와 아르크는 마가제렌트를 찾아간다. 금으로 갈라져간 하늘을 가리키며 이 세계와 사라지겠냐고 소리쳤지만 잃어버린 걸 다시 찾으러 왔다던 유시는 친구들이 새겨 놓은 벽면을 보고서 잃어버린 걸 되찾고 만다. 바로 기억이다. 친구들이 사라져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자 마가제렌트는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말한다. 프린세스를 포기하고 후보생 친구들을 잃어 마법계마저 살려내지 못해 천 년간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적막함을 술회한다. 그래서 후회하지 말았으면 했다고. 그런 마가제렌트에게 유시는 천 년의 시간이 있다면 천 년을 모두 걸어서라도 되살려 내겠다고 외치고 만다.

유시의 외침이 닿았을까? 사랑을 상징하는 크리스탈 플라워를 발견하고 천 년 전 소멸된 줄 알았던 후보생들은 그동안 마가제렌트와 함께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살아있던 영혼들로 유시의 친구들을 살려냈고 유시는 마법계 세계를 벗어난다.

망해가는 퍼피레드 세계를 바라보며 백업한 내 심정이 이랬던 건 아니다. 한낱 만화 영화 한 컷 구체적으로 기억할 만큼 여유롭지 못했고 사라짐의 슬픔도 퍼피레드 세계가 사라지자 한참 후에 찾아왔기에. 하지만 무너져간 마법계 세계가 떠오른 배경엔 사라져간 세계의 슬픔 그 자체에서 시작한다. 슬퍼할 땐 슬픔에 관한 글들이 쓰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매듭짓고 갈무리한 무렵 다시 기억해야 할 이유를 깨달았다. 그 이유는 열일곱 소녀, 유시처럼 “잃어버린 퍼피레드를 다시 되살려내겠어!” 같은 생기발랄함은 아니다. 없어질 게 없어졌다는 냉소도 아니다.

어두운 예배당 구석에서 백업하며 느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 그 감정을 오늘의 시간에 다시 읽으며 느꼈던 해방. 그걸 다시 살려내야 했다.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 왜 동시에, 적막감과 해방감을 느꼈을까.


지금은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 속의
적막감과 해방감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이곳 세계엔 내일이 존재한다고
자정을 넘기자 더 이상 교회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통상 교회를 소등하던 시간이 밤 10시 건만 두 달 만에 열린 서버에 새벽 두 시를 넘겨서야 소등하고 말았다. 마냥 밝았던 이곳 풍경도 순식간에 배치해둔 노란 조명 빨간 조명으로 더욱 진해졌다. 집필 활동을 이어가기 가장 적절한 순간. 이미 글은 써놓은 상태라 쓸 글이 없었다. 심신이 지친 상태라 교회 이곳저곳 화면 돌려가며 살펴봤다. 거대한 예배당에 채팅 말풍선 하나 없이 조용했다. 요리를 할 때면 BGM과 삐용 소리로 이어지곤 했는데, 이와 중에 콩 하나 벌자고 요리하기도 좀 뭐하고. 좋아하던 앵글로 화면을 두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교회를 사진으로 남기기로 했다. 평소에 찍질 않던 인생 샷도 남겨두련다. 사진들을 훑어보면, 남들을 줄곧 찍었지 내 캐릭터를 찍어 두질 않았다. 바라보던 화면을 남기고 싶어서가 아닐까. 의자에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습, 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모습, 다시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습, 멀리서 바라본 교회 전경. 훗날 역사기록관에 써먹을 사진들을 찍어놓으며 11년의 이곳 풍경을 담아놓았다. 찰칵 소리에 기억도, 조명도 진해져간다.

 

한게임 퍼피레드 채널링 종료 (2015. 11. 1)
운영진이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지 않는 이상 새로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적 성숙을 거듭한 회원들은 새로운 게임이 개발된다 한들 돌아갈 순 없다. 생업에 종사하고 학업에 열중하는 대학생인 회원들은 게임의 향수에 취해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생각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이기에 더 이상 그 시대로 돌아갈 순 없다. 그 때의 사람들은 이미 지금의 사람들의 인식과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퍼피레드 본 페이지 마저 없어진다 해도 놀랍지 않다. 운영자가 놓은 퍼피레드는 더 이상 운영이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지지 않기에 그러하다. 과거의 한 조각이었던 퍼피레드는 마음 속의 오랜 시간 훌륭한 게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운영진이 누구이건, 이 게임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이루도록 도운 것에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작년 가을에 입력한 ‘한게임 퍼피레드 채널링 종료’ 논평에서 웃음이 났다. 그래,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순 없지. 인생의 당연한 교훈을 대단한 것처럼 받아들인 이유에는 아무래도 처음 겪는 이별이고 사라짐의 슬픔 때문이 아닐까 하고. 그래도 퍼피레드 세계엔 내일이 존재한다. 비록 보름 남짓 남았을 테지만. 그래, 내일 방명록부터 백업해보자. 그렇게 마음먹고 로그아웃했다.

자유의 새노래

자유의새노래

정론직필의 자유·시대성의 창달·주체자의 기록

답글 남기기

Previous Story

철없는 어른도 성장은 합디다

Next Story

[15일의 기록] 프롤로그2: 퍼피레드 홈페이지 소개

Latest from 나우

두쫀볼, 두쫀붕, 두쫀궁까지… 없어서 못 먹는 ‘두쫀쿠 열풍’

두바이 쫀득쿠키. 이름만 들어도 일단 두바이에서 만든 쿠키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두바이 초콜릿은 들어봤어도 쫀득쿠키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쿠키면 쿠키지 쫀득쿠키는 뭘까. 여자친구가 먹고 싶다던 두쫀쿠를 더현대서울에서도 판다기에 점심시간, 지하 1층 식당가를 헤집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품절 대란이 일어날 만큼 인기리에 판매 중이었기 때문이다. 절찬리 판매 중인 ‘존맛탱 쿠키’ 두쫀쿠는 ‘두바이 쫀득쿠키’의 줄임말로 중동식 얇은 면인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 크림을 속에 넣고 마시멜로 반죽으로 감싸 바삭하면서 쫀득한 식감을 내는 쿠키 형태다.

[지금,여기] 두 손 모아 경건함으로 “소원을 빕니다” 「2박3일, 교토여행③」

❹청수사·니넨자카·산넨자카·은각사 자연을 재편집하는 섬세한 손길과 애절함 관광지의 정수였다. 청수사 그러니까 기요미즈데라(清水寺)에 이르자 새빨간 사찰 건물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청수사는 매년 12월 12일 일본 ‘올해의 한자’를 발표하는 곳이다. 인왕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신비로운 눈빛으로 인왕문을 구경하거나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노송나무 껍질로 만든 본당 지붕은 나조차 익히 알고 있는 교토의 유명한 건물이다. 높은 지대를 감추고 있는 파릇파릇한 가을의 나뭇잎이 우드톤 본당의 지붕과 대조적이었다. 자연 속 사찰로 더욱 살아나는 분위기였다. 사찰로 향하는 길목에는 니넨자카와 산넨자카가 늘어섰다. 일관된 목조건물과 절제된 간판이 교토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무척 많은 관광객에 걸음을 멈춰야 했을 정도다. 전범기 앞에선 잔기침이 터졌다. 은각사에서 나는 동양 전통의 권력과 위계적 미학을 감지했다. 서양 전통은 압도적 규모와 기하학적 질서로 권위를 드러내지만 일본의 건축은 자연을 통제함으로써 힘을 보여주려 한 게 아닌가 싶었다. 목조 건물은 콘크리트와 달리 거대한 규모로 짓기 어려워 자연을 통제하거나 인위적으로 길들이는 방식으로 발전했다는 인상이다. 모래를 쌓아 만든 코게쓰다이(向月台)와 긴샤단(銀沙灘)은 동양적인 권력처럼 보였다. 이치조지로 향하기 전, 우리는 철학의 길을 걷고서 한 카페에 도착했다. ‘하나 긴카쿠(花ぎんかく)’. 우리는 이곳에서 커피와 멜론 소다를 마셨다. 빨간 벽지로 마감된 카페에는 일본인 가족으로 보이는 단란함이 엿보였다. 아버지와 딸이 손뼉치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흐뭇한 광경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으나, 아쉽게도 이 카페는 9월 30일을 끝으로 폐업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미소로 대해준 그곳 점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금,여기] 단정한 제복, 섬세한 인사… 이치조지에서 느낀 일본의 감각 「2박3일, 교토여행②」

카페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허탈했다. 하필 우리가 방문한 때가 ‘추분(秋分)의 날’이었다. 우리에게 추분은 평범한 날이지만, 일본에서는 공휴일인 모양이다. 오늘 낮에 방문했던 ‘도쿠라 교토 산조점(手づくりハンバーグの店 とくら 京都三条店)’에서 세트 메뉴 주문이 어쩐지 불가했다. 도쿠라 교토 산조점은 함박 스테이크를 파는 곳이다. 내가 먹은 명란 마요 함박 스테이크를 젓가락으로 자르자 쏟아져 나오는 육즙에 놀랐다. 40분을 바깥에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❺무시야시나이 카드 결제 물으니 한국어로 “아, 네!” 달콤 디저트 카페 ❻센나리 새침한 접객 태도 허나 풍성한 식탁 평범 일본 가정식 즉석 데코레이션 디저트 카페 ‘무시야시나이’, 푸짐한 일본 가정식 ‘센나리’ 다만 우리의 발걸음이 잠시 중단돼야 했다. 오래도록 걸었기 때문이다. 은각사와 철학의 길을 걷다가

[지금,여기] 뜨듯한 온천과 시원한 맥주 “캬, 이 맛이지” 끝없는 ‘오사카의 밤’ 「2박3일, 오사카여행③」

우드톤 단색의 고즈넉한 도시가 교토였다면, 오사카는 그저 화려하고 젊은 분위기의 도시였다. 우리는 나가호리바시를 기반으로 오사카의 도톤보리와 난바, 우메다, 나가자키초를 돌아다녔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큐카츠 토미타(牛かつ 冨田)다. 각자 구워 먹을 수 있는 큐카츠 전문점이다. 다행히 우리는 기다림 없이 바로 입장해서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와,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맛. 달달하고 고소하며 담백한 맛. 입 안에서 녹는 육즙이 끝내줬다. 현금만 받는 가게라 카드로 결제하지 못했다. 곧이어 낮에 예매해 둔 리버 크루즈를 타고 우리는 도톤보리 강을 누볐다. 베테랑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주변 관광객들이 선사하는 손인사에, 우리도 손을 흔들었다. 가까운 타지에서 느끼는 이색 풍경에 하나가 되는 감정을 느낀 것이다. 낮에는 여자친구를 따라 우메다 근처에서 쇼핑을 즐기기도 했다. 우리는 아식스 오사카 스토어에 방문했다. 스티브 잡스 같은 분위기의 직원이 우리를 맞았다. 여자친구가 둘러보는 동안, 나는 작은 소파에 앉아 쉬었다. 다소간의 긴 시간을 머무르는 바람에 여자친구와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며 나왔다. “失礼しました。(실례했습니다.)” 곧장, 직원이 90도로 숙이며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중한 인사에 깜짝 놀랐다. 작고 진심 어린 순간에서 문화적 감동이 남은 것이다. ❼오사카 아식스·마크 커피 ‘90도 인사’ 진심 어린 문화적 감동 카라멜마끼아또, 바리스타의 손맛 ❽큐카츠 토미타·리버 크루즈 직접 구워 먹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 도톤보리 강 유람하는 이색 ‘밤풍경’ ❾소라니와 온천·토리키조쿠 온천물에 담근 설익은 발, 피로가 싹 여자친구와 마신 달달한 맥주 한 잔 감동은 나가자키초(中崎町)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끝내 다다른 곳 ‘마크 커피 로스터스’에서 우리는 쉴 수 있었다. 나가자키초 카페 거리는 관광 친화적인 동네가 아니었다. 내부 사진 촬영이 어렵거나 현금 결제만 가능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크 커피에서 짧은 시간 지친 몸과 마음을 가누었다. 이따금 귀에 들려오는 일본 밴드 음악에 힐링이 되기도 했다. 카페에 머무는 동안, 오사카 시내에 짧은 가랑비가 내렸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우리는 고민했다. 예전부터 생각해온 곳을 예매했다. 벤텐초역(弁天町駅) 근처에 있는 소라니와 온천(空庭温泉)이 끌렸기 때문이다. 소라니와 온천은 다른 의미에서 놀라웠다. 이 가격에 이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여자친구는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도 “그날 숙소의 작은 욕조에 입욕제 넣어서 물 받아 넣고 몸을 담궜으면 평생 후회할 뻔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소라니와 온천은 일본 전통 의상인 유카타(浴衣)를 입고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5층에서 4층으로 내려가면 공중정원에서 족욕을 즐길 수 있는데, 발을 담그면 따뜻함에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온천의 다양한 공간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다시 우리 발걸음은 도톤보리로 향했다. 토리키조쿠 도톤보리점(鳥貴族 道頓堀店)에서 꼬치구이와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도톤보리에서 나가호리바시까지 향하는 길목에서 우리는 다채로운 얼굴의 오사카를 보았다. 확실히 교토에 비해 젊은이들의 도시라는 분위기가 강했다. 가출 청소년으로 보이는 아이들, 거리를 쏘다니는 폭주족까지 밝고 친절한 모습만이 아닌, 사회의 이면을 마지막 밤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짐을 정리해야 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편의점 로손(Law-son)을 들러 생크림이 담긴 빵을 먹었다. 오사카에서 먹는 세 번째 빵이었다. 어느덧 오사카의 밤이 스산해졌다. 그새 가을이 다가온 것이다. 우리의 여행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9월로 미뤄야 했다. 여자친구와 다행이라는 고백을 주고받았다. 이토록 흐드러진 날씨와 분위기, 꼭 지금이어야 할 여행의 묘미를 만끽했기 때문이다.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