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너무 밉다
못 생기고 멍청해서
스크린도어 속 나는
꾸질꾸질한 스니커즈
근데도 다르게 봐주는
김도진에게 편지 써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김도진은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가볍게 스치듯 보는 게 적절히 튕겨나가는 기분. 부담되지 않는 시선 처리가 능숙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 말고, 내 앞 소혜한테 말 거는 데서부터 거슬렸던 것 같다. 자세히 들어보면 학보 얘기 같았다. 소혜가 엎드려 고개를 돌리며 귀찮다는 데도 그랬다. 김도진은 소혜랑 신문에겐 관심 없는 게 뻔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밤새 학보실에서 신문 만들다 등교해 책상 껌딱지가 된 소혜에게 말 걸 리가 없다.
김도진은 분명히 나에게 관심 있는 것 같다.
처음엔 뭘 잘못한 줄 알았다. 맥락도 없이 다가오는 게 내가 목적인 것 같았다. 걔랑 눈이 맞을 때면 그랬다. 한두 번도 아니고, 그런 눈빛은 처음이다. 그게 나를 미치게 한다. 무슨 느낌이라 해야 할까. 지금까지 누구도 내게 그런 눈길로 바라봐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정말 김도진이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건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그런 나한테 왜? 내가 어떤 앤지 알고?
김보라에 관하여
아침까지만 해도 가벼웠던 설렘은 순식간에 시궁창으로 떨어졌다.
가능성은 제로다. 김도진 걘 인싸 그 자체다. 그런 핵인싸가 나 같은 앨 만나 줄 리 없다. 안경이 한숨으로 얼룩졌다. 가야할 데는 많았지만 어디든 가고 싶지 않았다. 말없이 내딛는 발바닥에는 아무 힘도 없었다. 그냥,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내 마음 속 풀리지 않는 질문. ‘요즘 내가 왜 이러지.’
나는 친구가 없다.
친구가 없는 건 지옥이다. 외로움이란 파도를 온몸으로 얻어맞는 통증.
나는 공부를 못한다.
배워야 할 이유를 모른다. 학교에 갇혀 하루하루 시간만 흐르기를 조용히 빌 뿐.
나는 못 생겼다.
이건 어떻게 할 수 없다. 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란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도 찾질 못하겠다. 질문은 가슴 깊숙한 곳 똬리를 튼 채 떠나질 않는다. 내일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학교 갈 생각에 죽고 싶어졌다. 승강장 한 면에 비친 꾸질꾸질한 스니커즈를 보았다. 못 생긴 캐릭터 양말부터 치맛자락 훑어 올라가다 턱주가리 직전에 멈추었다. 못 생겨서. 맘에 안 들어서. 자존감이 땅을 뚫고 미친 듯이 하강할 것만 같아서. 똑바로 쳐다보질 못하겠다.
일탈에 관하여
나는 누구랑 다르게 일탈이란 걸 해 보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기보단 할 생각이 없다는 게 맞을 거다. 나는 아직 야자를 빼먹은 적이 없다. 어두운 집에서 혼자 밥 먹는 게 싫었다. 어차피 아무랑도 안 먹지만 집보단 급식실이 나았다. 적어도 가난한 골목에 밴 담배 냄새는 안 나기 때문이다. 공짜 저녁 먹으려면 보충 2교시도 해야 한다. 뛰어 노는 교실 풍경 멍 때리며 지켜보는 게 오늘 저녁 할 일이었다.
일탈도 같이 할 친구가 있어야 할 수 있다. 나 같은 애매한 은따는 관종이라 욕 듣기만 할 뿐이다. 소혜라면 어땠을까. 아마 학보사가 아니라 제1교무실까지 뒤집어졌을 거다. 게다가 밖에서 자려면 돈이 필요하다. 아무 데서나 잘 수는 없잖아. 정해진 루트에서 벗어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돈도 있어야 하고 친구도 있어야 한다. 난 다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처음 보충을 빼먹었다. 교문을 나서는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국어가 엄마한테 연락할까. 어떤 표정으로 학교로 돌아가야 할까. 미리 질문에 대답까지 연습하면 될까. 대처는 내일의 나에게 미루기로 하고 지금 이 순간 뭘 하며 시간을 때울지 고민하기로 했다.
폰부터 끄고.
마음에 관하여
요즘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어쩌다 내 마음이 이렇게 된 걸까.
누군가에겐 봄 내음은 설렘이지만 나에게는 불안한 냄새일 뿐이다. 봄바람은 사람들을 나들이로 이끌지만 나는 늘 안절부절이다. 어렵게 익숙해진 한 학기와의 작별을 견디지 못했다. 내 집 같지 않은. 나만의 공간하곤 다른 이질감. 새 학기면 몰려오는 불편한 감정이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어쩌다가 흘러가는 대책 없는 하루가 불안으로 밀려온다.
오로지 혼자 이 세계에 살아남아야 하는 막연함.
봄바람이 나 모르는 세계로 끌고 가는 것 같다. 어딘가에는 뿌리 내려야 할 시기에 끊임없이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는 공포감이 몰려온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당황할 뿐이다. 그게 느껴질 때면 커지는 불안감. ‘훅’하고 밀려오는 우주의 파도에 젖어 차가워진 온몸. 파고를 먹어버린 교복 사이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말도 없이 무거워져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나의 영혼. 갈 데 없고 갈아입을 옷이 없어 마지막으로 내딘 곳이 병원이었다.
‘F34.9 상세불명의 지속성 기분[정동]장애’
우울증 환자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곳에 간 순간까지도 발버둥쳤다. 회피 때문이었을 거다. 약 먹으며 버틴 지도 한 달이 지났을까. 약 먹은 직후의 불편함은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만큼이나 익숙하지 않다. 어색한 병원 냄새만큼 옷자락에 배기도 전 낯선 감정이 코를 자극했다. 창문 바깥에서 벚꽃이 흩날린다. 봄 내음을 맡지 않기 위해서라도 옷자락에 듬뿍 담긴 내 냄새를 맡곤 했다.

죽음에 관하여
비 냄새가 난다.
오늘도 비가 올 것만 같다.
매일 매일이 흑백으로 어두운 지금. 잠깐은 컬러로 물든 것 같았다. 김도진. 걔를 생각하니까 슬퍼졌다. 연애, 공부, 외모. 어느 하나 이룬 게 없었다. 이 쳇바퀴 같은 생활을 몇 백번도 더 해야 한다니. 나아지는 것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 절망이다. 담임은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을 가리키다 가능성 제로를 말했다. 내겐 대학조차 김도진이다. 꿈 정도는 꿀 수 있지만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목표. 단지 저런 애랑 사귀는 상상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지금이 저주스러웠다.
나도 잘 모르겠는 감정이 가슴에까지 차 올라왔다. 이럴 때마다 토할 것 같다. 가끔씩 올라오는 감정선에 젖어 들어갈 때마다 어지럽다. 갈 데 없어 올라온 이름 모를 옥상에는 바람의 소리만이 남겨져 있었다. 언제부턴가 땅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무섭지 않게 되었다. 지금 죽으면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에서 부는지 모를 바람이 내 발을 움직이게 했다. 신발을 벗어 나란히 두었다. 난간 너머의 세상에는 내가 디딜 땅바닥이 없는 것 같았다. 경적 없이 굴러가는 자동차들도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았다.
눈물이 차오른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걸 닦으려 손으로 비벼댔지만 멈추지 않았다. 난간을 넘어가 바닥에 앉았다. 허공에 발바닥을 대었다. 찬바람이 불어도 땀이 차기 시작했다. 얼마나 울었을까. 얼마나 맺혔을까. 난간에서 내려와 기우뚱하던 무거운 몸을 맨바닥에 쓰러뜨렸다. 양발을 벗어다 까뒤집었다. 냄새를 맡았다. 다시는 맡고 싶지 않을 지옥의 층위가 쌓여 있었다.
다시 김보라에 관하여
폰을 켜자 부재중 통화가 세 통이나 와 있었다.
‘뭉쏘’ ‘뭉쏘’ ‘뭉쏘’
“보라야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야!”
“…….”
감정을 참으려 그랬다.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눈물을 삼키느라 참고 또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옥상에서 바람이 불건 말건 밉고 추한 내 울음소리가 퍼져갔다. 당황하던 소혜가 말없이 듣기만 할 때까지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통화가 끊어지든 말든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울었다. 오래도록 쌓인 감정이 풀어지는 동안 울다가 그치고 또 울다가 그쳤다.
그러다 소혜의 한 마디가 다시 터뜨렸다.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그렇게 말없이 흘러 갈 거야.”
한참을, 얼마간, 또다시, 울었다.
하지만 마냥 소혜를 기다리게 할 수 없어서 울음을 끊어야했다.
“오늘 나 일탈 저질렀어.”
소혜가 웃었다.
“뭐? 난 또. 흐히 맨날 김치에 물 헹궈먹을 줄만 알았는데 야자도 빼 먹구. 다 컸네 다 컸어. 우리 보라.”
피식 터졌다.
아직도 저 멀리 담원역 불빛에 눈망울이 아른거린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나 편지 써볼래.”
“됴아됴아. 힛. 못 써도 돼. 내가 직접 봐줄 거니까.”
“익명이면 좋겠어. 김도진이 알면 쪽팔릴 거 같아. 글까지 못나면 좀 그렇잖아.”
“넌 니가 못 생겼다 생각해?”
“…….”
그 뒤로 이어진 소혜의 말에 뭔가 눈이 뜨인 기분이 들었다.
“가끔 드립 칠 때 웃는 너 존나 이뻐. 뭔가 피섹이라 그런지 성숙해 보이고.”
“피섹?”
“피곤섹시. 바보. 내가 남자였으면 고백했을 걸? 안경 좀 벗고 화장도 하면 뻑 갈 애들 줄 선다. 너.”
“나도 너가 남자였으면 너랑 사겼을 거야.”
“근데 보라야. 나랑 사귀고 깨지면 다신 못 보는 거 알지?”
“왜?”
“남녀관계란 그래. 어쩌면 친구로 지내는 게 더 좋을 걸? 김도진이랑 친해지고 싶댔지. 내가 연결시켜줄게. 편지 써봐. 전달해줄게.”
아직은 살아야 한다. 편지를 다 쓰기 전까진. 그때가 되면 생각이 바뀔까? 아직도 추하고 못난 내가 살아도 괜찮을 세계일까.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