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마음 박물관③] 별스럽고, 색다른 낯선 얼굴의 너… 다르니까 스며들 수 있는 거지

2025년 03월 20일

그곳엔 끝없는 자연
티 없는 풀, 꽃, 잎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나타난 무리
생소한 낯, 눈, 결이
내 가슴을 두드렸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알프스의 능선 위로 하얗게 쌓인 구름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도시는 진작 점이 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따분한 회색빛 도시들은 어느새 흙 내음을 머금은 산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동화 속에서 미끄러져 나온 것만 같아….”

한때 이곳의 기억은 할머니가 타계하신 후로, 마음속 무덤에 영원히 묻어두기로 다짐했었다. 그리움과 맞이하는 아침이 아파서.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이 산장의 냄새는 변치 않나 보다.

“주디야, 다 왔다. 어서 내려서 짐 챙기고 올라가 있어.”

산장은 사람의 손길이 한동안 닿지 않았음에도, 내가 마지막으로 집에 작별을 고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벽난로 위에 사진들만이 누렇게 빛바랜 채 손 인사를 하고 있을 뿐. 

“아직 그대로네.”

손끝으로 액자 위에 수북이 쌓인 먼지를 가만히 쓸어냈다. 그 순간, 투명한 유리 표면에 반사된 창가의 은방울꽃이 시야에 들어왔다. 할머니가 애지중지 키우던 은방울꽃. 누군가는 별스럽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꽃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 무언가가 나를 조용히 이끌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홀린 듯이 창가 앞에 서서 은방울꽃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눈물처럼 맑고, 아득한 그리움을 닮은 향을 풍기는 은방울꽃. 향을 음미하며, 은방울꽃이 뿌리내린 흙을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미세한 입자들이 살갗을 서늘하게 간지럽혔다.

“앗 차가워. 뭐지, 차가운 금속 같은 게 안에 들었는데?”

손안에 닿은 건, 다름 아닌 열쇠였다. 한순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만 같았다. 열쇠가 비정상적으로 작았기 때문이다.

“거기서 뭐해? 얼른 짐 풀어.”

어느새 엄마는 집 안으로 들어와, 짐을 풀고 계셨다. 열쇠를 손아귀에 꼭 쥔 채, 조심스럽게 주먹에 감췄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을 간지럽혔지만, 풀지 않았다. 

“나…. 당분간 할머니 방에서 지내는 거지?”

말끝이 살짝 떨렸다. 아직 남아 있는 할머니의 향기와 손때 묻은 것들이 방 안에 선명하게 가득한데, 문턱을 넘어서기가 조심스러웠다. 창으로 스며든 태양의 눈물이 할머니의 방 안을 한가득 비췄다. 열쇠를 더 꽉 쥐었다. 마치 태양이 지배하던 산장을 잠식하려는 그림자의 정체를 밝혀내려는 듯이.

그로부터 며칠 후, 마침내 이 열쇠가 꼭 들어맞는 문을 발견하게 됐다. 선반 위에 놓인 먼지 쌓인 액자들을 닦으며 추억에 잠겨있을 때였다. 

“어? 저게 뭐야?”

액자 위로 어떤 형체가 반사되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벽지와 똑같은 색으로 둔갑해 있는 작은 문이었다. 호기심에 못 이겨 그 문으로 한발 한발 다가갔다. 며칠 전, 화분에서 발견한 열쇠가 꼭 들어맞았다. 

심호흡을 한 번 가다듬곤 “하나 둘!” 문을 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래도록 잊고 있던
푸르른 알프스 산장
그곳을 다시 찾았다

적막한 붉은 빛 방에서
당신의 방에서 보이는
홀로 키우던 은방울꽃
향을 느끼고 음미하다
얻게 된 ‘의문의 열쇠’
그리고 발견한 작은 문

그러나 심장이 뛰는데…
당신들의 이국적인 낯
불안하게 만드는 눈빛
그런데도 설레는 가슴

무리가 가르쳐 준 한 가지
“다르니까 스며드는 걸”
너희 친숙함과 친절에
깨달은 교훈 한 가지
‘난 낯선 존재가 아니라
새롭고 특별한 자구나’

문 너머는 입이 쩍 벌어지는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긴 복도를 지나자 끝없이 펼쳐진 꽃밭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숲이 보였다. 하늘은 파란 물감을 쏟은 듯 푸르고, 머리 위에는 새들이 맴돌고 있었다. 마치 꿈처럼, 혹은 꿈이 아니길 바라는 현실처럼.

“우와…. 자연과 하나 된 기분이야.” 

푸른 잔디 위를 자유롭게 뒹굴며 바람과 하나가 되었다. 마치 오래전, 할머니 산장 앞 눈부시게 쌓인 눈 위에 누워 웃음을 터뜨리던 그때처럼. 눈을 감고 맑은 공기가 폐 속에서 헤엄치는 걸 느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던 모양이다. 내 어깨를 툭툭 치는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넌 누구니?”

땋은 갈색 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지닌 무리들이 날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복제품 같은 얼굴을 하고. 곧 있으면, 그 눈동자에서 광선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신기하다. 우리와 다르게 생긴 사람은 처음 봐!” 

난 그들의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나만이 이질적이라는 감각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나를 해치면 어떡하지?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이곳에 괜히 들어와서 젠장! 어떻게 빠져나가지?’

머릿속은 순식간에 엉킨 실타래처럼 뒤섞였다가, 스르르 풀려나가길 반복했다. 심장이 그들과 나 사이에 놓인 광활한 적막을 깨뜨리듯,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다르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

두려움에 몸이 굳는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그들 중 하나가 호의적인 어투로 내게 물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들의 표정은 친숙함과 다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두려워. 내가 잘못된 건 아닐까.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지 못하면 어디로 흘러가야 할까? 걱정하게 돼.”

그들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빛을 머금었다. 

“하지만 점점 깨닫게 돼. 다르기에 더욱 조화롭게 스며들 수 있다는걸.”

처음엔 호기심만 어렸던 그들의 눈에 점차 새로운 빛이 스며들었다.

“다르다는 건, 어쩌면 서로 다른 물감들을 섞어 채색을 하는 것처럼 세상을 더 조화롭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라. 그러면서 남들과 다름에 점차 자부심을 갖게 돼!”

그들 중 누군가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우리도 너처럼 서로 다른 색으로 빛나고 싶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낯선 존재가 아니라, 새롭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다름이란 틀린 것이 결코 아님을. 오히려 세상을 빛내는 조명과 같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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