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ㅇ루다가] ③15년 전, 나는 일기에 뭐라고 적었을까?

2020년 12월 01일

6학년 담임선생님이 내주신 일기는 이제껏 일기 중에서 독특했다.

하루 일과 마치면 50인치 넘는 프로젝션 텔레비전 화면에 “오늘의 일기”를 띄우고서 오늘 쓸 일기 주제를 정해주었고 그걸 알림장에 받아 적었다. 아주 가끔 자유 주제로 일기를 쓰도록 내주기도 하셨는데 정해진 주제가 자유롭다보니 가장 하고 싶은 말을 쓰게 되었다.

그 일기들을 모아보면 나는 정치와 사회, 재밌게 갖고 놀던 프로그램에 무한한 관심을 보인 초등학교 6학년 소년으로 보였다. 처음 발 디딘 위성사진, 콩나물과 구글어스로 바라본 화려한 세계 각국의 도시, 911테러 음모론보다 월드트레이드센터(WTC)가 무너진 기술적 이유에 주목했고, 독도가 한국 영토인 사료,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나라 사랑 소년은 매주 일요일 교회를 가던 신앙인이기도 했고 우리말을 사랑했다.

◇선생님께 소개하고 자랑하고 싶었던 사건과 프로그램
묵혀둔 글 대량 방출하듯 써내려간 911테러를 접한 건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판도라TV를 돌아다니다 건물이 붕괴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그게 월드트레이드센터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다양한 영상물을 찾다가 발견한 다큐멘터리는 테러가 발생한 개요부터 무너진 이후의 참상을 담아놓았다.

비행기가 충돌하고 도망가는 사람들, 건물이 무너지고 차 밑에 숨어 먼지더미를 피하는 남자, 에스컬레이터로 진입하는 소방관,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양식의 건물인 펜타곤의 테러까지 초등학생이 보기에도 혼란한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테러 이후 촬영한 인공위성을 구글어스로 보며 월드트레이드센터 건축 양식과 새로 지어질 프리덤 타워를 비교하기도 했다.

친구들 앞에서 발표한 구글어스 역시 911테러와 함께 새로 접한 지도 프로그램이다. 응용프로그램으로 접속 할 수 있던 시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에펠탑, 도쿄타워, 63빌딩처럼 유명한 장소를 찾아가 위치를 저장해 캡처하고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게시했다. 태양에 비추는 그림자 위치를 알려주던 플러그인부터 비행기 모드도 일기를 통해 선생님께 소개했다.

당시 수도권 지역만 지도로 나와서 청와대와 KBS, 광화문, 국회의사당 위주로 둘러보고 단점을 기록했다. “그 대신 나라의 위험이 문제오…….” 이 날 일기 주제가 무엇일지 생각하게 만드는 말투지만 현재 시점에서 과거 사람들에게 현대 문물을 소개해주는 주제의 일기에 구글어스를 소개한 모양이다. 선생님도 주고받거니 했다. “선생님 나중에 수학여행갈 때 써도 후회치 않습니다. 한 번 써보시옵소서” “우와~ 대단하오~ 선생님에게 좋은 정보 주어 고맙소──”

◇가슴을 울리던 민족주의와 신앙심
일본 시네마현 의회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한 해였던 2005년, 주한 일본대사의 “독도는 명백한 일본 땅”으로 망언하며 전 국민에게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인디 그룹 상상밴드가 겨냥해 「독도, 워미 인트로(Wormy intro)」를 발표하자 「피너츠송」을 흥얼거리며 블로그에 독도가 한국 땅인 역사적 근거를 게시하기 바빴다.

“야스쿠니를 만든다면 아시아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존경할까? 다 자기네 법대로 해, 합사건 뭐건 자기네 법대로 한다니까…….” 2백 4십만의 합사된 이들 중 천여 명이 넘는 A급 전범까지 포함 돼 있어 반대하는 주장을 펴고 침략국으로서 반성해야 할 인간의 도리를 지적했다. 민족주의적 감정은 일제강점기 뿐만 아니었다.

가끔은 맞춤법 틀려도 “삼”과 “셈” 따위로 끝나는 말은 하지 않는다며 “가장 싫어하는 『행위』”라고 지적한데에는 가슴으로 설명하려던 민족주의 감정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러한 언어를 쓰면 ‘한글 파괴 주의자’라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는 다소 꺼림칙한 생각이 일상 언어에서 두드러졌다. 아이는 착한데, 그 방법이 착한 결과라면 폭력적이어도 괜찮다는 불편한 시각이라 해야 할까.

불편한 시각이 초등학교를 마치던 6학년에서야 강해졌던 배경에는 종교가 한몫한다. 워낙 처음 가본 흰돌산기도원이 911테러만큼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천국과 지옥을 구경하던 입신(入神)이나 영적생활과 육적생활의 이분화된 사고는 빼내기 힘들 만큼 마음에 깊게 자리했다. “살인과 거짓말의 무게는 같고 저 사람이 더 잘못했네가 아니라 ‘모두 똑같이 잘못했네’가 맞다고 설교시간에 배웠다. 사실상 나는 죄의 무게를 가지고 판정했다…….” 15년이 지나 읽어보니 초등학교 6학년이 할 만한 생각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초등학교를 끝으로 쓰지 않았던 그 일기
본론으로 돌아와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 일기는 독특했다. 주제도 정해주지만, 주제를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 나름 문학적이기도 하다. 늘 쓰고 싶은 일기를 쓰다보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늘 같은 일상이 되어 더는 일기의 가치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내 선생님은 다양한 주제를 던져주었고, 던져준 일기를 소중히 적으며 조선시대 실학자가 되어 경제를 생각하기도 했고, 투명인간이 된다면 무엇을 할지 야한 상상도 해보고(영화 할로우맨의 영향이 크다), 삼행시에 CF 컷도 그려보며 다채로운 글감이란 무엇인지 맛보았다.

영원한 1인 독자였던 선생님을 졸업과 함께 떠나보내고, 일기를 더는 이어가지 못했다. 무려 7년이 지나 학부생이 되어서야 ‘일과속기록’을 만들고 ‘감회록’을 만들며 다시 일기를 쓰게 되었다. 만일 중학생부터 일기를 이어가며 다채로운 글감을 적어보았더라면 지금의 감성은 더욱 풍부하지 않았을까. 그 7년의 시간은 설교문처럼 정해진 결론과 같은 시각의 논설문만 집필하며 사고는 딱딱해지고 재미없어졌다. 이 신문 자유의새노래도 기사뿐만 아니라 기행문, 소설, 인터뷰를 기록하는 이유도 딱딱한 글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기는 다양한 역할을 감당한다.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고 기록을 토대로 반성하며, 어제들의 행적을 되짚고 오늘의 나를 생각하며 사진, 동영상이 할 수 없는 관념의 물건들을 정리해 생각하게 만든다. 여러분의 일기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꺼내어 살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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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쫀득쿠키. 이름만 들어도 일단 두바이에서 만든 쿠키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두바이 초콜릿은 들어봤어도 쫀득쿠키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쿠키면 쿠키지 쫀득쿠키는 뭘까. 여자친구가 먹고 싶다던 두쫀쿠를 더현대서울에서도 판다기에 점심시간, 지하 1층 식당가를 헤집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품절 대란이 일어날 만큼 인기리에 판매 중이었기 때문이다. 절찬리 판매 중인 ‘존맛탱 쿠키’ 두쫀쿠는 ‘두바이 쫀득쿠키’의 줄임말로 중동식 얇은 면인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 크림을 속에 넣고 마시멜로 반죽으로 감싸 바삭하면서 쫀득한 식감을 내는 쿠키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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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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